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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근대가 ‘개인의 발견’과 함께 발전했다는 건 상식이다. 르네상스부터 시작해서 종교개혁, 시민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적 개인의 등장 과정은 반드시 외워야 하는 ‘역사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토대로 쓰인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에서 밝힌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주장은 흥미롭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의 저자들을 문헌 속의 개인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135쪽)
이게 무슨 소리인가? 서구에서 개인이 형성된 시기는 15세기로 알려져 있다. 개인은 중세의 성벽을 뚫고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되었다는 스위스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견해가 정설로 받아들여진 결과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나온 전쟁회고록은 ‘개인’ 정체성을 인식한 사람의 기록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하라리는 부르크하르트의 견해를 뒤집는다. 그렇다면 부르크하르트가 주목한 ‘개인’은 누구란 말인가? ‘전쟁회고록’ 또는 ‘군인회고록(military memoirs)’은 말 그대로 전쟁에 참전한 군인 출신 귀족이 쓴 글이다. 하라리는 1450년에서 1660년 사이에 발표된 군인회고록의 공통된 특징이 무엇인지 살핀 다음, 20세기의 군인회고록과 비교 분석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을 쓴 저자들은 자신을 개인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전쟁터에서 살아가면서 느낄 법한 어떠한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하라리는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을 ‘반(反)개인주의적 문헌’으로 규정한다. 르네상스 군인회고록은 실증적인 문헌으로 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역사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라 서술된다. 그러나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은 인과관계 중심의 서술과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전쟁회고록 저자들은 자신이 목격한 사건들을 쭉 나열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하게 쓰려는 의도는 없었다. 전쟁회고록 저자들은 자신들이 꼭 쓰고 싶은 것들, 즉 “기억할 가치가 있는 것들(choses digne de memoire)”을 선별하여 기록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억할 만한 것’은 전사 귀족(warrior noblemen)으로 살아가면서 얻는 ‘명예’이다. 적들을 제압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데 기여한 전사 귀족은 자신의 명예로운 업적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은 전사 귀족으로서의 ‘개인사’와 역사가 하나로 일치된 기록물이다.
르네상스 전쟁회고록이 전사 귀족의 명예를 위대한 역사로 기념하기 위한 기록이라면, 20세기 전쟁회고록은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20세기 전쟁회고록의 저자들은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군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전쟁의 잔인하고 처절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20세기의 회고록에는 저자의 감정과 생각 등이 많이 나온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국가나 사회공동체보다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우리는 개인주의를 당연하고 생득적인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개별적인 자아로 인식하기까지 오랜 역사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개인의 욕망과 양심에 따른 행동은 집단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지속적 감시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감시와 억압을 벗어나 새로운 정신의 영토로 나아가려는 개인들은 소수자로 낙인찍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르네상스의 전사 귀족들에게 명예는 자신의 체면뿐만 아니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치였다. 그들의 권위는 위계적인 귀족 남성 중심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그 힘에 억눌린 개인들이 얼마나 많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우리는 그동안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개인’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르네상스에 발견되었다는 이 ‘개인’은 또 다른 인격체의 삶과 자유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인간적인 존재로 보기 어렵다. 비인간적인 전사 귀족들은 자신의 명예를 얻기 위해 폭력과 살인도 마다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개인’과 개인주의의 기원에 대한 오해를 풀어줄 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의 주류가 규정한 ‘개인’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사람들은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무명의 ‘개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