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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평점 :
평점
4점 ★★★★ A-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대한성서공회 《새 한글 성경》)
쉬지 않고 내리흐르는 시간은 뜨겁다. 지금도 계속 흐르는 나의 시간도, 당신의 시간도 뜨겁다.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에 나타난 인류(Homo sapiens)를 오래오래 안아준 지구의 시간도 그렇다. 시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점점 뜨거워지면서 변한다. 가지런하면서도 반듯하게 생긴 물질이 변하면 흐트러진다. 시간과 생명, 그리고 모든 물질의 혼잡함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가 ‘엔트로피(entropy)’다. 엔트로피의 정의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무질서한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물질이 무질서할수록 엔트로피는 높아진다. 한 번 높아진 엔트로피는 다시 낮아지지 않는다. 엔트로피가 높아지면 모든 물질은 무질서한 상태가 되다가 끝내 소멸한다.
엔트로피는 무조건 증가하는 성질이 있어서 예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엔트로피의 정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엔트로피의 끝’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엔트로피의 끝은 죽음, 멸종 또는 종말을 의미한다. 엔트로피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Rudolf Clausius)는 무질서한 우주와 관련해서 암울한 상상을 펼쳤다. 그는 엔트로피가 최고조로 치솟은 우주가 마지막에 ‘열적 죽음(heat death)’을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클라우지우스가 상상해서 묘사한 죽은 우주의 풍경화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텅 빈 캔버스와 같다. 별빛은 다 죽었고, 모든 생명체도 살지 않는다. 최후를 맞이한 우주는 더 이상 살아있는 우주(宇宙)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집, ‘무주(無宙)’다.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들은 클라우지우스가 상상한 우주의 열적 죽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실제로 우주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시작되었다면 엔트로피의 증가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주가 팽창하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데다가 엔트로피가 높아진 우주가 죽을 수 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우주의 시작과 끝은 여전히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다.
우리가 우주의 열적 죽음보다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지구의 열적 죽음, 즉,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죽음이다. 엔트로피가 높아지면서 지구의 시간이 뜨겁다면, 인류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쏟아내는 바람에 지구 자체가 뜨거워지고 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를 넘어설 정도로 계속 뜨거워지면 인류가 적응하기 어려운 이상 기후가 나타난다. 인류가 나타나기 전에도 과거의 지구가 뜨거워진 적이 있다. 화산이 크게 터지면서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배출되었다. 대기를 뒤덮은 이산화탄소가 지구 전체를 완전히 감싸안으면, 태양으로부터 오는 열뿐만 아니라 지구가 내뿜는 열마저도 흡수한다. 지구가 열을 받으면 극지방의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바다 또한 뜨거워진다. 지구는 다섯 번이나 엄청나게 뜨거워진 적이 있다. 그야말로 지구의 엔트로피가 최대로 높은 상태이다. 이 시기에 지구 생태계가 크게 무너지는 ‘대멸종(mass extinction)’이 일어났다. 대멸종은 무질서하게 바뀐 이상 기후를 만난 지구 생명체가 대량으로 멸종된 사건이다. 우주의 열적 죽음과 마찬가지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정확히 언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인류는 지구의 엔트로피를 높이는 중이다.
인류는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온난화를 일으켜놓고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지구온난화 문제의 원인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후 재앙을 걱정하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여섯 번째 대멸종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때문에 더 뜨거워진 지구를 이해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류는 지구가 다섯 번의 뜨거운 격변을 어떻게 견뎠는지 알아야 한다. 인내심이 강한 지구 덕분에 우리가 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찬란한 멸종: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는 지구가 다섯 번이나 죽을 뻔한 위험한 순간과 이 시기를 힘겹게 살아온 생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 속에 담긴 지구의 역사는 지구가 태어난 날이 아닌 아직 오지 않은 2150년부터 시작된다. 2150년의 지구에 인간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져 버린 생물이다. ‘털보 (과학) 관장’으로 유명한 이 책의 저자 이정모는 처음부터 인류가 없는 지구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지구온난화를 방관하면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 이렇게 쓴 것일까? 이런 의도로 썼겠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 않다. 저자는 인류의 시선에 맞춘 지구의 역사를 쓰지 않으려고 기존의 지구사 서술 방식을 뒤집은 글쓰기를 시도한다. 《찬란한 멸종》의 지구사는 연대기 순이 아니라 ‘2150년-현재-신생대-중생대-고생대-선캄브리아기-원시 지구’ 순으로 거꾸로 돌아간다.
지구의 역사를 들려주는 존재는 인류보다 먼저 지구에 태어난 생물들이다. 지구온난화로 계속 뜨거워지는 바다에 사는 산호는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고 있음을 알리는 위험 신호를 가까이서 지켜본다. 공룡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등장한 디메트로돈이라는 고생물(공룡도, 파충류도 아닌 단궁류에 속한다)은 지구의 세 번째 대멸종 사건에 속하는 고생대 대멸종의 마지막 목격자다. 디메트로돈은 고생대 최후의 날에 생명체가 어떻게 죽어가는지 증언한다.
이 책에 지구가 직접 등장해서 ‘여섯 번째 대멸종’을 걱정하기만 하는 인류에게 충고한다. 지구는 ‘멸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한 수 가르친다. 지구가 다섯 번이나 경험한 멸종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모조리 사라지게 만드는 재앙’이 아니다. 멸종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멸종의 시간에 정면으로 부딪친 생물종이 지구와 헤어지고 나면, 또 다른 생물종이 태어나서 우연히 만난 지구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이렇듯 진화와 멸종은 우연히 일어난다. 인류는 지구에 이미 정착했던 고생물이 멸종된 이후에 운 좋게 나타난 생물이다.
인류가 생각하는 멸종은 인간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단어다. 왜냐하면 멸종을 겪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은 인간이며, 인간 없는 세상은 46억 년 역사의 장대한 지구 드라마(earth drama)의 쓸쓸한 결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구에서 유일한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인간은 멸종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가 생각하는 멸종은 암울하지 않다. 지구 드라마는 인간이 완전히 사라져도 끝이 나지 않는다. 생물종이 멸종하는 지구 드라마는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끝이 포개져 있다. 지구 드라마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주인공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우리보다 먼저 나타나 지구를 누빈 공룡들도 주인공이다. 또 한 번 대멸종이 온다고 해도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나 지구 드마라를 계속 쓸 것이다.
지구는 고맙게도 자신을 그토록 못살게 구는 인류를 내치지 않는다. 여전히 인류를 믿고 있다. 인류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엔트로피를 낮출 수 없지만, 지구의 엔트로피를 예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지구는 관대하다. 인류가 지구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지구 드라마를 쓴다면 이 드라마의 모든 주인공이 잘 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찬란한 멸종》은 과학적 사실과 상상력이 잘 비벼진 책이다. 과학소설을 읽는 느낌이 나는 과학책이다. 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여백이 있다. 책에 나오지 않은 사실은 저자가 후주(後註)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 51쪽
화성에는 계절에 따라 흐르는 소금물 개천이 있다. 화성의 낮은 대기압과 온도에도 불구하고 소금물 개천은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마치 겨울에 염화칼슘을 뿌리면 도로에 쌓인 눈이 녹아 액체가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우리는 극관이 아닌 소금물 개천 근처에 기지를 건설했다.
경사가 진 화성의 지형을 ‘RSL(Recurring Slope Lineae)’라고 한다. 2015년에 미국 과학자들은 RSL에 소듐(나트륨)과 마그네슘 등이 포함된 염류가 흐르면서 생기는 현상을 확인했다.[주1] 화성 탐사선이 그곳에 소금물 개천이 있는지 확인하러 가면 좋겠지만, 너무나 깊은 협곡이라서 탐사선이 내딛기 어렵다. 화성의 소금물 개천이 있다는 견해와 관련하여 NASA는 물이 흐른 흔적이 아니라 비탈에 남아 있는 드라이아이스가 증발하면서 생긴 흔적이라고 주장했다.[주2]
* 289쪽
귀상어는 현재까지 밝혀진 유일한 잡식성 상어로 해초도 먹는다. 또한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인 것으로 보고되지 않은 상어이기도 하다.
귀상어 바로 전에 고래상어가 먼저 책에 언급된다. 고래상어도 잡식성 상어다. 귀상어가 사람을 단 한 명도 죽인 적이 없는 상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귀상어가 사람을 공격한 사례는 열 건이 넘는다.[주3] 사람을 공격하고 죽이는 상어가 나타나는 영화 <죠스>(Jaws)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람들은 상어를 식인 동물로 오해한다. 그러나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백상아리를 포함한 모든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상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은 낯선 생물이다. 호기심이 많은 상어가 처음 보는 인간에게 접근하다가 본의 아니게 인간을 위협하는 듯한 몸짓을 할 수 있다.
* 339쪽
약 45억 년 전 어린 지구 가이아와 행성 테이아가 충돌할 때 떨어져 나온 파편으로 만들어졌다.
테이아(Theia)는 실제 행성이 아니라 가설로 묘사된 행성이다. 달의 탄생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지구와 테이아 충돌’은 과학자들이 꼽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주1] <화성에 ‘소금물 개천’ 액체 상태 물 증거 … 외계 생명 가능성 시사>, 연합뉴스, 2015년 9월 29일 입력
※ 관련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01/0007883234?ntype=RANKING&sid=111
[주2] <화성 협곡 발견 ‘물’ 흐른 흔적? 혹한에 드라이아이스 영향>, 이데일리, 2014년 3월 25일 입력
※ 관련 링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2954890?sid=104
[주3] ※ 관련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Hammerhead_shark#Relationship_with_hu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