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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소년, ‘앎’에 대해서 고민하다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때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한창 사춘기가 나의 마음을 물들 무렵이었지만, 나의 정신은 사랑의 감정에 목이 말라
갈구하는 베르테르보다는 그 나이에는 실용성이 없어 보일 거 같은 세상의 진리와
지식에 몰두하면서도 만족감을 못 느껴하는 파우스트였다. 한창 입시 공부해야할
시기에 나는 인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간혹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공부하다가 지치면 가방 속에 책을 꺼내 읽곤 하였다. 한창 수능 점수를
올려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는 소설이나 인문학, 역사 관련
도서에만 눈이 갔다. 특히 유독 인문학에 푹 빠져버렸다. 당시 윤리 시간에 배우고
있었던 서양 철학을 배우게 되면 지겹게만 느껴지곤 했었는데, 직접 철학자들의 책을
읽어보면 그들이 말하고 자 한 내용들이 쉽게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혼자서 숲을 드나들게 되면 길을 헤매게 되는 법. 숲에 여러 가지 길 때문에
우리가 헤매는 것처럼 인문학에도 서양 사상과 동양 사상, 인간 심리 등
여러 가지 분야가 갈라져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에 도취된
나머지, 무작정 달려들어 읽다가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길은
목적지에 금방 도착하는 것도 있는 반면에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도 있다.
그러다 보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이렇듯이 인문학의 길을 걷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다보면 체력은 바닥이
나고 지치게 마련이다. 입시 공부라는 보이지 않는 짐을 짊어지고 있던 나에게는
그 나이에 가이드 없이 인문학의 길을 가다가 자괴감 때문에 쉽게 지쳐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정신적인 방황 속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한시(漢詩)들을
유려하게 풀어나가는 정 민 교수의 신간으로 알려질 무렵이었다. 튀는 제목에다가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라는 부제에 끌려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집었다. 한창 정 민
교수의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이런 베스트셀러가 도서관에 나오게 되면 도서관 대출 인기도서가 된다.
먼저 선수 치는 사람이 임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베스트셀러 한 권 읽으려고 대출중인
상태에서도 예약으로 찜한다. 대출중이면 그 사람이 다 읽을 때까지 길어야 1달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 동네 도서관에 책장에 숨어 있는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미쳐야 미친다
워낙 튀는 제목에 쉬는 시간에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주위 친구들은 무슨 책 제목이
그러냐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나는 제목 따위에 독서를 하는데 조바심을 내는 편이
아니었다. 1장인 ‘벽(廦)에 들린 사람들’ 을 읽고 난 후부터 이 책에 빠져들었다.
야간 자율 학습 첫 시간부터 읽기 시작해서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를 잠시 미루고 계속
읽다보니 어느 새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제목 그대로 나도 모르는 사이
하루 동안 이 책에 미쳐버렸던 것이다.
‘벽’ 은 일상용어로 쉽게 풀이하면 ‘버릇’ 이다. 하지만 1장에 소개된 조선 시대의
선비들은 ‘버릇’ 이라기보다는 광(狂)이었다. 자신의 생계에 별 도움도 안 되는데도
만날 벼루를 깎는 정철조, 둔한 두뇌 능력 때문에 <사기(史記)>의 ‘백이전’ 이라는 내용을
1억 1만 3천 번(!)을 읽은 김득신, 너무 가난하면서도 책 읽는 것만큼은 좋아했던
‘책만 읽는 바보’ 이덕무. 이들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손가락질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열정을 쏟았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여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그들의 삶과 비교하면
아무런 목적과 목표도 없이 단지 인문학과 독서를 치중하고 있는 나 자신이 민망해짐을
느꼈다. 내가 인문학과 독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은 제풀에 지쳐버리고 싫증이
나게 된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만함을 떨기 위해서
독서라는 행위를 겉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조건 인문학과 독서가 좋다는
허울을 내세우다보니 정작 내가 추구하려는 목적의식이 사라지게 되고 나중에는
회의감에 빠져버린 것이다.
벽에 들린 선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빠져 미쳤다고들 하지만,
미쳤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의 ‘버릇’, 즉, ‘습관’ 이며 하나의 ‘생활’ 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나의 이미지를 포장시키기 급급해서 좋아하는 일에 빠져버린
‘습관’ 인 척 가장(假裝)한 ‘광(狂)’ 이었던 것이었다.
감동적인 스승과 제자 간의 통(通)
이 책에는 ‘벽’ 에 들린 선조들 말고도 정신적 교감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산 인물들도 있다.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이야기는 언제나 읽어도 가슴 뭉클하면서도
이 책에 소개된 허 균과 기생 홍랑의 플라토닉 러브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유배 생활을 하게 된 다산이 강진으로 오게 되자,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황상은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그의 나이 15세. <논어>에서 공자가
열다섯 살의 나이에 학문의 뜻을 두었다고 말했듯이,
황상은 우연스럽게도 그 나이에 다산을 만나 학문의 뜻을 두게 된다.
세월은 흘러, 제자는 60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45년 전의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스승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스승의 자취가 남겨진 다산초당을 머물곤 했다. 이들의 정신적 교감은 떨어져 있음에도
통(通)함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황상은 수십 년 만에 드디어 스승을 찾아간다.
황상은 단순히 스승을 하루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간 제자는 스승 곁에 지내며
예전처럼 학문에 대해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스승은 직접 찾아 온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무척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런 다산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스승과 제자 간의 아름다운 만남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황상이 떠난 뒤
며칠 뒤 다산은 세상을 떠났다.
첫째도 부지런함, 둘째도 부지런함, 셋째도 부지런함
소년 황상이 다산에게 질문을 한다.
“선생님!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꼭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저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다산은 소년의 고민에 긍정적인 답을 한다.
“그럼 할 수 있고말고.....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며,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평생 ‘부지런함’ 이란 글자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해라. 어떻게 하면 부지런할 수 있을까?
네 마음을 다잡아서 딴 데로 달아가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지.”
- <미쳐야 미친다>『삶을 바꾼 만남』 p 183, 185 -
이 일화를 읽고 난 뒤 내 심장을 크게 요동쳤던 그 때의 전율이 생각난다.
간결하면서도 정말 훌륭한 현자(賢子)다운 대답이다. 황상의 고민이 곧 나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청춘의 시기에서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황상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병통’ 이라고 비유했다. 그만큼 병에 걸려 아파했던 것처럼, 황상은 자신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무엇보다는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도 황상처럼 병통에 시달렸기에 이들의 문답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학교 공부를 해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도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인문학과 독서를 하게
되면 시간만 잃을 뿐 얻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다산은 나의 병통을 깨끗이 낫게 해주었다. 결론은 ‘부지런함(勤)’.
학문을 꾸준히 노력하라는 뜻이다. 다산은 황상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단순히 학문
익힘에 대한 부지런함을 넘어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정신적 풍족함을 위해서 일생동안
학문에 노력하라는 것이다. 결국 진정으로 학문에 노력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자연스럽게 부지런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지런함’ 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라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이 책을 처음 만난 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책을 보면
나의 벗이면서도 스승 같이 느껴진다. 처음 출간나왔을 때는 베스트셀러였으며 당시
처음 봤을 때는 새 책 같았었는데.....역사 속에서 잊혀져간 마이너 선비들의 삶을 그린
이 책도 그들과 따라 잊혀져가는 거 같다. 정말 잊혀진다는 것이 서럽기만 하다.
지금의 책은 많이 접혀지고 약간 훼손되었다. 세상에 나왔던 당시 제목을 더 튀게
만들었던 회색빛 광채는 지금은 빛이 바래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책의 겉은 볼품이 없을지라도 한결같이 내 삶을
바로잡아 주는 힘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 군대 생활을 제외하면 나는 해마다 이 책
한 권은 꼭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부지런함’ 을 강조했던 다산의
말을 노트에 메모하기도 했다. 1년마다 가끔 공부하다가 권태감이 찾아오면 고등학생
시절에 따로 노트에 적은 다산의 가르침을 보거나 도서관에 찾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을 가다듬곤 한다. 그리고 그 때 내 마음을 울렸던 그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지다
고등학생 때에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입시 공부의 짐을 짊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홀가분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취업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 짐은 고등학생 때보다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그 이유는 짐 속에는 ‘나의 미래’ 라는 중요한
귀중품이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나의 미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만약 여기서
지쳐서 포기하게 되면 앞날은 불투명해진다. 짐이 무거워서 내려놓는다. 지쳐서 방심한
사이에 ‘미래’ 라는 귀중품이 든 짐을 분실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해서라면 힘들어도
끝까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들어있는 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다산이 말한 것처럼 마음이 다른 데로 달아가지 않게 꼭 붙들어 매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