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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정원 산책 - 사람, 식물, 지구! 모두를 위한 정원의 과학
레나토 브루니 지음, 장혜경 옮김 / 초사흘달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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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도시의 불빛 속에서 흐릿하게만 보이던 별들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다.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지만, 도시인들의 눈은 엄청 재미있고 네모난 디지털 유니버스(Digital Universe)인 스마트폰을 향해 있다. 도시인은 가장 높은 위쪽과 가장 낮은 아래쪽을 잘 보지 않는다. ‘가장 높은 위쪽’이란 낮 하늘과 밤하늘을 말한다. ‘가장 낮은 아래쪽’은 사람들의 발밑에 있는 땅이다. 흔히 땅을 흙 또는 토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줌의 흙 속에는 수억 마리의 미생물과 토양미생물이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조화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들 미생물이 생산해내는 효소의 작용으로 토양 속의 유기질과 무기질은 분해되기도 하고 합성되면서 생화학적인 생리작용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식물이 잘 자라나려면 오염되지 않은 건강한 땅이 유지되어야 된다.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을 쓴 저자는 넓은 정원을 가꾼 자신의 할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식물은 복잡한 생물이란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지. 날 도와주려거든 허공을 보지 말고 네 발밑을 보려무나.”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 ‘들어가는 글’에서, 6쪽)
시골에 농사를 짓거나 정원을 가꾸면서 사는 어르신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기에 서투른 일부 장년층과 노년층을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분류하여 ‘디지털 문맹자’라고 부른다. 디지털 문맹자가 늘어난 현상을 심각하게 여긴 몇몇 전문가는 디지털 취약 계층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대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만큼 앞으로도 이러한 교육제도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한 도시인들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잘 모르면서 살고 있다. 도시인들은 발밑에 있는 식물에 대해서 잘 모른다. 정말로 아무 식물이나 자세히 관찰할 정도로 좋아하는 식물학자나 아마추어 식물 마니아를 제외하면 갈 길 바쁜 도시인들은 조그마한 풀잎조차 눈길을 주지 않는다.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의 저자는 식물을 인간이나 동물보다 무시하는 경향을 ‘식물맹(plant blindness)’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밤하늘을 자주 보지 않더라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광대한 우주를 상상한다. 이 광대한 우주는 인간을 ‘지구에 민폐 끼치는 미세 먼지’ 같이 보이게 한다.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이자 두 발로 걷는 미세 먼지들은 자신보다 더 작은 무수한 존재들이 사는 토양의 세계에 무관심하다. 알고 보면 이 아래쪽 세계도 광대한 우주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름조차 없는 식물과 미생물들이 토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물을 그저 ‘밑바닥에 깔린 부차적 존재(7쪽)’로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시선을 비판한다.
평소에 정원을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비판에 반박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식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물을 모르면서 사랑하는 것은 ‘알고 사랑하는 것’과 다르다. 식물의 생장 방식을 모른 채 식물을 사랑하면 오히려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거나 본의 아니게 지구 환경을 망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물을 많이 주면 식물이 잘 자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식물에 물을 듬뿍 주는 행동을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할 태도로 여긴다. 그러나 식물은 알아서 물을 마신다. 저자는 정원에 주는 물의 양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식물에 물을 적당히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정원의 꽃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화학비료를 듬뿍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식물들은 잘 자라겠지만, 식물이 생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토양의 미생물은 줄어든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식물도 오래 살 수 없다. 정원사들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한 흙인 토탄을 많이 사용한다. 토탄의 장점은 많다. 토탄의 색깔은 비옥한 자연의 흙과 비슷하다. 그리고 토탄은 식물의 어린뿌리를 보호하고, 뿌리가 거침없이 쑥쑥 자랄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식물맹인 도시인과 토탄의 장점을 잘 아는 정원사들은 토탄을 생산하기 위해 습지가 무분별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한 이유 하나만으로 습지가 사라지면 그곳에 사는 생명체들(식물도 포함되어 있다)의 터전도 없어진다.
《식물학자의 정원 산책》은 ‘식물을 사랑하면서 지구까지 생각하는’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자고 제안한다. 그는 식물이 복잡한 생물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해하고, 식물을 자주 접하면 식물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 슬기롭고 슬기로운 사람)라고 쉽게 생각한다. 우리 주변 세상을 좀 더 넓게, 유심히 바라보자. 그러면 우리는 누구인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위쪽의 우주와 가장 아래쪽의 우주 사이에 끼여 사는 ‘Homo misemeonji’다.
※ Mini 미주알고주알
1
* 90쪽
마침 우리 집 정원의 담쟁이를 향해 선전 포고를 하고, 그리스 신화 속에서 뱀과 싸우는 라오콘[주]처럼 녀석과 씨름을 벌이던 참이라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뼈저리게 다가온다. 할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정원 일에 손을 놓아 버리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초록빛 촉수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주] 라오콘(Laocoon)은 트로이의 신관이다. 그는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 성안으로 들여오는 것을 반대한다. 신의 노여움을 받은 그는 두 아들과 함께 바다에서 나온 거대한 뱀 퓌톤(Python)에 휘감겨 목숨을 잃는다. 라오콘은 뱀과 싸운 인물이라기보다는 뱀의 공격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죽어간 인물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에서 뱀(히드라, Hydra)과 싸운 인물은 헤라클레스(Herakles)다.
2
* 213쪽
현재 우리가 한창 ‘발견 중’인 식물들은 냉전 시대에 수집한 것들이다. 1980년 영국의 하드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이 해체하기도 전이며, 1976년 중국에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이고, 1970년 독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프란츠 베켄바워가 탈구된 어깨를 삼각 끈으로 묶고 뛰었던 그 유명한 경기[주]가 있기도 전이다.
[주] ‘그 유명한 경기’는 1970년에 열린 FIFA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을 말한다. 당시 독일(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이었으니 국가 명칭은 서독이다)의 준결승 상대는 이탈리아였다. 경기 결과는 4:3으로 이탈리아가 승리했다. 이 경기에 출전한 베켄바워(Franz Beckenbauer)는 어깨를 다친 상태로 연장전까지 뛰는 저력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