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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너는 삶의 태도
장하석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모름지기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모름지기’는 잘 쓰지 않는 우리말이다. ‘모름지기’의 비슷한말은 ‘당연히’다. 사람들의 입에 착 달라붙지 않고, 종이에 잘 나타나지도 않는 말은 시나브로 사라져서 ‘옛말’이 된다. ‘모름지기’는 까마아득한 옛말이다. 당연히 우리는 ‘모름지기’가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모름지기’의 말밑(어원)은 ‘모롬즉이’다. ‘모롬즉’과 접미사 ‘-이’가 합쳐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롬즉이’로 변하기 전의 옛말이 더 있다. ‘모로매’, ‘모로미’, ‘모름애’다. 이 옛말들의 생김새가 단어 ‘모르다’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국립국어원 관계자의 답변에 따르면 ‘모롬’은 ‘모르다’와 관련성이 없는 단어다. ‘모롬’은 속뜻을 영영 알 수 없는 옛말이다.

국어사전을 펼치면 색다른 옛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국어사전은 옛말을 고물로 취급한다. 자주 쓸 일이 없는 옛말은 비표준어로 분류된다. 아, 옛말이여‥… 지난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나. 아! 옛날이여.
모름지기 공부하려면 모르는 것이 많아야 한다.
모르는 것이 많을수록 호기심은 늘어난다. 호기심은 잠깐 생기다가 사라지는 궁금증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궁구하는 마음이다. 궁구(窮究)는 어떤 대상을 속속들이 깊이 공부하는 태도다. 궁구의 의미는 신조어 ‘디깅(digging)’과 비슷하다. dig는 ‘(굴을)파다’라는 뜻이다. 디깅은 관심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정보를 알아가는 행위다.
모른다는 것은 무식함을 뜻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도 무식할 때가 있다. 진짜 무식한 사람은 배움을 멈춘다. 뇌를 촉촉하게 적셔줘야 할 호기심이 말라 있다. 모르는 것에 무관심하다. 자기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이 많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배운다. 퍼뜩 떠오른 궁금증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모든 게 궁금해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몰라서 생긴 생각의 빈틈에 호기심이 채워지면 공부가 시작된다. 꾸준히 공부하면 드문드문 구멍이 난 생각이 영글어진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은 과학을 어려워한다. 그냥 어렵다는 이유로 공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학은 모르는 것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학문이다. 과학은 이과(梨科) 전공자들을 위한 학문이 아니다. 과학철학자 장하석 교수는 ‘과학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과학을 공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 하는 마음’의 출발점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새롭게 배운 과학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되, 지식의 허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은 지식의 정확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한 번 배운 지식은 평생 자산이 될 수 없다. 지식도 유통기한이 있으며 언젠가는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에 생긴 구멍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식의 부실함을 지적하는 상대방의 견해를 무시한다. 과학 하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지식의 구멍을 파고 들어가면서(digging) 공부한다. 차분한 숙고 끝에 자신만의 가설을 제시한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겸손하다. 자신은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서 가설이 틀릴 수 있다고 인식한다. 배울 점이 많은 상대방의 비판을 경청한다. 스스로 가설을 검증한다.

과학자도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 과학 지식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계속 배우면서 오류를 고쳐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는 《인간은 동물이다》[주1]라는 책에서 ‘인식적 겸손’을 강조한다. 인식적 겸손은 과학 하는 마음과 통한다. 겸손하면 견해의 문제점과 개선 가능성을 인정한다. 겸손한 과학은 가설을 검증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으로 다듬고, 틀린 점이 발견되면 또다시 검증해서 고치는 학문이다.
‘과학 하는 마음’은 무엇이든 공부하는 태도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까이하는 지기(知己)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주제에 흥미를 느껴 파고들게 되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알고 있다는 착각은 배움을 멈추게 한다. 착각이 심해지면 자기가 틀린 것을 모른다.
모름지기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cyrus의 주석

[주1] 《인간은 동물이다》의 역자는 전대호다. 장하석 교수의 책 두 권,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 현실적인 사람들을 위한 실재론》(김영사, 2026년)와 《물은 H2O인가?: 증거, 실재론, 다원주의》(김영사, 2021년)을 번역했다.

《새로운 실용주의 과학철학》에서 장 교수는 ‘만물을 포괄하는 실재’, 즉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견해를 언급한다.

“오직 세상 안에서 발견되는 것만 존재한다. 세상은 원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세상 안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251쪽)
장 교수가 인용한 가브리엘의 말은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김희상 옮김, 열린책들, 2017년)에 나온다.
* 83쪽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주2]은 달 표면에 달 자국을 남기고 거기에서 흙을 채취해 오는 엄청난 업적을 이룩했다.
[주2] 칼럼에 언급되지 않은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가 한 명 더 있다. 사령선 조종사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 달에 내리지 못한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 1930~2021)다.
* 90~91쪽

현대 기술 문명의 반석이 되는 전자기학도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자석과 전자와 코일을 가지고 어린이가 놀이하듯 한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석은 나침반에 사용되는 것 외에는 아무 실용적 용도가 없던 물건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패러데이의 손에서 이 자석은 깊은 자연의 신비를 깨우쳐주는 도구로 거듭났다.[주3]

[주3]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이전에도 자석으로 실험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과학자가 자석을 연구하여 ‘자기(磁氣) 철학’을 정립한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다. 그의 본업은 의사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의 주치의였다. 길버트는 자기력(자력)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 과정을 설명한 책 《자석론》(De Magente, 국역본: 《자석 이야기》, 박경 옮김, 서해문집, 1999년, 절판)에서 지구가 거대한 자석(자성체)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참고문헌: 야마모토 요시타카, 이영기 옮김, 《과학의 탄생: 자력과 중력의 발견, 그 위대한 힘의 역사》, 동아시아, 2005년, 17장 「근대적 우주상의 등장과 길버트의 ㅡ자기 철학」).
* 121쪽

실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유명하지, 그 선수를 잘 관리해 돈을 버는 구단주는 유명하지 않다. 축구 팬들은 손흥민을 보고 열광할 뿐, 그가 속했던 토트넘의 구단주는 누구인지도 잘 모른다.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고 타당한 것 같다.[주4]
[주4] 축구 팬들은 구단주에 관심이 많다. 선수를 사고파는 구단주의 투자 능력이 팀의 성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 축구 리그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를 챙겨 보는 팬들은 무능한 구단주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 일례로 손흥민이 토트넘 FC 훗스퍼 소속이었을 때, 당시 구단주는 다니엘 레비(Daniel Levy)였다. 현지, 국내 토트넘 팬들은 이적 시장(선수들이 다른 팀에 이적하기 위해 협상하는 기간)에 큰돈을 써가면서 선수를 영입하지 않은 레비를 비난했다. 비단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 팬들은 구단주의 행보에 주목한다.
* 148쪽

조선 최초의 서양식 의료 기관이었던 제중원[주5]
[주5] 조선 최초의 서양식 의료 기관은 1877년 부산에 개원한 제생의원(濟生醫院)이다. 일본 정부가 설립했다. 부산대학교병원의 전신이다.
[출처: 부산대학교병원 홈페이지]
https://www.pnuh.or.kr/pnuh/hospital/history.do
* 172쪽

미국과 같은 몇몇 나라를[주6]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미터법을 공통적으로 사용해 서로 편리하게 교류하고 있다.
[주6] 미터법을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다.
* 192쪽

베르그송은 시간은 모든 경험의 토대이며 시간을 수학적 양으로 이해하는 것은 천박하고 잘못된 일이라 주장했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시간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으로만 논의한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포함된 시간 개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 내용으로 1922년에 저서를 발간[주7]하기까지 했는데, 그 책을 읽어보면 아인슈타인의 최첨단 물리학 이론을 베르그송이 어느 정도 잘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7] 책 제목은 『지속과 동시성』(Durée et Simultanéité)이다. 국역본은 출간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류종렬 옮김, 《깊이 읽는 베르그송》, 갈무리, 2018년)
* 249쪽
나사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일 중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던 이상한 작업이 있었다. 2024년 6월, 나사는 무인 우주선을 쏘아 지구에서 약 1,100만 킬로미터 거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디모르포스’라는 자그마한 소행성을 정확히 들이받았다. 발사한 지 무려 10개월 후였다.[주8]
[주8]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은 지구 멸망을 초래한다. 나사(NASA)는 지구 방어용 우주선을 소행성 디모르포스(Dimorphos)에 충돌시켜 궤도에 변화를 줄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다트(DART, 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이중 소행성 궤도 변경 시험)’ 계획을 진행했다.
2021년 11월 24일에 무인 우주선이 발사됐다. 2022년 9월 26일에 우주선이 디모르포스에 충돌했다. 디모르포스의 공전 주기를 32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장 교수는 무인 우주선이 소행성에 처음 충돌한 날짜를 잘못 적었다. 검색창에 ‘디모르포스’를 입력하면 다트 계획을 소개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관련 기사: <소행성으로부터 지구 방위 실험 ‘다트’…우주선 · 소행성 충돌 흔적 첫 확인>, 동아사이언스, 2023년 7월 22일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