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 - 당신이 수학을 사랑하게 만들 책 : 젠더·인종·국경을 초월한 아름답도록 혼란스럽고 협력적인 이야기
케이트 기타가와.티모시 레벨 지음, 이충호 옮김 / 서해문집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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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역사는 미완성이다. 절대로 완성할 수 없다. 다시 써야 한다과학사도 마찬가지다과학은 꼼꼼한 실험과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 학문이다. 과학사는 정확한 사료를 바탕으로 기록된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과학이 객관적인 학문이라 해서 과학사도 객관적인 역사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과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라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 과학은 편견에 물들기 쉬운 학문이다. 연구 주제를 정하는 일부터 실험 방식 설계, 실행, 실험 결과 평가까지 과학 활동의 모든 단계에 편견이 스며든다역사는 정확한 사실들이 차곡차곡 모이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배운 역사에 간혹 불순물이 들어 있다.


빌 브라이슨(Bill Bryson)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 2020)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은 겉으로는 우아하게 보이면서도 사실은 매우 너저분한 학문이라고 했다(194). 과학적 진리는 완벽하지 않다.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과연 물리학만 그럴까? 깔끔하게 계산해서 군더더기 없는 논증을 펼치는 수학 역시 너저분하다







정확한 진실만 추출해서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지저분한 역사를 이대로 둘 수 없다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는 완성할 수 없는 이야기다계속 고쳐 써야 한다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는 이러한 시도로 만들어진 책이다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지저분한 수학사를 고쳐 쓰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 책의 서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지도의 진실을 언급하면서 시작된다정밀하게 계산하고 측정해서 만들어진 지도는 정확하지 않다지도에 묘사된 유럽의 땅덩어리는 거대하다그러나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땅덩어리가 유럽보다 넓다수학사는 수학적으로 정확하지 않은 지도와 같다수학사에도 역사가의 머릿속에 나온 불순물이 섞여 있다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의 불순물은 진실로 변질된다. 어떤 수학자의 일대기는 사실과 다르게 부풀려진다특정한 수학자를 편애하는 역사가가 역사를 기록하면 그 수학자 한 명만 바라보는 바보가 된다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자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참신한 방법으로 문제를 푼 다른 수학자가 있는데도 역사가는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


유럽 땅덩어리를 과장되게 묘사한 지도처럼 수학사는 유럽에서 태어나고 활동한 수학자들의 업적만 진열되어 있다직각삼각형의 세 변의 길이와 관련된 공식을 발견한 수학자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그가 처음으로 증명했다고 알려져서 공식의 정식 명칭이 피타고라스 정리가 되었다. 수학사를 의심 없이 받아 적은 수학 교과서는 피타고라스가 증명한 방식 하나만 가르쳐준다. 그러면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이 방식을 외우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정리를 도출할 수 있는 증명 방식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증명 방식이 400개가 넘는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들은 이미 직각삼각형 정리를 알고 있었다. 중동과 아시아 출신 수학자들은 독자적으로 직각삼각형 정리를 증명했다그러나 바보가 만든 수학사는 피타고라스 밖에 모른다.


가장 오래된 수학 교과서는 유클리드(Euclid)기하학 원론이 아니다. 기원전 1550년경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이자 필경사인 아메스(Ahmes)가 남긴 린드 파피루스(Rhind Papyrus)’. 린드는 아메스의 파피루스를 처음으로 발견한 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다. 아메스의 파피루스는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수학 교과서는 유럽에만 있는 건 아니다. 구장산술(九章算術)은 동아시아 수학을 집대성한 고대 중국의 수학 교과서다. 이 책에도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직각삼각형 정리가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구고(勾股) 정리라고 부른다구고는 수학자 이름이 아니다. 직각삼각형을 뜻하는 단어다.


수학의 역사를 쓰는 어리석은 바보는 백인 중심 남성 수학자를 우대한다그들은 여성 수학자를 홀대한다소피야 코발렙스카야(Sofia Kovalevskaya)는 세계 최초의 여성 수학 교수다. 하지만 그녀와 동시대에 활동한 수학자들은 코발렙스카야의 업적을 깎아내렸다. 남성 천문학자들이 천문대의 망원경을 독점하고 있을 때 인간 컴퓨터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여성들은 방대한 관측 자료를 수작업으로 분석했다. 천문학자들은 계산과 관측의 달인인 인간 컴퓨터를 아마추어로 취급했다. 인간 컴퓨터에 소속된 연구원 중에 과학의 유리 장벽을 깨뜨린 과학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헨리에타 스완 레빗(Henrietta Swan Leavitt)이다. 레빗은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는 미완성이다역사를 계속 고쳐 쓰지 않으면 어느새 불순물이 낀다. 이 불순물에 역사를 쓰는 사람의 편견, 이데올로기, 취향 등이 섞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에 진실만 온전히 남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만들자는 건 아니다어떤 사료와 누구의 해석이 진실에 부합하는지 정하는 기준도 이념과 편견의 압력을 피하지 못한다결국 겸손한 역사가가 역사를 고쳐 써야 한다. 겸손한 역사가는 자신도 편견이 시키는 대로 역사를 바라보는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안다자신이 고쳐 쓴 역사가 오류로 밝혀지면, 실패를 떳떳하게 인정한 후에 다시 고쳐 쓴다현명한 바보가 역사를 써야 한다.






<cyrus의 주석>





* 89





 

 아주 유명했던 지식인 살롱을 운영한 아스파시아가 있는데, 소크라테스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이 그 살롱에 드나들었다. 아스파시아의 이름은 플라톤의 글[주1]에도 등장하는데, 플라톤은 그녀의 지성과 위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1] 아스파시아(Aspasia)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의 애인이다. 아스파시아의 지성을 언급한 플라톤(Plato)의 글메넥세노스(이정호 옮김, 아카넷, 2021). 플라톤의 대화편의 주인공 소크라테스(Socrates)는 자신에게 연설 기술을 가르친 선생님이 아스파시아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페리클레스도 아스파시아에게 연설 기술을 배운 제자였다고 주장한다(메넥세노스》 235e). 메넥세노스페르시아와 맞붙은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페리클레스의 추모 연설문이 실려 있는데, 아스파시아가 연설문을 썼다고 전해진다.





* 126





 

 아인슈타인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이 공간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시공간은 하나의 일관성 있는 4차원 공간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런데 시공간은 중력에 의해 구부러질 수 있고, 따라서 시간 지연이 일어날 수 있다.

 

 


* 349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거대한 물체가 그 질량으로 시공간을 구부러뜨리는 효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의 굴곡으로 인해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질량이 연관된 가속적 힘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문장 모두 다시 쓰는 수학의 역사에 있다. 두 개의 문장 중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정확하게 설명한 것은 349이다. 저자가 두 사람이라서 126쪽 문장을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중력을 잘못 설명했다. 중력은 시공간을 휘는 힘이 아니다. 시공간 한가운데에 있는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만드는 요인이다.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중력이 생긴다. 중력은 휘어진 시공간의 부산물이다(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149).





* 323

 

 펠릭스 클라인은 코발렙스카야가 살아있을 때 그녀의 연구를 스승의 수학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끊임없이 무시하고 깎아내렸다. 1926년에 클라인은 19세기 수학사를 다룬 책[주2]에서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서 코발렙스카야의 연구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주2] 번역본: 펠릭스 클라인, 한경혜 옮김, 19세기 수학의 발전에 대한 강의 (나남출판, 2012)




 

* 324~325



 



 에릭 템플 벨은 수학을 만든 사람들[주3]에 예상 밖으로 그녀를 포함하면서 눈부시게 아름답고 젊은 여성으로 묘사해 수학 실력보다 외모가 더 출중했다는 이미지를 영속시켰다.

 


[주3] 번역본: 에릭 템플 벨, 안재구 옮김, 수학을 만든 사람들 (미래사, 2002, 2, 초판 출간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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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05 1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역사는 미완성, 과학은 가설^^

cyrus 2024-11-10 11:59   좋아요 0 | URL
완성할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아름다우면서도 인간적으로 느껴져서 보기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