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5월의 세계 문학
아사이 료
민경욱 옮김
《정욕(正欲): 바른 욕망》
리드비
2024년

2025년 5월 31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35분
장소: 인더가든
<5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진행, 도서 추천, 발제]
향기
[보조 진행, 북클럽투르기, 윤색, 사진]
최해성
[참여]
조약돌, 김성현, 이우리, 이금재, 이문수
※ 북클럽투르기(bookclubturgy, bookclubtur+記)
독서 모임 후기 엮은이.
‘북클럽투르기’는 공연 제작을 위해 희곡과 연극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또는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드라마투르기(dramaturgy)’에서 따온 말입니다.
‘성(性)’은 항상 우리 곁에 있는 단어입니다. 성은 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려줍니다. 대다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성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어요(cisgender). 하지만 성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해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intersex). 한 개의 성을 정한 채로 평생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어요(non-binary).
성(性)은 ‘心(마음 심)’과 ‘生(날 생)’이 만나서 생긴 단어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성적 끌림과 성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드러나는 성적 취향은 한 사람의 ‘마음(psyche)’에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물론 마음(心)에서 태어난(生) 성(性)이라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천성(天性)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은 살아 있습니다(生). 생생한 성은 호기심(psyche)을 느끼며 변화에 민감합니다. 주변 환경이나 자주 만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 미처 알지 못했던 성적 취향을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성적 만족을 느낄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성욕은 ‘두 개의 뜻을 가진’ 정욕입니다. 정욕(情欲)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뜻한다면, 정욕(情慾)은 성적 욕망을 뜻해요. 앞서 제가 말한 ‘마음에서 태어난 성’을 떠올린다면, 정욕(情欲)과 정욕(情慾)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욕을 ‘두 개의 뜻이 포개진’ 정욕으로 이해하고 싶어요.
여기에 일본의 작가 아사이 료(朝井リョウ)는 성욕에 자신이 생각하는 ‘세 번째 정욕’의 뜻을 얹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세 번째 정욕’은 ‘바른 욕망’을 뜻하는 정욕(正慾)입니다. ‘정욕(正欲)’은 2021년에 나온 작가의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 막스 베버, 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출판, 2017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유능한 교수라면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능한 교수는 학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불리한 사실(inconvenient facts)’을 인정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불리한 사실’은 학생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와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불리한 사실’은 편안한 지식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도전하는 지식입니다.
아사이 료의 소설 《정욕: 바른 욕망》은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주류에 반하는 소수의 의견과 가치관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다양성’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를 보호하는 방패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때로는 착각하기 쉬운 ‘다양성’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불리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다양성, 이 단어 속에는 축복과 비슷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자.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자. 나답다는 데 당당해지자. 타고난 속성을 다른 이가 판단하는 건 틀렸다.
가슴이 상쾌해질 정도로 축복이 반짝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결국, 소수자 가운데서도 주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자 말하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의 ‘자신과 다른 것’에만 해당하는 말입니다.
상상을 초월한 나머지 이해하기 힘든, 직시할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운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것에는 단단히 뚜껑을 닫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죠.
(8~9쪽)
소설에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 ‘이상 성욕’을 가진 인물들이 나옵니다. 수도꼭지를 틀자마자 힘차게 뿜어나오는 물에 성욕을 느끼는 남자는 수도꼭지만 떼어내 훔칩니다. 소설 주인공은 이성과의 성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해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성관계 도중 이성의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쾌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소설 속 인물들의 정욕(성욕)과 성적 취향이 상당히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어도, 그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다양성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고, 도덕과 상식에 완전히 벗어난 정욕을 위한 방패가 되어주질 못합니다. 소설은 ‘다양성’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편안하게 쓰는 독자들을 향해 ‘불리한 사실’을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결국 ‘다양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정욕은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다수가 지극히 ‘정상적인’ 상식(또는 도덕)에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소수(비주류)가 다수(주류)의 기준에 맞춰야 하고, 끝내 다수에 동화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 ‘다양성’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5월 마지막 날, 5월의 마지막 금요일.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세속) 모임 날은 아사이 료의 생일이었습니다. 모임 후기 글을 쓰기 시작한 주말에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요.





《정욕: 바른 욕망》을 추천한 향기 님은 네 개의 발제문을 만들었습니다. 향기 님은 독립 출판물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직접 팸플릿 형태의 인쇄물을 만들 수 있어요. 이번 모임에 참석한 <세속> 독자들을 위해 발제문이 있는 팸플릿을 만들었습니다. 발제문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향기 님이 발췌한 작가의 인터뷰 내용도 있습니다.
팸플릿을 유심히 잘 보면,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흰 종이로 만들어진 것과 노란색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있는데요, 노란색 종이는 사탕수수로 만든 종이라고 합니다.
<세속> 독자들은 《정욕: 바른 욕망》을 읽는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어요. 소설의 주제가 성욕이라서 성에 대한 솔직한 견해를 밝히기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바른 정욕’에 부합하는 성욕을 떠올리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리고 작가가 지적한 ‘다양성’의 한계를 보완해 줄 만한 단어가 잘 떠올리지 않았을 거예요. 성과 성욕에 대해 심오하면서도 묵직한 문제들을 툭 던져놓기만 하고 이야기를 써 내려간 작가의 글쓰기가 불친절하다고 느낀 <세속> 독자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소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이 있었습니다. 이금재 님은 마음에 든 소설의 문장 두 개를 언급하면서 작가의 표현력이 좋았다고 했어요.
소설 뒤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어요.

마지막 장에 도달하는 순간, 찾아오는 혼란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간의 가치관을 격렬하게 뒤흔드는 충격의 걸작!
김성현 님은 이 소설에 본인의 감정과 가치관을 크게 뒤흔들만한 커다란 반전이나 충격적인 반전이 나오지 않아서 마무리가 허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정욕인 소아성애를 ‘바른 정욕’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 [개정판] 존 스튜어트 밀, 김만권 옮김 《자유론》 (책세상, 2025년)
* [구판_절판]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자유론》 (책세상, 2005년)
향기 님의 첫 번째 발제는 우리에게 과연 ‘타인의 욕망을 판단하는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성현 님은 ‘타인의 욕망을 판단하는 자격’을 비판적으로 봤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자격을 가지게 된다면 타인의 욕망 또는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행위에 지나치게 간섭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면, 개인의 개별성은 소외되고 억압받습니다. 성현 님은 타인에게 (육체적 · 정신적 · 경제적)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정욕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현 님의 견해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강조한 ‘자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 [개정판_절판] 제러미 벤담, 신건수 옮김 《파놉티콘》 (책세상, 2019년)
* [구판_절판] 제러미 벤담, 신건수 옮김 《파놉티콘》 (책세상, 2007년)
저도 ‘타인의 욕망을 판단하는 자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욕망을 지나치게 간섭하면서 판단하는 일상이 익숙해지면 타인을 ‘감시’하게 됩니다. 타인의 욕망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 또한 누군가가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요. 이렇듯 서로서로 감시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욕망을 규제하고 검열하는 사회는 개인을 못살게 구는 거대한 감옥과 같아요. 이 감옥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수많은 죄수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구상한 ‘파놉티콘(panopticon)’입니다. 벤담이 살아있을 때, 파놉티콘은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카페 스몰토크 <푸코 읽기> 모임(2023년) 두 번째 책, 모임 미참석]
* [개정 2판]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나남출판, 2020년)
그렇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 특유의 통제 방식이 사회에 정착되는 순간, ‘감옥화된 사회’가 탄생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감옥화된 사회’의 권력자는 힘들이지 않고, 개인을 통제합니다. 왜냐하면 피지배자인 대중, 즉 우리가 서로를 감시하고, 감시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파놉티콘 사회는 개인이 서로서로 감시하는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향기 님은 ‘바른 욕망’의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고,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고 했어요. 이와 관련된 세 번째 발제는 ‘바른 욕망’의 기준이 개인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사회가 만든 것인지 알아보는 질문이었어요. 이우리 님은 타인의 욕망에 대한 사적인 판단이 다수의 기득권층을 위한 법으로 만들어지는 상황을 우려했습니다. 벤담은 ‘최대 다수의 행복’을 최고로 여기는 공리주의자입니다. 이우리 님은 벤담식 공리주의에 따르는 입법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정상’과 ‘도덕적 올바름’에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대중은 다수를 위한 법에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에 세뇌당한 대중은 ‘다수를 위한 올바름’에 맞춰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상’에 속하고 싶어 해요.
[서재를 탐하다 & 읽다익다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20년 2월의 책(83번째 책)
추천자: 최해성
모임 날짜: 2020년 2월 27일(코로나 유행으로 취소)]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2024년)
소설에는 ‘올바름’에 벗어난 타인의 정욕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이상해’, ‘우스워(비웃음)’, ‘미쳤다’라고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런 발언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했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할 것입니다. 조약돌 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선량한 차별주의자’라고 했습니다. 일본의 임상 심리학자가 쓴 소설의 해설 속 문장을 빌리자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기들이 바르게 살아가고 있고, 언제나 사회는 옳다고 굳게 믿고(《정욕: 바른 욕망》 해설, 444쪽)’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성과 성적 지향을 가까이 다가가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저는 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확하다고 알려진 성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성 지식에 호기심을 느끼고, 선뜻 다가갈 수 있습니다.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기획 ‘페미 스쿨(2019년 7월 1일~10월 28일)’
세미나 지정 도서]
* 오드리 로드, 주해연 · 박미선 함께 옮김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년)
미국의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이자 시인인 오드르 로드(Audre Lorde)는 『시는 사치가 아니라』라는 글에서 ‘우리 삶을 성찰하는 일’에 친숙해지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시스터 아웃사이더》, 39쪽). 저는 성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려는 침묵을 깨서, 성의 다양한 얼굴을 바라보려면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성을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한 ‘성을 성찰하는 일’은 성교육과 성 공부입니다. 성교육과 성 공부는 어린이와 청소년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 [절판] 빌헬름 라이히, 윤수종 옮김 《오르가즘의 기능: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오르가즘적 처방》 (그린비, 2005년)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는 ‘성’을 은폐하고, 성 담론을 침묵하게 만드는 사회는 개인의 성욕과 성적 지향을 억압한다고 했습니다. 라이히는 성을 불결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인습에 사로잡힌 사람을 ‘소인배(a little man)’로 비유합니다. 소인배들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바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자신과 다른 타인을 괴롭히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라이히는 변화를 거부하는 소인배들이 많아지면 민주주의가 절대로 발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보호받는 인민대중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습득하고, 계속 점점 더 나은 삶의 형식들로 전진할 모든 가능성을 갖게 되는 힘들고 긴 과정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주의는 노인들이 즐겨 회상하는 영광스럽고 전투적인 과거와 같은 종결된 발전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발견들, 그리고 새로운 삶 형식들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씨름하는 과정이다.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중에서, 30쪽)
처음에 제가 언급한 ‘마음에서 태어난 성’이 살아 있으려면 ‘성’을 종이에 적힌 글자로만 남아선 안 됩니다. 여전히 낯설고 두렵지만, 우리는 입으로 ‘성’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성’을 우리의 입말, 우리의 대화 속에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성을 숨(psyche) 쉬게 합니다.

Thanks to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