홍길동전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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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좋아하는 슈퍼 히어로, 홍길동  

 


 

2008년, 40여 년만에 발굴되어 대중에게 선보였던  

신동헌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년 작)의 한 장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홍길동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친숙한 고전소설 속 캐릭터다. 한번씩은 어린 시절에 동화로 접한 홍길동의 활동를 통해서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용기를 얻으면서 자랐다.   동화뿐만 아니라 만화 캐릭터로서 부활한 홍길동은 탐관오리의 재물을 훔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에다가 손오공 못지 않게 축지법과 변신술을 사용할 줄 아는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슈퍼 히어로이다. 

   

  

 

  #1 길동 아이덴티티 " - 홍길동의 눈물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공자와 맹자를 본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방법이라도 익혀 대장인(大將印)을 허리춤에 비스듬히 차고 징벌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이름을 만대에 빛내는 것이 장부의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외롭고, 아버지와 형이 있는데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 지경이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 허 균 <홍길동전> (경판 24장본), 펭귄클래식코리아, pp 8~9 - 

 

어린이들에게는 홍길동을 용맹스러운 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홍길동전>을 동화가 아닌 고전소설로 접해본 성인들은 재능은 있으나 조선 시대의 유교적, 봉건적 지배 체제의 벽에 막혀 사회 진출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으며 천비 소생으로 태어나는 바람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호부호형(呼父呼兄)하지 못하는 달밤에 혼자서 사회적 이중고에 울분을 삼키는 비운의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의기롭고 용맹스러울거 같은 호걸 홍길동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현실의 벽에 기인한 모호한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아버지인 홍 판서 앞에서 통탄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공(*)이 듣고 보니 불쌍한 생각은 들었으나 그 마음을 위로하면 방자해질까 염려되어 크게 꾸짖었다.  

 " 재상가의 천한 자식이 너뿐이 아닌데, 네 어찌 이다지 방자하냐?  앞으로 다시 이런 말을 하    면 내 눈앞에 두지 않겠다. 

이렇게 꾸짖으니 길동은 한마디도 더 하지 못하고, 다만 땅에 엎드려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 같은 책,  pp 10 -  

 (*) 홍길동의 아버지 홍 판서

  

결국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능력만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방법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되어 의적의 길을 걷게 된다.   길동에 대한 홍 판서의 충고는 적서 차별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관념을 따르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길동의 능력을 눈여겨 봤던 부정(父情)이 담긴 조언으로 볼 수 있다.   홍 판서의 충고가 소년 길동을 스스로 사회적 현실의 눈을 뜨게 하고 스스로 출가하여 험난한 세상에 뛰어들게 만드는 부차적인 동기인 것이다.  

그러나 홍 판서의 존재는 소설에서 전개될 길동의 활약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데,,, 

 

 

  #2 길동 슈프리머시 - " 영웅 홍길동의 일생 "   

고전소설로서의 <홍길동전>을 읽게 되면 홍길동의 생애가 우리가 어렸을 때 동화로 봤던 완전무결한 의적의 모습이 아닌 율도국을 건설하여 왕이 되기까지 산전수전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작과는 다르게 내용이 축약되는 동화 속 홍길동의 모습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동화 속 홍길동은 탐관오리의 집을 습격하여 훔친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의적으로스의 모습이 부각된다.   하지만 원작은 전혀 다르다.  원작에서 길동이 재물을 훔치는 상세한 묘사는 길동이 도적들을 이끌고 합천 해인사를 습격하는 장면, 단 한 장면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서고금의 영웅들은 고귀한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일반적인 인간과 차원이 다른 초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비록 길동은 명문 거족의 후예가 아닌 소생 서자로 태어났지만 길동이 태어나기 전에 꾸게 된 홍 판서의 꿈은 비범한 영웅의 등장을 암시하는 태몽으로서 극적 효과를 부여하고 있다.    

 

길동을 낳기 전에 홍공이 잠을 자는데 갑자기 우레와 벽력이 진동하며 청룡이 수염을 거꾸로 세우고 공을 향하여 달려들기에 놀라 깨니 한바탕 꿈이었다. 마음속으로 크게 기뼈하여 생각하기를, 

 ' 내 이제 용꿈을 꾸었으니 반드시 귀한 자식을 낳으리라. ' 

 - 같은 책, pp 7 -  

  

길동은 어렸을 때부터 영웅호걸의 기상이 돋보였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육도삼략과 병법, 천문지리, 거기에다가 주역(周易)까지 꿰뚫고 있다(!) 

그의 등장에 시기심을 느낀 홍 판서의 또 다른 첩 초란은 자객을 시켜 길동을 해치려고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이상 길동의 운명을 막지 못한다.  능란한 호신술로 자객의 위협을 벗어나며 탁월한 무예와 재략으로 활빈당을 조직하여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홍길동전> 원작에는 울동(* 현존하는 <홍길동전> 판본은 여기서 소개하는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이 존재하는데 발간 시기기 다른만큼 내용면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완판 36장에서는 '을동' 이라고 표기되고 있다)이라는 괴물에 잡힌 백룡 집안의 딸과 조철 집안의 딸을 구출하는 장면이 있다. 길동은 이에 대한 공로로 두 집안의 딸을 자신의 부인으로 삼게 된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두 부인을 삼은 홍길동의 모습을 통해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또 다른 영웅적인 면모를 암시적으로 상징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혹은 생전에 기생과 어울릴 정도로 자유분방한 허균의 모습이 투영되는 설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승승장구할 것 같은 길동에게도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된다.  

'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길동의 의적 활동으로 인해 수많은 관원들이 그를 잡지 못하게 되자 조정은 길동을 향한 진노의 화살을 홍 판서 가문으로 돌리게 된다.  조정은 홍길동이 홍 판서의 서자임을 알게 되어 국가의 재앙이나 다름없는 길동을 방관한 홍 판서를 문초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노쇠하여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 홍 판서를 길동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게 되자 홍 판서의 친아들이자 길동의 형은 길동을 자수하게 만드는 공문을 올린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오륜이 으뜸이요, 오륜이 있어 인의예지가 분명하게 된다. 이를 알지 못하고 임금과 부모의 명을 거역해서 불충불효가 되면 어찌 세상에서 용납하겠느냐?  

 (중략) 

바라나니 아우 길동이 이를 생각하여 이를 자수하면 너의 죄도 줄어들 것이요, 우리 가문도 보존할 것이니 너는 만 번 생각하여 자수하라. 

 - pp 29~30 -

 

원작에서는 의적의 길을 계속 걷을 것인지 아니면 홍 씨 가문의 명예 유지과 자신 때문에 노년에 곤혹을 치르는 아버지 홍 판서에 대한 불효라는 상충된 입장에서 길동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묘사는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길동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선택을 햐느냐에 따라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입신양면의 결과가 좌지우지할 수 밖에 없는 심사숙고해야하는 선택적인 딜레마의 기로에 처했을 것이다.  

결국 길동은 홍씨 집안의 위태로움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조정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 자수를 하게 된다.   길동에게는 자신의 의적 활동이 자식의 도리로서 불효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자수를 선택하지만 조선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부조리한 유교적 사회 체제를 인식하고 있던 그가 홍씨 가문의 유지라는 전형적인 유교적 인습만큼은 지키려고 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3 길동 얼티메이텀 - 길동이 마지막으로 왕에게 부탁한 것은?

길동은 당대 조선 사회의 모순을 척결하고 새로운 이상 사회를 세우고자 율도국을 건설하게 되지만 원작 곳곳에 여전히 유교적 인습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길동의 모습이 포착된다.  

제 아무리 자신의 능력으로 의적 활동과 여러 번 위기를 벗어나고 조선 사회을 타파하여 새로운 이상 사회인 율도국의 왕이 되지만 율도국을 건설하여 왕에 오르게 되는 과정만큼은 썩 석연치 않다.   

길동은 자신의 소원이 병조판서를 지내는 것이므로 제수(除授)받게 된다면 조선을 떠나겠다고 왕에게 최종 제안을 하게 된다.  왕은 길동의 제안을 허락하여 그에게 병조판서를 제수한다.  

병조판서는 군사 관계 업무를 총괄하던 병조의 우두머리 관직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부전자전이라고 하던가?   길동은 자신의 아버지처럼 판서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병조판서가 되고 싶어하는 길동의 소원에는 유교적 사상에 입각한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길동이 세운 율도국은 조선의 관리 체제와 유사하다.  율도국을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부하들에게 각각 좌의정과 우의정으로 삼는 장면, 그리고 원작의 결말에 길동이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삼년상을 하게 된다는 언급은 사회 개혁에 대한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조선을 떠나 새로운 미지의 땅에 세운 율도국도 조선의 유교적 전통의 특성을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 개혁에 대한 개혁 의식을 허균은 이상향으로 도피시킴으로써 <홍길동전>의 결말은 그 당시로서는 신선한 문학적 장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이념에 다스려지는 중세적인 모습을 간직한 채 근대적인 발전으로 전향하지 못했다.  

 

 

  #4 길동 레거시 - 홍길동의 후예 

허균이 <홍길동전>을 쓴 지 400여 년이 지났지만 홍길동이 겪어야했던 사회의 모습은 시대만 바뀌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재벌가 및 권력자의 2세들 중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다른 거대한 저택에 살면서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값비싼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화려한 ' 로열 패밀리 ' 로써의 생활을 누린다.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경영 수업을 통해서 기업을 물려 받지만 기름으로 떼돈 버는 아랍 왕자들처럼 대기업을 손쉽게 거저 물려주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저소득층 집안에서 태어나 가까스로 전문대를 졸업하지만 취업하는데 전전긍긍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재산이 가지고 있는 부유한 자와 반대로 재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빈곤에 시달리는 자들 간의 사회적 빈부 격차가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요즘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지만 ' 개천에서 용 난다 ' 라는 속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적인 삶을 이루는 사람들도 있다.  가난의 밑바닥 생활을 체험하지만 끝내 온갖 노력 끝에 신분이 상승되기도 한다. 

지금도 대한민국에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계급의 차별을 벗어나 상류 사회 진출하기 위해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서 수많은 이력서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한탄하면서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경쟁이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들어낸 ' 홍길동의 후예 ' 인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홍길동을 보면서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교훈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변해버린 사회를 직접 피부로 체험하게 된 이상 노력만으로도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것을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부조리한 사회 구조 앞에서 좌절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홍길동전>을 원작으로 읽게 되면 홍길동은 애초부터 초인적인 조선의 호걸이 아니라 우리처럼 사회 현실 앞에 눈물을 흘리는 인간적인 호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홍길동도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는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슈퍼맨, 배트맨과 같은 서양의 영웅 못지 않게 한국적이면서도 인간적인 홍길동을 다른 조선 호걸들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문서 작성할 때 예시 이름으로 ' 홍길동 ' 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홍길동은 우리에게 인간적이면서 친숙한 호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사진 출처

[한국 최초 장편 애니 ‘홍길동’ 40년만에 부활] 경향신문 2008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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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04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우치가 더 좋았어요, 어려서부터.
홍길동전을 읽으면 심란한거예요... ㅎㅎ. 특히 뒤로 갈수록.
다시 읽으면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것 같네요.
그러게요... 별반 다름없는 인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인게죠.
가장 크게, 부모님과 임금, 제일 중요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그런... 그렇네요.

cyrus 2011-07-04 21:03   좋아요 0 | URL
마고님 댓글 보면서 아마도 길동은 단순히 사회진출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록 소생 서자이지만
아버지로부터 친자처럼 인정을 받고 싶어했던거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