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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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의 사회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이 잡힌 지 한 달도 안 되어 같은 지역에서 7살 여자 아이가
성폭행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후 피해 여자 아이의 진술을 통해 성폭행범의
몽타주가 완성되어 지명수배중이다. 하지만 이 용의자가 또다시 제2의 범행을
저지를 수가 있다. 초등학생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이들의 행각에 치를 떨면서도
자기 자식들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반면, 이런 흉악범들을 잡아야 할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들은
폭력 같지 않은 폭력(?)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경찰들이 피의자들에게 고문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가혹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논란이 계속 커지자 관련 경찰 4명은 구속되고 경찰청장은 사퇴 요구에 압박당하고 있다.
20여 년 전, 독재 정권 시절의 저승사자였던 ‘고문경찰’이 사라졌건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두운 곳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과 경찰 고문 사건의 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또 다른 기사가 또 한 번 대중들을 분노케 했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무자비하게 학대를 당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고양이의 이름을 따서 일명 ‘고양이 은비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사건은 처음에는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십거리의 하나로 소개되었지만
방송 이후 사건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커져나갔으며  

결국 뉴스에서까지 비중이 있는 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고양이를 잔인하게 학대한 점과 가해자의 변명이었다.
고양이를 무참하게 때리다가 고층 건물 밖으로 내던졌으나, 가해자는
자신이 그 때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자세히 안 나며
왜 죄 없는 고양이를 죽였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변명하고 있다.

요즘 사회는 폭력의 사회다. 정말 무시무시하다.  

같은 인간뿐만 아니라 이제는 동물까지도 거리낌없이 폭행을 가하고 있다.
동물도 인간과 같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고양이를
죽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런 잔인한 행동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앞에서 소개된 사건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폭행 사건이 많다.
김길태와 조두순 같은 사람은 인간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성폭행과 살인을 저질렀으며,
괜히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청소부와 힘 없는 임산부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들이 있다.
예전에는 폭력이란 조직 폭력배들과 같은 흉악범들의 전형적인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폭력배들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중 매체 속의 폭력배들은 동료의 의리와 자신들만의 목표를 위해서
주먹질을 하는 왜곡된 이미지로 그려졌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폭력배의 모습을 보고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조직 폭력배들의 전유물인줄만 알았던 폭력 행위는  

이제 일반인들도 폭력을 행사하여 종종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요즘은 폭력배들의 소식보다는 일반인들의 폭력 소식이 점점 눈에 띄고 있다. 
 

 

 

 죄와 벌

김수영의 모든 시들이 수록되어 있는 <김수영 전집> 1권을 읽게 되면
지금 우리나라의 폭력의 사회를 그대로 표현하는듯한 시가 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40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는 먼저
  아까운 것이
  지(紙)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김수영 전집 1>『죄와 벌』전문, p 296 - 
 

 

이 전집에는 김수영의 시 속의 단어들에 대한 각주만 있을 뿐 자세한 문학적 해설이 없다.
그래서 시의 내용에 대해 독자는 다양한 해석들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보자마자 떠오르는 것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이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약육강식이라는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시의 1연도 이와 비슷하다. 시 속의 화자가 살인을 하려는 행위를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고 살인이란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화자는 살인 행위 후의 비난을 ‘희생’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의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우산대로 폭행을 가한다.
그러자 그들의 주위에는 40명 정도의 취객들이 모인다.
하지만 시의 내용에는 취객들이 화자의 폭행을 말리는 장면이 없는 걸로 보아서는
폭행 행위를 그냥 묵묵히 지켜봤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시인은 폭행 및 살인 행위를 지켜보기만 하는 목격자들을  

‘취객’ 이라고 비유함으로써 이들의 안일한 태도들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게 되면 인간의 뇌는 알코올로 인해서 취하게 되어
기억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시 속에 등장하는 40명의 취객들도 술에 취한 나머지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행위를 막지 못하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두 명이 아닌 40명이라는 적지 않은 취객들 중에서도
단 한 명이라도 살인 행위를 말리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40명이든 100명이 모여 있든 인간은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일이 아닌 살인 행위 앞에서는 평소답지 않게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방관자 효과’ 라고 한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목격자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데는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나 성격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지’하는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즉, 시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취객이 알코올로 인해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것처럼
사건의 목격자들도 사건 현장 앞에만 서면 취객처럼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된다는 뜻으로
사건의 목격자들을 ‘40명 가량의 취객’과 동일시하고 있다.

결말에는 살인 행위를 저지르고 난 뒤의 화자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범행 현장을 지켜보던 취객 중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책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자신의 죄가 알려짐으로써 생기는 불안감보다는
범행 도구인 ‘지우산’을 현장에 놔두고 왔다는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화자의 인면수심적인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화자가 지우산을 현장에 놔두고 왔다는 점을 통해서
사건 증거물인 지우산으로 인해 그의 범행이 밝혀질 것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시인은 인간으로서의 용서할 수 없는 를 저지른 자는 언젠가는 죄가 밝혀지며
죄의 대가로 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시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40명의 취객’들도 살인 행위들을 방관한 것도  

도덕상으로 보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도 죄를 저지른 것이며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
시의 제목 ‘죄와 벌’이 살인자인 화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화자의 살인 행위를 그냥 지켜보는 취객들도 포함하게 된다.
시는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대상의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결국 누가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지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죄와 벌’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의 역사

김수영의 시를 폭력이라는 행위가 비일비재한 우리 사회를 투영해서  

독자적인 해석을 했지만
당시 시를 쓴 배경을 생각하면 시 속의 화자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들을 억압하고 비밀리에 고문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도 없으며
정당화하려는 독재 정권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우산’을 통해 그들의 추악한 행위들이  

언젠가는 밝혀지고 무너지기를 암시하고 있다.
참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시에서 내포되어 있다.
김수영의 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김수영이 살던 사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독재 정권이 남긴 어두운 면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
이번 경찰 고문 사건은 예전 독재 정권의 시대에 있을법한 일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폭력의 모습들도 모두 다
일제 강점기부터 비롯된 독재 정권 하의 사회와 교육이라는  

기이한 사회 구조가 낳은 악영향이다.
그 때 학교와 군대, 사회단체에서는 지도자가 모든 집단 인원들을 통솔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조건적인 복종 강요와 이에 불응 시에 따르는 폭력뿐이었다.
복종과 폭력에 길들어진 대중들은 억압된 과거로 인한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폭력이라는 행위를 하게 된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남보다 자신’ 이라는 지나친 이기주의로 자리 잡게 되고,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다거나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폭력으로 응징하려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이런 폭행 사건들이 또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대중들은 폭행을 일으킨 범죄자를 겨냥하여
‘패륜녀’, ‘패륜남’ 이나 일명 ‘발길질녀’ 처럼 별명을 갖다 붙이며  

마녀사냥식으로 욕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도 잠시 이성을 잃으면 마음속에 숨어있던 폭력의 본능이 나올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해 우리도 ‘패륜아’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이 김수영이 말하고자 했던 우리 사회의 ‘죄와 벌’의 양면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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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수영 전집 시집1

소장하고 있어요.

근데 옛날 판 이라서 한문 이 섞여 있는데 한자 까막눈 이라서

일일이 옥편 찾는게 귀찮아서 마음 가는데로 읽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