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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
샤를 보들레르 지음, 윤영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0월
평점 :
읽으면 무서운 시
몇 년 전, 심야 시간에 방송되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
가수이자 아티스트로 유명한 조영남씨가 출연하여
출간된 지 좀 오래 돼 보이는 검은 색 바탕의 시집을 소개하였다.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김붕구 번역
당시 나에겐 보들레르의 시집은 생소하였고
거기에다가 졸음이 마구 쏟아졌기에
조영남씨가 입에 침을 마르도록 책을 추천하게 된 이유를 말하는 사이
힘없는 두 눈꺼풀은 이미 TV의 광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렷이 들리는 그의 말은
가수가 젊었을 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느낌은
‘무서웠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간혹 생각나면 이 시집을 여러 번 읽었고
더 중요한 건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읽게 돼서 행운이었다는 것이다.
아니, 시를 읽었는데 무서웠다니.
그러고는 읽었다는 것이 행운이란다.
역시 독특한 언행으로 가끔 매스컴을 뜨겁게 달굴 만한 조영남씨다운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단지 ‘무섭다’는 말이 이 시집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 동네 도서관에 자료 검색 결과
역시 조영남씨가 소개한 책이 도서관에 소장되어있었지만,
출판된 지 오래되어서 서고자료에 있었다.
서고자료에 있는 책을 빌리기 위해 사서에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을
소심했던 나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그러고는 옛날에 나온 책이니깐 활자 상태가 좋지 못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자기 위안으로 읽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포도를 따 먹으려다가 포기한 여우처럼 말이다.
악의에 찬 단어들
몇 년이 지나고 주말에 도서관의 문학 쪽 서적을 뒤적거리다가
책장에 내가 읽고 싶어 했던 책이 꽂혀있었다.
김붕구 교수가 번역한 판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어리석은 판단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기대로 가득 찬 눈으로 시를 읽어나갔다.
그의 모든 시 구절 하나하나 읽어 나갈수록
가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을 감정이 내 가슴 속에 치밀어 올라왔다.
그리고 그의 시에 나오는 악의에 찬 단어들이 주는
불쾌감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하였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여 페이지가 되는 시집을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 악, 지옥, 쾌락, 구더기, 시체, 해골, 저주 』
보들레르의 시에 자주 나오는 대표적인 단어들이며
그의 시를 한 단어로 축약하여 표현해주는 것들이다.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우리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언급하기도 싫은, 일상 속에서도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당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시의 윤리성 문제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법적 재판까지 가게 되어 6편의 시가 삭제 조치를 받게 되었다.
지나치게 우울하고 퇴폐적이면서도 이 단 한 권의 시집으로 인해
그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로 추앙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미적 가치의 이중성
보들레르의 시는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사고 방식들을
대립적인 이원성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들레르의 시들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이라는
대립적인 개념이 부딪히고 있다.
선과 아름다움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나타내고
악과 추함은 동물적인 경향이면서도 인간의 육체적 타락으로 빠지게 만든다.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잔느 뒤발과의 연애 속에
보들레르는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면서 고뇌한 것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잔느 뒤발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으나
잔느 뒤발은 어떻게든 그에게 돈을 타내려고 하는 방탕한 여자였다.
그래서 시집 몇 편의 시에는 그녀를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 되어진다.
그리고 이 시에서 잔느 뒤발은 추악한 여자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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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 넣겠구나.
추악한 여인이여! 권태가 내 마음을 악독하게 만드는구나.
(중간 생략)
은밀한 섭리를 품은 위대한 자연이
너, ― 계집아이 오, 죄악의 여왕이여
비천한 짐승이여, ― 너를 가지고 어느 천재를 반죽해 낼 때에
-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 넣겠구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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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그녀를 ‘위대한 자연’ 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비록 추악하지만 본연에는 여자로서의 출산의 기능
즉, ‘자연’ 으로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보들레르는 선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은 악마적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모두 내재하고 있는 미적 가치를 추구하려고 한다.
그 결과 보들레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도덕성에 탈피하여
영원성을 지닌 대상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추하다고 할지라도
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집의 제목인 '악의 꽃' 처럼 악의에 가득 찬 꽃에도
사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향기가 뿜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는 현실적이다.
그가 살았던 프랑스의 시단의 주류는
속세에 초연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추구하는
예술 지상주의적인 고답파(高踏派)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가치들을 표현했다.
하지만 보들레르는 인간 내면으로 느끼는 이중적인 가치를 주제로 삼아
인간이 불편하다고 느끼게 되는 단어와 감정들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다.
시집의 서문에서는 독자들에게 위선자임을 대놓고 말하는 동시에
결국 이 시집을 읽는 그들도 ‘악의 꽃’의 향기에 취했음을 각인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보들레르는 기성 문단의 비난과 모욕을 감수해야만 하는 비주류,
파리의 Outsider로 살아가야만 했다.
저주받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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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개 달린 항해자여,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파이프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 [알바트로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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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자신의 삶은 저주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위대한 문학성에 대해 세상을 알아주지도 않고
잔느 뒤발과의 마약 같은 사랑은 그녀가 먼저 죽은 후
상실감의 고통 속에 얼마 안가 그도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후세는 그를 ‘저주받은 시인’ 이라고 부른다.
이 시가 그의 불운한 삶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알바트로스는 항해자들에게 앞으로 가야 할 바닷길을 알려준다는 전설이 깃든 새이다.
이처럼 하늘을 날 때는 자유와 위엄을 누리는 멋진 항해자이지만
뱃전에 내려오면 선원들의 비웃음을 사는 현실에서 낙오된 알바트로스였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들볶이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자각했던 것일까.
저주받은 알바트로스.
비단 보들레르를 지칭하고 있는 것만 아닌 거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장밋빛 기대감에 가득찼으나
막상 현실 속에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 거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우리의 젊은 세대를 칭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하루 종일 우울한 시인의 우울한 시를 읽어서 생긴 우울감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