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는 여성이 헬레네(Helen), 안티고네(Antigone), 메데이아(Media) 등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가 다소 낮지만, 사실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도 앞의 세 사람 못지않게 우여곡절을 겪은 비극적인 인물이다.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2(도서출판 숲, 2021)

1권 『메데이아수록, 2권 『헬레『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수록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출판 숲, 2008)

안티고네』 수록


* 소포클레스, 김기영 옮김 오이디푸스 왕 외(을유문화사, 2011)

안티고네수록

 

* 소포클레스, 강대진 옮김 오이디푸스 왕(민음사, 2009)

안티고네수록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결성된 그리스 동맹군의 총지휘관이다. 그런데 아울리스 항구에 순풍이 불지 않아서 수많은 군함이 꼼짝하지 못한다. 예언자의 신탁에 따르면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Artemis) 신에게 제물로 바치면 순풍이 생길 수 있다. 아르테미스의 도움을 받은 이피게네이아는 죽음을 면하고, 타우로이족이 사는 타우리케라는 곳에 살게 된다. 그녀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일을 하는 사제가 된다. 제물은 표류 중에 타우리케에 당도하는 그리스인들이다. 타우리케에 있는 그들은 이방인이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이피게네이아가 타우리케에서 우연히 만난 동생 오레스테스(Orestes) 일행과 함께 극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을 그려낸 공연극이다


제물 바치는 신전에 이피게네이아와 하녀들이 함께 살고 있다. 하녀들은 포로로 잡혀 온 그리스인들이다. 하녀들은 합창하는 코로스(Chorus)극 초반부에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여기에 맞춰 코로스는 이피게네이아의 불운과 비관적 상황을 강조하는,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대의 노래에 화답하여, 여주인이시여,

나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

부를 것인즉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무사 여신들의 만가에서나 울려 퍼지고

하데스가 환희의 찬가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부르는 그런 노래예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179~185, 천병희 옮김, 296)



에우리피데스는 아시아풍 가락의 야만적인 노래(180행)를 죽은 자를 위해 부르는 만가(挽歌)와 같다고 묘사한다.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봐야 하겠지만, 그리스인들의 머릿속에 그려진 아시아(에 속한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와 다를 것이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으면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 나라 사람이 아니면 이방인으로 간주한다. 때론 이방인을 민주정과 평화를 중시하는 그리스적 정체성과 상반되는 야만적이면서 호전적인 존재로 취급한다.


타우리케의 포로가 된 그리스 여성들은 자신들 또한 억압받는 이방인이지만, 또 다른 이방인들의 나라인 아시아를 야만적인 나라로 보고 있다. 그리스인을 이방인과 거리를 두면서 그리스 문화 및 민족의 우수성을 은근슬쩍 드러내는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는 비극인데도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코로스의 노랫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자면, 타 국가로부터 억압받는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그들의 정체성 및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인종과 계급은 피해자 집단 내에 차별을 생산한다. 여성은 단순하지 않다. 여성은 살아가는 과정이 비슷하고, 공통된 차별을 경험하는 단일하고 매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이방인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 거기서부터 생긴 편견과 차별은 아주 질긴 생명력으로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자라나고 있다. 인종 혐오와 차별은 잘라내도 그 자리에 또 다른 머리가 생기는 신화 속 괴물 히드라(Hydra)와 같다.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문학> 여름 호러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김지현(아밀) 옮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현대문학, 2014)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정탄)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황금가지, 2009)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진영, 류지선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4(황금가지, 2012)




고대부터 존재해온 인종 차별’ 히드라는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소설 속에서도 살고 있다러브크래프트우주에서 온 미지의 존재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을 쓴 공포문학의 대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괴물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외형이 끔찍하다. 불쾌한 냄새까지 풍긴다그로테스크한 괴물들은 소설 속에서만 나타나는 가공의 존재다. 하지만 인종 차별히드라는 소설과 현실 속에 살고 있다.
















* 미셸 우엘벡, 이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러브크래프트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 그는 흑인과 유대인을 싫어했다. 자신의 몸속에 백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했고, 순수한 백인의 피에 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이라도 절대로 섞이면 안 된다고 믿었다러브크래프트의 극단적인 인종 혐오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을 비평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그가 쓴 소설 몇 편만 골라서 읽어 보면 인종차별적인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다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크툴루의 부름악마를 숭배하는 이누이트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정진영 옮김, 러브크래프트 전집 1148~149)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가로 활동하는 김지현은 자신이 번역한 크툴루의 부름차별적인 의미가 담긴 에스키모(날고기를 먹는 사람들)’가 아닌 이누이트로 썼다. 실제로 이누이트는 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익혀 먹는다. 


김지현 작가가 번역한 단편 선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레드훅의 공포는 수록되지 않았다. 레드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 팬과 러브크래프트 전문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최악의 작품이다레드훅의 공포에 눈이 째진 동양인들(정진영 번역, squinting Orientals)’이라는 표현이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교 집단을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춘다(정진영 번역,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라고 묘사했다.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비현실적인 괴물이 아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인종 차별괴물을 경계해야 한다. 이 녀석은 현실적인 괴물이다.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 괴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데도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대중의 침묵과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인종 차별괴물이 더 무섭다.






<cyrus의 주석>



* 크툴루의 부름중에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크툴루의 부름 외 12182

 

 바로 거기서 시드니 사임[주1]이나 앤서니 앤거롤라[주2] 같은 화가의 그림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 183쪽 역주


 Sidney Sime(1867~1941)[주1] 영국의 화가. 환상적이고 기괴한 장면을 많이 그렸다. 



[1] 시드니 사임의 출생 연도는 1865이다.


[2] 앤서니 앤거롤라(Anthony Angarola)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이다. 러브크래프트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흑인과 유대인 등 타 인종을 혐오한 순수 백인 앵글로색슨 혈통주의자인 러프크래프트가 이민자 출신 화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23-08-09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드훅의 공포 굉장히 매력적인 미스터리 스릴러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히 인종차별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지요..

cyrus 2023-08-12 07:52   좋아요 0 | URL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표현이 몇 개 나오지만,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인지하고 소설을 읽으면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