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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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 읽기’ 에 도전하다 

 

나는 문학 분야의 책을 읽으면 주로 세계문학을 읽는다.
가끔 한국문학도 읽지만 지금까지 도서관 대출 도서들을 기억해 본 결과
세계문학이 압도적으로 많이 빌리고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집에 소장되어 있는 문학 도서를 살펴보면
세계문학은 초등학생 때 읽었던 아동용 문학전집과
중학생 때 샀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과 모파상 단편선,
(지금도 생각하면 이 책을 사서 읽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지금 모으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과
파트리크 쥐스킨트, 움베르토 에코.....
소설 책 대부분 외국 작가 쪽이다.
유독 세계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한 번도 책표지에 손을 대본 적이 없는 작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예전부터 사실 읽고 싶지도 않았고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려울 거 같아서.....
그리고 소설이 아니라 희극 형식이다. 연극 공연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과연 극 작품을 읽을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그러던 중에, 몇 달 전에 TV 홈쇼핑 광고를 통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을 구입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 속에서 무엇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몇 권 있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셰익스피어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전 첫 작품은 “햄릿”.
집에 소장한 책인만큼 일단은 부담 없이 천천히 읽어나갔다. 
  

 

 <햄릿> 속에는 ‘햄릿’ 만 있다?

 

극 중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과
자신의 생각들을 어필하게 하는 동작까지 하나 하나 빠짐없이 읽어나갔다.
생각보다 극 작품 읽기도 소설과 비슷하였다.
읽다보면 평소 들어봤던 유명한 구절도 있었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라든가
햄릿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유명 대사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는냐, 그것이 문제로다“ 로만 알고 있었던
구절들이 보였다. (이 책에서는 ‘있느냐 없느냐’ 로 번역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들 간의 갈등에 관련된 스토리라고 하던데
역시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부터 시작해서
햄릿의 삼촌이자 양 아버지인 클로디어스, 어머니 거트루트,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오필리아 등 주요 인물들은 하나씩 갈등을 가지고 있다.
특히 햄릿이 겪고 있는 갈등은 그야말로 ‘최악’ 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삼촌한테 독사당하여 아버지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마당에
어머니는 삼촌과 결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친 아버지의 유령을 보게 된 이후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심지어 어머니까지 빼앗아 가버리는 것에 대해서
클로디어스를 경멸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까지 위험할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를 좋아하면서도 삼촌과 결혼한 거르투트에 대해 반감을 가지기도 하고
오필리아와 대화하는 도중 화를 내다가 갑자기 기분이 풀어지는  

약간의 조울증도 보여진다.
햄릿, 이 친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유부단한 사람을 햄릿형 인간이라고 부르지 않은가.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를 읽는지,
무엇보다도 정신이 불안정한 어느 덴마크 왕자의 비극적 이야기에  

독자들이 열광하는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햄릿이 처한 갈등을 중심으로 이 비극을 읽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안 그래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극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그를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 ‘햄릿’ 의 비극적 갈등과 최후로 치부하는 것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구성 의도를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햄릿>에는 ‘햄릿’ 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햄릿만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햄릿 주위의 인물들도 말 못하는 고민으로 괴로워한다.
작품을 읽어나가면서 햄릿뿐만 아니라
각자 처해진 갈등으로 인해 반응하는 다른 인물들의 심리적 상태들도 흥미로웠다. 
 

 

 <햄릿>의 등장 인물들의 심리 상태 :
 햄릿과 거트루트 중심으로 분석한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위험한 곳이다.
그래서 현실 속에 존재하는 우리도 불안감에 시달린다.
프로이트는 불안을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 으로 분류했다. 
 

가장 기본적인 현실적 불안자신을 위협하는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면 경험하게 되는데,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친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햄릿은 클로디어스의 등장으로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현실적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머지 두 가지 불안은 앞에서 언급했던 현실적 불안에서 파생된 것이다.
신경증적 불안어떤 욕망을 충족시키려 했을 때 올 수 있는 위험을
그러한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경험하는 불안이다.
햄릿이 왕비 거트루트와의 대화 도중에 휘장 뒤에 숨어있는
폴로니어스를 삼촌인줄 알고 죽이게 되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고 만다.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아는 햄릿 때문에 미쳐버리고 만다.
비록 작품 속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햄릿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미쳐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과연 자신이 삼촌을 죽이면 괜히 죄 없는 어머니까지 미쳐버릴지 않을지
신경증적 불안감을 한 번쯤은 가졌을지 않았을까?

도덕적 불안자신의 욕구나 욕구 충족을 위한 행동이
자신의 도덕 기준에 맞지 않을 때 경험하는 불안이다.
쉽게 말하면, 양심이라는 도덕 기준에 의해 생기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불안이다.
비록 삼촌이지만 어머니와 결혼이 성립됨으로써 아버지이며 한 나라의 왕이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인다면 패륜아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고  

주위의 신하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햄릿은 삼촌을 증오하지만 그와 결혼한 어머니가 존재하고 있어
도덕 기준 때문에 삼촌을 죽이고 싶은데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나는
도덕적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은 어떤 종류이든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으며
불안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현실을 파악하는 자아의 기능이 무너질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없애려 할 것이다.
햄릿의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가지 불안감은 햄릿의 자아 기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
1막에서 아버지의 유령을 보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겨를 없이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피해 망상적인 투사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판단력이 저하되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햄릿 이외에도 그의 어머니인 거르루트에도 흥미로운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다.
거트루트는 자신의 재혼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아들 햄릿에게
‘곱고 애정 어린 말’ (제1막 제2장 121행)을 언급하면서
과거에 선왕이 살아있을 때처럼 지내길 바라면서 햄릿을 설득한다.
하지만 거트루트의 설득은 구밀복검(口蜜腹劍)일뿐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자신이 가진 나쁜 감정을  

완전히 반대의 감정으로 표출하는 경우를  ‘반동 형성’ 이라고 한다.
거트루트가 친자식인 햄릿을 싫어한다고 말하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은 있지만
양 아버지가 싫다고 자기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린다면  

그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있을까?
그런 자식에게 무조건 강압적으로 설득하면 무용지물이다.
아이를 잘 타이르려면 좋은 감정을 내세우면 긍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결국 그녀는 남편 동생과의 결혼이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유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왕비’ 라는 자신의 권력도 상실하기 때문이다.
선왕이 죽으면 그 동생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 그녀는  

권력 유지를 위해 결혼을 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햄릿에게 설득하기 위해 내세웠던 권유 뒤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야심가의 어두운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햄릿 읽기의 첫 경험을 기억하면서

 

내가 감히 불멸의 고전에 대해 개인적이고 억지스러운 해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슈바니츠의 햄릿: 그리고 이 작품을 문화적 기념비로 만든 모든 것>
(들녘, 2008)을 읽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비록 얇은 분량이지만, 저자는 <햄릿>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을 펼친다.
저자는 햄릿을 다시 읽으면서 느꼈던 새로운 경험들을
완전하지 않지만 자신의 학문적 일대기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문화적 기념비’로 남기고 싶어 했다.
나도 기념비 정도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셰익스피어 도전 첫 관문으로 <햄릿>을 선택하였으며
햄릿 읽기의 첫 경험을 했기에, 나의 독서 일대기에 좋은 경험으로 남기는 차원으로
나만의 해석을 여기 이 리뷰에 기록을 한 것이다.

<햄릿>은 단순히 보면 400여 년 전에 쓰여진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햄릿은 아직 죽지 않았다.   

지금 어디선가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가

‘험한 세상에서 고통 속에 숨을 쉬며’(제5막 제2장 356~357행)
전하는 햄릿의 사연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들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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