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는 예전에 가본 장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처음 가본 것처럼 헤맨다. 길치는 다른 사람들보다 공간 감각이 둔하다. 타고난 길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대다수 사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 마이클 본드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인간은 어떻게 미지의 세상을 탐색하고 방랑하는가(어크로스, 2020)



평점

4점  ★★★★  A-





진화생물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인류보다 세계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정착할 수 있었던 비결을 길 찾기 능력이라고 주장한다. 화석 증거에 따르면, 13만 년 전 인류의 선조들은 24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이동했다. 그들의 길 찾기 능력은 인류의 진화를 촉진했다. 고대 인류는 동료와 함께 식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좋은 지역을 찾으러 이동했다. 동료는 든든한 사냥 지원군이자 여정을 달래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동료와 같이 지내면서 생긴 사회성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길 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은 우리를 미처 알지 못한 길 찾기 능력과 탐험가 본능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본드(Michael Bond)는 우리가 고대 인류의 길 찾기 능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다고 주장한다. 동물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우리의 뇌 속에 혼자서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활성화해주는 세포들이 있다. 그러나 현대 인류는 인터넷 지도와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정보에 의존해 길을 찾는다. 이러면 경로를 예측하고, 한 번 가본 장소를 기억하는 뇌의 활동량이 줄어들면 길 찾기 능력도 떨어진다.

















* 루이스 다트넬 오리진: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흐름출판, 2020)



평점

4점  ★★★★  A-





부모는 길 찾기에 능숙한데 자식이 길치인 경우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길치가 된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에 새겨진 길 찾기 능력을 물려받지 못한 것일까. 이런 사례만 가지고 인류의 길 찾기 능력에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인류의 진화를 촉발하는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출신의 과학 커뮤니케이터 루이스 다트넬(Lewis Dartnell)은 인류의 기원을 추적한 자신의 책 오리진에서 우리가 지능이 뛰어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게 만든 원동력을 유전자가 아닌 지구에서 찾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활발한 지질학적 힘이 지형과 기후에 큰 변화를 주었고, 동아프리카에 살았던 고대 인류는 더 좋은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루이스 다트넬은 인류의 기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대한 판 형태의 대륙을 갈라지게 만들고, 빙기와 간빙기를 수십 차례 반복해서 발생시킨 지구의 힘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인류의 선조는 건조 기후와 혹한기를 피해 지구 이곳저곳 떠돌았을 것이다. 집단적 시행착오는 인류의 사회성과 길 찾기 능력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 에드워드 O. 윌슨 창의성의 기원: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사이언스북스, 2020)



평점

2.5점  ★★☆  B-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 Wilson)의 견해를 수용하기 힘들어진다. 그는 창의성의 기원에서 100만 년 전 인류의 야영지에서 인문학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고대 인류는 야영지에 모닥불을 피워 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혹자는 인류가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마다 대화를 자주 했고, 이 분위기에 익숙해진 인류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주가 일상이 된 고대 인류의 삶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이동하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끌리는 본능과 인문학이 야영지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진화론적 관점은 가설로 이해해야 한다.



















*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



평점

4.5점  ★★★★☆  A




우리는 길 찾기와 모험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하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은 조부모와 부모 세대보다 야외에서 노는 일이 줄어들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대유행은 밖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날개를 펴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식이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노는 게 더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면, 사회성이 떨어지고 길 찾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선택권이 사라진다. 결국 그 아이들은 TV와 컴퓨터, 스마트폰과 같은 기계에 매달리면서 논다.


부모의 눈에는 어른을 잘 따르고, 집에서 얌전하게 지내는 자식이 착한 아이로 보인다. 그러나 에세이집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독서교육 전문가 김소영은 아이들에게 착하다고 하는 어른들의 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착한 어린이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이를 어기면 착한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걸 놓치고 싶지 않은 어린이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쓴다. 착한 어린이는 밖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봐 외출을 포기하고 집에서 생활한다


밖에 나가 놀지 않고, 부모의 보호 속에서 자란 소녀는 정숙한 여성’이 된. 이 여자가 길치라면, “여자는 남자보다 길 찾기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길치인 여자가 많은 이유를 성차(性差)의 문제로만 봐선 안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탐험가 기질이 있다. 자식이 집에서만 지내기를 선호하는 부모의 태도가 그녀를 길치로 만든 게 아닐까타고난 길치는 없다길을 헤매도 좋다마음껏 돌아다니는 길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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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1-02-27 10:48   좋아요 0 | URL
윌슨의 책 중에 얇은 분량의 책이 있어요. 그런 책은 에세이집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이 어렵지 않아요. ^^

감은빛 2021-02-2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전적으로 물려받았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유난히 방향 감각이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누구라도 열심히 돌아다니다보면 점점 그 능력이 좋아지겠지요.

마지막 책 소개 부분을 읽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요즘 점점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어서,
한 마디 말도 조심스럽게, 어떻게 더 재밌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어요.

cyrus 2021-02-27 10:52   좋아요 1 | URL
타고난 능력을 유지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둔화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은 유전자에서 나오는 능력’을 회의적으로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