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바다 - 바다에서 만들어진 근대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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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 시절의 로망, 해적  


 


내가 아주 어렸을 때 K 방송국에서 하던 그 만화 피터팬,  

알고 보니깐 그 유명한 미국의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사진이 있었다. 

험상궂게 생긴 저 후크와,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꽁지머리로 묶고 다닌 피터팬과  

조그만 팅커벨.....  나에게는 디즈니의 피터 팬보다 이 피터 팬이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사진을 보고나니 점점 잊혀지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린다....ㅠㅠ  


  
영화 <후크> 포스터, 이 영화도 꽤 재미있게 봤었다.     

어렸을 때 처음 봐서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이 어린이용 영화가 

초호화 감독과 캐스팅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터 팬 역: 로빈 윌리엄스, 팅커벨 역: 줄리아 로버츠, 후크: 더스틴 호프만. 

 .....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ㅎㄷㄷ)

 

 
오다 에이치로 작 <원피스>
  

속세에 때 묻지 않았던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에 해적을 동경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이제 막 애기 티를 벗고 난 뒤였을까.....?     

기억은 잘 나지는 않지만 K 방송국에서 만화 '피터 팬'을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너무 오래 되어서 내용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항상 마지막에는 우리 착한 주인공 피터 팬그 특유의 웃음과 포즈는 기억이 난다. 그러나 피터 팬의 앙숙 후크 선장에 대한 기억이 더 남는다. 잔혹하고 악한 후크의 냉혈한 심장에는 예전의 순했던 성격과 악한 성격을 가지게 된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다란 배와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후크 선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였다.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도 은연히 남성다운 남성이라는 본성이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사춘기에 들어서도 해적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들었다.  

중학교 때 쯤에는 일본에서 만든 만화 <원피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주인공 루피가 해적왕이 되기 위해서 동료들과 거친 바다를 모험한다는 해적 판타지 액션 모험 로망 만화(?)였다. 1권부터 초창기 시리즈의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군대 갔다오고 다시 읽으려니깐 이미 시리즈는 50권이나 넘어섰으니 다시 읽을 수도 없고.....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안드로메다로 향하고 있고..... 

어쨌든 나에게 해적이란 캐릭터는 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약탈하는 악한이면서도
광대한 바닷가를 떠돌며 모험을 즐기줄 아는 마초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해적의 탄생  

주경철 교수의 『문명과 바다』에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해적의 모습이 아닌 다양한 역사적 사료들에서 찾아 낸 새로운 얼굴의 해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지 바다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장소와 맞서서 모험과 유흥을 즐기는 마초가 아니었다.

15~16세기 유럽 대륙에 휩쓸기 시작한 신항로 개척의 영향으로 가난에 허덕이던 유럽의 하층민들은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 아래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바다’에 가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상류층들은 하층민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한 목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상업인들은 항해사 모집 포스터에 "바다 위의 재화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의 모험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바다가 손짓하고 있다."라는 식의 허위 광고를 게재하였다.    
 

이런 광고 문구를 보고 돈이 궁한 하층민들 중에 혹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바다라는 미지의 장소를 알지 못했고, 평생 바다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한 하층민들은 망설임 없이 바로 배의 항해사에 모집하였다. 가난한 무직자에서부터 노숙자까지..... 가난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항해사가 될려고 하였다. 그들은 바다 위의 힘든 생활보다는 빛나는 금화들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 한다'라는 말이 있다. 항해 경험이 초짜였던 하층민들의 삶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개고생..... 그리고 죽음이었다. 

 

선박 주인들은 여러 명의 하층민 항해사들을 노예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육지에서도 윗 사람 밑에서 노예처럼 일했는데 바다에서도 그 막노동 생활을 하고 있으니 후회가 절로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선박 안에서의 일은 힘든 노동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대한 바다 앞에서 겁에 질려있었다거나 운이 없게도 태풍과 만나면 파도에 휩쓸려 죽기도 하였다.  당시 선박 위생 환경이 열악했던 터라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육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생활을 해야 한 항해사들에게는 하루종일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것이다.  

 

거지 같은 삶에 지친 일부 항해사들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에서 반란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반란에 성공하여 거대 선박 한 척을 차지하게 되면 이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남의 선박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고 마는데.....  

  

그들이 바로 '해적'인 것이다. 약탈을 통해서 재화를 차지한 그들은 드디어 막혔던 삶의 해방 통로를 찾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해적들이 바다 위를 활개치면서 다니게 되었다. 

 

 

 

 바다 위에 싹을 틔운 공동체 사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해적도 변하였다. 단순히 약탈을 자행하는 바다의 도둑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개척자가 되었던 것이다.

해적은 일반 선박과 달리 노동 강도가 적으며 방식도 다르며 앞에서 언급한 항해사의 삶과 비교하면 해적은 귀족이었다. 그래서 일반 항해사들 중에서도 해적단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 당시로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나미처럼 돈만 밝히고 자기 이익을 채우려는 해적 일원이 꼭 한 명이 있기 마련이다. 해적단에 이런 일원이 한 사람이 있게 된다면 그 해적단 내에서 분쟁과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해적들은 해적단 내에서의 반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법을 만들게 된다.  

 

  

  1.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진다. 어느 때든 노획한 식료품과  

    주류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공동선을 위해 절약하기로 결정한 경우를  

    빼고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2. (전략) 동료의 보석이나 돈을 한 푼이라도 사취하면 무인도에 내버린다. 
    동료의 것을 훔치면 코와 귀를 자르고, ‘사는 게 고생스러울 것이 확실한’  

    해변에 하선시킨다. 

  3. 주사위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6.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여성을 유혹하여 배에 데려온 것이  

     발각되면 사형에 처해진다.

  8. 배 안에서는 서로 때려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결정한다.  

  9. 각자 1천 파운드의 저축금을 채울 때까지 현재 삶의 방식을 계속해야 하고,
    (중략) 근무 중에 불구가 된 사람은 공공 기금에서 800은화를 받고, 부상자들은  

    부상 정도에 따라 배분받는다.

 -「바르솔로뮤 로버츠의 해적 규약」중 일부, 『문명과 바다』에서 재인용 - 
 


해적 규약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해적의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적들이 이 규약을 확실히 지켰을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해적 생활 내부에도 공동체적인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한 재물에 대해 동등한 소유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점과 동료의 재물을 탐하는 자에게는 처벌을 내린다는 규정은 이채롭기만 하다. 평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와 법으로 일원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를 엿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상해보험 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해적들은 단순히 배를 타면서 바다 위를 떠도는 깡패가 아닌 나름 민주주의적 원리를 갖추고 있는 바다 위의 사회 집단인 것이다. 

    

  

 

 

 해적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밀짚모자 해적단원들에게도 이 법을 적용한다면..... 

루피와 그의 일행들이 배 위에서 다투기도 하는데 규약 제6조에 의거하면 육지에서 싸워야한다.

상디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식량을 축내는 루피는 규약 제1조 식료품 평등권 소유에  

위배됨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만화, 영화에서 비춰지는 해적의 모습은 실제 해적의 모습과 다르지만 해적이 모두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이례적이지만 17세기 엘리자베스 1세(1558~1613) 치하 때 드레이크(1545?~1596)라는 선장이 당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데, 그 공로로 '경'이라는 칭호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스페인 선박을 위주로 해적 활동을 하였다. 말하자면 나라를 위해 활동한 애국심이 있는 해적인 셈이다. 국가간 대립이 잦았던 옛날 유럽에는 드레이크 이외에도 적국 선박을 노려 약탈을 자행하는 해적들이 활동하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에도 해적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선박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잡혀 곤혹을 치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원래 약탈 목적으로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자국의 내전 상황에도 개입하고 있다. 소말리아 정부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 자국의 극 이슬람 무장세력들을 막기 위해서 해적과 손을 잡았다. 소말리아 해적의 군사력이 자국의 군사력보다 막강하기 때문이다. 세계 해적 소탕 작전을 주창한 UN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세계와 소말리아 정세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게 없지만 요즘 악의 집단으로 변모하는 해적들의 모습과 뉴스를 접하게 되면 어렸을 때의 동경하던 해적은 그냥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순수한 동경이라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만 하다.   

 

"나는 해적왕이 될꺼야!" 라고 외치면서 일반 사람들의 평범함을 뛰어넘는 4차원적인 성격이면서도 남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루피와 같은 유쾌한 해적.....  

 

이제는 만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상상 속의 해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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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들의 도덕률이 있었군요.
동아시아의 해적에 대해 저술하려면 아무래도 일본해적들...왜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는데...왜구에는 중국인,동남아인까지 참가해서 다국적이었다고 하더군요.우리나라 제주도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cyrus 2010-10-09 17:43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해양사가 언급됩니다.
왜구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외국인 하멜의 이야기까지요.
하지만 저자가 서울대 서양사학 전공이다보니
우리나라 해양사의 비중을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해적 이야기도 서양의 이야기만 되어 있기도 하구요.
갑자기 동양의 해적에 관해서 설명한 역사책이 출간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24   좋아요 0 | URL
진순신 <중국사> 명나라 편에 동아시아 해적 이야기가 있더군요.드레이크 처럼 조정에 큰 영향을 끼친 해적도 있더라구요.

cyrus 2010-10-1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 해적 중에도 영국의 드레이크 견줄만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좋은 정보의 댓글을 남겨주신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