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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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性) 춘향, 팜 파탈로 변신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중에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면서도 개봉 내내 논란의  

화살을 맞아야 했던 영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6월에 개봉했던 <방자전>이다.  

영화 제목만 봐도 이 영화가 우리나라 고전소설 <춘향전>을 모티프를 한 영화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원작은 다 알다시피 기생 집안의 성춘향과 벼슬 집안의  

이몽룡과의 사랑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하지만 영화 <방자전>에서는
<춘향전>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가 춘향에게  

한 눈에 반해 버려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방자전>를 관람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영화 속 춘향은 두 남자 주인공 방자와 이몽룡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들을 휘어잡는  

팜 파탈로 나온다.  <방자전> 포스터를 보게 되면 ‘춘향, 두 남자에게 덫을 놓다’라는  

카피와 함께 춘향 역을 맡은 조여정의 포즈가 인상적이다. 한국적인 미를 발산하는  

아리따운 한복을 입고  단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아한 춘향의 얼굴이 아니다. 카피처럼 방자와 이몽룡뿐만 아니라  

모든 남성들에게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유혹의 덫을 놓겠다는 눈빛이다.  

그리고 남녀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방자와 춘향의 모습이 있는   

포스터도 있다 . 영화는 전통적인 정절녀 춘향을 두 남자의 애간장을 타들어가게 만드는  

요부로 표현하면서 원전을 비틀어놓았다.

그래서 춘향문화선양회라는 단체가 원작 속의 춘향을 모독한 이유를 들어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상영금지 요청을 하였다. 그리고 영화 제작사를 향한 규탄 궐기 대회도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 영화 제작사 측은 단체에게 사과 의사를 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단체가 일으킨 상영금지 해프닝은 오히려 영화 관람객 기록 수만  

늘리게 되는 홍보효과가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된 셈이다. 
 

  

 미스 춘향은 있고 성춘향은 없다?

리뷰 작성을 계기로 인하여 알게 된 춘향문화선양회에 대해서 좀 도 알아보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열람하게 되었다. 이 단체는 춘향을 기리기 위한 제사와 전북 남원에서  

개최하는 미스 춘향 선발대회를 주최하고 있었다. 홈페이지 공지사항에는  

영화 <방자전>과 관련된 규탄 성명과 궐기 대회를 알리는 글이 있다.   
그리고 ‘춘향 선양 제안’이라는 코너도 있는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보다 다양한  

글들이 올려져 있었다. <방자전> 상영금지와 관련된 의견들이 많았는데 영화에 대해서  

찬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영화는 엉터리 내용이며 춘향을 모독했다는 등 상영금지  

찬성이 있는 반면에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면서 오히려 상영금지 요청은 유교사상에  

젖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찬반 게시문은 으레 자유게시판에 있기  

마련인데 자유게시판은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였다. 게시판이라기보다는 춘향 관련  

행사를 공고하는 글만 있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었던 것은 춘향연구논문자료라는 코너였다.
이 자료실에는 진짜로 소설 <춘향전>에 관한 문학적, 역사적 자료가 있을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클릭하여 들어 가보니 제목은 그럴싸하게 춘향과 관련된  

연구논문 자료라고 해놓고는 내용은 글은 고작 두 개 밖에 없었다. 두 개의 글은  

어이없게도 역대 춘향, 이몽룡 선발대회 수상자 명단이었다. 단체의 홈페이지에는  

미스 춘향만 있었지 정작 소설 속의 성춘향은 없었던 것이다.  

이 단체가 정말로 춘향을 기리고 있는지 의혹만 느껴졌다. 그리고 큰 실망감을 느꼈다.

<방자전> 규탄 성명서에는 <춘향전>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견하여
10여개의 나라에 번역이 되었으며 120여개의 판본을 갖고 있는 명작이라고 손꼽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춘향을 위한 홈페이지에는 춘향전의 판본의 수와 비교가 안 되는  

원작과 관련된 자료가 없으니, <춘향전>의 문학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는  

성명서 속의 말이 무색하게만 느껴졌다. 
 

 

 왜곡된 ‘정절’의 의미

춘향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절녀라고 생각하는 것은 춘양문화선양회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용 전래 동화로 <춘향전>을 접했기 때문에
춘향을 정절을 지킬 줄 아는 전통적인 한국의 여성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춘향은 정절녀가 맞긴 맞다. 하지만 우리는 춘향이를 수식하고 있는
‘정절’의 의미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그 ‘정절’이라는 단어를
조선 시대부터 지배하고 있던 유교 사상에서 유래된 남존여비의 시선으로  

읽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정절’의 의미를 여자의 곧은 절개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면 한 평생 사랑하는 남자와의 정(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정절은 꼭 굳이 한 사람에만 지켜야 하는 것일까?
사전에는 정절은 꼭 사랑하는 딱 한 사람에만 지켜야한다는 말도 없지 않은가.
조선 시대에는 삼종지덕(三從之德)이라는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조선 시대의 여성은 연애의 선택권이 없었다. 좋든 싫든 한 남자와 혼인이  

성사되면 한 평생 살아야만 했다. 지금의 여성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연하남과  

연애를 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리고 결혼한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하고 다른 배우자와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이혼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만약 부녀자가 다른 남자와 정분을 맺는 것이 발각된다면 정절을 지키지 못한  

죄로 가혹한 벌을 받게 되고 평생 주위 사람들에게 화냥년 취급받으면서 살아야 했다.
반면 한 평생 남편을 섬긴 여자들은 죽은 뒤에 나라로부터 ‘열녀’라는 칭호를 하사하였고
후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여자가 살았던 마을에 열녀문을 세웠다. 
이는 조선 시대의 여자들에게 정절을 강조하기 위한 국가적인 훈계책이기도 하였다. 
 

 

 춘향은 착한 여자?

정절을 지킨 여자들은 성격이 바르며 남편에게 순종적이며 품행이 단정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춘향은 매사에 자상하며 여성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춘향전>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아서 생각하게 되는  

착각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춘향은 전래동화 속의 인물이다. <춘향전>은  

다양한 판본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판본은 <열녀춘향수절가>이다. 
이 판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전래동화 속의 춘향과는 차이가 난다.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이몽룡이 서울로 떠난다는  

소리를 들은 춘향의 표정과 대사를 주목해보자. 
 

 

  춘향이 이 말을 듣더니 별안간 얼굴색을 바꾸며 안절부절이라. 붉으락푸르락  

  눈을 가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벌렁벌렁하며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갈며, 온몸을 수수잎 틀 듯하고 매가 꿩을 꿰 차는 듯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웬 말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르륵 찢어 버리고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며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없다!” 
 

                                                                      - <춘향전> 송성욱 역, p 75 -  

 

이몽룡이 서울로 가게 되어 이별을 고하자, 춘향은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분노의  

표출을 서슴지 않는 정열을 지니고 있다. 분을 억누르지 못해 치맛자락을 찢어 버리는  

춘향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의 모습과 비교하면 무척 생소하다.

그리고 춘향은 이몽룡에 대해서는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변학도에 대해서는  

저항적이고 도덕적인 열녀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그녀의 두 얼굴은 단순히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이중적인 행동을 했던 것일까?

   전라도 남원에는 월매라는 기생이 있으니 삼남에서 이름난 기생이었다.  

  일찍이 기생을 그만두고 성가라고 하는 양반과 더불어 살았는데 나이  

  사십이 되도록 슬하에 일점혈육이 없었다. 
                                                    

                                                      - <춘향전> 송성욱 역, p 11~12 - 
  

<열녀춘향수절가>의 시작에 춘향의 어머니인 월매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춘향은 단순히 기생 집안의 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녀의 아버지는  

양반이다. 그래서 양반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양면적인 신분 상태이다.  

춘향은 신분적 양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원 부사의 아들인 이몽룡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끈질긴 저항과 인내심으로 일부종사(一夫從事)의 도덕성을  

지향함으로써, 사회의 인습을 극복하고 결말에 이몽룡과 재회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킨다. 결국 춘향의 정절은 조선 시대의 신분 사회 메커니즘이 낳은 것이다.  

춘향의 사랑은 기생 신분을 벗어나 사대부가의 일원이 되겠다는 신분 상승의
성취 동기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니 춘향이 이몽룡이 서울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설 속 춘향은 현대의 여성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 때 취업난으로 인하여 유행했던 신조어 중에서 ‘취집’이라는 말이 있다.
취직을 하지 못한 대학 졸업 여성들이 취직 대신에 시집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냉정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대안으로 선택하고 돈 많고 괜찮은  

신랑감을 찾는 요즘 여성들의 모습은 신분을 상승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는  

춘향과 비교하면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독자성이 결여된 우리의 대중문화

춘향이를 둘러싼 <방자전> 영화 제작사와 춘향문화선양회 간의 대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만의 시위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을 통해서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암맹(暗盲)과 우리나라 고전에 대한  

관심 부족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우리나라 문화의 어두운 현실이기도 하다.  

춘향문화선양회의 사례를 보여주듯이 <방자전>이 고전 소설 <춘향전>의 모티프를  

두고 있다고 해서 영화의 내용을 원작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작품은 일단 원작자의 손에서 벗어나면 원작이 아닌  

그 작품 내에 주어진 정보를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창작의 모티프나 동기를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만 하며 꼭 원작 내용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독립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독창성이 없는 복제된 작품일 뿐이다 

 

반면 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예술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문화적 코드를  

이용해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 컨텐츠를 창출한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출간 50여 년을 지나서 피터 잭슨의 손에 의해서 현대적이면서도 원전의 맛을 살린  

영화로 재탄생했다. 코난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에 등장하는 왓슨 박사는 자신의  

추리력 부재로 인해 주인공 셜록 홈즈를 부각시키는 인물이었지만
작년에 개봉한 리메이크 동명 영화 속 왓슨 박사는 주인공 셜록 홈즈 앞에서 꿀리지 않는  

호기로운 인물로 등장하였다. 결국 외국의 사례들처럼 독창적인 블록버스터 급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탄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적 암맹에서  

벗어나야 하며 우리나라 고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

대중들이 <춘향전>의 원전을 조금이라도 읽거나 이해를 하고 있었더라면
두 남자를 사로잡으려하는 영화 속 팜 파탈로 나오는 춘향에 대해서
그리 놀라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미 언급한 외국 유명 영화들은 고전을 읽은
독서 문화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읽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고전 읽기에 대한 역효과일뿐이다. 우리나라 고전의 대중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전통 고전에 현대적인 감각의 옷을 입혀야 한다. 그러면 독자들이  

고전에 대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춘향문화선양회와 같은 고전을 알리기 위한 단체 설립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우리나라 고전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설립 단체의 유지와 홍보 활동의 이익에 급급하다가는 정작 단체 설립 목적은 

잃게 된다. 그러면 고전의 문화적, 역사적 가치는 알리기는커녕 더욱 더 대중들의  

왜곡된 인식을 낳게될 뿐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고전은  

외국에서 온 고전과 다양한 문화에 의해서 사장(死藏)될지도 모른다. 
 

서양의 고전들도 읽는 것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자기 나라의 고전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  작품 속의 과거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현상들도 새롭게 보이게 되며  옛날의 고전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관련 인용기사 출처 및 링크 

 

['하녀'가 못한 일 '방자전'이 해냈다] 머니투데이 7월 19일 입력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7190057

[화난 춘향문화선양회, “영화 ‘방자전’이 춘향 모독했다”] 일간스포츠 6월 4일자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405287

[춘향문화선양회] http://www.nwchunhy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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