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주지감 독서 모임 지정 도서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2011년에 이 작품을 처음 읽었다. 8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20대 때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뷰를 몇 편 쓴 적이 있다. 오랜만에 과거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뜯어고쳐야 할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글에서 드러나는 20대 때의 내 모습이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한여름 밤의 꿈(민음사, 2008)

* [품절]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윤기 · 이다희 옮김 한여름 밤의 꿈(달궁, 2005)

 

 

 

 

8년 전에는 최종철 교수의 번역본(민음사)을 읽었다면, 올해는 이윤기 씨와 그의 따님 이다희 씨가 함께 번역한 번역본(달궁)도 같이 읽었다. 두 권의 책 모두 분량이 작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루에 두 권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국내에 출간된 한여름 밤의 꿈번역본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민음사 판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 전체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책 앞표지에 있는 그림 제목은 ‘The Awaking of Adonis’이다. 이 제목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잠에서 깨어나는 아도니스. 그림을 그린 사람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회원으로 활동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라파엘 전파의 영국 화가들은 성경이나 전설, 신화 속 한 장면을 즐겨 그렸다. 그래서 라파엘 전파의 그림은 화려한 색으로 꾸며진 한 편의 이야기.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신화적인 주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려고 했다.

 

아도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소년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아도니스에 푹 빠져버린다. 그녀는 아도니스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를 상자 속에 넣고 감춘다. 그런 다음 아도니스가 있는 상자를 저승의 왕 하데스(Hades)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도 아도니스의 아름다운 외모에 매료되어 아프로디테에게 아도니스를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소년을 둘러싼 두 여성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우스(Zeus)가 직접 중재에 나선다. 제우스의 판결에 따르면 아도니스는 일 년의 3분의 1을 페르세포네와 함께 저승에서 함께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프로디테와 함께 지상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남은 인생은 아도니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사냥을 좋아한 아도니스는 저승보다는 지상에서 생활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나머지 삶 역시 아프로디테와 함께 보낸다. 아프로디테는 혼자서 사냥을 즐기는 아도니스에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도니스는 사냥하다가 멧돼지 이빨에 찔려 죽는다. 아도니스의 허망한 죽음에 비탄에 빠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죽어가면서 흘린 피에 신의 음료인 넥타르(Nectar)를 붓는다. 아도니스의 피가 흘린 자리에 붉은빛의 꽃이 피어나는데, 그 꽃이 바로 아네모네(Anemone).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도서출판 숲, 2017)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전예원, 2011)

* 윌리엄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시와진실, 2003)

 

 

 

아도니스 이야기는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기 소재였다. 아도니스 이야기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변신 이야기. 셰익스피어는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 Adonis)라는 제목의 장시를 썼다. 비너스는 아프로디테의 영어 이름이다. 다만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장시에 묘사된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의 구애에 부담스러워 한다. 셰익스피어는 아도니스를 어른의 사랑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로 묘사했다.

 

워터하우스의 그림을 살펴보자. 아도니스가 누운 자리 주변에 붉은 아네모네가 피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도니스에게 다가가는 여성은 아프로디테다. 아네모네 한 송이에 손을 내민 아이는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Eros). 화살(한 번 맞으면 각각 사랑 또는 혐오의 감정이 생기는 두 종류의 화살이 있다)이 담겨진 화살집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도니스는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진 상태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의 피가 남아있는 자리에 신주를 부어 아도니스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깨어나게(awaking) 만든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허종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동인,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경희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을유문화사, 2016)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로미오와 줄리엣(민음사, 2008)

 

 

 

 

한여름 밤의 꿈에 아도니스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가 나오는 그림이 어째서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이 되었는지 의아하다.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아테네의 품팔이꾼들은 직접 공연을 준비하고 연기를 한다. 그들이 공연하려는 작품은 피라모스(Pyramus)와 티스베(Thisbe) 이야기다. 이 이야기도 변신 이야기에 언급되어 있다.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사랑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워터하우스는 피라모스의 말을 듣기 위해 벽에 난 구멍에 귀를 기울이는 티스베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이 한여름 밤의 꿈표지 그림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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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01 15: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세하게 쓰기 귀찮아서 그냥 간단하게 ‘품팔이꾼’이라고 적었어요. 이윤기 씨가 그렇게 썼어요. ^^

카알벨루치 2019-09-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에 난 구멍에 말을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장면 영화 <화영연화>가 연상됩니다

cyrus 2019-09-01 15:17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눈치 채셨군요. 독서모임 멤버 중에 영화를 많이 본 분이 계세요. 그 분도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를 보고는 <화양연화>를 언급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