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가 쓴 소설들에 나오는 여성은 통통 튀고, 명랑하고, 발랄하다. 좋게 보면 타인의 시선과 간섭에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존재이다. 하지만 도덕과 규범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바라볼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지나치게 활발하고, 요조숙녀와 완전히 거리가 멀고, 남자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기도 한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방랑하는 여인》 (지만지, 2013)
콜레트가 창조한, 소위 ‘자기 욕망에 충실한 여성’은 작가 본인의 분신이다. 그래서 콜레트를 페미니스트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녀는 여성 참정권 운동을 반대했다. 콜레트는 결혼제도를 거부했으면서도 세 번이나 결혼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 가지고 콜레트를 비난할 수 없다. 콜레트는 불법 낙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썼다. 그녀는 작가로 유명해지기 전에 무언극 배우와 뮤직홀 댄서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콜레트는 소설 《방랑하는 여인》에서 화려한 무대에 가려진 가난한 배우와 댄서들의 삶과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방랑하는 여인》은 글쓰기를 중단하고, 생계를 위해 배우 일에 전념한 ‘무대 위의 콜레트’의 삶이 반영된 작품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일품이다.
* 앙투안 콩파뇽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 (뮤진트리, 2023)
어떤 작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매력에 끌려 호기심을 느끼는 감정 상태와 같다. 방금 전에 내가 콜레트를 좋아하는 작가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 콜레트는 다작 작가인데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콜레트의 삶을 조명한 평전도 없다. 마침 콜레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책 한 권이 나왔다. 그 책이 바로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이다.
새로운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가 곧 나온다는 출판사의 소식을 한 달 전에 접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새로 나올 책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함께하는 여름’ 시리즈(《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 《파스칼과 함께하는 여름》, 《몽테뉴와 함께하는 여름》)를 쓴 저자는 프랑스 출신의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이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저자의 이력을 정리한 항목이 있다. 항목 안에 콩파뇽이 쓴 저서 목록이 있다. 저서 목록을 훑어보다가 작년에 나온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Un été avec Colette)을 확인했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여명》 (문학동네, 2010)
* 소피 카르캥 《글 쓰는 딸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 (창비, 2021)
콜레트의 글에는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어머니 시도(Sido)의 삶과 성격도 스며들어 있다. 사물과 자연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콜레트의 성격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두 모녀의 애증 관계를 암시하는 콜레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여명》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콜레트의 소설이다. 소피 카르캥(Sophie Carquain)은 《글 쓰는 딸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와 그들의 어머니》에서 모녀 관계를 ‘시들어서 꽃이 진 자리에 새로 피어난 꽃’으로 표현한다. 시도는 딸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딸의 창작 활동만큼은 통제하지 않았다. 소피 카르캥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시도가 딸을 위해 제대로 활짝 피지 못한 ‘시든 꽃’이 되었다. ‘시도’라는 꽃이 지고 난 그 자리에 글 쓰는 ‘콜레트’라는 새로운 꽃이 피어났다. 콜레트는 한때 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작가 콜레트’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어머니를 사랑한다.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다 읽고 난 후 콜레트를 더 좋아졌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에 인용된 콜레트의 문장은 내 마음을 뜨겁게 했다.
글쓰기는 글쓰기로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겸허하게, 나는 또 글을 쓸 것이다. 나에게 다른 운명은 없다. 한데 글쓰기를 그만두는 때는 언제가 될까? 무엇이 그런 때를 예고해줄까? 손의 비틀거림일까? 예전에 나는 다른 일들처럼 이 일에도 글로 적힌 임무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 믿었다. 연장을 내려놓고, “끝났어!”하고 기쁘게 외치며 손뼉을 치면, 우리가 값진 것이라고 믿었던 모래알들이 손에서 비처럼 쏟아진다…. 그때 그 모래알들이 적는 형체에서, 우리는 이런 말들을 읽게 된다. “다음에 계속….”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 274~275쪽)
며칠 전에 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기둥이자 인기 알라디너 레샥매냐님에게 댓글로 이런 말을 했다. “글 쓰는 삶이 제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해도, 저는 죽을 때까지 책 읽고 글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일수록 끌린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는 콜레트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그는 콜레트를 이렇게 예찬했다. “이 세상에 유일한 질료의 작가, 우리는 그런 당신을 무척 사랑한다.”(269쪽) 나도 글 쓰는 콜레트를 무척 사랑한다.
※ cyrus의 주석
* 신유진 옮김 《가만히, 걷는다》(봄날의책, 2021)
《콜레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인용된 콜레트의 글 중에 <날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프랑스 작가들의 산문을 엮은 《가만히, 걷는다》에 콜레트의 글 두 편이 실려 있다. 그중 한 편이 <하루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