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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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한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준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의해서 생긴 마음의 상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분류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과거에 학대와 생명의 위협을 겪으며 나타나는 정신장애의 일종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몸은 회복됐어도 평생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 질환이 아니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도 크고 작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전쟁, 학대,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빈곤, 차별을 겪은 사람들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따라서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고통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인류는 20세기에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정식 병명으로 확정되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연구하는 의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마음의 병만 걸리는 게 아니라 몸 상태를 악화시키는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는 의학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질병을 일으킬 만한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처음엔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지금 의학자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아동의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의 저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조사하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네이딘 버크 해리스(Nadine Burke Harris)부정적 아동기 경험 연구(Adverse Childhood Experience, ACE 연구)의 권위자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겪는 부정적 경험이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만난 어린이들은 신체 건강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이 육체를 손상하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한다. 조사 과정에서 그녀는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다룬 학술 논문을 발견한다. 그 논문에 아동기의 부정적 경험과 신체 건강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한 내용이 있었다. 이 논문에 감명을 받은 해리스는 아픈 아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색한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아동기 부정적 경험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저자의 연구 과정이 담겨 있다. 부정적 경험을 반복해서 겪은 아동은 성인이 돼서 심장병과 뇌졸중, 알츠하이머에 걸릴 위험이 높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지면 마음과 몸에 병이 생긴다. 저자는 이를 유독성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단순히 어른들만의 문제로 한정해서 생각하게 되면, 스트레스가 성장하는 아동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독성 스트레스에 민감한 아동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지속되어야 한다. 아동이 가장 많이 겪는 부정적 경험은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모는 자녀가 스트레스에 혼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무너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회복된다고 해도 부정적 경험에 대한 수치심을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이 나빠진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나 스스로 극복해야 할 역경으로 미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동기 부정적 경험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더 큰 피해를 발생하게 만든다. 제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에 부정적 경험을 겪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심각성에 둔한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일로 다루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공중보건 차원에서 아동의 정신 건강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동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한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부정적 경험이 우리 몸과 삶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곳저곳 몸이 아픈데 왜 아픈지 원인을 알지 못한다면 마음의 고통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왜 우리가 그동안 의 아픈 경험을 낯설게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아픔에 둔감해서 마음의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다. 마음과 몸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이런 사회는 개인의 부정적 경험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낯선 문제로 보게 만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의료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고통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와 지속적인 관심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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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3-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 마음 아픈 얘기네요. 꼭 어린 시절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겠죠. 결국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 대한 배려겠죠. 상처 받지 않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배려.
자식한테도 그런 배려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리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부모의 자식 차별로 가슴속에 멍이 든 경우도 봤어요.

cyrus 2020-03-11 18:14   좋아요 0 | URL
부모는 가끔 나쁜 의도가 없어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사소한 말은 아이의 인생에 계속 따라옵니다. 아이가 혼자서 그걸 감당하면 마음뿐만 아니라 몸에도 병이 생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