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 잠들지 않는 전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35
장 마리니 지음 / 시공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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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Vampire)는 책이나 영화, 만화에 나오는 상상의 존재이다. 뱀파이어는 밤에 활동하면서 살아있는 자의 피를 빨아먹는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뱀파이어가 무덤에서 나와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떠돌았고(이때 ‘뱀파이어’라는 단어는 나오기 전의 시대였고, 무덤에서 나오는 흡혈귀를 ‘피 빨아먹는 시체’라고 불렀다), 그런 미신은 특히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에다 문맹률이 높았던 동유럽 지역에 유행했다.

 

미신은 괴물이 나오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현재 루마니아의 영토가 된 왈라키아(Wallachia) 왕국의 왕자 블라드 테페스(Vlad Țepeș, ‘체페슈’라고 쓰기도 한다)다. 그는 브람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드라큘라(Dracula)에 나오는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오스만 제국의 침입에 맞서 싸운 루마니아인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공적이 있었음에도 그는 폭군으로 묘사되어 왔다. 테페스는 별명인데, ‘말뚝을 박는 자’라는 뜻이다. 블라드의 또 다른 별명은 가장 유명한 ‘드라큘레아(Drăculea)다. 우리가 잘 아는 ‘드라큘라’의 어원이다. 드라큘레아는 ‘용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서양에서 용은 불길한 짐승이다. 블라드 왕자는 오스만 제국의 포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민들을 잔인한 방식으로 고문을 하거나 학살했다. 블라드 왕자가 가장 좋아한 고문 방식은 ‘말뚝 박기’였다.

 

뱀파이어 전설이 무수히 만들어지고 유행하게 된 것은 유럽 문명이 발전하면서 여러 번 생긴 그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 번째로 유럽에 드리워진 그늘은 전염병의 유행이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무지는 흡혈귀의 존재를 확신하게 했다. 사람들은 병균에 감염되지 않으려고 전염병에 걸려 죽은 자를 매장했고, 때로는 약간의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산 채로 매장하기도 했다. 무덤에서 시체가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시체가 흡혈귀가 되었다고 믿었다. 두 번째 그늘은 ‘악마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독교의 권위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위상이 흔들리던 교회는 이단 교파들을 처벌하기 위해 그들이 한 모든 일을 악마의 소행이라고 규정한다. 교황은 ‘살아있는 시체’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종교개혁을 이끈 프로테스탄트도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했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권위를 위협하는 적대적인 세력을 배척하기 위해 악마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지역에 악마와 관련된 미신과 전설이 나도는 계기가 되었다. 뱀파이어는 수많은 미신과 전설의 확산에 힘입어 유럽 전역을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고, 미신에 집착하는 대중을 비판하는 계몽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18세기에도 뱀파이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흡혈귀: 잠들지 않는 전설》은 뱀파이어가 탄생하게 된 기원을 추적하고, 뱀파이어가 시대별로 어떤 모습으로 묘사되었지 보여준다. 뱀파이어는 순종이 아니라 ‘잡종’이다. 뱀파이어는 폭군으로 알려진 인물들의 (과장된) 모습과 살아있는 시체, 그리고 늑대 인간까지 각각의 속성을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아교로 붙여 만들어진 존재이다. 지금은 좀비(Zombie)가 대세라서 뱀파이어의 인기가 주춤하고 있지만, 뱀파이어는 언제든지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녀석이다. 사실 좀비와 뱀파이어는 조상(?)이 같다. 좀비도 무덤에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오는 ‘살아있는 시체(undead)다. 뱀파이어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주]

 

 

 

 

 

※ Trivia

 

내가 읽은 책은 2011년에 발행된 25쇄이다.

 

 

* 26쪽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조리 카를 위스망이 자신의 소설 《라바》(1891)에서…‥

 

 

‘라바(Lá-bas) ‘저 아래로’, ‘지옥에서’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악마주의를 소재로 한 위스망스(Huysmans)의 소설은 작년에 ‘저 아래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 71쪽

어느 날 저녁,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그와 함께 여행을 하던 동료들(동료 작가 퍼시 바이셰와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셸리, 그리고 바이런의 개인 비서 겸 의사 존 폴리도리 박사)은 유령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자신들이 직접 서스펜스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로 결정했다.

 

 

→ 인용한 문장은 메리 셸리(Mary Shelley)《프랑켄슈타인》조지 바이런(George Byron) 또는 존 폴리도리(John Polidori)《뱀파이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 내용의 일부다. ‘퍼시 바이셰’는 영국의 시인 퍼시 바이셰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오식이다.

 

 

[주] 미국의 군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퇴임식에서 한 말로 알려진,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를 패러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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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17 08: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 책의 저자도 흡혈 행위가 금기가 된 기원을 기독교 교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