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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소포클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8년 10월
평점 :
가장 비극적인 부녀(父女),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그를 배척하고
어머니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남성 유아의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왕』에서 등장하는
작품 동명의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남성 유아의 성 정체성 형성을 설명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부인으로 맞이한
인물이다.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가장 극단적인 행위들을 해 버린 그는
자신의 과오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 비극적인 운명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절대적인 힘에 희생당하여 괴로워하는 인간상으로
상징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닮은 덴마크 왕자 햄릿과 더불어
문학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로 평가되는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심리학 용어로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들 중에는 오이디푸스의 딸을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안티고네’이다. 자신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절망하여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다스렸던
테베를 떠나 방랑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오이디푸스를 이끌어준 사람이
유일하게도 안티고네뿐이다. 오이디푸스 슬하에는 2남 2녀를 두었는데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권력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게 되어 두 명 다 죽게 된다.
남은 두 딸, 주인공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만 남게 되었는데 이 때 테베의 새 왕인 숙부
크레온은 폴뤼네이케스만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법령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숙부의
법을 거역하고 폴뤼네이케스의 장례식을 손수 치뤘는데 노한 크레온은 그녀를 감옥에
가둬버린다. 그러자 안티고네는 감옥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남인 하이온은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되자 그녀를 따라
자살하였고, 그의 어머니인 에우뤼디케도 자살하고 만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죄로 자기 스스로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 인간이 만든 법을 거역하고
신(神)을 따르려다가 결국에는 자살을 선택한 안티고네.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주변
사람들의 잇다른 죽음.오랜 옛날, 당시 비극을 관람했던 고대 그리스의 관객들이나
지금도 이 작품을 읽는 현대인들에게는 두 인물이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정의를 위해서 죽느냐 ‘장님으로’ 사느냐
하지만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비극적 운명의 희생양으로 치부하기에는
뛰어난 작품성에 비하면 낮은 평가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오이디푸스는 근친 결혼의
대명사로 알려지고 있다. 프로이트 때문에 정작 오이디푸스의 이미지는 왜곡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나 소포클레스의 비극 작품에 나오는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며 심리학 용어 속의 인물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한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정의로운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오이디푸스가 저지른 과오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반(反) 인륜적인 행위이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으며 심지어 어머니와 근친혼을 하고 만다.
우리나라 법 규정상 근친혼은 금지되어 있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우리나라 법정에 서게
된다면 ‘존속살해’ 혐의로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 그리고 심하면 사형까지
처해질 것이다. 비록 오이디푸스의 경우는 정해진 신탁의 운명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저지른 죄이지만 그는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민의 여지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스스로 왕위에 물러나 테베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오이디푸스의 죄가 중범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가 제대로 죄의 대가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작품인『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자신의 죄는 신이 만들어 놓은 올가미에
걸려들었을 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신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며 구원의 죽음을 맞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과 행동에 대해서
떳떳이 인정한다. 만약에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고 심장을 찌르게 되었다면
죽어서도 신이 정한 운명에 대한 원망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들에게
구원의 손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보다 눈을 찌른 그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다.
안티고네의 순결
안티고네는 아버지 오이디푸스보다 수준 높은 인격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의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신만을 따르려는 안티고네는 불의에 맞서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크레온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논리로 에테오클레스는 애국자로,
폴뤼네이케스에게는 반역자로 취급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여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허락하지 않는 법을 만든다. 크레온의 모습은 사회 현상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자기식의 논리로 판단하려는 잘못된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는 확실한 방법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용한다. 그러나 부당한 사회 속에서도 정의를 지키기 위해 대항하려는 올바른 사람들이
있다. 이들처럼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오만한 권력에 굴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 채 자살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녀가 생전에 보여준 정의에 대한
불굴의 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그래서 안티고네의 죽음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티고네는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서 크레온은 ‘정의’로 상징되는
안티고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사형선고 받은 안티고네는 권력자들에게 힘없이
무너지는 민중의 정의다. 타인의 개입으로서 정의가 사라질 바에 안티고네는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정의를 제 손으로 지키려고 한다. 안티고네의 순결은 곧 ‘정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에 대한 경의는 곧 정의에 대한 경의였다.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서 크레온은 파멸에 이르게 되며 코로스의 대사를 통해 정의에 대한 경의를 모독한
권력자의 최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모독되어서는 안 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늘그막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네.
-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안티고네』천병희 역, p 149 -
오이디푸스의 책임감, 안티고네의 의지
어느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국회 윤리위원회는
의원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징계를 못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원을 고소한
학생들은 분명히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관련 당사자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언론사들을 통해서 허위적인 반론 보도문을
게재하도록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의를 놓고 개인 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 대 개인, 국가 대 개인 등
다양한 유형의 갈등이 발생한다. 그러나 정의 찾기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는 미미하기만
하다. 하나의 사회 문제가 자신의 일에 관련이 없다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사회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안일한 태도는 결국에는 시민들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누리려는 정치인을 만들게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정치적 비리에
대해서는 순순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잘못된 사회는
크레온과 같은 인물이 기세등등 날뛸 것이며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죽을 때까지
평생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오이디푸스의 책임감,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불의에
맞서는 안티고네의 의지. 성숙한 우리나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한
덕목이다. 문제의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오이디푸스가 되어야 하며 그런 정치인들을 뽑은 시민들이 사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안티고네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