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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원더랜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과학으로 읽다
안세실 다가에프.아가타 리에뱅바쟁 지음, 김자연 옮김 / 애플북스 / 2023년 8월
평점 :
평점
4.5점 ★★★★☆ A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의 소설 ‘앨리스 시리즈(《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동물들은 독특하다. 그들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조연이다. 그래도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사는 존재답게 동물들의 외형과 행동이 범상치 않다. 양복 주머니 속에 있는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고, 굴이 있는 쪽으로 급하게 달려가는 토끼는 앨리스가 처음으로 만난 ‘이상한 동물’이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는 신출귀몰의 재주를 지녔다. 몸통만 사라지게 해서 미소 짓는 얼굴만 남게 할 수 있다. 동물들이 앨리스와 주고받으면서 나온 말장난 같은 대사는 독자들의 뇌리에 ‘콕!’ 박힌 명대사가 되었다. 버섯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물담배를 피우는 애벌레는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는 앨리스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냐?”
《사이언스 원더랜드》는 ‘동물학자의 주석이 달린 <앨리스>’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의 프랑스 출신 동물학자다. 두 사람은 앨리스 시리즈를 동물학, 생물학, 생태학으로 독해한다.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가 써서 유명해진 《주석 달린 앨리스》와 같다고 해서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사이언스 원더랜드》는 《주석 달린 앨리스》처럼 어마어마한 개수의 주석이 본문에 주렁주렁 달린 ‘벽돌 책’이 아니다. 《사이언스 원더랜드》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아는 친절한 책이다. 마틴 가드너의 책을 참고했지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았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마틴 가드너의 주석은 단 한 개뿐이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에 달린 주석은 독자가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 생물학 관련 용어의 의미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애벌레는 입이 없다. 따라서 입으로 숨 쉬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애벌레’는 입으로 물담배를 피운다! 공동 저자는 사소한 ‘옥에 티’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원래 직업이 과학자인 공동 저자는 앨리스 시리즈에 등장한 동물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분석한다. 고양이의 미소는 ‘이상한 나라’에서만 가능한 신체적 현상이 아니다. 고양이도 인간처럼 입술을 움직이고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고양이 미소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 고양이의 입술 가장자리는 털로 뒤덮여 있다. 고양이의 미묘한 미소는 고양이 집사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손과 팔이 달린 도도(Dodo) 새는 물에 젖은 동물들을 위해 달리기 경기와 유사한 ‘코커스 경주(Caucus Race)’를 제안한다. 도도 새는 코커스 경주에 참여하면 몸을 금방 마를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몇몇 동물은 달리지 않아도 된다. 가마우지는 물에 젖은 날개를 활짝 펴서 햇볕을 쬔다.
현실에 나올 법한 동물이 아닌 ‘환상 동물’ 또한 이 책을 쓴 저자들의 분석 대상이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오는 난해한 시 <재버워키>(Jabberwocky)에 수수께끼 같은 동물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저자들은 <재버워키>의 이상한 동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상한 동물들도 알고 보면 현실 속 동물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생겼다.
생태학은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요즘 생태학에서 가장 많이 강조하는 용어가 ‘생물 다양성’이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에 어떤 생물 종이 멸종되면, 그들과 협력하면서 지내온 다른 생물 종도 절멸 위기에 처한다. ‘가짜 거북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동물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기괴한 모습의 가짜 거북이는 실제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유행했던 ‘거북이 수프’와 관련이 있다. 거북이 수프가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거북이가 인간의 손에 희생당했다. 거북이 수프가 중산층들에게도 알려지자, 식용 거북이의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요리사들은 거북이 대신에 송아지 머리를 통째로 넣은 일명 ‘가짜 거북이 수프’를 선보였다. 지금은 거북이 수프를 즐겨 먹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환경 오염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거북의 서식지가 줄어들게 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거북 종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 굴들을 속여서 잡아먹은 바다코끼리는 소설 속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하지만 현실 속 바다코끼리는 북극곰과 같은 처지에 있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온도는 계속 높아지면 빙하가 녹는다. 빙하는 바다코끼리의 서식지다. 빙하가 많이 사라지면 바다코끼리가 다른 빙하로 이주하는 거리가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바다코끼리는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주를 포기하고 먹이가 전혀 없는 빙하에 계속 머무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이상해지면 지구도 이상해진다. 유럽의 여름은 예전보다 더 뜨겁다. 따뜻해진 바닷물은 지난주에 한반도를 지나간 태풍의 영향력을 높여줬다. ‘이상 기후’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해진 현실이다. 간간이 일어났던 이상 기후 현상은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상 기후’가 되어 버렸다. 이상해진 지구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그런데도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은 태평하게도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믿는다. 심지어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Oh my, curiouser and curiouser!(더더 이상해져, 더더 이상해진다고!) [주1]
[주1] “curiouser and curiouser!”
케이크를 먹고 몸집이 거대해진 앨리스가 한 말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장(Pool of Tears)의 첫 문장이다. 번역문 출처는 이소연이 옮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펭귄클래식코리아, 2010년) 120쪽이다.
<cyrus의 주석>
* 74쪽
1958년에 그림을 그린 머빈 피크[주2]는 새의 형태로 밴더스내치를 표현했는데, 이 새는 팀 버튼의 접접새와 상당히 닮았다.
[주2]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최용준 옮김, 2009년)는 머빈 피크(Mervyn Peake)의 삽화가 실린 번역본이다. ‘밴더스내치(Bandersnatch)’는 캐럴의 시 <재버워키>에 나오는 괴물이다. 머빈 피크는 <재버워커>가 언급된 《거울 나라의 앨리스》 삽화도 제작했는데, 열린책들 번역본에 수록되어 있다(169쪽 삽화 참조).
* 172쪽
찰스 다윈이 1859년에 발표한 『종의 기원』에서 설명한 것처럼, 작가 역시 공통된 조상을 가진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 사이의 연속성에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단정하기 어렵다. [주3]
[주3] 코커스 경주에 참여한 동물 중 원숭이가 있다. 캐럴은 『땅속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본)에 직접 원숭이를 그려 넣었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은 원숭이의 등장은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진화론을 둘러싼 대중의 반응을 반영했다는 것이 앨리스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캐럴이 진화론을 믿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마틴 가드너는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캐럴은 다윈의 든든한 지지자인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제자가 쓴 《종의 기원》을 읽었다. 그는 일기에 그 책을 ‘무엇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평했다. 캐럴은 자연선택만으로 세상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창조력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문헌: 마틴 가드너, 승영조 옮김, 《ALICE IN WONDERLAND: 『앨리스』 출간 150주년 기념 디럭스 에디션》, 꽃피는책, 2023년, 111~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