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최초의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지만 미술을 좋아하거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내가 던진 질문을 흥미롭게 여길 것이다. 아니면 나만 흥미로운 것일 수도.
* 아당 비로, 카린 두플리츠키 《미술관에 가기 전에: 미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 (미술문화, 2022)
《미술관에 가기 전에》라는 책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의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이 ‘작업 중인 노동자들을 그린 최초의 그림 중 하나(218쪽)’라고 주장한다.
세 명의 남자는 상의를 벗은 채 대패로 바닥 마루를 깎고 있다. 그들은 바닥에 깐 송판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엎드려서 대패질하는 중이다. 카유보트는 이 그림을 1875년 살롱전에 출품했다. 살롱전 심사위원들은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사실주의’에 충격받았다. 손에 먼지를 묻어가면서 일해본 적이 없는 부르주아 계층의 관람객들은 가난한 노동자를 묘사한 그림에 거부감을 느꼈다. 결국 카유보트의 작품은 낙선되었다. 카유보트는 이듬해에 열린 제2회 인상주의 전에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을 출품했다.
사실 카유보트보다 먼저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화가가 있다. 그 화가는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다. 쿠르베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지만, 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했다. 다만 쿠르베가 친하게 지내지 않은 인상주의 화가가 있었다. 그 사람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다. 드가는 사실주의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쿠르베에게 사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쿠르베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천사를 보여 주면 당장 그리겠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화가들이 선호한 주제를 답습하는 기성 화가들이 신과 천사를 그리고 있을 때, 쿠르베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지금 쿠르베의 대표작 『돌 깨는 사람들』을 보면, 딱히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이 세상에 나왔던 1849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돌 깨는 사람들』은 고상하고 관념적인 미적 취향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굳어버린 대중의 눈과 정신을 깨뜨렸다.
* 재원 편집부 엮음 《쿠르베》 (재원, 2004)
* 오광수 엮음 《쿠르베》 (서문당, 1994)
* 린다 노클린 《리얼리즘》 (미진사, 1997)
살롱전 심사위원과 관람객들은 늘 행복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나는 그림을 선호했다. 좋은 것만 보여주는 그림이야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가들은 이런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귀족들의 일상이나 신과 천사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그린 『돌 깨는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아서 화가의 미숙한 솜씨가 드러낸 그림이라고 비난받았다. 쿠르베는 직접 개인전을 열어 『돌 깨는 사람들』을 포함한 작품들을 공개했다. 그는 전시회 카탈로그도 작성했는데 여기에 ‘사실주의(réalisme)’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하여 『돌 깨는 사람들』은 사실주의 미술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품절]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곰, 2014)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 (아트북스, 2005)
* 재원 편집부 엮음 《장 프랑수아 밀레》 (재원, 2003)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 (창해, 2000)
* 오광수 엮음 《밀레》 (서문당, 1990)
쿠르베와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다. 우리나라에서 밀레의 그림들은 ‘이발소 그림’으로 취급받는다. 이렇다 보니 밀레의 작품들은 시골의 낭만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밀레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진실하게 표현한 사실주의 화가다. 밀레의 작품 속에 묘사된 농민들의 일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는 농촌 여성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밀레는 그런 반응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일하는 농민들을 그리지 않았다. 『이삭줍기』에서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선 안 된다. 그림으로 남은 농촌 여성의 노동을 발견해야 한다. 가난한 농민들은 농장주의 밭에서 일했다. 수확량이 많아도 농민들은 궁핍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림 속 여성은 농장주의 밭에서 추수하고 남은 밀 이삭을 줍고 있다. 하지만 밀 이삭을 원하는 대로 주울 수 없다. 그림의 후경에 조그맣게 그려진 말을 탄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밭을 관리하는 감독관이다. 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여인들은 허리를 숙이면서 이삭을 줍고 있다.
지난달에 쓴 《미술관에 가기 전에》 서평에 언급했듯이 ‘일하는 노동자’의 범주를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과 『돌 깨는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최초의 그림이 아니다. 두 작품에 도구를 사용하면서 일하는 남성이 등장한다. 『이삭줍기』 이전에 일하는 여자를 그린 그림이 없었을까? 집안일도 노동이다. 나는 《미술관에 가기 전에》 서평에 부엌에 일하는 하녀를 그린 프랑스의 화가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을 거론했다. 그런데 최근에 내 견해를 뒤집은 그림들을 만났다.
* [품절] 베아트리스 퐁타넬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015)
내가 잘 몰랐던 일하는 여자의 그림을 만나게 해준 책이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다. 책의 목차는 침실, 난방, 부엌, 창문 등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인테리어’를 지우고 ‘살림하는 여자들’로 고치고 싶다.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쓴 저자 베아트리스 퐁타넬(Beatrice Fontanel)은 주부이자 시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살림하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 여성들이 인테리어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부엌’ 편에 제일 먼저 나오는 그림이 『성모 탄생』이다. 세폭 제단화인 『성모 탄생』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오세르반자의 대가(Master of the Osservanza)’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화가는 15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이 제단화의 오른쪽 부분에 부엌에서 일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사람은 쭈그려 앉아서 아궁이에 올려놓은 냄비 뚜껑을 덮고 있다. 중세 시대에 음식을 불로 익히는 일은 여성에게 극도로 힘든 일이었다. 동굴과 같은 아궁이에서 나오는 불의 열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여성들은 아궁이 근처에서 음식을 익히거나 데우다가 화상을 입었다. 요리하다가 화상을 입는 사고는 출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여성의 사망 원인이었다.
과거의 부엌은 하녀만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하녀는 고용주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고,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처리했고, 접시와 그릇을 설거지했다. 평생 부엌에 살다시피 하면서 가사 노동을 도맡은 하녀들은 ‘더러운 처녀’로 여겨졌다. 부유한 여주인은 ‘더러운’ 부엌에 들어오지 않았다. 실제로 과거의 부엌에 악취가 진동했으며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 유행한 회화의 주제 중 하나가 빗질하는 여성이다. 이 당시 네덜란드는 청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청결은 미덕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청소 역시 하찮고 힘든 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청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청소를 잘하는 여성은 성품이 훌륭한 살림꾼으로 인정받았다. 집안일을 청소하는 일은 여성의 자질과 도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여성은 무조건 청결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사회에 더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을 것이다. 여성에게 청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몸 깊은 곳까지 확장된다. 몸에 불결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여성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청결은 여성을 옥죄게 만든다.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그린 그림을 찾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나온 그림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던 적이 있었을까? 이런 전시회가 정말로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일이 버겁다. 제대로 하려면 동양 미술 쪽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서양 미술 편력이 심한 나로서는 무척 힘든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