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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평점 :
평점
3.5점 ★★★☆ B+
‘체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다. 외국 문학에 대한 관심의 범위가 넓은 독자라면 체코를 대표하는 또 다른 작가로 카렐 차페크(Karel Capek)를 언급할 것이다. 체코의 유명한 음악가는 드보르자크(Dvořák)와 스메타나(Smetana)다. 그렇다면 체코의 유명한 화가는 누굴까? 동화 작가로도 활동한 삽화가 요제프 라다(Josef Lada)는 체코인이 사랑하는 화가이지만,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카렐 차페크의 형 요제프 차페크는 화가 겸 삽화가다. 요제프는 카렐의 책에 실린 삽화를 그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면서도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체코의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다.
그동안 무하는 화가 또는 예술가가 아닌 ‘장식 미술가’, ‘포스터 제작자’로 알려졌다. 그는 프랑스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가 출연한 연극들의 포스터를 제작해 유명해졌다. 파리의 대중은 우아한 모습으로 포스터에 그려진 인기 배우에 열광했다. 무하가 묘사한 여성은 고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여기에 간결한 곡선과 화려한 무늬를 더해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무하의 장식 디자인은 19세기 말 파리에서 유행한 예술 양식인 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에 힘입어 큰 인기를 끌었다. 사실 무하가 아르누보 운동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하의 장식 예술은 아르누보 양식의 흔한 소재 중 하나인 구불구불한 덩굴처럼 뻗어 나가 장신구와 실내 장식품에까지 확장되었다. 하지만 아르누보 열풍이 식으면서 무하의 장식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줄어들었고, 그의 작품들은 순수 미술을 선호하는 미술사가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포스터가 워낙 유명해서 무하는 당대의 유행을 잘 따른 장식 예술가나 디자이너로만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그가 ‘장식 미술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로 활동했고, 말년에 고국으로 돌아와 역사화를 제작한 사실은 주목받지 못했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은 우리에게 익숙한 장식 예술가로서의 무하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박물관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예술을 일상으로 스며들게 만든 ‘화가’ 무하의 재능에 주목한다. 세기말의 유럽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예술 그 자체를 최우선의 가치로 보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했다. 그렇지만 무하는 ‘사람을 위한 예술’을 추구했으며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그림과 디자인을 제작했다.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대중, 특히 무하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그의 그림에 한 눈에 반하는 순간 좋아하게 된다. 이미 무하의 그림을 좋아하고 있었던 마니아들은 무하가 널리 알려진 추세에 기분이 좋아서 ‘무하호!(Mucha+좋을 호 ‘好’)’를 외치고 싶을 것이다. 무하는 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고국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체코로 돌아온 그는 계속 창착열을 발산했으며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슬라브 서사시』 제작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다.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은 2012년에 출간된 《무하: 세기말의 보헤미안》의 개정판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17년에 《매혹적인 선으로 세상을 사로잡은 알폰스 무하》라는 책을 펴냈는데 직접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책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개정판답지 않게 오류와 어색한 문장이 있다. 책의 주제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저자가 구판의 문장을 손보지 않고, 책 제목과 표지만 바꾼 채 그대로 출판했다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 55쪽
그는 파리에 와서야 비로소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베를렌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1886년 장 모레아(Jean Moréas)가 발표한 상징주의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나비파(Les Nabis, ‘형제애’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를 형성한 보나르(Pierre Bonnard), 드니(Maurice Denis), 랑송(Pail Ranson)과 같은 젊은 화가들과의 교류는 신비주의적이며, 비의적인 관심을 고조시켜, 원래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무하의 작품에 고스란히 영향을 주게 된다.
‘장 모레아가 발표한 상징주의’를 ‘장 모레아스가 발표한 『상징주의 선언』’이라고 써야 한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모레아스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Le Symbolisme)』을 <피가로>에 기고하면서 상징주의의 예술적 정의를 처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나비파’의 ‘나비(Nabi)’는 ‘예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다. ‘Pail’은 ‘Paul(폴)’의 오자다.
* 172쪽
무하의 보석 디자인은 간소하고 기능적이기보다는 복잡하고 화려하고 이국적이다. 그는 보석 디자인은 보석 자체의 세공보다는 상아나 색깔이 있는 보석과 돌, 에나멜, 혹은 직접 그린 그림 등의 다양한 재료를 금테에 둘러 좀 더 복잡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데 주목했다. 그것은 새로운 보석 디자인의 개념이었다.
‘보석 디자인은’이라는 표현을 삭제해야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 294쪽
1866년 장 모레아의 상징주의 선언 이후 젊은 세대들은 말라르메와 보들레르, 베를렌과 빌리에 드 릴아당의 시에 열광했고 다들 집단 신경증에라도 걸린 것처럼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에 빠져들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징주의 선언』이 발표된 해는 1886년이다.
* 319쪽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동백꽃 부인》의 마르그리트는 퇴폐를 상징하는 자유분방한 미인이었고 [중략]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를 쓴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도 작가다. ‘동백(꽃) 아가씨’로 번역되기도 하는 《춘희》를 썼는데, 아버지와 아들 모두 이름이 같다. 그래서 아버지 뒤마를 ‘뒤마 페레(Alexandre Dumas père)’ 또는 ‘대(大) 뒤마’로, 아들 뒤마를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또는 ‘소(小) 뒤마’로 표기한다. ‘대 뒤마’와 ‘소 뒤마’는 일본식 표기다. ‘춘희’는 원작의 일본어 제목이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삼총사》의 작가를 ‘알렉상드르 뒤마’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춘희》의 작가 이름을 ‘뒤마 피스’라고 표기해야 한다. 그리고 《춘희》의 우리말 제목은 ‘동백꽃 부인’이 아니라 ‘동백꽃 아가씨’다. 파리 사교계에 ‘동백꽃 아가씨’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마르그리트는 자신을 후원하는 귀족들을 애인으로 만났을 뿐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