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 우리를 미혹하는 유행, 가짜, 사기 격파하기
토마시 비트코프스키 지음, 남길영 옮김 / 바다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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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논리학에서 언급되는 오류 중에 그릇된 권위에 호소하기(appeal to unqualified authority)’라는 것이 있다. 특정 분야에 전혀 알지 못하는 전문가나 유명인의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때 생기는 오류이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만 공부하고 연구한 전문가도 때론 헛다리 짚을 때가 있어서 항상 맞는 말만 할 수 없다. 전문가가 똑똑하고 유명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말한 잘못된 주장을 믿는 것도 오류이다.


프랑스의 시인 라퐁텐(La Fontaine)이 엮은 우화집에 자신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전문가와 그들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대중을 풍자하는 우화가 나온다. 라퐁텐이 살았던 17세기는 점쟁이들이 활개 치고 다니던 시절이다. 과거 점쟁이들은 앞날을 맞추는 척하면서 전문가 행세를 했다라퐁텐은 점을 믿는 독자들에게 현명한 사람과 거짓말하는 점쟁이를 혼동하지 말라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길을 걷다가 우물에 빠진 점쟁이가 나오는 우화를 들려준다. 우화가 아주 짧다. 



 어느 날 점쟁이가 우물에 빠졌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바보 같으니라고. 자신의 운명은 한 치 앞도 못 보면서 어떻게 남의 운명을 점친다고 하는 거야?”

 

(다니구치 에리야, 김명수 옮김, 라퐁텐 우화중에서, 350)



지금도 여전히 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점쟁이의 말을 전부 믿지 않는다. 재미로 점을 본다. 과거가 점쟁이들의 점성(점성술과 전성기를 합친 조어) 시대였다면, 오늘날은 구루(guru)의 영성(靈性, 또는 영성과 전성기를 합친 조어) 시대. 구루는 선생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지금은 전문가와 권위자와 같은 뜻을 가진 단어로 변했다. 대중은 구루를 마치 신을 떠받들듯이 따른다. 그들이 바라보는 구루는 그저 빛에 가까운 존재다. 심오한 영성과 빛나는 예지를 갖춘 스승이다. 구루 신봉자는 스승의 말이 진실이며 자신의 삶을 좋은 쪽으로 인도해 준다고 믿는다. 


만약 라퐁텐이 구루의 영성 시대에 다시 태어났으면 구루를 가짜 스승이라고 비난하는 우화 한 편을 썼을 것이다라퐁텐이 하지 못한 일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Scientific Skeptics)이 하고 있다과학적 회의주의자는 점성술이나 미신과 같은 비과학적 문화의 허점을 지적한다. 이들의 역할은 그럴듯하게 과학을 인용하면서 전문가 행세하는 사기꾼을 비판하는 일이다몇몇 대중은 심리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는데심리학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늘 경계하는 분야이다. 폴란드의 심리학자 토마시 비트코프스키(Tomasz Witkowski)대중을 속이는 심리학을 비판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자다.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메스를 든 심리학자는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한 심리 치료, 전문가인 척하는 구루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가 쓴 책 제목이 인생에 대해 조언하는 구루에게서 도망쳐라, 너무 늦기 전에: 우리를 미혹하는 유행, 가짜, 사기 격파하기. 제목이 직설적이면서도 길다. 구루의 영성 시대를 비판하는 우화를 쓰는 라퐁텐이라면 아직 정신을 못차린 독자들을 향해 저렇게 직설적으로 충고했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수많은 심리 치료를 만들고 홍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심리 치료가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대중은 과학적인 심리 치료를 신뢰한다. 전문가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들은 학계가 인정하는 전문가이며 그들이 과학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으니 심리 치료는 무조건 좋다고 믿는다. 기세등등한 심리 치료 전문가는 심리 치료를 잘 받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학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지 정확한 방향을 알려주는 학문이 아니다과학이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진리가 언제든지 틀릴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며 진리가 타당한지 스스로 의심하고 검증해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으니 당장 실행하라고 주장하는 과학은 자가 검증이 없는 유사 과학이다과학자는 앞날을 예언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이 한 말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철저히 은폐하는 구루는 선생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들은 명성을 오래 유지하려면 대중 앞에서 잘 보여야 한다. 대중이 싫어할 만한 약점이 알려지면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견해를 학계와 대중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학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행동과 비슷하다.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고 일부러 불리한 증거들만 쏙 뺀다구루와 전문가를 지나치게 믿지 말자. 그들의 번지르르한 권위에 기 눌리지 말고, 의심해 보고 검증하자. 거짓말하는 구루는 구라. 자신의 그릇된 견해를 과학으로 포장하면서 뻥치는 전문가는 구루(九漏)’[주]다. 논리에 전혀 맞지 않는 구멍이 뻥뻥 나 있는 그들의 말에 더러운 것들이 새어 나온다.





[] 사람의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 항문, 오줌 구멍을 아우르는 아홉 구멍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 아홉 구멍에 더러운 것이 새어 나온다고 한다.





※ cyrus의 주석








교황 연대기(바다출판사, 2014년, 절판)는 비잔티움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남길영 번역가가 단독으로 번역한 책이 아니다. 임지연, 유혜인 번역가와 함께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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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0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리는 있는 것 같다만 작가의 말을 믿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난제다. ㅋ

cyrus 2024-06-04 06:47   좋아요 0 | URL
저자의 견해도 의심해 보면 좋죠. 저자의 견해 전부 다 옳을 수 없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