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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교양 수준
작년에 어느 구인구직 사이트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양의 수준에 관한 것이었다. 조사 결과는 60% 이상인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양을 쌓는 방법에는 독서가 제일
많이 꼽혔다. 언뜻 보기에는 설문조사에 관한 이 기사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예전보다
어느 정도 교양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교양을 쌓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모습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의 문장과 인용 기사를 잘 읽어보면
썩 좋은 현상이라고 단정을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설문조사는 동일한 질문을 각 방면의
사람들에게 제시하여 그 회답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수량적으로 측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사 참여 학생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양이 어느 수준인지 확실히 모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대학생들이
한 달에 읽는 책의 권수는 평균적으로 살펴보면 고작 3.5권이란다. 한 달에 3권씩 읽는다는
가정 하에 계산하면 1년에 36권을 읽는다. 실제로 1년에 36권 읽는 것도 꽤 읽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취업이 혈안이 되어있는 만큼 교양을 쌓기 위해서 그 정도의
책을 읽는 것은 좋은 모습이다. 1년에 3권 이상 읽지 않는 우리나라 사회인들과 비교하면
36권 읽는 대학생들이 낫다. 하지만 여기서 감히 태클을 걸자면 정말 교양을 쌓는데
그 수준에 걸맞은 책을 확실히 읽었느냐가 문제다. 특히나 대학 도서관 대출 도서
Top 10 전체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서 장르가 무협소설이나 에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독서 실태가 정말로 개선되어 있는지 불분명하다. 교양을 쌓기 위한
독서를 한답시고 자기계발이나 실용 위주의 도서를 읽는다면 문제가 있다. 대학생들이
‘교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독서를 하고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독서의 독(毒)인가?
예전에 서울대에서는 대학생들이 고전을 읽기 위한 독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고전을 위주로 서울대 권장 도서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토대로 수업 시간에 활용하여
학생들이 읽을 수 있도록 만드는 권장도서 활용 방안도 만들기도 하였다. 서울대가
추진한 독서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안 봐도 비디오다.
수업을 통해서 고전 읽기가 어느 정도 학점 관리와 연결되어 있다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오히려 고전을 꺼리게 만드는
인식이 형성될 수 있다. 학점을 위해서라면 울면서 겨자를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고전을 읽는 셈이다. 결국에는 고전의 참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면 학생들의
교양 형성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고전은
그냥 고리타분한 옛날 책일 뿐이다. 학생들은 취업과 돈 버는 것에 도움도 안 되는데
왜 학교에서는 고전 타령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는 고전은 삶의 이익이 없으며 오히려 읽으면 독(毒)이 되는 분야라고
인식한다. 교양 형성의 기본이 고전인데 이를 기피하면 분명 심각한 현상이다.
교양 형성을 위해서는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교양 형성에 대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 최신 잡지나 학술서를 읽으면 된다.” (『지의 정원』
p 108) 다치바나는 인문학에서부터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교양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전을 읽을 필요가 없다니?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이다.
다치바나는 교양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고전을 읽게 되면 정작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생성되는 최신 지식의
섭렵에 유리되는 것을 염려한 말이다. 그리고 다치바나의 말을 더 깊이 파고들면
현대에 걸맞은 고전을 읽으라는 숨겨진 뜻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추천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 ‘현대의 고전’이라고 부르는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실태를 생각하면 다치바나의 말 한 마디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도 하면서도 괜히 시샘이 나기도 한다. 일본의 독서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독서 문화가 더 발달되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의 말은 고전을 읽는 일본 독서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부터
사회인들은 전문적인 학술서나 관련 학술 잡지를 읽지 않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대중적인 인문학과 사회과학 도서가 인기를 많이 받고 있는 만큼 정작 어느 정도
수준을 요하는 학술적인 도서는 출판하는 것마저 꺼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현실이다. 다치바나는 과학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식인이기에 그가 말한
‘최신 잡지’와 ‘학술서’에는 과학 관련 도서들도 포함하고 있다. 과학(이과 계열)도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인문학과 순수 문학(문과 계열) 도서를 지나치게 읽게 되면 균형 잡힌
교양을 형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영국의 소설가 C.P. 스노가 지적한 것처럼 두 문화
(문과와 이과)간에는 소통이 불가능한 벽이 형성이 되고 결국에는 학문적 교류가
불가능해짐으로써 진정한 교양이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올바른 지식의 나무를 형성하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교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한 지 못한 채
독서를 하게 되면 그것은 공중누각의 교양 일뿐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사회인들은
사람이 알아야 할 지식을 아는 것이 교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교양을 영어로 표현하면 ‘Culture’이다. 이 단어의 유래를 살펴보면 ‘경작하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즉, 인간정신을 개발하여 풍부한 것으로 만들고 완전한 지적 인격을
형성해 간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와 대담을 한 사토
마사루는 지식과 교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알아야 할 기본 상식이 지식이라면, 교양은 그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이다’(같은 책, p 20)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그리고 알아야 하는 지식만
머릿속에 채웠다고 해서 교양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두뇌의 밭에 심어놓은 교양을
경작해야 올바른 지식이 형성되고 진정한 교양인이 될 수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 이 두 사람이 ‘지의 정원’에서 나누는 대화는 서로 어긋날 때도 있지만
정작 이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있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조건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교양을 경작하는 방법은 책을 읽는 방법 밖에 없다. 단, 자신의
수준에 맞으면서도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유익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읽고 생각해야 한다. 지식의 나무를 자라기 위해서 물만 주게 된다면
그 나무를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 햇빛과 적당한 비료가 있어야 훌륭한 나무가 되듯이
인문학, 과학, 종교, 문학이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독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란 나무를 그대로 보기만 해서는 안된다. 다 자란 나무의 열매를 따던가 아니면
나무의 그늘을 이용하여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의 나무를
관상용으로 만들지 말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활용할 수 있도록 생각하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대학생 60%, 자신이 교양 갖췄다고 생각...교양 쌓는 방법은 독서]
시사서울 2009년 9월 4일자 입력
http://www.sisaseoul.com/news/articleView.html?idxno=9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