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에 나오는 호프밀러는 군인이다. 그는 걷지 못하는 에디트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호프밀러는 자신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기분 좋아진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잘 배려해주고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에디트는 호프밀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호프밀러는 에디트의 감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

 

    

 

 몸이 아픈 그녀가, 만신창이인 그녀가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이것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어린 아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힘없는 소녀가(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감히 진정한 여인의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사랑을 갈망한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예상했어도 운명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몸조차 가눌 힘이 없는 소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 단순히 연민 때문에 이곳에 오는 나를 그토록 끔찍하게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이 단순무식하고 멍청한 나라는 놈은 에디트를 그저 고통 받는 환자로, 어린아이로 여겼을 뿐 결코 여자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나는 저 이불 속에 벌거벗은 여인의 육체가, 다른 여인들처럼 숨 쉬고 느끼고 기다리며 사랑을 갈망하는 육체가 숨겨져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몸이 아프거나 불구인 여자, 미성년자나 나이가 많은 여자, 버려지거나 낙인찍힌 여자들도 감히 사랑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272~273)

 

 

호프밀러는 그동안 에디트를 여성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환자(장애인)로 대한 자신의 연민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성한다. 그는 에디트를 위해 그녀와 약혼한다. 하지만 약혼한 지 세 시간 만에 동료 군인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정한다. 군인들은 에디트와 그녀의 가문을 조롱한다. 그들의 역겨운 대화는 호프밀러를 힘들게 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와의 약속을 깨버린 발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약혼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부대 전체에 알려질까 봐 불안해한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 [절판] 조지 L. 모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작년 말에 초조한 마음을 읽다가 호프밀러와 군인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싶어서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를 같이 읽었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서구 사회의 예절 문화와 엄숙한 도덕주의와 관련된 개념인 고결함(respectability)이 민족주의와 함께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18세기에 민족주의가 출현하면서 점잖은 고결함이라는 가치가 확립하게 되었고, 이 개념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이 책의 주요 연구 대상은 독일 남성()이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이름으로 독일인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민족사회주의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국민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가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이명은 나치즘(Nazism)이다.

 

초조한 마음이 발표된 1939년은 나치즘이 득세하던 시기다. 나치즘은 남성의 우정과 유대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고, ‘고결한 명예와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권위를 정당화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출현과 함께 형성된 독일 남성성은 단지 독일 남성을 정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결하지 않은여성과 장애인을 사회의 주변 구성원으로 규정되게 했다.

 

나치즘 시대에 가장 칭송받은 존재는 군인이다. 독일 군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열정을 통제하는 이성을 갖춘 남성성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초조한 마음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러나 소설에 묘사된 독일 군인들은 나치즘 시대에 활동한 독일 군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성 장애인 에디트와 그녀의 가족을 조롱하면서 유대감과 결속력을 다진다.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어서 나치즘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고결한 남성성은 만들어졌다. 민족주의는 남성성을 강화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은 민족주의의 전성기다. 민족주의는 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되면서 피를 부르는 파시즘과 인종주의로 변질한다.

 

호프밀러는 군인이지만, ‘고결한 남성성을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에디트의 약혼 사실을 부정한 호프밀러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자살을 생각했다. 허울뿐인 자신의 고결한 명예말이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여러 번 손상된 에디트의 명예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Trivia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정말 좋은 책이지만, 고쳐야 할 오식과 오류가 몇 개 보인다.

 

 

* 20쪽 역주에 영국의 역사가 해롤드 니콜슨(Harold Nicolson)의 생몰 연도가 ‘1886~?’으로 표기되어 있다. 니콜슨은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 21쪽 역주    

포드 마도스 포드 포드 매덕스 포드(Ford Madox Ford)

 

 

* 68

  윌리엄 2의 궁정에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했던 독일의 오일렌부르크(Philipp Count zu Eulenburg) [생략]

 

독일의 황제 빌헬름 2(Wilhelm II)로 써야 한다. 윌리엄 2(William )는 영국 노르만 왕조의 왕이다.

 

 

* 161

델라크루아 들라크루아(Delacroix)

 

 

* 183

디데로 디드로(Diderot)

 

 

* 191

이반 블로취 이반 블로흐(Iwan B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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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3-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엔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눈에 불을 켜고 오탈자를 찾곤 했으나
수년 전부터 관두었습니다. 귀찮아서요...

뭐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응당
출판사가 해야할 일을 굳이 내가...

개인적으로 보면 특히 연도에 참 신
경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20-03-12 2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리뷰에서 오탈자 지적하는 내용 쓸 때가 정말 귀찮아요. 오탈자를 열심히 찾아봤자 출판사의 반응은 없고, 피드백도 느린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