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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퀴어 -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
박차민정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6월
평점 :
대중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일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그것과 관련된 편견이 자리 잡는다. 하지만 사회가 점차 개방적이고 다양화되면서 이러한 편견을 풀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퀴어(Queer)’가 대표적인 예이다. 퀴어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동성애는 정신 질환이 아니라 ‘성적 지향’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다르거나 다수의 의견에 위배되는 말과 행동을 인정하지 못한다. 동성애를 향한 편견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에이즈(AIDS)의 확산 원인으로 동성애자들이 그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 편견의 논리는 이렇다. 동성애자는 변태 성욕자이고, 문란한 성행위를 즐긴다. 에이즈는 문란한 성행위를 통해 전염되는 질병이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전염시킨다는 것이다.
성적 지향은 단일한 주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거나 유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젠더퀴어(genderqueer)는 변태성욕자, 성도착증, 비정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존재이다. 그런데 이성애 중심 젠더 이분법은 젠더퀴어를 변태로 여기게 만든다. 젠더퀴어를 질병으로 여겨 교정하려는 사회의 압박은 건강한 사람을 정신적 · 신체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조선의 퀴어》는 누락되고 묻혀왔던 1920~30년대 조선의 ‘퀴어한’ 존재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1920~30년대 조선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더욱 강화된 암흑기로 불리지만, 잡지 등 활자매체의 활성화와 서구문화의 대량 유입으로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 시기였다. 이 시기에 서구의 성과학 지식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미 서구의 성과학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입했고,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번역된 성과학 관련 서적을 접할 수 있었다. 조선의 신문과 잡지는 ‘변태성욕’, ‘반음양(半陰陽: 인터섹스)’, ‘동성연애’와 관련된 사례들을 자극적으로 보도한다. 1920~30년대 조선은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해 전통적인 성 도덕의 금기 사항이 무너지고, 동성애,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 남장 또는 여장), 키스 등 다양한 성 문화가 범람하고 있었다.
하지만 1920~30년대 조선은 ‘퀴어한 시대’가 아니었고, ‘변태성욕자의 시대’였다. 당시 ‘변태성욕’ 기사는 대중의 관음증적 욕망을 부추기는 추측성 가십이었다. 신문은 남색과 범죄를 연결 짓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조선의 퀴어》의 저자 박차민정은 변태성욕을 범죄로 규정하는 선정적인 기사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그 속에 반영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 즉 퀴어를 ‘위험한 성적 타자’로 취급하는 담론의 형성 과정을 조명한다. 조선 말기에 남색은 범죄 행위로 규정되지 않았으며 남색 풍습이 있었다. 남색은 남성들의 출세를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출셋길이 없는 자는 미동(美童)이 되면 손쉽게 벼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이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남색은 ‘불법 성행위’로 간주하였다.
가부장 ·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일탈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비난받아 왔고 비난받고 있다. 기생 출신의 강향란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기 위해 짧은 머리로 남자 행세를 했다. 당시 남성 지식인들은 전통을 파괴하고 근대화를 추종하는 몰지각한 행위라며 그녀에게 비난을 쏟아부었다. 식민지 정부는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싱을 식별하고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여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감시했다. 국가가 가장 싫어하는 존재는 기이하고 낯설고, 사회적 질서에 벗어난 ‘퀴어한 존재’들이다. 퀴어를 처벌하는 통치 권력, 그리고 퀴어를 바라보는 근대 조선인들의 관음증적 시선은 ‘권력의 판옵티콘’[주]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퀴어를 성도착증 환자나 범죄자로 만드는 ‘투명한 권력’이다. 감시하고 통제하는 ‘투명한 권력’은 신문, 병원(성과학)이라는 거대한 감시망을 만들었고, 이 강압적인 거대 권력은 퀴어를 ‘이방인’처럼 감시하고 처벌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조선을 기점으로써 퀴어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구조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퀴어의 사소한 몸짓도 ‘변태’,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차별을 감수하며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선의 퀴어》는 철저히 잊힌 ‘변태들’을 조명하여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사회에서 오롯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이야기한다. 신문에 남게 된 ‘변태들’은 오해받고 소외된 소수자의 진실한 욕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주]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나남,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