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를 벗기다 - 누드에 관한 불편한 진실
프랜시스 보르젤로 지음, 공민희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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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nude)알몸(naked)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단어 모두 벌거벗은 상태또는 나체를 의미한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누드알몸을 구분했다. 누드는 예술의 한 형태이며 교육적인 용어다. 반면 알몸은 말 그대로 옷을 입지 않은 상태다. 대부분 사람은 누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부끄러워한다. 왜냐하면 누드를 알몸의 의미로 단순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라크가 명시한 누드의 정의를 알고 나면 누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화가는 알몸을 그리지 않았다. 누드를 그렸다. 예술의 거장들이 표현한 누드는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이다. 예술적인 누드는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므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누드에 대한 클라크의 입장은 1956년에 출간된 누드의 미술사에 나온다.

 

클라크가 명쾌하게 누드의 정의를 내린 덕분에 예술가들은 누드를 마음껏 그릴 수 있었고, 그들이 표현한 누드는 외설로 오해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미술관에 전시된 누드화를 보면 불편함을 느낀다. 미술사학자 프랜시스 보르젤로(Frances Borzello)는 예술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된 누드를 여전히 불편하게 느끼는 대중의 반응을 주목한다. 현대 예술가들이 묘사한 누드는 50여 년 전 클라크의 정의한 누드와 다르다. 그래서 보르젤로는 오늘날 대중은 현대의 누드를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현대의 누드는 누드이면서도 누드가 아닌 것’, 불완전한 누드이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보르젤로는 누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녀가 누드에 관해 쓴 책의 제목은 누드를 벗기다(The Naked Nude). 이 제목은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누드라고 알려진 남성과 여성의 몸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몸이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들은 신화 속 초인적인 인물들을 강인하고 우람한 남성 누드로 묘사했다. 이때부터 예술가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젊고 탄탄한 남성의 몸을 선호했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올 때까지 여성의 누드는 인기가 없는 소재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여성의 몸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중세 시대에 이르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더욱 강화되었다. 기독교는 여성의 몸을 죄악의 근원으로 봤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 여성 누드를 묘사한 예술가들이 등장했지만, 그림이나 조각에 나타난 여성의 몸 역시 완벽한 비율로 이루어진 이상적인 몸이었다.

 

클라크의 누드 이론은 이상적인 몸을 재현하는 전통적인 예술로 회귀한다. 보르첼로는 낡아빠진 누드 이론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50여 년 동안 지속된 누드의 미술사신화를 벗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드의 미술사로 알려진 책의 원제는 ‘Nude’. 클라크는 전통적인 누드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에 등장한 페미니스트 신체예술가들은 누드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을 활용해 누드를 표현했다. 신체예술가들이 선호한 몸은 병들고 아픈 몸, 뚱뚱한 몸, 거식증으로 인해 앙상해진 몸이다. 육체의 추함도 사실적으로 표현한 누드는 전통적인 누드에서 볼 수 있었던 육체미와 에로티시즘과 거리가 멀다. 페미니스트 신체예술가들이 표현한 누드는 이상적인 몸의 허상을 벗기는 동시에 여성의 몸을 눈요기로 소비하는 남성 중심 예술의 실체를 까발린다.

 

현대의 누드는 극단적이다. 벌거벗은 상태에서 자해하는 행위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병든 자신의 몸을 일기 쓰듯이 사진 찍은 사진가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누드를 불편해한다. 누군가는 또 ‘이게 예술이야?’라고 비아냥거릴 것이다. 현대의 누드는 완벽하지 않은 몸’, ‘보기 흉한 몸을 소재로 한다. 그래서 보르첼로는 현대의 누드를 대중에게 불편함과 혼란을 주는 불완전한 누드라고 정의 내린다. 대부분 사람은 비너스(Venus)나 날씬한 여체를 묘사한 고전적인 누드화에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비너스처럼 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없으며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것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오늘날 예술가는 인간적인(연약한), 너무나 인간적인 몸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불완전한 누드를 접한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몸의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면서 혼란스러워한다. ‘이게 예술(누드)이야?’라고 의심했던 사람이 오늘날의 누드를 새롭게 본다면 ‘이건 인간의 몸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누드를 벗기다누드의 종말을 알리는 책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누드는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있고, 화제성을 가진 소재다. 저자는 앞으로도 계속 불완전한 누드가 나타나 대중을 놀라게 할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누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바꿔야 할 때가 왔다. 누드의 미술사는 잊으시라. 절판된 책을 비싼 가격으로 사서 읽을 필요 없다. 누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누드를 벗기다. 이 책은 누드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싹 벗겨준다.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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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나체 모델의 초상화는 이상적인 누드가 회화에서 사진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일련의 나체 초상화 사진은 갤러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920년대 나체를 그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초상화부터 1980년대에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가 여성 보디빌더 리사 라이언(Lisa Lyon)을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묘사한 것을 들 수 있다.

 

사진에 담은’, ‘사진으로 찍은이라고 쓰는 게 적절하다. 스티글리츠는 사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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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0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23 22:20   좋아요 0 | URL
요즘 누드사진 찍기가 힘들 걸요. 누군가는 찍고 있겠지만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누드사진을 예술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어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누드사진을 음지의 사진작가들이 찍는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0-03-2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술과 관련한 책을 보다가 누드 그림이 나오면 덜 좋아했었죠. 익숙하지 않아서일 거예요. 누드는 마른 사람보다 살이 찐 여성의 그림이 많은데 그 이유는 표현할 게 풍부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마른 사람의 몸은 비예술적인 셈이죠.

cyrus 2020-03-23 22:21   좋아요 0 | URL
네. 저도요. 버스 탈 때 미술 책 읽다가 누드화 도판 나오면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겨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