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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를 위하여 시험을 치르는 것인가
요즘 우리나라 교육계는 바람 질 날이 없다. 일제고사, 무상급식, 체벌 금지 논란으로
교육계에서 벌어진 갈등의 폭이 좁혀지지 않는다. 초중고 학생 시절을 이미 지내본 젊은
세대들이나 아직 학생을 둔 부모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교육계 논란은 관심 밖일
것이다. 하긴 나와 관련된 것 아니니깐. 사실 나도 군 입대 전, 그러니깐 대학생 시절에는
초중고 생활은 추억일 뿐이었다. 그리고 교육계 관련 뉴스는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학생들이 치기 싫어하는 일제고사를 내가 또 치는 것도 아니며 전국 학교가 체벌을 하든지
말든지 나와는 분명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미래에 부모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학교생활 잘 하고 공부를 잘 하는 자식을 두기를 바라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니던가.
모든 대한민국 부모들에게는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자식이다. 자기 자식이 좋은 교육
환경에서 낙오된다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면 가만히 있을 부모가 아니다. 그러니 결혼을
하고 좋은 가정을 꾸리기를 원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교육계 관련 문제는 평소에 눈
여겨 봐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이 어떻게 변화하고 돌아가는지 알아야 나중에 당신
자식들을 어떻게 키워야하는지에 대해서 준비할 수가 있다.
나는 교육계 3대 문제 중에서 제일 관심이 많이 가는 부분은 일제고사이다. 일제고사
파행 논란은 이미 학생 신분을 지난 사람으로서는 약간의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성적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치러지는 각종 학교 시험을 수동적으로
참여했다. 당시 나와 같은 동년배 학생들은 야간 자율 학습을 빠지는 방법과 같은 조금은
철이 없는 고민을 했을 뿐이지 시험, 그것도 전국의 학생들이 동시에 치는 학력평가를
거부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우리보다 좀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제고사의 정식 명칭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이다. 시험 실시의 목적은 우리나라
모든 학생들의 학업 성적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일제고사 시험 반대 입장에
표명하는 전교조와 일부 부모들은 학생들 간의 경쟁교육을 부추길 것이며 오히려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징계 사유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체험 현장학습을 허락해줬다는 것이었다.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논란 속에
지난 달 13일에 전국적으로 실시한 일제고사는 일부 학생들이 시험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몇 몇 학교에서는 시험을 거부한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일제고사 파행에 대한 불이익은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내려졌다.
한 학생이 일제고사 거부 체험 현장학습 허락 증명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은 그 학생을 무단결석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어느 학교에서는 시험 당일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당황한 교감은 직접 시험을 치러지는 교실에 찾아와
일제고사 시험은 성적부에 기록되니 무조건 시험 칠 것을 학생들에게 종용하기도 했다.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의 원래 취지는 분명히 전국 학생들의 성적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었던가? 만약에 일제고사가 성적에 반영한다는 사실이 맞으면 시험이 치르는 전에
미리 이와 관련된 공문이 내려져 와야 한다. 학생들이 볼 수 있게 학교 각 교실마다
일제고사 관련 공문서를 게시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공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줬어야 했다. 그런데 교감이 시험 당일 교실에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으며 교감이 한 말이 미심쩍게 느껴진다. 교감이 시험 당일에 그런 갑작스런 공문을 보낸
이유가 있다. 모든 학생들의 일제고사 성적이 곧 학교 자체의 성적으로 결부되기 때문이다.
학교 학생들 절반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게 되면 학교 자체를 평가하기 위한 측정이
불가능하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학생들의 일제고사
거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단순히 학생들의 성적 수준을 평가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말 못하는 시험의 목적이 있다. 성적 결과에 따라 학교 수준이 정해지고 결국에는 그것으로
학교 수준이 서열화 된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고 난 후 성적으로 등수가 정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학교 수준에 따른 책임은 교장, 교감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교장, 교감의
활동 평가에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러니 교장, 교감에게는 일제고사를 통해 자기들의
교육 활동 수준이 드러나기 때문에 수능 시험 치는 수험생 마냥 일제고사 날이 다가오면
거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긴장을 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지금의 일제고사는
학생들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학교 수준을 측정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내년에도 일제고사는 치러지게 되면 학생과 학교 간의
갈등은 되풀이되고 만다.
모든 학생들을 위한 교육 만들기
홍세화 씨가 지적한 대로 한국의 교육은 수준 높은 교육 환경 제공과 학생들의
의사 존중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수준 높은 교육 환경을 자랑하는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수업은 독서와 토론 위주의
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무조건 외우고 정해져 있는 답을 찾지 않는다.
수업 주제에 대해서 학생 스스로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정답이 없는 토론을
통해서 사회 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보는 시선과 논리적인 사고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방과 후, 집에 돌아오면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성적 향상을 위한 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흥미 있고 하고 싶어 하는 취미 활동을 한다거나 가족들과의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가족들 간의 대화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적극적인 학습 태도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생각하는
공부는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조금 더 넓게 말하자면 좋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이다. ‘명문대=좋은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가 싫더라도 잠과
식사를 거르면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도 학원으로 향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명문대 진학
목표를 위해서 3년을 뼈 빠지게 고생해도 노력의 결실은 수능 시험 단 한 번으로
가려지게 된다.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성찰, 직접 경험하는 견문. 세계 선진국의 교육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요소이면서도 홍세화 씨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제도의
모습이다. 물론 우리나라 학교가 다 입시 위주 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 교육 제도의
문제점을 탈피하려는 시도가 보여지고 있다. 몇 몇 학교에는 외국 학교처럼 독서와 토론
위주의 수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업을 하는 학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마이스터 고(高)와 같은 전문적인 학교에서만 일부 시험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나머지
일반 학교에는 방과 후나 특별 활동 시간에서 시행하고 있다. 그만큼 선진국 형 교육
방식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런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거시안적으로 바라보고 이에 대한 투자를 일반 학교에서도 시험적으로 시행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교육 제도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독서와 토론은 특별 활동 시간에 할
특별한 교육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익하고 필요한 학습의 방식이다.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하는 어느 대학 교수는 무상급식에 대한 지원 비용을 차라리 교사
채용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훌륭한 교사들도 채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사 채용보다는 학생 교육 환경
개선에 사용했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물론 무상급식도 학생들을 위한 제도의 일환임을
분명하나 소득계층이 낮은 집안의 학생들을 고려하는 제도이다. 모든 학생들을 위한,
모든 학생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서와 토론 위주의 수업 방식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본다.
생각의 좌표를 구축하자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 위주이다 보니, 학생들은 영어 단어와 역사를 암기하고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 일상적인 학교생활이 되었다. 그래서 학교 밖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틈이 없다. 몇 몇 사람들은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고사 거부 분위기를 이용하여 일부 몇 몇 문제아라고 하는 학생들이 시험을
당연하다는 듯이 거부하려는 문제도 낳을 수도 있다. 정작 일제고사가 어떤 것이지
모르면서 무조건 분위기 휩쓸릴 위험한 사고를 범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학생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가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투자라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학생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이전 시행했던
교육 제도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학생들은 새로운 교육 제도에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과거의 교육 제도가 잘못되었다
고 뒤늦어서야 후회한다. 이런 일이 없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만의 학습이 필요하다.
즉, 독서와 토론, 거기에다가 스스로 생각하고 사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수능에
매달리는 학생들에게는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사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생각하는 것은 필요한 자세이다. 학생 때부터 이런 습관을 길들이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해야 할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 문제에 무관심해지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게
된다. 결국에는 신문에는 손길을 가지 않고 뉴스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수학에는 비례(比例) 좌표가 두 가지가 있다. 정비례, 반비례. 함께 변화하는 두 양
또는 수에 있어서, 한쪽이 2배, 3배…로 되면, 다른 한쪽도 2배, 3배…로 변하는 것이
정비례이며 반대로 대응하는 다른 쪽 양이 1/2배,1/3배,…로 되는 것이 반비례이다.
방식이 다른 만큼 좌표에 그려지는 그래프도 다르다. 정비례는 x값이 높아질수록
상승하는 그래프이지만 반비례는 오히려 하락하는 그래프로 그려진다.
x좌표는 사람의 일생, y좌표는 생각하는 양이라고 치자. 즉, 생각의 좌표인 것이다.
그리고 좌표값 (x,y)으로 가리키는 좌표점은 ‘생각의 좌표점’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 생각하려는 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생각의 좌표점은 점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좌표점의 방향은 밑도 끝도 없이 바닥으로 향한다. 즉,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지지 않으면 겉만 어엿한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으로만 보이는 성숙하지 못한 사회인이 된다. 성숙한 사회인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좌표를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정할 수 있는 생각의 좌표점을
가져야 한다.
관련 인용기사 출처 및 링크
[“시험 안 본 너 때문에 전체가 손해”...일제고사 곳곳서 파행]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7667
["무상급식 2조원이면 교사 8만 명 더 써” vs “포퓰리즘 아닌 사회적 합의”]
중앙일보 8월 7일자 입력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8/07/3947101.html?cloc=olink|article|defau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