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온 친구, K 
 

나는 지금까지 대구에서 자랐다. 군대 이외에는 대구를 떠나서 살아본적이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울에서 생활해본 적도 없었고,  

서울에서 자란 사람과 대면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대학 동기 중에 서울에서 자란 K라는 친구가 있다. 
나의 유일한 서울 친구이다.  

그래서 서울 사람과 대구 사람의 차이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말투부터 차이가 나고, 그는 자유분방하면서도 나름 노는 것도 잘 논다.
그리고 집도 나름 잘 산다.
가끔 그는 손발 오그라드는(?) 서울 말투로
서울과 비교하여 대구에 대하여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마음씨는 착하고 정이 많다.
학교가 경산에 위치하고 있어서 K는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과 떨어져
학교 근처 원룸에 혼자 살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데 먼 편이라서 가끔 밤까지 놀게 되면
그의 원룸에서 자고 가곤 했다. 그리고 딱히 원룸에 있으면 할 게 없어서
그가 야식을 준비하여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운 받은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원룸에 혼자 사는 것도 있지만, 그가 서울 사람이기에
자취 생활하는데 외로움이 있으리라. 그래서 내가 자취방에 놀러 오면 무척 반가워했다.
어느 날, 나는 강의가 야간에 있어서 잠깐 그의 집에 머물기 위해서 찾아갔다.
여전히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이번에는 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K가 나에게 이런 영화를 다운받았다고 말하면서 같이 보자고 말했다.
그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자취방에 오면 함께 다운받은 영화를 봤었기에
나는 그가 어떤 영화를 다운받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가 말한 영화 제목을 듣는 순간, 무슨 반응을 보여야할지 난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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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 120일>이라는 영화였다.  

 

 

  

 

 저주받은 영화  

 

이 영화는 19세 미만 영화와 엽기 동영상보다 더하다는 악명 높은 영화다.
성 관계, 성기 노출, 잔인한 고문, 성적 학대, 살육 장면, 동성애 등 

성적이며 잔혹한 영화 장면들로 구성하고 있어 

일반적인 사람들은 왠만해선 제대로 보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사드 (1740~1814)       파졸리니 (1922~1975)


사드 후작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소설도 영화 못지 않게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퇴폐적이고 음란한 내용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사드 후작은 ‘사디즘’ 이라는 용어로 알려져 있는 변태성욕자의 대명사 아닌가.
이 소설에서도 자신의 광기를 그대로 문장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감독 파졸리니는 이 영화가 개봉한 그 해에 
동성애 소년으로 영화에 출연한 17살의 배우한테 살해당하는 등
나름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저주받은 영화라고 하던데.....
(파졸리니의 죽음에 대한 어떤 자료에 의하면
파졸리니가 동성애자라서 자신을 살인한 17살 배우와 동성애 관계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고도, 2000 (절판)
 인터넷 헌책방 전문 사이트에서는 고가의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희귀 도서
    


 

나는 이 영화를 같이 보자는(!) K에게 나름 알고 있는 내용들을 설명해주었다.
내용이 좋지 않아서 보게 되면 정신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는 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내용이 독특하다면서 자신은 꼭 끝까지 보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히 그 전에 이 영화와 사드 후작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K처럼 한 번 그 악명 높은 소설과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던 적도 있다.
사실 출간된 소설은 절판이 되어 서점에 찾기 힘든 Rare 도서이며
몇 몇 공공 도서관에만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파졸리니의 영화는 개봉 이후 논란을 일으키게 되어
개봉 금지 처분을 받았고 그 이후로 이 영화를 직접 구해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K는 어떻게 구했는지 그 문제적인 영화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나는 친구의 제안에 같이 보려고 하였으나, 자신이 없었다.
결국, K는 자신이 말한대로 이 영화를 봤다.
(그런데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봤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본인은 다 봤다고 주장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본 후기들을 나에게 무용담 펼치듯이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게 놀라웠으며 영화 장면들이 정말 엽기적이라고 평했다.
그 이후로 K는 몇 일간 사드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머릿속에 장면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것이 잊혀졌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그 영화를 안 본 것이 잘 된 일이었다. 
 

 

  

 한국의 사드(Sade), 백성수 
 

사드 후작은 성(性)을 통하여 기존의 사회와 도덕에 반대하는 자유분방한  

반 사회적 쾌락주의자였다.
작품들은 노골적인 성 묘사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욕망 표출을 중요시하였다.
그 중에 <소돔 120일>은 사드 후작의 변태적인 성적 행위와
발칙한 상상에 영감을 얻어 만든 광기의 세계이다. 
 






  

 

우리나라 소설 중에서도 사드 후작과 비슷한 인물이 나오는 소설이 있으니,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이다.
‘광염’ 이라는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예술가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천재성과 광기를 나타내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백성수는 방화와 살인을 통해 천재적 음악성을 발휘하는 작곡가이다.
자신의 성적 행위에 대해서 죄의식도 없으며 오히려 당당함을 보여주는 사드 후작과 같이
백성수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행위도 죄악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반(反) 이성주의, 반 도덕적인 코드가 서로 비슷하다. 
 

 

 

 예술이냐 도덕이냐 
 

그리고 이 소설은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구성되어
백성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은 K씨다. 앞에서 언급한 내 친구의 이니셜이 똑같다.
K씨는 백성수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행위를 옹호하고 있다.
반대로 K씨의 이야기를 듣는 인물로 나오는 모씨
윤리 도덕을 강조하는 이성주의자다.
결국 <광염 소나타>의 시작과 끝에는 백성수에 관환 이들의 논쟁이 대부분인데
예술적 가치가 우선인가, 아니면 도덕률이 우선인가에 관한 것이다.

논쟁은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로 소설은 끝나게 되는데
작가는 예술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던져주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K씨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데
눈물의 의미는 백성수에 대한 동정심인 동시에  

예술을 알아 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서글픔이다.
작가 김동인도 예술가인만큼 소설 속 인물 K씨를 통해
도덕 앞에서 작아지는 예술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해주고 있다. 
 

 

 

 백성수, 보들레르, 김태원

일반적으로 백성수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 못할 반(反) 인륜적이다.
자신의 예술을 위한답시고 살인과 방화를 일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도입 부분에서 서술자가
백성수의 이야기를 ‘세상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백성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과거에도 존재하였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의 행위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보들레르는 더러운 쓰레기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성 세대에 반감을 가진 예술 지상주의자다.
그의 유일한 시집 <악의 꽃>은 그가 주장한 악마적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악마 같은 여자 쟌느 뒤발과의 광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악의 꽃>에서도 쟌느 뒤발에 언급하는 시가 있다.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존재가 있었기에 불후의 명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백성수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한창 버라이어티 출연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록 그룹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씨다.
‘국민 할매’ 라는 애칭으로 독특한 언행으로 방송인으로 알리기 전에는
자신이 속한 부활의 모든 앨범의 곡을 만들었으며  

부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정신적 지주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는 불미스러운 일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대마초 흡입으로 교도소에 생활을 하기도 하고, 한 때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1987년에 발표된 2집에 수록되어 있는 ‘천국에서’‘회상 3' 이라는 노래에 관한 

숨겨진 일화가 있다.

‘천국에서’ 는 김태원 씨가 대마초를 흡입하면서 만든 곡이며,  

‘회상 3’ 은 대마초 흡입 후 환각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 공연 하는 것을 알면서
지켜보던 여자 친구를 위해 만들었단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의 여자 친구는 결국 지금의 김태원 씨의 아내가 되었다.
‘회상 3’ 는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 의 Original 버전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김태원 씨는 과거의 대마초 흡입을 무척 후회한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대마초 흡입으로 인해  

명곡이 나왔다는 점이다.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모든 정신이 그 곳에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보다 집중력이 강해지게 된다.
그래서 작품이 완성되고 난 후나 자신이 원한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허무함과 정신적 무력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해  

일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대마초나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
그들의 고통이 극단의 끝으로 도달하게 되면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분명 김태원 씨도 대마초 흡입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만들면서 생기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사람들에게 호감 받는 ‘국민 할매’ 로 방송에 나오고 있다. 
 

연예인들의 마약이나 대마초 복용 사건이 터지면  

우리들은 무조건 그들을 욕하고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연예인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들의 변명도 들으려하지 않는다.
웃기는 사실은 욕을 한 연예인이 재기에 성공하여 인기를 얻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칭찬 일색이다.

인간의 행위 선택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기에
그 선택적 상황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정된 편견으로 그들의 행위를 보는 것보다는
그들의 생각과 심정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상황이 옳은지 잘못된 것인지 보다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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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가집이 경산 이라서 익숙한 지명이어서 살짝 놀랐어요.

장문의 글인데도 잘 읽히네요. 잘 봤습니다 ^^

cyrus 2010-11-06 16: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매버릭꾸랑님^^
이 때 서재 블로그 만든지 얼마 안되서
일부러 왼쪽 정렬식으로 글을 올려봤답니다.
뭐 지금은 일반 리뷰어들처럼 쓰고 있지만요..^^;;
오히려 글이 장문처럼 되버린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