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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 인지 과학이 밝힌 진보-보수 프레임의 실체
조지 레이코프 & 엘리자베스 웨흘링 지음, 나익주 옮김 / 생각정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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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가 장 브리야사바랭(Jean Brillat-Savarin)이 한 말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가능하다. 음식은 문화의 산물이다. 음식에는 출신지, 성장 환경, 성품 등 다양한 단서가 녹아들어 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나 사소한 행동도 성격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말과 행동 속에 우리의 사고행위를 지배하는 ‘은유’가 있다. ‘은유’는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어법이다. 예컨대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은유이다. 그들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기능을 극대화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 개념에 기반을 둔, 수요와 공급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는다는 전통 경제학 패러다임에는 문제가 있다. 일단 전통 경제학의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경제학이 전제로 하는 세계는 완벽할 정도로 합리적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합리적일 것 같은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며, 결과가 뻔한데도 어리석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철학에서 말하는 객관주의는 하나의 항구적이고 정확한 기준이 있다는 신념을 토대로 진리 또는 세계를 평가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언어는 그 자체로서 객관적 · 절대적 의미를 있게 된다. 그러나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언어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낱말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을 통해 구성된다고 반박한다. 인지과학에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을 ‘프레임(frame)’이라고 말한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구조화된 정신 체계이다. 레이코프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에 연패한 민주당의 패인을 분석하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이즈베리, 2015)라는 책에서 공론을 장악하는 프레임의 힘을 소개했다.
보수를 대표하는 공화당이 만든 프레임은 서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효율적인 선전 선동 수단이 되었고, 다수의 서민들은 부자 위주의 정책을 펴는 공화당에 표를 줬다. 공화당이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프레임은 가부장적인 ‘엄격한 아버지’ 모형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도덕적 권위와 개인적 책임, 자유 시장(사회적 다원주의, ‘보이지 않는 손’), 자수성가 등을 말한다. 진보주의적 프레임은 보수주의적 프레임과 정반대인 ‘자애로운 부모’ 모형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자애로움을 베풀고 타인과 협동할 수 있는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은 유권자를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중도 이렇게 구분하는데 사실은 대다수의 유권자는 보수와 진보 성향을 동시에 가진 ‘이중 개념’을 가지고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중도세력이 선호할 만한 적절한 프레임을 내세웠지만,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 프레임을 만들지 않았다. 즉, 민주당은 공화당에 맞설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지 못해 선거에서 번번이 패배했다.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에 끌리는가》(생각정원, 2018)은 레이코프의 신작이지만, 기존에 나온 여러 권의 책에서 제시한 ‘은유’, ‘프레임’, ‘엄격한 아버지/자애로운 어머니 모형’, ‘이중 개념’ 등을 대담 형식으로 설명한 책이다. 대담 형식으로 인지과학의 중요성을 알린 책으로는 《이기는 프레임》(생각정원, 2016)이 있는데,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에 끌리는가》는 독일에서 《이기는 프레임》보다 먼저 출간된 책이다. 레이코프의 대표작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정독했고, 그가 이 책에서 말한 인지과학 용어들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이번에 나온 대담집을 복습하는 차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아니면 안 읽어도 된다.
그런데 레이코프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가 말하는 ‘이중 개념’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의 양육 모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직장에서는 엄격한 아버지 모형으로 살다가도 가정에서는 자애로운 부모 모형으로 사는 사람이 있을 거고, 그 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레이코프의 양육 모형은 이성애 중심 · 정상 가족 구조를 전제한다. 그는 미혼모가 엄격한 아버지 모형으로 살아간다고 단정한다.
여성은 은유적으로 국가 전체의 엄격한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흔히 미혼모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이런 미혼모는 가정 내 권위적인 남성 인물의 부재를 자신이 보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엄격한 아버지 모형을 신봉하는 여성은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을 때 그들을 때리기도 하죠. 여성도 가정에서 엄격한 아버지의 역할을 맡을 수 있으며 정치에서 은유적인 엄격한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본문을 요약 · 발췌했음, 135~136쪽)
부부 관계를 맺지 않고 혈연관계가 아닌 아이를 입양한 미혼모는 엄격한 아버지 모형을 신봉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애로운 부모일 수 있다. 예컨대 전통적인 흑인 공동체 속에 살아간 흑인여성은 부모가 부재한 남의 아이를 양육한다. 백인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흑인 공동체의 양육 방식을 이성애 중심 정상 가족 제도에 벗어난 일탈로 규정한다. 그들은 ‘가모장(家母長) 명제’를 내세워 생계를 부양하는 흑인여성을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나쁜 어머니’로 인식한다.
핵심을 말하자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흑인여성은 일터에서 복종적인 유모가 되려는 압력에 부딪히며 자신의 가정에서는 강력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가모장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144쪽)
따라서 미혼모의 양육 방식을 엄격한 아버지 모형으로 판단하는 레이코프의 주장은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흑인 미혼모의 육아 방식을 설명하는 데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흑인여성의 열등함을 드러내는 인종차별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 레이코프는 미혼모의 양육 모형을 설명하면서 ‘인종’ 문제를 간과했다. 그리고 그는 백인 중심의 이성애 중심 · 정상 가족 구조라는 프레임을 의식하지 못했다. 프레임을 장악한 세력은 해당 분야의 주도권을 쥐고, 대중은 이미 형성된 프레임으로 세상을 파악한다. 학자도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