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완전한 존재들 -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텔모 피에바니 지음,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024년 4월
평점 :
평점
4점 ★★★★ A-
노자(老子)는 《도덕경》 41장에 속담을 인용하면서 도(道)를 설명한다.
“크게 모가 난 것은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지만,
오직 도만이 잘 돌봐주고 잘 이루게 할 수 있다.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 善貸且成.
(김원중 옮김, 《노자》, 글항아리, 2013년, 170~171쪽)
모서리 없는 네모, 들리지 않는 큰 소리(이 표현은 유치환의 시 『깃발』의 첫 구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연상시킨다), 형상은 있으나 형체가 없는 것. 이 모든 것은 현실에 없다. 노자의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지만, 이름과 형체가 없어서 신비스럽다.
《도덕경》 41장의 전체 문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네 글자가 ‘대기만성(大器晩成)’이다. 큰 그릇은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을 이르는 말이다. 《도덕경》은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도덕경》에 주석을 단 왕필(王弼)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라고 해석했다. 국내에 출간된 《도덕경》 대부분은 왕필의 주석을 참고한다. ‘비단에 적힌 《도덕경》’이라 해서 ‘백서본(帛書本)’으로 불리는 판본이 있다. 백서본에 ‘대기만성’은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에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표기되어 있다. ‘대기면성’은 대기만성과 다르게 비관적이다. ‘큰 그릇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큰 그릇이 되기는 어렵다’로 해석한다. 최진석 교수를 포함한 학자들은 ‘대기면성’이 ‘대기만성’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주장한다. 반면 김원중 교수는 ‘대기면성’과 ‘대기만성’ 모두 옳은 해석으로 여긴다. 그는 노자가 해석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면서 《도덕경》을 썼다고 주장한다.
좀 늦더라도 노력만 하면 큰 그릇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기만성’을 선호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는 도의 특성상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 큰 그릇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 없다. 《도덕경》 40장의 핵심은 ‘유생어무(有生於無)’다. 천하의 만물은 살아 있다(有生). 살아 ‘있음’의 시작은 ‘없음(無)’이다. 도는 영원히 순환한다. 노자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 했다(反者道之動, 《도덕경》 40장). 결국 살아 있는 것은 ‘없음’으로 되돌아간다. 큰 그릇을 빨리 만들어서 완성하든, 천천히 만들어서 완성하든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색깔이 사라지며 형태가 점점 변한다. 슬슬 금이 가기 시작하다가 언젠가는 깨진다. 그릇 색깔이 사라지면 다시 덧칠하면 된다. 깨진 그릇은 다시 붙이면 된다. 변형되고 파손된 그릇을 ‘땜질’하면 다시 살아난다. 《도덕경》 40장의 ‘유생어무’와 41장의 ‘대기면성’은 ‘완전한 형태의 도’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것은 겉으로 봐선 완벽해 보이지만, 실은 ‘불완전한 존재’다.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는 ‘유생어무’와 ‘대기면성’의 교훈을 과학의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와 함께 나무 위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두 발로 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은 인류 진화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지구상에서 완벽하게 진화한 종(種)으로 인식됐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착각에 빠진 인간은 조상들의 고향인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간다.
진화의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들은 진보를 진화의 동의어로 생각한다. 진보와 진화를 모두 경험한 인간은 스스로 완벽한 존재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진화는 인간이 계속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완벽함과 완전한 존재를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오류와 결점, 불안정성, 불완전한 존재는 발전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자 ‘개선’해해서 제거해야 할 문제로 취급한다. 한때 돌연변이는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괴물로 낙인찍혔다. 우생학자들은 ‘완벽한 인간’이 아닌 장애인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진화 과정과 자연사는 ‘완벽함’이라는 지점에 도달하는 탄탄대로가 아니다. ‘결함과 우연’이 마주치는 가시밭길이다. 갑작스럽게 변한 자연환경은 대멸종을 초래했다. 여기서 소수의 종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시밭길을 무사히 걸어갔다. 몇몇 동물은 생존을 위해 자기 신체 일부를 변형하거나 퇴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타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다리를 발달하는 대신에 날개를 포기했다. 원래 잡식성 동물인 판다는 대나무 줄기를 손에 쥔 채 먹기 위해 손목뼈를 ‘가짜 엄지’로 진화시켰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프랑수아 자콥(Francois Jacob)이 말한 대로, 진화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땜질하는’ 과정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단순히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진화하지 않는다. 오로지 잘 살고 싶어서 진화한다. 불완전한 결함을 받아들이고, 이를 수정한다. 오류와 결함은 진화의 원동력이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완벽함을 이루기 위한 노력만 강조하는 ‘대기만성’은 이제 더 이상 위로의 말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위로의 말은 ‘대기면성’이다. 《불완전한 존재들》에 나온 이 문장은 ‘대기면성’의 뜻을 담고 있다.
인류는 생명체의 정수라기보다 여전히 만들어지는 중이다.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다.
(223쪽)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큰 그릇을 만들고 싶다면 계속 만들어라. 완벽한 도(道)를 담은 그릇보다 볼품없어도 용도(用途, 쓸모) 있는 그릇이 더 좋다.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완성이 덜 된 그릇도 제 눈에는 만족스러워 보인다. 완성형 존재가 아닌 우리는 삶을 땜질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cyrus의 주석>
* 194쪽
인간의 남성은 여성이 임신할 준비가 된 순간을 감지하지 못한다. 개코원숭이, 맨드릴개코원숭이, 침팬지 그리고 보노보노[주]와는 확실히 다르다.
[주] ‘보노보’의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