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 반철학사 4
미셀 옹프레 지음, 남수인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반(反)철학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철학의 계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제도권 지식인층에 밀려난 급진적 사상가 여섯 명의 생애와 철학을 재조명한다.

 

계몽주의 시대는 무엇인가? 계몽주의는 18세기 유럽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지적 사상운동이다. 프로이센(Prussia)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주]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가 문을 두드린다”는 볼테르(Voltaire)의 외침에 심취했다.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볼테르를 만나는 것은 철학자 혹은 계몽주의자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시대’였고, ‘빛의 시대’였다. 종교가 지배하는 계몽주의 이전은 자연과 신에 대한 질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전 세대보다 밝아진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중세를 지배한 전제군주와 종교의 독단적 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런데 옹프레는 18세기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는 18세기가 봉건적 시대, 군주 왕정 시대, 가톨릭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볼테르, 루소(Rousseau), 디드로(Diderot) 등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이 철학자들은 자유와 관용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였다. 옹프레는 계몽주의자들을 ‘겁쟁이’라고 비판한다. 언행 불일치. 계몽주의자들은 말(생각)만 앞세우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사유재산제, 군주 및 가톨릭 권위에 순순히 따르는 보수주의자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유럽 계몽주의의 정점이었을까? 옹프레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18세기가 프랑스 혁명을 준비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뿌리 깊은 기독교의 권위를 단호하게 공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종교를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급진적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라는 오명을 씌우게 된다.

 

장 멜리에(Jean Meslier)는 ‘무신론자’ 사제이다. 옹프레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18세기를 폭파시킬만한 다이너마이트를 가진 사상가였다. 멜리에는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재산과 토지 공동 소유를 주장한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심신 이원론을 비판하며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정의를 내세운다. 그는 인간 역시 기계이며 인간의 정신은 뇌의 물질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멜리에와 라 메트리는 급진적 유물론자이다. 모페르튀이(Maupertuis), 엘베시우스(Helvètius), 돌바크(d’Holbach)도 유물론자이지만, 이 세 사람은 공리주의적 입장을 드러낸다. 엘베시우스는 화폐의 폐지,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반대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점진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신론자가 확실한 돌바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신과 종교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백과전서》의 편찬자였고, 이 책에 400개의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한 루소와 볼테르는 무신론자들을 공격했고, 무신론자를 비난한 내용이 있는 《백과전서》 항목이 기재되기도 했다. 옹프레는 이 책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희생자’ 또는 ‘해방자’로 재평가받는 사드(Sade)를 비판한다. 그는 사드가 성범죄자이며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 우생학적 속성을 이해한 ‘봉건주의의 화신’이라고 주장한다. 사드의 작품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속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드 옹호론자들에게도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한다. 사드의 소설을 읽기 전에 사드의 봉건주의적 사상을 분석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반드시 읽어볼 것!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문명에 고취되어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명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세상을 확 바꿀만한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자유와 평등을 외친 민중이 모인 광장이 아니라 귀족을 알현하는 안락한 실내였다. 볼테르가 자신에게 연금을 주는 귀족의 방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인간의 이성이 굳어지면 또 다른 권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성은 속박에 갇힌 모든 사람을 위한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주]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에서는 프랑스식 표기에 따라 ‘프레데릭 II세’라고 되어 있다.

 

 

 

 

 

※ Trivia

 

‘인간사랑’ 출판사에 나온 책에서 유독 오자 한두 개가 발견된다.

 

 

 옹프레는 18세기의 철학을 기술하기에 앞서 18세기는 이 세기의 말엽인 1879년에 일어난 프랑스의 대혁명을 준비한 시대라고 설정한다. (10쪽)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256쪽에 있는 ‘타르수수의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의 바오로’로 고쳐야 한다. 287쪽의 ‘에피큐로스’는 에피쿠로스(Epikuros)로 고쳐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8-09-1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걸 이해하게 되었어요. 잘못 생각했다고 시인한 대목이 뭉클합니다. 팟캐스트에서 들었어요.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라 오판했다는 거죠. 저는 믿습니다.

요즘 스피노자에 빠졌어요. 아니 더 빠져 살 예정입니당~~

cyrus 2018-09-14 12:28   좋아요 0 | URL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철학자의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왜 철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인간다운 결점도 알 수 있어요. 저도 스피노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일단 먼저 데카르트의 철학부터 공부하려고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