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도마이드(thalidomide)1957년 서독에서 개발된 수면제다. 이 약을 개발한 제약 회사 그뤼넨탈(Grünenthal)은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그뤼넨탈은 수면제를 투여한 흰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에서 치사량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에 흡족한 제약 회사는 인체에 해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산부인과학회에 참석한 어느 산부인과 의사는 수면제가 입덧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산부인과 의사들은 입덧이 심한 임신부에게 탈리도마이드를 처방했다.

 

제약 회사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해 탈리도마이드는 부작용이 없는 약으로 알려진 채 전 세계에 판매되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세계산부인과학회에서 처음 보고된 수면제의 또 다른 효과를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들은 회의적인 의심을 하지 않았고, 철저한 과학적 검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결국 제약 회사와 산부인과 의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수면제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산모에게서 팔다리가 짧거나 아예 없는 신생아들이 태어났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 일본 등에서도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겪은 신생아들이 태어난 사실이 알려졌다. 그뤼넨탈은 처음에 수면제의 부작용을 부인했으나 1961년에 판매 금지 및 수입 중단을 결정했다.

















* 막달레나 허기타이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직접 만나서 들은 여성 과학자들의 생생하고 특별한 도전 이야기(해나무, 2019)





유럽이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진통을 겪고 있을 때, 미국에서 단 17명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근무한 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Kathleen Oldham Kelsey)는 탈리도마이드가 임산부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시 대다수 의학자와 산부인과 의사는 태반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태반이 모체와 태아 사이에 있는 장벽이라고 생각했다. 장벽과 같은 태반은 모체로부터 오는 위험물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태반은 태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서 임산부는 의약품을 복용해도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켈시는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유행한 태반의 잘못된 통념을 반박하는 실험을 했다. 그녀는 태반이 모체와 태아 모두를 위한 영양분을 교환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험물질 역시 태반을 통과할 수 있다. 태반의 기능을 잘 알았던 켈시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의심했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의 안전성을 확실히 밝히기 위해 수면제를 수입 제조하는 미국 제약 회사에 임상 실험 결과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FDA의 일부 고위층 인사와 그들에게 로비를 펼친 제약 회사는 켈시를 압박했다. 그러나 켈시는 반복된 실험을 통한 검증을 중시하는 회의주의적 자세로 일관했고, 판매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이 공로로 J. K. 케네디(J. F. Kennedy)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은 약리학자인 켈시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 로얼드 호프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까치, 2018)




탈리도마이드 사건또는 그뤼넨탈 스캔들로 알려진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례는 과학자의 윤리적 및 사회적 책임을 강조할 때마다 반드시 언급되는 과학적 재난이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화학자 로얼드 호프만(Roald Hoffmann)은 화학의 양면성을 균형 있게 서술한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The Same and Not the Same, 1995)라는 책에서 탈리도마이드 사건의 경과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면서 분석한다. 탈리도마이드는 의약품이기 전에 화학 물질이다. 호프만은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과학 윤리가 명백하게 깨진 사례로 평가한다. 그는 또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이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정도로 검증을 소홀히 한 당시 엉터리 과학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된 신생아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에 뛰어든 과학자들에게도 커다란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호프만은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로 신약 개발에 필요한 창조성이 짓눌러버렸다고 지적한다.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여성과 과학 탐구》 (민음사, 2022)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쓴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은 여성을 몰이해한 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언급한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기점으로 태반은 장벽이라는 통념이 깨지기 시작했고, 과학자들은 태반의 실질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로얼드 호프만과 임소연처럼 대부분 과학 전문 저술가는 의약품의 부작용을 외면한 과학의 문제점을 강조하기 위해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예시로 든다이러한 서술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독자들은 탈리도마이드에 관한 또 다른 진실을 보지 못한다탈리도마이드가 FDA 승인을 거쳐 혈액암 치료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정진호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 질병과 맞서 싸워온 인류의 열망과 과학(푸른숲, 2017)


* 박종현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평범한 일상 변화하는 사회 속 유쾌한 과학(북적임, 2020)





탈리도마이드는 혈관 생성을 억제한다. 태아의 몸에 혈관이 생겨야 팔다리가 형성된다. 태아는 신체 부위가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혈관으로 공급받는다. 탈리도마이드에 노출되면 몸속에 혈관이 생기지 않게 되고, 신체 부위가 자라지 않는다암세포는 직접 혈관을 만들어 영양소를 흡수한다. 이러면 혈관 주변에 암 덩어리가 생긴다. 탈리도마이드는 혈관 생성을 막을 뿐만 아니라 암세포 활동까지도 억제한다.


브라질에서는 탈리도마이드가 한센병(나병)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로 인해 브라질에서도 팔다리 없는 신생아가 태어나는 부작용 사례가 보고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탈리도마이드를 한센병 치료제로 쓰는 남미와 아프리카에 약품의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임산부에게 처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남성에게 피임을 권장하기도 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에 대한 분석과 한때 금지 약물이었던 탈리도마이드가 한센병과 암 치료제로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설명한 저자의 책이 많지 않다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이 두 권의 책을 쓴 저자는 탈리도마이드의 새로운 효과를 언급했다. 찾아보면 더 나올 수 있다.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의 저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을 응용해서 새로 개발된 항암제 레날리도마이드(lenalidomide)를 소개한다. 레날리도마이드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사용된다. 저자는 레날리도마이드가 다른 약과 같이 먹으면 다발성 골수종 치료 성공률이 올라간다고 주장한다(195). 사실 레날리도마이드도 부작용의 위험성이 크다. 당연히 임산부에게 처방하면 안 된다. 게다가 레날리도마이드를 적혈구 조혈(적혈구를 만들어내는 것) 촉진제나 심장약을 함께 투여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주]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래, 문제 있다! 독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지 않은 채 과학을 너무 쉽게 쓰면 안 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저자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과학적 검증이 좀 더 필요해 보이는 실험 결과나 유사 과학을 확실한 정보인 것처럼 전달하는 블로거와 다를 바가 없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다룬 글에 또 하나의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 팔다리 없는 신생아의 몸을 찍은 사진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로얼드 호프만은 자신의 책에 사진 대신에 팔다리 없는 아기가 그려진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의 그림을 실었다팔다리 없는 사람은 장애인이다. 비장애인 저자는 팔다리 없는 아기를 피해자의 틀에 가둬 놓는다. 여기에 기형아라는 단어를 여러 번 붙인다. 장애인의 몸은 의약품의 부작용이 낳은 사건의 심각성과 부실한 과학의 문제점을 거론할 때마다 책과 인터넷에서 전시된다(인터넷에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로 검색하면 관련 사진이 나온다). 장애인 사진을 동원하면서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설명하는 글쓰기 방식 속에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남아 있다. 장애인은 건강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은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이런 편견은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글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러면서 그 글을 읽는 독자의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부실한 과학이 초래한 최악의 사례로만 언급되어야 하는 주제가 아니다. 여기에 과학적 회의주의(프랜시스 켈시)과학자의 사회적 책임(로얼드 호프만), 여성을 몰이해한 과학 비판하기(임소연), 동물권(탈리도마이드 개발을 위해 실험실에서 죽어간 흰쥐는 몇 마리일까?), 장애학(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해 태어난 장애인은 정말 불행한가? 그들이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낙태시켜야 하는가?) 등과 관련된 주제가 섞여 있다.





 

[] 네이버 <약학 용어 사전> 레날리도마이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817200&cid=59913&categoryId=5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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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2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탈리도마이드 사건 ebs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동물실험이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들로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부모에게 아이들을 빼앗아 치료한다는 목적으로 강제수용당하기도 했더라고요. 이렇게 언급된 책들 소개에 연관된 주제들까지! 참 좋습니다 *^^*

cyrus 2022-07-24 15:47   좋아요 1 | URL
탈리도마이드 사건은 ‘장님들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보기 쉬운 사례입니다. 예전에 저는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만 알고 있었고, 이 약이 암 치료제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

윤희권 2023-07-2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윤희권 2023-07-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녀 화학도서 찾아보다 읽게되었습니다.

윤희권 2023-07-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