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독서 모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4월의 세계 문학
오에 겐자부로
서은혜 옮김
《개인적인 체험》
현대문학
2009년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저녁 8시~10시 45분
장소: 인더가든
<4월의 세계 문학>을 만든 독자들
정현정(진행), 조약돌, 김성현,
천성은, 최승민, 최해성(모임 후기 엮은이)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장편소설 《개인적인 체험》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한 이야기가 흐르거든요. 오에와 아들 히카리(大江光)의 관계를 조명한 책을 쓴 영국의 언론인 린즐리 캐머런(Lindslry Cameron)은 《개인적인 체험》이 내용상 심각한 책이지만, 매우 재미있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 [절판] 린즐리 캐머런, 정주연 옮김 《빛의 음악: 장애 아들을 작곡가로 키운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 (이제이북스, 2007년)
소설 주인공 버드(Bird)는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입니다. 뇌에 이상이 있는 아기를 살려야 말지 외롭게 고민하는 와중에 옛 여자 친구 히미코(火見子)를 만납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버드의 성적 욕망도 솟아오릅니다. 대부분 독자는 작가의 지나친 성적 묘사가 상당히 거슬린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캐머런은 ‘가차 없는 솔직함’이 이 책의 눈에 띄는 매력이며 오에의 작품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구별 짓는 요소라고 말하네요.
《개인적인 체험》을 추천한 <세속> 독자 정현정 님은 이 어려운 책을 어떻게 봤을까요? 속독하면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천천히 읽으면 생각 덩어리가 많이 나오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명의 <세속> 독자들은 각자 머릿속에 안고 온 소설에 관한 생각 덩어리들을 하나둘씩 꺼내보았습니다.
조약돌 님은 ‘소설 밖에 있는 이야기’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버드와 아내의 관계가 상당히 부자연스럽고,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죠. 결혼은 ‘자유의 무덤’이에요. 버드는 ‘불편한 진실’을 모르고 결혼한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결혼한 것일까요?
* 이상희 《인류의 진화: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동아시아, 2023년)
약돌 님은 여행하기 쉽지 않은 아프리카에 버드가 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약돌 님이 던진 질문을 받은 천성은 님은 아주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해 주셨는데요, 최초의 인류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프리카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진화론자와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는 학설을 지지합니다. 버드가 꿈꾸는 아프리카는 단순히 ‘미지의 여행지’일 수 있고요, 성은 님의 진화론적 관점이 투영된 아프리카는 진정한 나(개인)의 정체성이 시작된 ‘집과 고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시간이 쏜 화살에 맞습니다. 현실에서 미래로 거침없이 나가는 시간의 화살. 우리는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는 시간의 화살에 관통당한 채 살아갑니다. 화살 방향을 절대로 바꿀 수 없듯이 과거를 그리워해도 돌아갈 수 없어요. 버드의 아프리카는 현재보다 자유로웠던 과거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최승민 님은 소설에서 반영된 당시 일본의 시대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 ChatGPT를 이용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ChatGPT로 소설과 작가와 관련된 정보를 빠르게 찾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 미리엄 실버버그, 강진석 · 강현정 · 서미석 옮김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 근대 일본의 대중문화》 (현실문화, 2014년)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4년 7월의 세계 문학]
* 에도가와 란포, 김소연 옮김 《에도가와 란포》 (손안의 책, 2021년)
* 박경리 《일본산고: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유고 산문》 (다산책방, 2023년)
《개인적인 체험》에는 성적 묘사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종종 나옵니다. 캐머런이 말한 것처럼 웃긴 장면도 있습니다. 저는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반 근대 일본에 유행하기 시작한 문화 양식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의 취향이 이 소설에 묻어나 있다고 느꼈어요. 에로 그로 난센스는 야하고, 엽기적이고, 우스운 것을 뜻합니다. 에로 그로 난센스가 넘치는 192, 30년대에 활동한 작가 중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고, 동시에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가 바로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입니다.
김성현 님은 토요일 아침에 하는 독서 모임 <고라니 울고>의 모임장입니다(현정 님과 승민 님도 <고라니 울고> 소속 회원입니다). 성현 님은 <고라니 울고> 선정 도서로 읽었던 박경리의 산문 《일본 산고》의 내용 일부를 언급하면서 《개인적 체험》에 스며든 일본인의 인생관을 짚어주었습니다.
《일본 산고》는 《토지》를 쓴 작가가 쓴 일본 문화론입니다. 박경리는 반일 작가로 유명합니다. 이 책은 작가 사후에 나온 미발표 원고를 묶은 것입니다. 작가의 원고 속에 일본 문화에 대한 자신의 소회가 담겨 있는데요, 작가가 보고 느꼈던 일본인들은 ‘내세관이 희박해서 유한을 잘 소화하는 민족’입니다. 일본 민족 종교는 샤머니즘인데, 일본의 신은 내세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정서에 어둡고 캄캄한 허무주의가 배어 있습니다. 허무주의에 짓눌린 일본인들은 체념에 빠져 자살을 선택합니다. 모든 일본인이 현실적 고통에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극단적인 취향’을 마음껏 즐기면서 현실의 고통을 애써 잊으려고 하죠. 저는 이 ‘극단적인 취향’이 만든 일본 특유의 문화가 바로 ‘에로 그로 난센스’라고 생각해요.
《개인적 체험》의 버드는 절망적인 현실(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과 불투명한 미래(아프리카 여행) 사이에 껴서 괴로워하는 인물입니다. 버드는 혼자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에로스에 집착하고 있어요. 승민 님이 말씀하신 대로 성적 욕망과 에로티시즘이 가득한 히미코의 집은 버드의 유일한 도피처입니다.
《개인적 체험》은 히카리가 막 태어났을 때 쓴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 읽는 독자는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버드를 작가와 동일시한 독자는 아내에 무심하고, 옛 여자 친구에 매달리는 버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개인적 체험》을 읽고 실망한 독자는 작가를 오해하게 되고, 오에 겐자부로는 한순간에 ‘오해 겐자부로’가 됩니다.
* 헨리 나우웬, 김명희 옮김,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IVP, 2022년)
현정 님은 가톨릭 사제이자 신학자인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책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신 자》을 읽은 이후로, 장애를 둘러싼 편견을 스스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1996년 2월에 세상을 떠난 장애 청년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가리킵니다. 헨리 나우웬은 아담의 삶을 회상하고, 아담을 만나면서 느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아담이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후에 헨리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아담의 이야기가 사라질 뻔했어요. 다행히 헨리와 친분이 있는 종교인들과 아담 유가족의 보살핌을 받은 유고는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었습니다.
헨리는 “장애인의 삶에 헌신하도록 당신을 자극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항상 “아담”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헨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누구인지 등등 종교적 질문을 하면 거기에 빛을 비춘 사람이 아담이었다고 말합니다. 헨리에게 아담은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든 존재였습니다.

오에는 빛(히카리)이 없었으면 자신은 소설가로 살아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히카리는 오에가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나는 당황과 혼란 속에서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를 함께 준비하며 직관적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빛)라고 지었다. 나의 직관은 옳았다. 그 아이의 존재는 내 의식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어둡고 깊은 곳까지 구석구석 밝혀 주었으니 말이다.
(《빛의 음악》 중에서, 12쪽)
《개인적인 체험》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없고, 애매한 소설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어둡기만 하고, 칙칙하고, 혼란스러운 소설은 아니어요. 작가와 버드를 무조건 일치시켜서 바라보는 독서는 ‘오해 겐자부로’를 만날 수 있어요. 진짜 ‘오에 겐자부로’를 제대로 만나려면 《개인적인 체험》만 봐서는 안 됩니다. ‘빛(히카리)’이 성장할수록 오에의 문학은 성숙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이후에 나온 소설들을 꾸준하게, 천천히 읽으면 빛나는 오에를 만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