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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실의 쾌락 - 세계고문형벌의 발자취
존 스웨인 지음, 조석현 옮김, 조재국 감수 / 자작나무(송학)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국내에 고문과 형벌을 다룬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책이 있다고 해도 절판된 상태라서 구하기 힘들다. 《고문실의 쾌락》(도서출판 자작)은 ‘세계 고문형벌의 발자취’라는 부제가 달린 절판된 책이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진 고문 행위를 소개하고 있다. 원제는 ‘Pleasures of the Torture Chamber London’이다. ‘torture’는 고문을 뜻하는 단어이며 ‘몸을 비틀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고문실의 쾌락》은 영국인 존 스웨인(John Swain)이라는 사람이 1931년에 발표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는 저자를 ‘영국의 사학자’라고만 소개한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존 스웨인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존 스웨인은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이상의 저자가 만든 필명일 수도 있다.
출판사와 감수자는 이 책을 ‘역사서’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나 고증의 정확성이라는 역사서의 기본 원칙에서 놓고 볼 때, ‘하더라’ 식의 야사(野史)도 다루는 《고문실의 쾌락》은 역사서라고 보기 어렵다. 《고문실의 쾌락》의 감수자는 이 책이 ‘실제로’ 행해졌던 고문에 대한 보고서라고 소개하면서, 저자가 인용한 각종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감수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역사 비전공자가 역사서에 손을 대면 객관성과 고증의 정확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잔인한 고문 행위를 묘사하고 증언한 사료 대부분은 글쓴이의 상상력이 덧칠되어 있을 수 있다. 이 책이 언급한 고대 및 중세의 고문 방식은 ‘기담(奇談)’ 형태로 전승되었고,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은 사람 모양의 틀 안에 못이 박힌 중세의 고문 기구로 알려져 있다. 아이언 메이든을 우리말로 옮기면 ‘철의 여인’인데 《고문실의 쾌락》에서는 ‘무쇠 소녀’로 번역되었다(189쪽). 그런데 이 고문 기구의 용도를 언급한 기록은 많으나 고문 기구가 실제로 사용된 사례를 언급한 사료는 없다. 역사가들은 아이언 메이든이 대중에게 공포심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도구로 보고 있다.
번역본에 고문 장면을 묘사한 도판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몇 몇 도판에 대한 설명은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로 엉망이다. 루벤스(Rubens)가 그린 메두사(Medusa)의 얼굴 그림을 ‘뱀 고문’이라고 설명했고(166쪽), 사드 후작(Sade)을 ‘상트’라고 썼다(172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불쾌한 점은 ‘처녀(virgin)’, ‘여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고문 기구의 이름이다. 그 이름에는 여성을 ‘위협적인 존재’로 보는 여성 혐오가 반영되어 있다. 남성 중심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여성이나 사회의 주류에 벗어난 무고한 사람들은 ‘마녀’라는 낙인이 찍힌 채 고문을 받으면서 죽어갔다. 고문의 역사를 살필 땐, 잔혹한 고문 방식이 아니라 대중이나 특정한 사회 집단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무자비한 통치술에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