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나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삶을 인식하는 자유로운 내면 상태를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낭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

 

낭만주의자들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꾼다. 그러므로 현실이라는 세계를 받쳐주는 두 개의 기둥, 즉 이성과 논리적 사고와 친해지기 힘들어한다. 그들에게는 이 기둥들은 굵은 쇠창살이요, 현실은 거대한 감방이다. 이 현실의 감방을 탈출하는 유일한 돌파구는 감방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낭만주의자는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새로운 활력소를 얻는다.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추구하며 개인의 체험과 주관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실과 상상, 이성과 감성, 주지(主知)와 주의(主意)를 철저히 분리하지 않았으며 현실 도피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지 않았다. 특히 독일의 낭만주의 지식인들은 현실을 벗어나야 할 세계가 아니라 변화해야 할 세계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을 변화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모색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에 대한 소식은 바람을 타면서 유럽 전역으로 전해진다. 그 당시 독일 지식인들은 프랑스혁명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는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이다. 자유를 동경하는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에 열광했으며 혁명을 지지했다. , 물론 혁명을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었다. 또 혁명의 과격함에 충격을 받아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을 철회하거나 혁명 세력을 비판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었다. 어쨌든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싶어 했다.

 

 

 

 

 

 

 

 

 

 

 

 

 

 

 

 

* [절판] 뤼디거 자프란스키 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12)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창비, 2017)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지만지, 2011)

* 에른스트 호프만 모래 사나이(문학과지성사, 2001)

 

 

 

낭만주의를 감성과 상상을 중시하는 사상또는 현실 도피적인 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또 낭만주의자들을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낭만주의와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책이 뤼디거 자프란스키(Rüdiger Safranski)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시작된 낭만주의와 그에 영향을 받아 생긴 낭만적인 것의 정의를 구분한다. ‘낭만적인 것이란 특정한 시기에 국한되지 않은 시대정신이자 문화이다. 저자는 독일 낭만주의의 종착점에 서 있는 작가로 호두까기 인형모래 사나이를 쓴 에른스트 호프만(Ernst Hoffmann)을 지목한다. 호프만은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내면 상태를 묘사한 이야기를 주로 썼다.

 

호프만 이후에 이어져 온 낭만주의적 문화는 낭만적인 것으로 이름 붙여 분류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남긴 지적 전통과 문화적 유산들은 다음 세대에 이어져 내려왔다. 예를 들어 야성과 광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축제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city dionysia)에 영감을 얻은 니체(Nietzsche)의 디오니소스 예술관과 게르만 신화(Germanic mythology)와 중세 문학을 소재로 한 바그너(Wagner)의 음악들 모두 낭만적인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

*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아카넷,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2)

* 정영도 니체 vs 바그너(세창출판사, 2019)

 

 

 

그러나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낭만적인 것민족주의와 전체주의를 만나면서 삐딱 선을 타게 된다. 바그너는 게르만 민족 우월 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다. 서른 한 살의 니체는 열렬한 바그너 숭배자가 되어 자신의 책 비극의 탄생에서 바그너를 찬양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에 고대 그리스 비극의 정신인 디오니소스적 예술관과 이성 중심의 아폴론적 예술관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니체는 바그너의 종교적 편견과 반유대주의에 실망하고,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니체 대 바그너를 썼다. 또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바그너를 음악을 병들게 하는 자라고 비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유대주의를 비판했던 니체의 글과 사상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히틀러(Hitler)에게 영감을 주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고통을 주는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인간상으로 위버멘쉬(Übermensch)를 제시한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니체가 제시한 인간상을 초인(超人)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망상에 가까운 히틀러의 왜곡된 해석은 자신을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로 부각시켜주는 지적 근거로 사용되었다. 정신병이 발병한 니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본 누이동생 엘리자베트(Elisabeth)는 반유대주의자와 결혼했고, 그녀는 니체의 책과 유고를 반유대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해석하여 편집했다.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로, 그의 책에 히틀러가 좋아한 반유대주의적 내용이 적혀 있다는 식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리고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게르만 민족의 정신을 잘 구현한 음악으로 바그너의 작품들을 꼽았다. 20세기 초에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파시즘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낭만적인 것은 낭만주의의 부작용이다.

 

 

 

 

 

 

 

 

 

 

 

 

 

 

 

 

* 이본 셰라트 히틀러의 철학자들(여름언덕, 2014)

* [절판] 괴테 괴테의 프랑스 기행(인화, 1998)

 

 

 

히틀러의 철학자들의 저자 이본 셰라트(Evon Sherat)는 히틀러의 나치즘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지식인들에게 비판이 가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완전히 잡기 직전에 독일의 지식인들은 나치즘(Nazism)정치적 낭만주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나치들은 게르만 민족과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지적 및 문화적 도구로 낭만주의를 지목했고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들의 책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제3제국 시대의 필독서가 되었다. 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는 독일 낭만주의에서 시작된 제3제국 시대의 낭만적인 것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설명한다. 자프란스키는 책의 머리말에 낭만적인 것은 병적인 것이라고 말한 괴테(Goethe)의 말을 인용한다. 괴테도 처음에 프랑스혁명을 지지했다. 그러나 자유해방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약탈을 자행하는 혁명 세력의 행보를 목격한 이후로 혁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괴테의 불길한 걱정은 틀리지 않았다. 갑갑한 현실 세계를 현실 너머의 세계로 만들려는 히틀러의 애착은 혁명에 흥분한 독일 낭만주의 지식인들이 남긴 불행한 유물이다. 위험한 낭만주의자는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 욕망을 위해 또 다른 개인의 자유와 삶을 무참히 짓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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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9-02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낭만은 로망의 일본식 음역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것을 차용할 바에야 차라리
원어를 사용하는 게 어떨지 싶네요.

그나저나 이데올로기의 왜곡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니체의 위버멘쉬를 퓨어러에 갖다
대는 방식의 기술적 접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cyrus 2019-09-03 11:45   좋아요 0 | URL
좋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낭만주의를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고 써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