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의 달리아 화원에서 돗코누마로 오르는 케이블카 리프트 안에서 설마 당신과 재회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돗코누마의 승강장에 도착할 때까지의 20분간, 거의 말을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p.5)


윗 부분은 이 책의 첫부분이다. 첫 장의 첫 문장 그리고 첫 단락. 
















위의 인용문에서는 케이블카 리프트 안에서 '재회' 했지만, 아아, 케이블카 리프트 안에서 '처음'만나는 너무나 유명한 장면이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떠올라 버린 것이다!!





중학생이었을 때, 텔레비젼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고 진짜 너무 좋아서, 나도 이렇게, 소피 마르소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나는 시력이 매우 안좋아서 안경을 꼈었는데, 영화속에서 소피 마르소는 공부할 때만 안경을 끼더라. 그래서 잠깐동안, 나도 공부할 때만 안경을 껴야지, 소피 마르소처럼, 하고 따라해봤지만, 아아,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생활이 불가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도 어느 정도 나빠야 말이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케이블카 안에서 첫 눈에 반하게 되는 미모로운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미모로운 이라는 형용사 보다는 '매력적인' 이 더 맞을 테다. 미모롭다고 다 반하게 되는 건 아니니까. 내 경우엔 잘생긴 남자한테는 별로 호감이 안가고, 다른 부분의 매력이 어필하곤 하니까. 케이블카 안에서 만나는 게 소피 마르소라니, 맙소사, 이건 영화일 수밖에 없구먼...


자, 책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사람은 자기 아내에게 이번 사건의 개략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속셈인 걸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처도 거의 나았고 드디어 그때가 온 게 아닐까? 날씨도 좋고 병실 안은 난방이 잘되어 있어 더울 정도니 오늘이라면 저도 냉정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침대 아래 수납 상자에 갈아입을 옷을 넣으면서 '그럼 설명해 주세요. 제가 제대로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과는 전혀 딴판인, 가시 돋치고 귀여운 데라곤 하나도 없는 말이었습니다.
"비싸게 치렀네요, 이번 바람기." 이렇게 말하고 나자 이미 수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역시 평범한 여자였다는 것, 게다가 아직 철없는 게집애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금은 뼈저리게 느낍니다. (p.26-27)



상황은 이렇다. 여자는 케이블카 리프트 안에서 십 년전에 헤어진 이혼한 전(前)남편을 우연히 맞닥뜨린다. 그 만남이 있은 후 집에 돌아와 물어물어 그의 주소를 알게 되고 그렇게 편지를 보내는 거다. 그 편지에서는 그들이 이혼하게 된 결정적인 일에 대해 얘기하는데, 당시 그들이 부부였을 때,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반자살 시도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거다. 나중에는 동반 자살이 아니라 여자쪽에서 남자를 찌르고 자신도 자살을 한거였고, 남자는 부상을 입고 끝났지만 여자는 끝내 사망했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남편이 부상에서 거의 회복해가자, 여자가 저렇게 '비싸게 치렀네요, 이번 바람기' 라고 비아냥댄거다.

남자가 죽을 의도가 없었고 또 죽지 않았다는 것, 회복했다는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저 부분을 읽다가 정말 

?????????????????????????????????????????????????????


이렇게 물음표 이천 개 상태가 되었는데, 다른 여자랑 모텔에서 잠들다가 부상당한 남편을 대하는 아내가 어떻게 '귀엽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나. 아니, 왜 그래야 하나????? 그 남자가 지금 다치고 회복중이라고 해서, 그래서 내가 귀엽게 말해야 하나? 내 말에 가시가 돋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아내인데, 나랑 연애하고 나랑 결혼했고 나랑 살고 있는데, 그런데 모텔에서 다른 여자랑 자다가 다쳐서 발견됐다면, 내가 빡치고 화나고 배신감 느끼고 절망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 기분인데 남편 몸상태 생각해서 귀엽게 말해야 되나?????????????? 뭐야, 이 여자 착한여자 컴플렉스, 뭐 그런건가? 그 상황에서 차분하게, 

당신 바람을 피웠더군요. 훗. 괜찮아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이래야 되나?????


귀여움은 그렇게 아무데나 발현하는 게 아닌데..... 


나는 만약 내가 남편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가시돋친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지, 차분하거나 귀염성있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를 이 상황에 대입시켜 보았다. 그 남자가 나랑 연애하고 나랑 결혼해서 나랑 살고 있는데, 업무차 손님 접대한다고 나가서 다른 여자랑 모텔에서 부상당한 채 발견됐다...는 상황이라면, 나는 그의 회복을 기다렸다가, 당신이 살아난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이것만으로 어디에요, 이 하늘아래 당신과 함께 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충분해요, 살아줘서 고마워요, 바람 피는 것쯤은 넘길 수 있어요, 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될까? 하고 상상을 시작했는데, 와....

딥빡침이 몰려와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런 미친....어휴........

일단 나라면, 회복때까지 기다리긴 할것이다. 몸도 성치 않은 사람에게 승질을 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회복이 되면, 냉정하고 차갑게 말할 것이다. 냉정하고 차갑게 말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말투라든가 귀여운 말투 따위..... 이런 상황에 나에게로부터 끌어낼 수 없다. 무슨 개똥같은 귀여움이야..

그리고 집에 와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며칠간 술만 퍼마시겠지. 그는 왜 나랑 결혼했을까, 그 여자를 언제부터 만났을까, 그 여자랑 무슨 사이일까, 왜 그여자랑 모텔에 있었던걸까, 나랑 결혼한 건 그냥 내 외모 때문이었나(응?), 결국 사랑한 건 그여자였나, 그여자를 정말 사랑했다면 내가 끌어안고 자던 건 그의 그림자였나, 이런 상태에서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붙잡는 게 맞는걸까, 그를 보내줘야겠지... 기타등등. 절망적이고 좌절스런 마음에 ...아, 갑자기 노래 가사 떠오르네요.


♪♬ 혼자 서운한 마음에 ♪♬♪♬ 지쳐서 숨어버렸니.....♪♬


그 배신감, 절망감, 좌절감, 슬픔.....을 모두 끌어안고 내가 어떻게 귀엽고 착하게 말해? 내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해?? 내가 왜 그래야해? 나쁜 짓을 한 건 내가 아닌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내가 왜 귀엽게 말해야 해??? 



그래서 이번에는 어쩌면 귀엽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딱히 사랑하지는 않았던 남자들을 대입해서 상상해보기로 했는데, 그러자,

상상하기 싫어졌다. 

사랑하지 않았던 남자들을 대입해서 나랑 사는 걸...상상하는 건...... 에너지 낭비야. 내 머릿속에 생각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것까지 상상하고 있냐...그만두자. 패쓰.


자, 가쓰누마 아키 님.
당신은 귀염성있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겁니다. 가시돋친 말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해요. 그건 당신이 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정당한 분노를 가슴 속에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겁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화난 상황에서 귀염성 있게 말할 생각을 1도 하지 않아도 돼요. 귀염성 있게 말하고 싶다면, 그건 둘이 알콩달콩 사이 좋을 때, 그때 말하면 됩니다. 이 나의 경우에도 말이죠, 사이가 좋을 땐 귀여움이 폭발해요.

음.. 이건 뻥이고요.


어쨌든 당신은 남편 때문에 화난 상황인데, 서운하고 속상하고 절망했는데, 거기에대고 어떻게 귀엽게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약 거기다대고 귀염성 있게 말한다면, 그건....누군가 대본을 써준 게 아닐까요? <귀염성 있게 말한다> 하고 말이지요. 당신은 그 상황에, 당신 기분대로 잘 한겁니다. 물론, 그렇다해서 속이 시원해진 것도 아니고, 결국 펑펑 울게되었지만 말예요.




아무튼 그래서 어제 퇴근길부터 금수 를 읽고 있다.



꿈을 꿨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새벽에 남동생이 술마시러 나간다고해서, 이 새벽에 어딜 나가냐, 하고는 어쨌든 다녀와라, 해서 집에 나 혼자만 남게 됐는데, 남동생이 나가고 문을 닫으려는 찰나, 엘레베이터가 열리더니 덩치 크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내리는 거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앞 호수와 우리 호수, 이렇게 딱 두 호수만 사는 작은 동이니, 저 남자가 이 층에서 내린다면 앞집이나 우리집을 오려는거고, 지금 시간이 새벽이니 누구 집을 가든 '옳지 못한' 상황일 것이다.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얼른 문을 닫고 잠그려는데, 어찌나 문이 천천히 닫기는지, 아무리 애를 써도 확 닫히질 않는거다. 그런데 이 남자는 내가 닫으려는 우리집 출입문을 닫고 열려고 한다. 나는 완전히 잠그지는 못했지만, 약간만 열리는 체인을 간신히 걸어놓은 상황, 그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웃집에 이사왔는데 인사를 하고 싶다는 거다. 나는 '지금은 새벽이니 내일 낮에 인사오세요' 했다. 그러자 그는 지금 꼭 인사를 하고 싶으니 문을 열라는 거다. 그래서 아니요, 지금은 잘 겁니다, 잘 시간이에요, 다음에 오세요, 하고는 가까스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자 그는 주먹으로 문을 쾅쾅 치면서, 문 열어! 인사하자고!! 하는 게 아닌가. 집에 나는 혼자뿐이라 저리 가세요, 돌아가세요, 가란 말입니다! 맞서 소리질렀는데, 그는 이제 발로 문을 쾅쾅 차면서 문을 열라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안돌아가시면 경찰 부르겠어요!' 하고 소리질렀는데, 그는 불러불러 하며 계속 우리집 문을 발로 차다가 ... 어휴, 내가 꿈에서 깼네. ㅠㅠㅠ

새벽에 깨고서는 어찌나 무섭고 후달리던지 잠깐 불을 켰다. 불을 켜고 심호흡을 하고, 저쪽 방에 남동생이 자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고나서 다시 잠을 청했는데, 아아, 심장이 너무 두근두근거려... 결국 어젯밤에는 한시간에 한번씩 잠을 깼다. 아 힘들어..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를 생각하다가, 불현듯, 태민과 헨리 생각이 났다. (응?) 일전에 둘이 함께 노래부르며 춤추는 영상을 본 기억이 갑자기 머릿속에 똭- 떠오르면서, 그걸 다시 보자, 나 그거 볼 때 너무 좋았어!! 했던 거다. 그래서, 네, 다시 보게됐습니다.!1





아...진짜 너무나 좋다. 노래 부르고 함께 춤추는 것도 너무나 좋지만, 헨리 봐라, 저런 팔....저런 팔로...섬세하게 피아노를 쳐....아......뒤로 쓰러질 것 같아.......저런 팔이라면 사실 피아노를 쳐도, 파를 썰어도, 계란을 깨도, 그림을 그려도, 글씨를 써도...그러니까 뭘 해도 멋지겠지. 인력거꾼을 해도 멋질 거고, 배관공을 해도 멋질 거야. 저런 팔이라면 그냥 뭘해도 멋질 거야. 그런데 피아노를 쳐. 저런 팔로................... 아 진짜 현기증 난다. 넘나 좋은 것...

버스 안에서도 보고 걸으면서도 봤다. 이 둘이 함께 춤추는 것도 진짜 너무 좋은데, 헨리가 저런 팔로 피아노 치는 걸 보는 건 진짜 큰 기쁨이다. 하앍하앍-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 어디 조용한 골방 같은데 숨어 들어가서 이 영상이나 무한반복 했으면 좋겠고요...........
그 팔, 잘 관리해요. ♡




그나저나 벌써 11월이구나. 슬슬 다이어리를 준비해야 겠는데,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이번에 작은 사이즈가 없고, 커피빈 다이어리는 이번에 쓰던 것과 똑같네...이 둘다 엔지...... 문구점에 가서 골라봐야 하나..........그냥 커피빈 .. 살까...... 고민이로구나. 인터넷으로 구경할까........... 어쨌든 11월이다.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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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기 자신을 후려치지 말아요.
    from 마지막 키스 2016-11-07 08:54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여자주인공은 직업이 없다. 직업이 없어도 뭐 큰 상관은 없다. 아버지가 부자라서, 오히려 도우미까지 두면서 살고 있으니까. 첫남편이 다른 여자랑 모텔에서 상처입은 채로 발견되어 이혼을 한 후, 그를 사랑했으므로 펑펑 울었지만, 아버지가 마음 다독이라며 돈을 주고, 여자든 그 돈을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낸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부정확하다. 그녀는 차를 마시고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지낸다. 틈틈이
 
 
단발머리 2016-11-0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피 마르소를 보면, 진화론을 의심하게 되죠.
저 얼굴이, 저런 얼굴이, 저 라인이, 저런 분위기가 정말 우연입니까? 정말이요????????
그 많은 시간을 같이 흘러왔던, 버텨왔던 내 얼굴은요.
나는 왜 나이고, 저 이는 소피 마르소입니까? 어째 저리 예쁩니까? 어쨰서... 저리 이쁜가요.ㅠㅠ

피아노 치는 아름다운 팔에 대해서라면, 이 동영상을 살포시 추천합니다.
얼마전 박효신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왔던 영상인데, 화면이 좀 작기는 한데.
음질은 이게 좋네요. 장재일이.... 하하하...
https://youtu.be/Ixn7YIHdNaM
헨리와 쌍벽을 이룰만 합니다. ㅎㅎㅎ

<금수>, 저는 다락방님 리뷰만 읽을래요. 저도 빡쳐서~~~~

다락방 2016-11-04 11:10   좋아요 0 | URL
소피 마르소 진짜 너무 예쁘죠. 와... 입이 안다물어져요. 정말이지, 왜 저런 얼굴이 있고, 왜 거울 보면 보이는 이런 .. 얼굴이 있는걸까요? 그렇지만..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 하니까.... 그래, 이 편이 나은걸거야....라고 혼자 위로해봅니다. ㅎㅎ

아아..링크해주신 동영상 봤는데요... 이 팔도 지독하게 아름답네요. 아아. 팔을 유독 사랑하는 제게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아아아아아아. 정신차려, 이건 박효신 노래 동영상이야, 피아노치는 남자 팔 동영상이 아니라고, 주제에 집중해, 옆길로 새지마! 라고 해봤자 전 팔만... 팔이... 오, 팔입니다. ㅠㅠ 전 진짜 남자 팔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원하고 원망하죠, 그대만을.
















나는 피로하다. 지저분하다. 말하기도 지쳤다. 내 마음은 레이 헤거티의, 시에나의, 애니 로빈슨의 망가진 인생이 남긴 파편들로 가득하다. 집에 가고 싶다. 샤워를 하고 싶다. 자고 싶다. 딸들을 두 팔로 안고 싶다.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멀쩡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p.529)



어제 이 책을 다 읽은 내가 딱 이런 기분이었다. 피로했고, 조의 인생과 시에나의 인생 그 외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삶이 내 머릿속에 가득해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문제점을 떠올렸다. 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볼 수도 있고, 심지어 개구리가 되어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어본 뒤에 다시 나로 돌아오기까지 때로 시간이 걸린다는 것. 때로 내가 몰입한 상대와 나의 분리가 너무 힘들다는 것. 어제가 바로 그랬다. 이 책의 주인공 조가 되어서 함께 잠을 못이루고, 함께 피곤하고, 함께 걱정하고, 함께 원하고.. 책장을 다 덮고서는 조와 나를 분리해서 나는 다시 현실의 내가 되어야 하는데, 어제는 가끔 그러듯이, 잘 되질 않았다. 그렇게 힘들었다.


이게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인것 같다. 내가 나를 분리시키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나는 몇몇 사람들로부터 '자꾸 내가 되지 말고 분리해라'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어떨 때는 정말이지 잘 되지가 않는다. 얼마전에는 SNS 에 성폭력 해시태그들을 들여다보다가, 이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는 거기에서 빠져나오질 못해 잠들기 전에 엉엉 울었다. 일전에도 애인이 이런 나 때문에 좀 힘들어하기도 했다. '너는 네 문제에 대해서는 안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걸 보는게 힘들다'고 그가 말했었다. 그래서 나도 진짜 분리를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잘 안된다. 이게 아마도 내 중심축인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조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 같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은, 그러니까 나를 이루는 중심축이 너무 강하며 그것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것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조와 나 같은 사람은, 연애나 결혼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조,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순 있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순 없어요, 당신도 떨어져서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에요, 나처럼.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연애에도 결혼에도 부적합한 사람. 인간 자체가 연애나 결혼에 맞춰져 있지 않은, 적성에 맞지 않은 사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자주 만나고 함께 사는 게 가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게 불편할 수도 있다. 상대와 내가 똑같이 그런 사람이라면 몰라도, 어느 한쪽만 그런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최근에 나는, 연애에 부적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또 그랬다.


피로하고, 분리가 잘 안되어서 힘들고, 이 과정에 있어서 역시 또 나를 끌어 올리고 어떻게든 분리를 하는 것이 내 몫이다. 나는 이렇게 분리가 잘 안되고 울적해질 때, 동굴속으로 들어가버리는데, 그 동굴속에서 다른 사람이 나를 끌고 나오기는 쉽지가 않다. 그건 철저히 내 몫이다. 이렇게 동굴속으로 들어가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채고 노력해도, 나 스스로 걸어나오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 나는 내가 알아서 괴로워하고 내가 알아서 고통스러워하고 내가 알아서 극복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러니까, 혼자여야 한다. 


계속 연애하면서 살아왔지만, 연애는 내게 맞는 옷이 아니다.



얼마전에 함께 술을 마신 e 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분리를 잘 못해서 힘들어하는 걸 잘 아는 친구인데, '너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건 니가 뭐든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다른 사람, 제삼자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니가 해결할 수가 없으니 무력함을 느끼고, 그게 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고. 내가 느끼는 피로함과 무력함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었구나. 


어제는 이 책을 다 읽고 그래서 새삼 다짐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나의 본질은 여전히 이렇게 있겠지만, 그래도 분리하는 훈련을 하자, 라고. 자꾸 분리하자고 생각해야지, 분리할거야, 라고. 어제 저녁처럼, 어젯밤처럼, 하루종일 조가 되어가지고 허우적대는 일 좀 그만하자, 라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곰곰 생각해보고 생리주기 어플을 열어봤다. 이토록 오래, 한글을 알고나서부터 독서를 시작했는데, 게다가 생리한 지는 이십년도 넘었는데, 이제서야 이런 방법을 떠올리다니. 그러니까 생리전 증후군이 있을 즈음에는 소설을 읽지 않는 거다. 나는 생리전증후군으로 우울증이 있고, 그 때에는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발악을 하는데 잘 되질 않는다. 생리가 시작되어야 우울증이 사라지는데, 이럴 때 이렇게 몰입되는 슬픈 주인공이라니, 안된다. 그래서 처음에는 슬픈 소설을 읽지말자, 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슬픈 소설에서 슬픈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게 아니라, 어제 이 책처럼, 추리 소설에서도 이상하게 몰입을 해버리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연애소설 읽어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엉엉 우는 조연에게 이입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아예 소설을 읽지 않는 거다. 평상시에도 가끔 이렇게 분리가 안되는데, 생리전에는 완전 미치겠구먼, 싶어지는거다. 생리전 우울증이 찾아왔다 싶으면, 소설 읽기를 금해야지. 비소설을 그 때 읽어야겠다. 내가 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책들. 분리하려고 이를 악물지 않아도 되는 책들. 그런 책들은 집에 널리고 널렸다. 내가 그동안 사둔 게 얼만데... 그런데 지금은 일단 마이클 로보텀, 개인에게 집중하는 이 작가의 책을 더 사야겠다. 검색해보니 내가 읽지 않은 책이 한 권 있네?



그나저나, 나는 지하철 쩍벌남들이 너무 싫은데, 왜 대체 한자리 이상을 차지하면서 그렇게 다리들을 쩍쩍 벌려대는지, 지하철에 빈자리가 있으면 옆에 남자면 앉기가 싫다. 좁아... 모든 남자들이 쩍벌 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남자들은 지나치게 쩍벌한다. 진짜 꼴도 보기가 싫어. 그런참에 어제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을 읽었다.



에디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더러 앉으라고 하더니 자신도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허벅지를 어찌나 쩍 벌리는지 누가 보면 불알이 자몽만한 줄 알겠다. (p.348-349)



아.... 이거 써먹고 싶다.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쩍벌남을 만난다면, 나도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거다.


"아저씨, 아저씨는 아저씨 불알이 자몽만한 줄 아세요?"



아...너무나 써먹고 싶어서 좀이 쑤신다...............................................그렇지만.....................안되겠지..................자몽만한 불알...................자몽.................................그러고보니 올여름엔 자몽에이드를 안 사마셨네. 그러고 여름이 가버렸어. 대체 왜 그냥 가버린거냐, 여름아. 나는 좀 더 너랑 지낼 수 있어.



어제 퇴근무렵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 먹고 들어올거냐 묻는 전화였다. 


-난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넌 집에 가서 아빠랑 같이 먹어.

-그래? 아빠가 고기 먹자고 하던데.

-그래?

-응. 그럼 말어?

-아니, 칼퇴해서 집으로 튀어갈게.

-누나 원래 어떡할라 그랬는데?

-회사 앞에서 혼자 짬뽕 먹고 갈라 그랬어.

-푸하하하하하하 뭐냐. 혼자 짬뽕 먹을라 그랬다고? 다이어트 식 먹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어.

-다이어트 할거라며?

-그거 내일부터. 오늘은 일단 너무 배고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았어. 빨리와.

-응. 근데 아빠가 쏴야 돼. 아빠가 쏘면 먹을거야. 

-그렇게 전하마.



그렇게 집으로 가서 아빠와 남동생과 함께 갈비집에 갔다. 갈비를 먹고 김치찌개를 시켜서 밥을 남동생과 절반씩 나누어먹는데 배가 부른 거다. 


-아빠, 난 요즘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그게 니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야.

-그런가?


이때 남동생이 빵터져 웃으면서 아빠한테 말했다.


-아빠, 이 누나 많이 먹었어. 뼈까지 들고 뜯는 거 아빠도 봤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뼈도 뜯어 이누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가 빵터져서 웃는데, 내가 많이 먹었나? 갸웃갸웃 해서, 나 많이 먹었나? 하고 물었더니 남동생이 누나 많이 먹었어, 라고 답한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먹어서 배부른거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요즘 적게 먹어도 배부른줄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나 좀 멋진 것 같다.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 참..근사한 캐릭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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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ly0517 2016-11-03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아..넘 웃겨요ㅋㅋ 지하철인데 완젼 빵터져서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요ㅜㅜㅋㅋㅋㅋ

다락방 2016-11-03 12:59   좋아요 1 | URL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입니까. 웃기면 웃어야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화 2016-11-0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 필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11-03 12:58   좋아요 1 | URL
이 댓글엔 제가 어떻게 답해야할지 모르겠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6-11-03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사랑스러운 분>_<

다락방 2016-11-03 12:58   좋아요 1 | URL
아니 어디가 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6-11-03 13:19   좋아요 1 | URL
모르신다니 더더욱 ㅋㅋㅋㅋㅋㅋ 러블리>_<

붉은돼지 2016-11-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뜻 자몽이 얼만큼 큰지 잘 기억이 안나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어요 ㅎㅎㅎㅎㅎ

자몽은 선뜻 와 닿지가 않아서.....수박 정도는 되어야.... 하다가.....이건 또 너무 한 것 같고....
.......그래서 곰곰 궁리해 본 것이...한라봉.....그 정도가 똭!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다락방 2016-11-03 12:58   좋아요 0 | URL
저는 내내 시장에서 본 자몽을 떠올렸습니다. 음.... 그랬습니다.
이 댓글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킁킁.

시이소오 2016-11-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로보톰의 다른 책은 갈등관계가 이 책과 똑같아서 살짝 지루하더라구요.

남자지만 쩍벌남 저도 싫어요. 자몽은 좀 작지 않나요? 키위는 어떨지요 ㅋ 이마나 맞빡인가요?


붉은돼지 2016-11-03 12:56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 자몽도 뭐 작은 거는 아니라는 생각이에요.....자몽만 해도 대단하죠...ㅋㅋㅋㅋㅋ

다락방 2016-11-03 12:57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님, 자몽 ... 사이즈를 혹시 착각하고 계신건 아닌지요. 자몽이면, 어, 생활 자체가 초큼 불편할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ㅎㅎ

시이소오 2016-11-03 13:04   좋아요 0 | URL
ㅋ 그러고보니 작지 않군요 마니 불편할듯 합니다 ^^

단발머리 2016-11-0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자몽... 자몽... 하셔서 위의 댓글들 바로 밑에 댓글다는 것에 심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ㅋㅋㅋ
시절이 하 수상한데 다락방님과 다락방님 남동생분 덕분에 한 번 웃습니다. 하하하^^

다락방 2016-11-03 14: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서 이렇게 분위기를 바꿔주시면 되는겁니다! ㅎㅎㅎㅎㅎ

자몽 자몽 하니까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하몽 하몽] 생각이 나네요... 음....

날 추워요, 단발머리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단발머리 2016-11-03 14:24   좋아요 0 | URL
잘 지내고 있어요. 별일 없는데 은근 바쁘게요~~ ㅎㅎ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치지는 않지만...
나라 걱정이 많이 되는 요즘입니다.
다락방님은 빨강빨강 넘 이뻐요~~

다락방 2016-11-03 15:23   좋아요 0 | URL
이놈의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걸까요, 단발머리님...하아-
나라도 걱정이고 저도 걱정이고 ㅠㅠ
삶은 걱정의 연속인것 같아요. ㅠㅠㅠ

빨강은 진리 ♡

매너나린 2016-11-03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처럼 다락방님 덕분에 크게 웃었네요ㅎㅎ
정말 근사한 캐릭터 맞습니당^^

다락방 2016-11-04 09:07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ㅋㅋㅋㅋㅋㅋ
으흐흐흐흐흐흐흐흐

transient-guest 2016-11-04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으면 말 없이 자몽을 즈려 밟고 지나가겠습니다만.....-_-ㅎㅎ

다락방 2016-11-04 09:0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즈려 밟고 지나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킁킁.

꿈꾸는섬 2016-11-04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다락방님은 멋진 사람입니다. 근사한 캐릭터도 맞구요.
이 새벽~ 웃으며 시작하네요.^^

다락방 2016-11-04 09:08   좋아요 1 | URL
아이쿠. 왜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꿈섬님?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세요? 새벽부터 웃으셨다니 좋으네요. 헤헷
:)

꿈꾸는섬 2016-11-04 09:10   좋아요 0 | URL
ㅎㅎ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요. 남편이 새벽부터 움직이는 사람이거든요.
유쾌한 글 속에 당당함을 겸비하고 좋은 책까지 덤으로 알려주는 멋진 다 락방님^^

다락방 2016-11-04 09:15   좋아요 1 | URL
아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가 제일 일찍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저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는 분들이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하.
저도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일찍 자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언젯적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젊은 시절에는 새벽 두세시에 자고 그랬는데 말입니다.... 하아-

꿈꾸는섬 2016-11-04 09:17   좋아요 0 | URL
전 원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사람인데 결혼후 바뀌었어요.^^
새벽에 일하시는분들 은근 많더라구요.^^
 
내 것이었던 소녀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줄리안이 층계 위에 나타난다. 얇은 면 잠옷을 입고 있다. 등지고 있는 전등에 드러난 몸매의 실루엣이 주교라도 맹세를 깨게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무슨 일이야?" 줄리안이 묻는다.

"가서 다시 자. 난 가봐야 해."

"내가 싫은 게 바로 이거야, 조."

"알아." (p.536)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이루는 가장 중심적인 축은,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를 이루는 부수적인 많은 것들은, 어떤 요인으로 인해 변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고, '내가 이럴 줄 몰랐어' , '나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 '내가 이런것 까지 하게 되다니' 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짐을 확인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 아주 중심적인 것은, 여전히 나인채로 있게 된다. 내가 아무리 다른 상황을 원해도, 나에게 변하지 않는 그 중심 축이 있으므로, 상황을 바꾸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 것이다. 이별은, 그럴 때 오는 것 같다.


'조 올로클린' 은 심리학 교수이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으며 아내와 두 딸을 지독하게 사랑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전편인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조는 아내 줄리안으로부터 별거하자는 얘길 듣게 되고, 그렇게 별거중이다. 조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해서, 아이들을 아내와 번갈아 돌보면서 거의 매일 만나는 동시에, 자기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는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앞으로 가서는 물끄러미, 그림자와 실루엣을 바라본다. 그는 예전처럼 그가 이 가족의 일원이기를 원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이고 싶고,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고 싶다. 조는 여전히 아내 줄리안을 사랑한다. 그 마음은 변한 적이 없고, 여전히 줄리안과 얘기를 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다. 조는 줄리안과 다시 함께 살고 싶다. 여전히 줄리안을 사랑한다.


그러나 조는, 줄리안이 가장 싫어하는 점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많은 범죄 사건들에 연루되는 것, 그 사건을 모른척 하지 못하는 것, 그래서 밤에 불려가기 일쑤고 위험을 무릅쓰는 일도 잦다. 전(前)편에서는 아내와 딸까지 위험에 처하게 했다. 줄리안은 조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아빠임을 잊지 말고 자신을 지키면서, 그렇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조는, 자꾸 피해자들을 도우려하고, 가해자들을 어떻게든 잡고 싶어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그래서 가해자가 그러는 '이유'를 알고자 범죄 현장에 가면서 경찰들을 돕고, 피해자에게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심문 과정에서도 도움을 준다. 그래서 그는 범죄가 일어나고 가해자가 뻔히 판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무시할 수가 없다.


어느 늦은 밤, 그는 전날 잠을 못자 너무 피로했고, 줄리안의 '소파에서 자고 가' 라는 말에 기대어 오랜만에 가족들의 곁에서 잠을 청한다. 그는 그렇게 푹 아침까지 잘 수도 있었을텐데, 경찰로부터 새벽에 연락을 받고는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는 거다. 줄리안이 그렇게 싫어하는 걸 알면서, 자기가 그토록 줄리안과 함께 살기를 원하면서, 그렇게 그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으로 간다. 그렇게 꾸역꾸역 현장에 갈 수밖에 없다면, 그걸 너무나 싫어하는 줄리안과 함께 살 순 없다. 그러나 조는, 줄리안을 여전히 사랑한다. 다시 함께 살고 싶다. 하아-




조는 줄리안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 할 때면 여전히 너무 좋고, 한 동네에 살고 있으므로 자주 만나는데, 그때마다 아내에게 사랑을 느낀다. 여전히 그녀가 아름답다고 느끼고 여전히 그녀와의 대화가 좋다고 생각한다. 번번이 만날 때마다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가지고 있는걸 보노라니, 내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함께할 수 없는데, 너무 사랑하고 자주 만나고 번번이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내가 몰입해버리고 나니, 나와 분리되질 않았다. 그게 너무 힘겹더라.



조의 딸 찰리의 친구가, 고작 열 네살에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썼다. 이에 조는 진짜 범인을 찾아내고, 아버지의 시체를 보고 피를 뒤집어쓴 딸의 친구의 트라우마를 없애주고 싶어한다. 조는 심리학자라는 직업 탓인지, 사람들을 만나서 관심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를 파악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기본적으로 조는 피해자의 편이다. 가해자가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하고 싶다. 조는 철저히 '개인'에게 집중한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야 할 '개인'에게. 그게 내가 이 소설을 시작부터 좋아하게 된 이유다.



소설의 시작, 조는 '리암 베이커'라는 청년의 정신건강 심사위원회에 참석한다. 리암 베이커는 18살에 '조 헤거티'라는 여자애를 죽도록 패서 불구로 만들어 놓았다. 리암은 3년간 갇혀 있었고, 리암의 담당의사는 그것은 '순간적 광기' 였다며, 이제 리암을 풀어줘도 좋다고 한다. 리암은 심사위원들 앞에서 자신이 반성하고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여기에 참석한 심리학자 '조'는, 그가 언제든 다시 그런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리암을 심문하면서 기분을 건드리자 리암이 다시 폭력을 썼던 것. 이에 리암은 풀려나지 못하고 다시 갇혀야 하는 상황이 온다. 리암의 담당의는 분노한다.



"……저는 지난 18개월을 리암과 함께 보냈어요. 교수님은 기껏해야 리암이 선고 받기 전에 한 여섯 번 만나신 게 전부고요. 리암의 진보를 판단하기에는 교수님보다 제가 훨씬 나은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교수님이 리암한테 뭐라고 속닥거렸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그건 정말 공정하지 못했어요."

"누구한테 공정하지 못했다는 겁니까?"

"리암한테, 그리고 저한테요." (p.24)



리암의 담당의는 리암이 여전히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냈고 그래서 풀려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조에게 따졌다. 너, 그렇게 하는 거, 그거 공정한 거 아니야, 라고. 리암과 나에게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대화, 조가 피해자를 더 신경쓰는 다음 대화가, 나는 너무나 좋았다.



"저는 조 헤거티에게 공정하려고 했습니다. 제 말에 동의하지 않으시겠지만, 박사님, 저는 방금 제가 박사님께 엄청난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박사가 코웃음을 친다.

"저는 10년간 이 일을 해왔어요, 교수님. 누가 사회의 위험요소인지 아닌지쯤은 안다고요."

나는 박사의 말을 자른다.

"저는 사회에는 관심 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개인이죠." (p.24-25)



아, 정말 너무 좋지 않은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공정하려고 하고, 개인을 걱정하는 마음이. 


이 소설에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나와 너무 괴로운데, 그런 피해자를 만나는 조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도 역시 너무 괴로웠다. 그는 개인을 걱정하고, 개인을 위하고 싶고, 개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이건 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고 그 자신이 신경쓰는 일인데, 아아, 그 자신의 개인적인 삶은.... 여전히 별거중인 아내를 원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아내는, 자신의 그런 삶을 싫어하고...


난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원해, 그런데 당신이 싫어하는 이걸 포기할 수가 없어..


아.. 이럴 땐 진짜 어떡한단 말인가.


나는 조가 개인에게 관심을 가진 게 좋고, 피해자의 입장에 되려는 게 좋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응원하는 마음도 든다. 또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그가 만약 내가 사랑하는 남자라면, 나라고 줄리안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것 같진 않다. 위험에 노출되고, 낮이든 밤이든 수시로 경찰에게 불려나가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남자랑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떨어져 사는 것이 최선의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줄리안이었어도 줄리안과 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자꾸만 조가 되어서, 간절히 원하는 걸 차마 가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본인 중심의 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과 분리가 안되어서 어제 이 책을 다 읽고 진짜 너덜너덜해졌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이렇게나 함께 있고 싶은데, 그런데 내가 여전히 이런 나야....하는 생각으로 허우적댔다. 



이런 조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다른 여자가 있지만, 조는 다른 여자한테는 관심도 없다. 관심을 주려고 해봐도 줄리안만 사랑해. 하아- 그런데 줄리안이 원하는대로 해줄 수가 없는 자신이라니..... 아이고야, 뒤로 쓰러지겠다.



이 책이 우울하기만 한 건 아니다. 내가 너무 우울함을 잡고 놓질 않아서 그렇지, 간혹 유머가 튀어나오는데, 살찐 고양이에 대한 부분에서도 피식 웃었다. 경찰인 로니가 별거중이라 혼자 지내는 조에게 새끼 고양이를 줬더랬다. 가끔 그 고양이를 보기 위해 조의 집에 들르는데, 아, 이 고양이가 살이 찐 게 아닌가!


마치 큐 사인이라도 받은 듯 스트로베리가 천천히 부엌으로 걸어 들어와 로니의 신발에 대고 코를 킁킁거린다. 엄마 냄새가 나는 걸까. 경감이 앞으로 몸을 기울여 한 손으로 고양이를 들어올리더니 심문하듯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살쪘잖아요."

"나무늘보 혼종이라 그래요."

"밥을 너무 주셨군." (p.66-6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무늘보 혼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나무늘보 혼종인걸까??????????????????????



여러가지 의미로 지독한 책이다.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마음까지 휘두르는 쌍놈이 나와서 지독하고, 원하지만 자신의 중심을 내버릴 수 없는 남자가 나와서 지독하다. 여러가지 의미로 지독해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고기를 먹어야 한다.


어쩌면 줄리안이, 내가 더 강해져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너무 그리워서 울다가 잠든 밤들도 있었고,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내 에너지를 마지막 1그램까지 다 가져가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 밤들도 있었어. 그러기엔 에너지가 모자랐어. 앞으로도 계속 모자랄 거고."

"이해해."

"정말?"

"돌아오게 해줘."

그녀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 만큼 강하지 못해, 조. 나는 당신 없이 겨우 살 수 있을 만큼만 강해."

"어째서?"

"왜냐하면 당신은 늘 여기 있지 않을 테니까." (p.207-208)













"자, 말해주세요." 그녀가 말한다. "일단은 친구 사이라고 해두고요. 무슨 일을 하세요?"
"저는 임상심리학자입니다. 그리고 그냥 조라고 불러주세요."
"당신 아내가 당신을 그렇게 불러요?"
"네."
"그러면 저는 조지프라고 부를래요." (p.220)

거울 속 자신을 뜯어본다. 입가에 애니의 립스틱이 묻어 있다. 이게 얼마 만이더라? 섹스 없는 2년이라니, 가뭄을 넘어 사막 같았다. 사하라를 건너왔더니 이제는 물을 마시는 법조차 잊어버린 모양이다. (p.264-265)

나는 여전히 쿱이 말한, 어딘가로 이어지거나 뭔가 의미가 있는 삶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 내 삶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일종의 연옥에서, 과정들의 도중에서 맴돌고 있다. 아내가 나를 도로 받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하루를 꼭 붙들고 하루하루가 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할 이때에.
지금 내 모습은 교통체증에 갇혀서, 무엇 때문에 지체되는지 누가 다쳤는지 또는 제 시간에 집에 도착해 저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남자 같다.
그 대신 나는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보면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생각을 하는 남자가 되고 싶다. 삶을 부둥켜안고 빨리감기를 하는 것처럼 사는 남자, 입맞춤을 자주 하고, 부끄러움 없이 포옹을 하고, 하루하루를 더없이 짧은 연애처럼 맞이하는 남자가 되고 싶다.
왜 나는 그런 남자가 될 수 없을까? (p.283)

"내가 가정과 일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었더라면 미란다는 그 불안감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이 나가서 밥을 먹을 때나, 디너 파티에 갔을 때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나 미란다는 내가 일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알았어. 그게 너무 심해지다 보니까 가끔은 집에 가는 게 싫어지더라고. 변명을 지어내서 서에 남아 있곤 했지. 너도 그게 문제야, 조. 가정과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 (p.302)

에디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더러 앉으라고 하더니 자신도 반대편 의자에 앉는다. 허벅지를 어찌나 쩍 벌리는지 누가 보면 불알이 자몽만한 줄 알겠다. (p.348-349)

루이츠는 그 총탄과 점차 돌아오는 기억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어떤 사람들은 승리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극심한 압박에도 침착함과 집중력을 유지하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공황을 일으키고 무너진다. 우리는 위기를 맞았을 때 제 성격을 내보인다. 상황이 심각하게 잘못 돌아갈 때 말이다. 진정한 생존자들은 언제 움직이고 언제 뒤로 물러설지 안다. 올바른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내린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능독적 수동성`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무언가를 한다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뜻할 수 있다. 무위가 행위일 때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 역설이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p.433)

나는 피로하다. 지저분하다. 말하기도 지쳤다. 내 마음은 레이 헤거티의, 시에나의, 애니 로빈슨의 망가진 인생이 남긴 파편들로 가득하다. 집에 가고 싶다. 샤워를 하고 싶다. 자고 싶다. 딸들을 두 팔로 안고 싶다.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멀쩡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p.529)

부모 노릇이란 공중곡예 같다. 언제 놓아줄지 알아야 하고, 아이가 공중제비를 돌고 다음 순간 손을 뻗어 고리를 잡는, 자신을 시험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은 언젠가 그 애가 이쪽으로 다시 날아올 때 잡아줄 준비를 하고, 다시 세상으로 쏘아 보내주는 것이다. (p.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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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마지막 키스 2016-11-03 10:22 
    나는 피로하다. 지저분하다. 말하기도 지쳤다. 내 마음은 레이 헤거티의, 시에나의, 애니 로빈슨의 망가진 인생이 남긴 파편들로 가득하다. 집에 가고 싶다. 샤워를 하고 싶다. 자고 싶다. 딸들을 두 팔로 안고 싶다.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멀쩡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p.529)어제 이 책을 다 읽은 내가 딱 이런 기분이었다. 피로했고, 조의 인생과 시에나의 인생 그 외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삶이 내 머릿속에 가득해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매너나린 2016-11-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재미있을거 같아요.다락방님의 리뷰를 읽으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주문하러 가야겠습니당~~^^휘리릭~~

다락방 2016-11-03 13:00   좋아요 1 | URL
매너나린님, 이 책 재미있어요.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사실 그보다는 아프게 읽었지만... 마이클 로보텀 책이 세 권 번역 되어 있더라고요. 전 그 중 두 권을 읽었고요. 나머지 한 권도 읽어봐야겠어요.

매너나린 2016-11-03 15:05   좋아요 0 | URL
저도 세권 다 보려구요^^
덕분에 넘 조아하는 스타일의 책을 접하게 되서 넘 감사해요~~!

푸른희망 2016-11-0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회에는 관심없습니다 제가 걱정하는건 개인이죠
저도 이 대사가 너무 좋아서 이책은 무조건 좋습니다~~

다락방 2016-11-04 07:57   좋아요 0 | URL
크- 푸른희망님도 저 대사가 좋으셨군요. 저 진짜 너무 좋더라고요. 게다가 피해자에게 공평하려고 했다는 거요. 그것도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이 작가의 시선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다른 책도 번역되는 족족 다 읽어보고 싶어요. 참 좋아요.

moonnight 2016-11-04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제 알라딘에 세번 주문했어요.달력 종류별로 받고 싶어서요. 오늘 또 주문을 부르는 다락방님의 페이퍼^^ 저도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16-11-04 11:22   좋아요 0 | URL
아아... 저도 달력 받아야 되는데....저는 월급 받으면 지르려고요. 그래서 꾹 참고 있어요. 히히.
이 책 재미있어요, 문나잇님. 그렇지만, 어, 조금 힘들기도 하고요 ㅠㅠ

마음의소리 2016-11-0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즐겁게 읽은 작품이에요. 이런 정성어린 리뷰를 보니 반성이 되네요. 저도 리뷰 작성해두면 좋았을 것을... 읽은지 시간이 지나서 자세히 생각이 안나네요. 이렇게 그때그때 작성해두면 후에도 다시 읽어보고 좋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6-11-06 21:59   좋아요 0 | URL
네, 독후 활동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읽은 후에 곱씹는 역할도 하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책 읽은 후에 가급적 글로 남기려고 하는 편이에요. 이게 나중에도 너무 좋더라고요.
이 책 좋아서 오늘 만난 친구에게도 선물했어요. 헤헷.
 

공대생과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툭하면 다퉜다. 치고박고 싸웠다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키는 데 애를 먹었는데, 나는 그게 참 좋았더랬다. 그가 나를 답답해하는게. 뭔가 괴롭히는 맛이 있달까...(응?)


그는 다른 나라에 살았고, 다른 계절에 살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풀벌레가 울지 않았던 계절에, 수화기 너머로는 그가 있는 곳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풀벌레로구나, 하다가 그렇지만 개구리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라고 내가 말했는데, 그때 그가 그랬다. 이 더위에서 개구리가 바깥에서 살 수 없다, 개구리는 양서류고 피부로 호흡하는데, 이 땡볕에 어디 풀밭에 나와 노래를 하냐, 개구리가 아니다, 하는 게 그의 요지였다. 아니, 풀밭에 나와서 노래를 할 수도 있지, 이 땡볕을 견디는 개구리가 있을 수도 있지! 라고 내가 대응하고 그는, 내가 이 계절에 개구리를 바깥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니까, 하며 으르렁 거렸고, 나는 그런 그에게, 아니, 당신이 못봤다고 개구리가 없다고 어떻게 말하냐, 풀숲 깊은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 라고 말했고, 아니 이 문과생이 왜 개구리가 이 더위에 살 수 없다는데 자꾸 우기냐, 고 하길래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개구리가 되어 보지 못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에 그는 진정 빡침이 찾아와서 나에게 버럭버럭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이렇게 종종 그를 버럭버럭하게 만들었다. 괴롭히는 깨알재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답해 미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에서 느껴지는 묘한 짜릿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나. 여태 그러지 않았다고 앞으로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있으며, 풀숲이 너무 좋은 어떤 특별한 개구리는, 호흡법을 강하게 익혀서 어딘가에서 햇볕을 쬐며, 조금만 더 있다 물로 들어가자,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개구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할 수도 있을것인데, 왜 개구리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개구리가 지금 없다! 고 단정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 공대생이여....내가 개구리라면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여.....



그러다 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게된 것이었다.





달의 분화구를 얼굴로 생각하는 것, 별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등은 경제학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상상력이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듯, 거기에는 사실적 증거 너머의 것들에 닿고자 하는 의지 속에 담긴 너그러움이 있고, 이 너그러움은 더 큰 삶의 너그러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p.93)








이제 알겠나, 헤어진 공대생 애인이여... 달의 분화구를 얼굴로 생각하는 것, 별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은, 사실적 증거 너머의 것들에 닿고자 하는 의지 속에 담긴 너그러움 이라는 것을. 개구리가 되어서 땡볕의 풀숲에서 울고자 하는 것은, 나의 너그러움이다, 그말이다. 응? 나의 이 너그러움, 개구리가 되어보고자 하는 이 너그러움, 이 너그러움은, 삶의 너그러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한것이며, 나에게 이 너그러움이 엄청나게 풍부해서 내가 당신하고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이다. 알겠는가.


누나에겐 너그러움이 있어.



나의 이 너그러움은 풀이 되어 풀숲에서 가만히 앉아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개구리가 되어 풀숲에서 숨을 쉬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나비가 되어 가만가만 당신 창가에 날아들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모기가 되어 당신의 피부에 들러붙어 피를 빨고...


까지는 너무 나갔나...




각설하고.


요즘 나는 빨간색에 완전 꽂혀서 빨간 구두를 사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어제는 퇴근 후에 빨간 네일을 하러 갔다. 꺅 >.<






내가 네일을 받은 곳은 강남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알라딘 중고샵과도 가까웠다. 나는 네일을 끝내고는 룰루랄라 알라딘 중고샵으로 향했다.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있던 책들중 무엇이 있으려나, 검색해보다가, 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득템하게 된것이다. 고등학생 때 읽고는 감흥 1도 안받았었는데, 며칠전 알라디너 T님의 페이퍼를 보고는, 오, 이 나이에 다시 읽으면 내게도 어떤 다른 느낌이 찾아들까, 싶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싼값에 득템했군, 좋았어, 하고는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다. 아아 너무 추워 더는 구경을 못하겠어, 하고는 그 한 권만 사가지고 나왔는데, 얼마 안가 예스24 중고샵이 보인다. 그래서 에라이, 하고는 또 들어갔다. 거기는 오오, 들어가자마자 포근하고 따뜻해..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어..게다가 도서검색 컴퓨터가 크고 좋아...키보드 눌리는 감도 좋아..그렇게 검색했더니 사고 싶은 책이 세 권이나!! 있어. 그래서 그 세권을 사가지고 계산하는데, 무슨 프로모션 이벤트라고 10프로 할인도 해준다..무슨 이벤트에 나는 걸려든 것인가...어쨌든 그렇게 중고책 네 권을 어제 저녁에 사게 된건데, 통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사느라 밥도 굶었어...




어쨌든 그래서 집에 와가지고 후다다닥 바나나를 먹고 스크램블 에그를 해먹다가, 아아, 안되겠군, 하고는 밥통에서 밥을 퍼서 후다닥 먹고, [누구나의 연인]을 읽다가 잠들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에 두 차례였나 세 차례 깼다. 마지막으로 깼을 때는 네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으응, 하고는 하릴없이 북플 들여다봤다가, 메일 들여다봤다가, 인스타 들어가봤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그제야 내가 뭘 샀는지 알게 됐다.





아니, 잠깐만, 인스타에 아까 알라딘 중고샵에서 샀다고 올린 이 책, 뭐야?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이라고? 추억?



추......................

억.......................??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제목이 바뀐건가? 아니, 다리는 영어로 뭐지? 이게 그거 맞나? 이게 뭣이여 지금? 하고 후다닥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아아, 이 책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 다음 이야기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 내가 사고 싶었던 건 다리야 다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추억이 아니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 근데 왜 그때는 몰랐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이걸 새벽에 알았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멘붕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직 다리도 못읽었고 못샀는데 추억이 있으면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 넌 언제부터 추억이었니, 난 분명 다리를 샀는데... 아아 Orz

다리로 다시 사야겠네. 새벽에는 다리가 영어로 뭔지 너무 생각이 안났는데, 아까 검색해서 원제를 보니 브릿지 였다. bridge......다리.....................




일전에 친구들하고 1박2일 대전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 알아가는 거 너무 재미있어서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네가 재미있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라고 내게 대답했더랬다. 그런데 얼마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그 분은 내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계속 계속 공부하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오오, 나 요즘 그러고 있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얼마전 들은 정희진 쌤 강연에서는 우리가 이틀 일하고 이틀 놀고 이틀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 공부를 멈추면 보수적이 된다, 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가 재미있다 생각하고 있는 때에 맞춰 모두들 내게 공부 얘기를 한다. 공부 얘기가 더 잘 들린다. 내가 영어단어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얘기하며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많이 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알라딘은 아주 적당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를 계속하면 나처럼 너그러워질 수도 있고...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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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1-0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다리의 추억이군요. 덕분에 또 한참웃었어요.
다락방님 덕분에 저 오래 살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16-11-01 10:20   좋아요 0 | URL
우리 오래오래 책 읽으면서 글 쓰면서 이야기 나누면서 삽시다. 많이 웃으면서 말이죠. 으하하하하

시이소오 2016-11-0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자기전에 읽은 책이긴 하지만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책을 사니 확실히 좋군요.
다락방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한참을 웃다 편안한 마음으로 잔답니다. ^^
오래오래 이야기 나누자는 말 좋네요.
시국이 지롤같지만 많이 웃고 사는 하루 되시길 ^^

다락방 2016-11-01 13:39   좋아요 0 | URL
아니, 지구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을 자기전에 읽고 계시는군요! ㅎㅎㅎㅎ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해주는 책이죠. ㅋㅋㅋㅋ
네, 시국은 엿같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면서, 싸울 것에는 싸워가면서, 그렇게 잘 지내 봅시다.

조선인 2016-11-0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ICT 컨퍼런스에 갔다가 뜬금없이 이응노 화백에 대한 특강을 듣게 되었어요. 순간적으로 모드전환이 안 되는 바람에 강의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결국 꾸벅꾸벅 졸았답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참석자 대부분이 다 그랬다는.... 하나같이 너무 어렵고 추상적이라 이해를 못 했다고 꼽았다는...

다락방 2016-11-01 13:39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그 강의는 제가 들어도 졸았을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강연을 잘 안들으러 다니는게 졸까봐....졸면 너무 부끄럽잖아요. 하하하하하.

yureka01 2016-11-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빨간색 매니큐어가 빨간색 포인트가 되었네요.책까지 이뻐보입니다.~

다락방 2016-11-01 13:41   좋아요 1 | URL
아하하하. 제 친구도 요즘 빨간 립스틱에 엄청 꽂혔던데, 이 가을은 빨강의 계절인가 봅니다. 훗

얼룩말 2016-11-0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저도 읽고 `엥? 뭥미..?`했었는데^^...네일아트는 언제나 진리입니다. ^^

다락방 2016-11-01 13:43   좋아요 0 | URL
저고 고딩때 읽고 읭??? 했었는데, 이십년도 더 지난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뭔가 다른게 훅- 올지, 아니면 여전히 읭?? 할지. 그렇지만 제가 산 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아니라는 게 함정...하아- 다시 사야지요. 흙 ㅜㅡ

얼룩말 2016-11-0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사지 마요..뭔가 운명인 것 같지 않아요? 안 읽어도 된다는..다시. 그 시절 읽었던 다락방의 꽃들같은 책들만 읽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아요. 저도 다락방님도 읭??? 했던 책이라면 역시 별로가 아닐까요. 전 그 줄거리 자체가 마음에 안들어요. 뭐 어쨌다는 거야!!하는 느낌. 왜 그 후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죠? 그 남자는 왜 다시 찾아오지 않았죠? 계속 불륜관계를 유지했어야죠. 그게 사랑이죠! 그 둘..전 마음에 안들어요.

다락방 2016-11-01 17:5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그 둘 , 마음에 안드십니까. 저는 그 뭐랄까, 일생에 아주 강한 사랑, 영혼에 싸대기를 날리는 강한 사랑이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누군가에게는 이십대 초반에 오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십대에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너무 좋아요. 그 둘이 더이상 만나고 있진 않지만, 그건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바니까요. 그래서 저는 곧 도전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책이 아주 많아서 나중엔 결국 까먹을지도 모르지만요. ㅠㅠ

아무개 2016-11-01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너무나도 제 자신에게만 너그럽습니다....


다락방 2016-11-01 17:58   좋아요 0 | URL
저는 개구리에게도 너그럽고... 에또...... 뭐 그렇습니다. ㅋ

clavis 2016-11-0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좋아요 다락방님ㅎㅎ너그러운 락방님ㅎㅎ

다락방 2016-11-02 10:01   좋아요 0 | URL
히히히히히 ♡

건조기후 2016-11-0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은 왜 개구리가 되어 보지 못 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대생 편견이 자꾸 심해질 것 같지만.. 제가 알았던 공대생들도 어쩐지 알맹이 빠진 껍데기 대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얘기하다가 한계를 느꼈던 적이 수도 없이 많네요. 뭔 노래를 하나 들어도 가사에 꽂히거나 멜로디가 좋거나 진짜 좋아해서 듣는 게 아니라 그냥 유행하는 노래니까 뒤처지지 않으려고 듣고.. 어휴, 공대생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 ㅋ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저도 읽은 지 오래됐는데 그 나이에도 중년의 사랑에 어찌나 감정이입을 했던지 ㅋㅋㅋ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영화 보면서도 펑펑 울고 영화 끝나고서도 메릴 스트립의 표정과 몸짓이 내내 생각날 정도로 빠졌었어요. 근데 어쩌다 책이 다리가 아니라 추억 ㅋㅋ 책은 인연이 아닌 것 같으니 영화로 보셔도 ^^

다락방 2016-11-02 17:48   좋아요 2 | URL
아 이 남자는 그런 답답한 남자는 아니었고요. 저랑 같이 영화보다가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뭣보다 사람 감정과 기분을 되게 잘 캐치하는데, 언제나 제 머릿속에 들어와있는 것 같았달까요. 크- 좋은 시절이었죠. 개구리가 되어보진 못하지만, 개구리가 되어볼 순 없지만, 좋은 남자사람이었습니다. 아...쓰다보니까 가슴이 아파서 ㅠㅠ 못쓰겠네 ㅠㅠ 오늘은 술없이 잘거에요. ㅠㅠㅠㅠㅠㅠ 이제 그만 얘기해야지 ㅠㅠ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저도 곧 읽고야 말겠어요! 중년의 사랑 너무나 궁금. 궁금하다기보다는 저는 사랑이란 게 이 세상 누구에게든 찾아들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참 좋아요. 올리브 키터리지도 결국 무지개가 뜬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잖요, 일흔 살에.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이 참 거시기하고 멜랑콜리하고 그러네요....

집에 가다가 짬뽕이나 먹을까봐요...

2016-11-02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2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3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11-03 08:14   좋아요 0 | URL
꺅>.<
건조기후님, 지금 여기 있네요?!!!!!!!!!!!!!!!!

감은빛 2016-11-0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디슨카운티의 다리는 별로 였어요. 근데 페이퍼 읽으면서 이 사람은 왜 `추억`을 사고는 `다리`를 샀다고 한거야? 하고 궁금해 했는데, 결국 그걸 새벽에 깨서 알았군요. ㅎㅎ

`추억`은 또 뭔 내용일까요? 일단 속편은 궁금하긴 한데, `다리`가 별로여서 전 패쓰예요

다락방 2016-11-03 08:1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저는 추억이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매디슨..만 보고 당연히 다리인줄 알았죠. 사람이 이렇게 덤벙대면 안되는 겁니다. 꼼꼼하게 끝에 제목까지 다 읽어야지, 성급하게 내가 아는 것만 진실인줄 알았으므로 이런 실수가....

그나저나, 아무개님 서재 보내까 12일 집회 오신다고요? 오오오오. 뵐 수도 있겠네요??

다리는 제가 한 번 다시 읽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훗.

2016-11-02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03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1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4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5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15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3-16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왜 책은 안 들어오고 빨간색 메니큐어만 눈에 들어오죠;;; 역시 강렬한 사람이었어 그대는!!!! 저 빨간색 메니큐어 로망 있는데 아직도 그 로망을 못 이루었답니다. 제 주변에 빨간 메니큐어 칠한 이들 둘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그대!!!!

clavis 2022-10-0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오랜만이에요. 한 알라디너님 덕분에 시적 정의를 읽어보려고 하는데 다락방님이 쓰신 글이 있어서 들어와봤어요. 제가 남긴 답글도 있네요 ㅎㅎ
 
누구나의 연인
플로리앙 젤러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제나 독립적으로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던 그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여자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가 특정한 한 여자와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멜리만이 예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가졌던 확신에 혼란을 야기했다. 그녀에게 점차적으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했던 것이다. (p.16)



사랑의 속성은 그 '예외'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은 수많은 '예외'를 허용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의 나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지만, 당신을 만나고난 후의 나는 이렇게 되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지 않았지만 당신에게만은 이렇게 돼. 수많은 예외를 만들고 스스로의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트리스탕은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남자 경험 한 번 없던 아멜리가 그의 삶에 찾아와 그와 동거를 하게 된다. 이 모든 설정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렇지만 '플로리앙 젤러'의 [누구나의 연인]은 밀란 쿤데라의 책처럼 재미있거나 공감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을 작가는 23세에 썼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그보다 두 배 정도의 나이를 더 살았기 때문인지, 여자 경험 많은 남자가 남자 경험 없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구속력을 느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진부하고 뻔하다. 게다가 이즈음의 나는 '남자 경험 없는 여자'가 사랑에 절절 매며 이 남자가 언제 나를 떠날지 몰라,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건 알지만 추궁하면 나를 떠나겠지, 하고 참고 사는 것도 너무나 바보 같아서 짜증이 난다. 이 책속의 남자는 한마디로 머저리 같고 여자는 멍청이 같다.



사랑이 구속력을 갖는 건 사실이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 바로 그 구속 안으로 들어간다. 그 구속은 단지 네가 몇 시에 어디에 가있느냐, 를 묻는다거나, 네가 오늘 누구를 만나느냐, 를 묻는다는 등의 실질적인 구속이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 그 안에 걸어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언제 그가 불러낼지 몰라 긴장한 채로 전화기만 쳐다본다든가,

그가 전화했을 때 혹여라도 받지 못할 상황이 되는 게 싫어 만나던 남자들을 다 정리한다던가 등등.

시키지도 않은 구속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한 때의 나는, 언제 우연히 어딘가에서 그를 만날지 몰라 허구헌날 예쁘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해서, 매일매일이 힘겨웠다. 매일 예쁜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발 아픈 일인지라, 아아, 이 남자를 갖다버리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거다. 그가 나를 구속하기 이전에, 내가 그 구속안으로 풍덩 빠져버려서.




트리스탕은 아멜리를 사랑하는 것 같다가 아닌 것 같다가, 자신이 늘상 여자를 바꿔가며 만났던 과거를 그리워하다가, 지금이라고 안될게 뭐야, 하고는 아멜리와 동거를 시작한 후에도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다. 책 속에서 트리스탕의 나이는 29세인데, 갑자기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 [미스트리스] 생각이 난다. 거기에서 여자주인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속삭였더랬다. '서른 여섯, 남자를 후리기엔 늙은 나이지' 라고. 스물 아홉은 괜찮냐..그렇다면 서른 여섯을 넘긴 나는 남자를 후리고 다닐 수 없냐... 어쨌든 트리스탕은 그렇게 여자들을 만나서 자고 다니는데, 그렇다고 예전의 그 기쁨과 쾌락이 고스란히 찾아들질 않는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왜 이렇게 기쁘지 않지... 트리스탕이 다른 여자랑 아무리 자고 다녀도,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아멜리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다. 그가 다시 예전처럼 기뻐지려면, 아멜리로부터 떠나야 한다. 아, 그러나 이 부서질듯 연약한 여자(라는 설정도 너무 똥같다..)에게 상처를 주는 건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네가 나를 떠나줘, 라며 끊임없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데...



아아, 이 머저리와 멍청이의 사랑(인지 아닌지)을 보는 건 딱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자꾸 어린아이에 비유하는 것도 짜증나고..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플로리앙 젤러. 다음에도 그를 작품 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p.175)



스물 셋의 나이에 이런 책을 쓰다니, 재능도 있다고 생각하고 또 대단하다고도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다. 젊은 나이에 데뷔한 이 잘생긴 작가가 하도 유명해서 '젤러주의자'도 생겼다는데, 나는 아니올시다, 플로리앙 젤러, 당신은 이제 그만 만나도 되겠다.


안녕.





그녀를 떠날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통받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두 번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다른 이를 실망시키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56)

아멜리는 그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 초기 몇 달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몹시 행복했던 그녀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종종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곤 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두 개의 세계, 막 떠나온 꿈속의 세계와 이제 다시 절실하게 마주해야 할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머무르곤 했던 것이다. 그 감미로운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불안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현실은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옆에는 트리스탕이 있었고, 안심이 되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에게 그를 제외한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세상이 다 죽어 버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p.104)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자신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아니, 그와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게 되었다. 함께 산책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사람들이 분명히 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행복을 믿느냐고 물어 왔다면, 그녀는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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