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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거울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2021년 2월
평점 :
평점
4.5점 ★★★★☆ A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1912년에 발표한 책 ‘The problems of philosophy’는 국내에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의 정의를 살펴보게 만드는 기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러셀을 포함한 철학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철학의 정의를 밝혔다.
《철학자의 거울》은 ‘철학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또는 부제)을 붙여도 되는 책이다. 철학자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철학자의 정의를 떠올리지 못한다. 《철학자의 거울》을 쓴 저자 유성애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15년 전부터 예술과 관련된 공부를 해오고 있다. ‘철학자는 누구인가’는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던 철학자들도 하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17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이었다.
17세기는 바로크(baroque) 시대다. 이 시기에 활동한 화가들은 ‘거지 철학자(beggar philosopher)’ 그림을 즐겨 그렸다. ‘거지 철학자’로 가장 많이 묘사된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다.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학파(Cynics, 견유학파)에 속한 철학자다. 그는 떠돌이 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했으며 나무통 속에 살았다. 디오게네스의 동시대인들은 그를 ‘괴팍한 거지’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오게네스는 세습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상으로 주목받는다. 그림 속 철학자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왔던 존재이다. 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철학자를 존경했으며 그들처럼 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화가에게 자신의 소망이 반영된 그림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했다. 화가는 주문자가 바라는 대로 철학자의 초상화 또는 철학자 옆에 있는 주문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철학자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화가들도 있다. 자화상에 자신의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화가의 개인적인 소망이 투영되어 있지만, 실제로 몇몇 화가는 인문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화가는 철학자가 되지 못해도 철학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17세기 화가들이 그린 철학자는 누군가에게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직업인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반성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림 속 철학자의 모습은 후줄근하다.
《철학자의 거울》은 독자에게 철학적인 모험을 부추긴다. 그 모험은 평생 치러야 할 조용한 전투와 같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외부 세계와 맞서 싸워야 하고,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모험기’라고 했다. 그는 질문이 철학자의 무기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철학자 그림을 거울로 삼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게 바로 ‘문행일치(文行一致)’다.
※ Mini 미주알고주알
* 250쪽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와 세 우아미[주]가 함께하고 있다. 아글라이아(Aglaea),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탈리아(Thalia)다.
[주]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는 비너스(Venus)의 시중을 드는 우미(優美)의 여신들이다. 이 세 사람을 가리켜 ‘카리테스(Charites)’ 또는 ‘삼미신(The Three Graces)’이라고 부른다.
* 260쪽
신체 차이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절대적 척도일까? 리베라의 작품 속 인물은 남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벗겨진 이마, 검고 긴 수염으로 덮인 얼굴은 영락없는 남자다. 하지만 수염 아래로 여성의 젖가슴이 드러나 있다. 반인반마(伴人半馬), 켄타우로스[주]를 보는 듯하다.
[주] 그리스 신화에서 양성(兩性, 남녀추니)을 상징하는 인물은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다. 그리스 신화에 남성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으로 이루어진 켄타우로스(Centaur)가 많이 등장하지만, 여성 반인반마도 있다. 이들을 켄타우리데스(Centaurides)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