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은 외모만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을 악착스럽게 확인하기 위한 그림이다. 자화상을 그리려는 화가는 거울로 자신의 외모를 보고, 거울에 드러나지 않은 자기 내면을 살핀다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는 행위는 구체적인 삶의 이력과 솔직한 욕망을 발견하는 일이다


화가는 자기 내면에 있는 욕망과 자의식을 캔버스에 표출한다. 동시대인들이 알려고 하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화상은 한 인간이 살아온 과정을 집약한 역사책이다. 관람자는 자화상에 남은 화가가 살아온 자취를 읽는다. 그리고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거울이 된다관람자는 자화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거울아, 거울아. 너는 누구니?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까?”

 



















* 유성애 철학자의 거울: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미진사, 2021)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거울을 든 철학자 그림을 그렸다. 철학자의 거울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철학자 그림 속에 반영된 화가들의 관심사를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바로크 화가들이 철학자를 그린 이유를 살펴보면서 남성 철학자그림이 많은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천국과 지옥을 상상하면서 그린 남성 화가들은 왜 여성 철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철학자 그림에 묘사된 여성은 철학을 이해 못 하는 존재, 또는 철학자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유혹자다남성 화가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전통을 답습했다.
















* [절판]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여성과 미술: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아트북스, 2006)




페미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남성상은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거울을 든 남자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 이미지와 부합한다. 주디 시카고와 함께 여성과 미술》(Women and Art: Contested Territory, 1999)을 집필한 미술평론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알몸으로 거울 앞에 앉아 화장에 열중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남성 중심적 시선이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남성 화가가 묘사한 거울을 보는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는 데 열중한다. 특히 거울을 보는 늙은 여성은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에 집착하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아트북스, 2017)




하지만 여성 화가들은 남성 화가들의 낡은 전통을 답습하지 않았다. 여성 화가들은 독창적인 자화상을 그려왔다. 여성과 미술에 언급된 프랜시스 보르젤로(Frances Borzello)<우리 자신을 바라보다: 여성의 자화상>(Seeing Ourselves: Women’s Self-Portraits, 1998)은 주목받지 못한 여성 미술가들의 자화상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김정희, 권지현, 이도, W.살롱 커뮤니티 참여자들 W.살롱 에디션 Vol. 4: WANT_욕망하고 있네》 (tampress, 2021)


평점

4.5점   ★★★★☆   A




* 김정희, 권지현, 이도, W.살롱 커뮤니티 참여자들 W.살롱 에디션 Vol. 1: 밥_신화를 걷어내다》 (tampress, 2020)



※ 《W.살롱 에디션 Vol. 1: 밥_신화를 걷어내다서평

https://blog.aladin.co.kr/haesung/12413249





지난달에 대구의 출판 스튜디오 ‘tampress’에서 발간된 W.살롱 에디션 Vol. 4: WANT_욕망하고 있네글로 쓴 자화상이다이 책을 만들고 편집한 김정희 작가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를 향한 야망과 욕망을 꺼냈다고 말한다작가의 야망과 욕망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요,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 W.살롱 에디션 Vol. 4집필에 참여한 글쓴이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탐색한다그러면서 여성이라는 명사에 타인이 부여한 욕망의 의미를 해체하고 거부한다. 특히 권지현 작가는 여성의 욕망이 성적 욕망으로 귀결되는 인식을 비판한다이도 작가는 단편 소설 결국 하지 못한 말에서 ’,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중년 주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주부는 여성의 야망과 욕망을 일탈로 바라보던 구시대가 만든 슬픈 자화상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주부의 딸은 욕망을 숨긴 어머니의 슬픈 자화상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잘 아는 진짜 자화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나선다.


주디 시카고는 여성 미술가들의 그림이 생명줄과 같았다고 말했다.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은 주디 시카고에게 여성도 미술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여성 미술가의 그림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의 욕망을 발견했다. W.살롱 에디션 Vol. 4에 실린 글(이 된 자화상)은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욕망을 분출하고 싶은 여성을 위한 거울이자 생명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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