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AC 아트 페스티벌은 대구 달서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지역민을 위한 예술 축제다. 이 축제에 총 6회의 공연 및 연주회가 편성되어 있다. 그중 다섯 번째로 순서로 진행되는 행사가 ‘달서 청년연극제’다.
8월 26일부터 3주간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7시에 청년 연극인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내가 보려는 공연은 내일 선보이는 ‘극단 폼(form)’의 『보이첵』(Woyzeck, 보이체크)다.
* 게오르크 뷔히너, 임호일 옮김 《보이체크 / 레옹스와 레나》 (지만지, 2019년)
* 게오르크 뷔히너 원작,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연출 《보이체크: 연습과 과정의 기록》 (올댓콘텐츠, 2011년)
* [절판] 게오르크 뷔히너, 최병준 옮김 《보이체크》 (예니, 2005년)
* 게오르크 뷔히너, 박종대 옮김 《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2020년)
* 임호일 《게오르크 뷔히너의 문학과 삶》 (지만지, 2021년)
《보이체크》는 독일의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 1813~1837)의 미완성 유작이다.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포함한 희곡 세 편(《당통의 죽음》과 《레옹스와 레나》), 단편소설 한 편(《렌츠》)만 남긴 채 23세로 요절했다. 걸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남긴 불멸의 고전들로 채워진 독일 문학사에 극작가 뷔히너가 있어야 할 자리는 좁아 보인다. 소설과 시는 책 좋아하는 독자들이 문학의 범주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친숙한 장르다. 문학의 한 장르인 희곡과도 친해지면 고전으로 불릴 만한 극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위대한 극작가를 만나게 된다. 《보이체크》는 지금까지도 여러 차례 공연된 고전 희곡이다. 뷔히너는 독일 문학사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극작가다.
뷔히너는 낭만주의 문학의 중심지인 독일에서 태어났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강조한 이성과 합리주의에 반발하여 생긴 사조이다. 그래서 낭만주의 문학은 감정과 상상력을 중시한다. 낭만주의자들이 ‘현실 너머’ 세계로 시선을 향하고 있을 때 뷔히너는 ‘현실 그 자체’만 바라보고 있었다. 뷔히너는 유복한 유산계급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뷔히너는 안락한 삶을 살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하층민을 억압하는 사회에 비판 의식을 가졌고, 정부와 지배 계급을 비판하는 팸플릿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 장 코르미에 《체 게바라 평전》 (실천문학사, 2005년)
* [절판] 체 게바라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황매, 2012년)
혁명가 기질을 드러낸 청년 뷔히너의 모습은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젊은 시절과 비슷하다. 체의 아버지는 병원 원장이었고 체는 의대를 졸업했다. 체는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여행하면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빈민들을 만난다. 오토바이 여행 이후로 체는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군복을 입어 혁명에 뛰어든다.
《보이체크》는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희곡이다. ‘보이체크’는 희곡의 주인공 이름이며 실존 인물이다. 보이체크는 자신과 교제한 과부를 죽여 처형당한 인물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다. 당시 의사들은 보이체크의 정신 상태를 관찰했는데, 그들이 남긴 보고서에 따르면 보이체크를 정신 이상자로 판단했다. 뷔히너는 이 보고서를 참고하면서 희곡을 썼다. 하지만 보이체크의 범행을 단순히 성격 결함에서 비롯된 끔찍한 일탈로만 보지 않는다. 뷔히너가 묘사한 보이체크는 인간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하층민을 상징한다.
보이체크는 대위의 이발사로 일하지만, 궁핍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대위는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비천한 보이체크를 깔본다. 보이체크의 연인 마리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일상에 권태감을 느끼고, 군악대장(‘고수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과 바람피운다. 보이체크는 돈을 더 벌려고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다. 그 일은 바로 의사의 황당한 실험 대상이 되는 것. 의사는 사람이 완두콩만 먹으면 당나귀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보이체크에게 완두콩만 먹인다. 보이체크는 완두콩을 먹은 대가로 매일 2그로셴을 받는다.
하층민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계급이다. 보이체크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아이러니한 비극을 겪는 인물이다. 보이체크는 자신을 가난하고 쓸모없는 비인간으로 취급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한다. 그의 분노는 마리에게만 향해 있다. 결국 살인을 저지르면서 분노를 표출한다. 보이체크는 살인자가 됨으로써 인간이길 스스로 거부한다.
《보이체크》는 일반적인 희곡과 확연히 다르다. 《보이체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기승전결의 서사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완성되지 않은 초고 형태라서 제목이 없는 2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출 지시문도 많지 않다. 《보이체크》에 27개의 글 파편과 ‘뷔히너의 여백’만 남아 있다. 연출가와 각색자는 새로운 대사를 추가해 ‘뷔히너의 여백’을 채울 수 있다. 배우는 뷔히너가 종이 위에 만들다 만 인물들을 무대 위에 올려 자신만의 연기력으로 빚어서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극단 폼’이 『보이첵』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