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1
1886년 1월 1일, 1934년
19세기 말부터 등장한 제국주의는 유럽 열강들로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으로의 영역 확장을 하도록 부추겼다. 유럽 열강들은 자신들이 지배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자신들의 발전과 이익에 도모하였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대영 제국은 인도의 이웃나라 버마(미얀마의 옛 명칭)까지 호시탐탐하였다. 대영 제국 입장에서는 아시아 대륙 진출을 꾀하기 위해서는 버마 지배가 필수적인 책략이었다. 60여 년 간의 버마와의 세 차례 전쟁 끝에 1886년 1월 1일 버마는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8년에 독립할 때까지 버마는 62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버마가 영국의 지배를 받은 지 48년이 지난 1934년에 조지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의 허상을 폭로한 소설『버마 시절』을 완성하였다.
History #2
1910년 8월 29일, 9월 9일
올해가 경술국치(한일병합 조약) 100주년이 된다. 지난 달, 8월 29일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겨버린 망국의 날이다. 당시 일본의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합작하여 황제의 옥새를 날인하여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병합조약을 반포하였다. 이로써 조선왕조는 27대 519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매천 황현 (1855~1910)
일본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반 쪼가리 대한제국이 되어버린 지 10여 일이 지난 1910년 9월 9일. 구례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비가 아편을 탄 술을 먹고 자결을 하였다. 숨을 거둔 그의 책상머리 맡에는 유서와 4수로 구성된 한시 <절명시>만 남겨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매천 황현. 그는 자결하기 전, 한일병합 조약 소식을 접하자마자 크게 통분했던 노 선비였다.
100년이 지난 뒤, 전국 곳곳에서는 굴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일병합 조약의 무효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010년 9월 10일에는 매천 순국 10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 그러나 5개월 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기념 자료집 발간, 추모 음악회, 안 의사 유해 발굴 추진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린 것과 비교하면 매천의 추모식은 그가 태어난 곳인 전남 광양에서 조촐하게 치러졌다.
제국주의의 그늘에 가려진 대한제국 시절
조지 오웰의『버마시절』에 등장하는 주인공 플로리는 태생이 영국인이면서도 조국의 버마 지배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조국을 비판하기에는 주위의 시선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커져 버릴 대로 커져버린 제국주의는 플로리 한 사람이 반발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념의 장벽이다. 반면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두 버마 원주민인 의사 베라스와미와 치안 판사 우 포 킨은 플로리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베라스와미는 오히려 영국의 버마 지배를 옹호하고 있으며 영국이 지배하지 않는 버마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 포 킨은 영국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잡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제국주의에 길들어져 부패한 인물의 상징이다. 두 버마 사람들을 통해서 영국의 제국주의의 그늘 안에 가려져 버린 버마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소설 속 1920년대 버마 시절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대한제국의 모습과 비슷하다. 베라스와미와 우 포 킨의 행보는 대한제국에서 기세를 부리고 있었던 친일파들과 비슷하다.
당신은 사업하러 이곳에 오셨다고 말했지요? 당연합니다. 버마인들이 스스로
무역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계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지요. 만일 영국 사람들이
이곳에 없다면 버마 정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정글을
일본에 팔아먹을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정글을 송두리째 오려낼 것이니
황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죠. 대신 당신들의 손에 맡기면 정글은 실제적으로
좋아지죠. 그리고 당신네 사업가들은 우리 국토의 자원을 개발하고, 관리들은
우리를 문명화시켜 당신들 수준까지 끌어올리죠. 이것은 자기희생의 빛나는
기록입니다.
-『버마시절』조지 오웰, 열린책들, p 55 -
1880년대부터 서양 근대 문물의 무분별한 수용은 일본이 야금야금 대한제국을 지배하려고 하던 20세기 초에 친일 사상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개화사상을 통해서 찾으려고 했던 개화파들 중 일부는 대한제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대한제국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영국과 러시아 등의 유럽 열강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은 대한제국 내의 항일 운동을 뿌리 뽑기 위해서 겉으로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고 행동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문화 통치를 실시함으로써 친일파들을 양성하였다. 아시아 대륙을 지배하기 위해서 대동아 공영권을 내세우고 있었던 제국주의 국가였다.
세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일본의 위력을 목도한 지식인들은 항일 민족 운동을 버리고 친일 운동으로 돌아서게 된다. 친일파 지식인들은 국민들에게 국권마저 빼앗겨버린 현실의 형편없는 나라를 차라리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건설에 동참하도록 호소하였다. 그러나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 공영권은 단지 대한제국의 주요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독립 운동을 철저히 탄압하였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35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친일 정치인과 경영인들은 일본이라는 든든한 빽을 둔 덕분에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웠다.
반면 나라가 일본의 지배에 넘어갔음에도 끝까지 항일 운동을 고수한 애국지사들도 있었다. 노골적인 일제의 침략을 지켜봐야만 했던 노 선비 매천 선생은 망국의 치욕을 당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였다.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 황현 <절명시> 제3수 전문 -
매천 선생은 책을 덮고 난 뒤, ‘글 아는 사람’의 처신이 진정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자결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붓’만으로는 일제와의 대결에 너무도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제국주의의 허상에 대해 통분하면서도 그것을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하고 마는 플로리처럼 매천 선생도 처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고 말았다.
제국주의 시대 앞에서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역사적 수난기에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때로는 직접 역사를 이끄는 주체가 되기도 하고, 저항적 태도를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외세와 타협하여 민족을 저버리는 경우도 있다. 매천 황현과『버마시절』의 주인공 플로리. 이들이 자랐던 시대와 배경은 확연히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체제 앞에서 항거하였으나 결국에는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를 선택한다. 죽음이 단지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어리석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살면서도 자신 스스로 시대의 분위기를 동조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시류를 편승하기보다는 스스로 시대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주변인을 자처한 것이다. 시대의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데에는 항상 고충이 따르게 마련이다. 매천과 플로리는 잘못된 역사 앞에서 취해야 할 도리에 대해서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이를 통해 세계의 ‘양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정신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매천과 플로리처럼 잘못된 역사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올바른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고매한 정신의 선구자들을 기억하는 것만이 시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던 통한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