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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기술 - 명화의 구조를 읽는 법
아키타 마사코 지음, 이연식 옮김 / 까치 / 2020년 9월
평점 :
평점
4점 ★★★★ A-
몇 년 전에 서울에서 열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빈센트는 유화물감을 찍어 바르듯이 그렸다. 빈센트의 그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거친 붓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딱지가 돼버린 붓질의 흔적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림은 눈으로 봐야 한다. 손에 묻은 이물질이 캔버스에 칠해진 유화물감을 변색시키거나 갈라지게 만들 수 있다.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그림을 감상하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도판 형태의 그림이라면 만질 수 있다. 손가락으로 선을 그어가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다.
《그림을 보는 기술》을 쓴 미술사 연구가 아키타 마사코(秋田麻早子)는 2009년부터 그림 보는 방법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회화를 감상하는 행위를 ‘시각 정보를 언어 정보로 교환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으로 이해한다(저자 후기, 333쪽). 저자의 말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기 위해 진부한 표현을 쓰자면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눈으로 읽는 것’이다.
저자는 그림과 관련된 배경지식과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지 않아도 그림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제시한 ‘그림 보는 방법’은 정말 간단하다. 그림을 관찰하면 된다. 그림을 관찰하는 일은 보는 행위와 다르다. 그림을 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틀, 즉 스킴(scheme)이 있어야 그림을 관찰할 수 있다. 스킴을 확인하지 않고 그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계속 봐도 그림 속에 숨은 화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림을 능동적으로 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큐레이터의 친절한 설명이나 인터넷에 있는 회화 관련 정보에 의존한다. 《그림을 보는 기술》은 자신만의 시선과 감각을 동원해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이 책에 소개된 스킴은 다음과 같다. 초점, 그림을 볼 때 움직이는 눈의 경로, 균형, 색, 구도와 비례이다. 초점은 그림을 보는 출발 지점이다. 저자는 초점을 ‘그림의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화가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봐주기를 바라는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그림 보는 사람은 그림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는 경로는 선의 형태로 나오는데, 이를 “리딩 라인(leading line)”이라고 한다. 리딩 라인은 그림의 초점으로 유도하게 만드는 선이다. 저자는 눈으로 차분하게 그림을 바라보면 다양한 형태(직선, 사선, 원, 곡선 등)의 리딩 라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리딩 라인을 찾는 일이 서투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분을 위해 내가 생각해낸 그림 감상법을 알려주려고 한다. 손가락을 이용하자. 도판 형태의 그림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려가면서 보면 리딩 라인을 찾을 수 있다.
‘구조선’은 그림을 균형 있게 보이게 만드는 가상의 선이 있다. 구조선은 그림의 척추에 해당한다. 색상(색의 종류), 채도(색의 선명도), 명도(색의 밝기)도 그림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스킴이다. 그러나 그림의 색을 분석할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그림의 색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색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봐야 한다. 그림의 구도와 비례는 그림 속에 묘사된 인물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스킴이다.
이 책의 저자는 ‘회의적인 자세’로 그림을 감상한다. 그전까지 수많은 회화 전문가들이 그림 감상법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많이 알려진 것은 색에 부여된 의미를 분석하는 색채심리학적 감상법과 황금비다. 저자는 이 두 가지 감상법의 한계를 지적한다. 앞서 저자는 그림의 색을 감상할 때 변색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색채심리학자들의 해석을 따르면서 색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그동안 황금비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가들이 좋아하는 수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황금비에 지나치게 매료된 학자들은 정확한 황금비(1.618 : 1)를 회화에 적용하기 위해 임의로 조작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아키타 마사코의 ‘그림 보는 기술’은 모든 회화를 감상할 때 적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저자의 그림 감상법은 비례와 구도를 중요하게 여긴 시대(르네상스 시대, 17~18세기)에 나온 회화나 전통적인 기법의 영향이 조금 남아 있는 근현대 회화에만 적용할 수 있다. 저자가 《그림을 보는 기술》의 후속작을 구상하고 있다면,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현대 회화―현대 미술이 ‘그림’이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선지 오래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감상법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 Mini 미주알고주알
1
* 83, 337쪽(참고 문헌)
[주] 루돌프 아른하임(Rudolf Arnheim)은 미국으로 귀화한 독일 출신의 예술심리학자다. 그의 저서 《미술과 시지각》(Art and Visual Perception)의 일역본 제목은 ‘美術と視覺’이다(337쪽, ‘참고 문헌’ 참조). 우리말로 직역하면 ‘미술과 시각’이다. 정확한 제목은 ‘미술과 시지각’이다.
2
* 119쪽
선의 균형을 보는 법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러면[주] 먼저 그림의 척추에 해당하는 “구조선”을 찾아야 합니다.
[주] ‘그러려면’의 오자.
3
* 162쪽
레핀(1844~1930)의 「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는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이 쓴 『오네긴(Onegin)』[주]의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주] 정확한 제목은 ‘예브게니 오네긴(Evgeniy Onegin, Eugene Onegi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