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진화론 - 보이즈 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
미조구치 아키코 지음, 나카무라 아스미코 그림, 김효진 옮김 / 길찾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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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레드스타킹 멤버 한 분이 요즘 관심 있는 책이라면서 ‘이 책’을 소개했다. ‘이 책’은 제목과 앞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책 제목은 ‘BL 진화론’이다.

 

 

 

 

 

 

참고로 앞표지 그림은 지금도 연재 중인 BL 만화 《동급생》의 작가 나카루마 야스히코(中村 明日美子)가 그렸다.

 

BL은 ‘소년들의 사랑(Boy’s Love)의 약칭이다. 보이즈 러브는 남성과 남성 간의 연애를 소재로 다루는 장르이다. 기본적으로는 여성을 위한 장르이지만, 일부 남성들도 즐긴다. ‘BL’이라는 명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한때 남성 커플의 섹스 묘사가 많이 나오는 보이즈 러브를 ‘야오이(やおい)라고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보이즈 러브가 사회를 움직인다.’ 《BL 진화론》의 부제다. 이 책을 쓴 저자 미조구치 아키코(溝口 彰子)레즈비언(lesbian)이다. 그녀는 퀴어 이론(queer theory)을 공부하던 중 레즈비언 정체성의 뿌리가 보이즈 러브의 조상인 ‘미소년 만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후로 그녀는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보이즈 러브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분석하는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보이즈 러브 애호가인 저자는 ‘미소년 만화’가 유행하던 1961년을 일본 보이즈 러브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저자는 미소년 만화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사춘기를 보냈다고 술회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 상업 출판사들은 보이즈 러브 출판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저자는 199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 이전까지 나온 보이즈 러브 텍스트들을 분석하여, 그 텍스트에 드러난 네 가지의 정형화된 특징을 발견한다.

 

 

1. 동성애를 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자신을 ‘논케(ノンケ: 이성애자, 헤테로)’라고 주장(생각)한다.

 

2. 보이즈 러브 작품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은 고정화된 남녀의 젠더 역할로 살아가고, 각각 ‘남성’, ‘여성’으로 행동하면서 섹스를 한다.

 

3. 보이즈 러브 작품에 나오는 남성 캐릭터들은 난교를 선호한다.

 

4. 보이즈 러브 작품에 동성 강간 묘사가 나온다.

 

 

저자는 이 네 가지 특징 모두 ‘판타지 포르노’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판타지 포르노가 반영된 클리셰로 가득한 보이즈 러브는 동성애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호모포비아(homophobia)와 이성애 중심주의를 재생산한다. 일본의 일부 게이들은 보이즈 러브를 ‘실제 게이의 삶을 왜곡하는 게이 차별적인 장르’라고 비판하면서 등을 돌렸다. 1992년에 ‘야오이 논쟁’이 일어나면서 보이즈 러브를 대대적으로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 논쟁에 야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야오이’의 의미를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보이즈 러브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일본 사회 내에서 호모포비아, 이성애 규범, 여성 혐오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보이즈 러브도 그런 분위기를 많이 반영하여 나오게 된다. 저자는 2000년대에 일어나기 시작한 보이즈 러브 출판 시장의 변화를 일본 사회가 ‘호모포비아, 이성애 규범, 여성 혐오를 극복’하여 ‘다양한 성 정체성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신호로 본다. 그러니까 저자가 보기에 2000년대에 나온 보이즈 러브가 실제 게이들의 삶을 최대한 반영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게이들이 살아가면서 고민하는 호모포비아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보이즈 러브가 계속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그 속에 이성애 중심주의와 여성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보이즈 러브를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으로 분석하는 방식이 신선하다. 필자는 보이즈 러브를 안 봐서 저자의 입장에 대한 내 나름의 의견을 어떻게 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을 보류하기로 한다. 저자가 보이즈 러브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페미니즘 및 퀴어 이론들은 내겐 너무 어렵고, 혼자 공부하기에는 벅차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멤버가 이 책을 소개한 이유를 알겠다. 페미니스트들은 《BL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토론하기에 딱 좋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내년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다 같이 읽어보고 싶은 책으로 추천해볼까 생각 중이다.

 

 

 

 

[주] 원문은 “비혼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로, 우에노 지즈코와 미나시타 기류의 대담집인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동녘)에 나오는 첫 문장(미나시타 기류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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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cyrus님 덕분에 BL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ㅋ

cyrus 2019-07-15 16:37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에서는 BL보다 야오이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는 야요이를 고2 때 처음 알았어요. 같은 반에 야오이를 즐겨 보는 여사친들이 있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