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과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툭하면 다퉜다. 치고박고 싸웠다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키는 데 애를 먹었는데, 나는 그게 참 좋았더랬다. 그가 나를 답답해하는게. 뭔가 괴롭히는 맛이 있달까...(응?)
그는 다른 나라에 살았고, 다른 계절에 살았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풀벌레가 울지 않았던 계절에, 수화기 너머로는 그가 있는 곳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풀벌레로구나, 하다가 그렇지만 개구리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라고 내가 말했는데, 그때 그가 그랬다. 이 더위에서 개구리가 바깥에서 살 수 없다, 개구리는 양서류고 피부로 호흡하는데, 이 땡볕에 어디 풀밭에 나와 노래를 하냐, 개구리가 아니다, 하는 게 그의 요지였다. 아니, 풀밭에 나와서 노래를 할 수도 있지, 이 땡볕을 견디는 개구리가 있을 수도 있지! 라고 내가 대응하고 그는, 내가 이 계절에 개구리를 바깥에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니까, 하며 으르렁 거렸고, 나는 그런 그에게, 아니, 당신이 못봤다고 개구리가 없다고 어떻게 말하냐, 풀숲 깊은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 라고 말했고, 아니 이 문과생이 왜 개구리가 이 더위에 살 수 없다는데 자꾸 우기냐, 고 하길래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개구리가 되어 보지 못하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에 그는 진정 빡침이 찾아와서 나에게 버럭버럭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이렇게 종종 그를 버럭버럭하게 만들었다. 괴롭히는 깨알재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답답해 미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에서 느껴지는 묘한 짜릿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렇지만,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나. 여태 그러지 않았다고 앞으로 그러지 말란 법이 어디있으며, 풀숲이 너무 좋은 어떤 특별한 개구리는, 호흡법을 강하게 익혀서 어딘가에서 햇볕을 쬐며, 조금만 더 있다 물로 들어가자, 할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개구리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할 수도 있을것인데, 왜 개구리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개구리가 지금 없다! 고 단정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 공대생이여....내가 개구리라면 어떻게든 끈질기게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여.....
그러다 나는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읽게된 것이었다.
달의 분화구를 얼굴로 생각하는 것, 별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등은 경제학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상상력이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듯, 거기에는 사실적 증거 너머의 것들에 닿고자 하는 의지 속에 담긴 너그러움이 있고, 이 너그러움은 더 큰 삶의 너그러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p.93)
이제 알겠나, 헤어진 공대생 애인이여... 달의 분화구를 얼굴로 생각하는 것, 별에게 대화를 건네는 것,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은, 사실적 증거 너머의 것들에 닿고자 하는 의지 속에 담긴 너그러움 이라는 것을. 개구리가 되어서 땡볕의 풀숲에서 울고자 하는 것은, 나의 너그러움이다, 그말이다. 응? 나의 이 너그러움, 개구리가 되어보고자 하는 이 너그러움, 이 너그러움은, 삶의 너그러움을 위한 준비이기도 한것이며, 나에게 이 너그러움이 엄청나게 풍부해서 내가 당신하고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이다. 알겠는가.
누나에겐 너그러움이 있어.
나의 이 너그러움은 풀이 되어 풀숲에서 가만히 앉아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개구리가 되어 풀숲에서 숨을 쉬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나비가 되어 가만가만 당신 창가에 날아들고, 나의 이 너그러움은 모기가 되어 당신의 피부에 들러붙어 피를 빨고...
까지는 너무 나갔나...
각설하고.
요즘 나는 빨간색에 완전 꽂혀서 빨간 구두를 사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그것도 모자라 어제는 퇴근 후에 빨간 네일을 하러 갔다. 꺅 >.<
내가 네일을 받은 곳은 강남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알라딘 중고샵과도 가까웠다. 나는 네일을 끝내고는 룰루랄라 알라딘 중고샵으로 향했다.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있던 책들중 무엇이 있으려나, 검색해보다가, 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득템하게 된것이다. 고등학생 때 읽고는 감흥 1도 안받았었는데, 며칠전 알라디너 T님의 페이퍼를 보고는, 오, 이 나이에 다시 읽으면 내게도 어떤 다른 느낌이 찾아들까, 싶어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싼값에 득템했군, 좋았어, 하고는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다. 아아 너무 추워 더는 구경을 못하겠어, 하고는 그 한 권만 사가지고 나왔는데, 얼마 안가 예스24 중고샵이 보인다. 그래서 에라이, 하고는 또 들어갔다. 거기는 오오, 들어가자마자 포근하고 따뜻해..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어..게다가 도서검색 컴퓨터가 크고 좋아...키보드 눌리는 감도 좋아..그렇게 검색했더니 사고 싶은 책이 세 권이나!! 있어. 그래서 그 세권을 사가지고 계산하는데, 무슨 프로모션 이벤트라고 10프로 할인도 해준다..무슨 이벤트에 나는 걸려든 것인가...어쨌든 그렇게 중고책 네 권을 어제 저녁에 사게 된건데, 통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사느라 밥도 굶었어...
어쨌든 그래서 집에 와가지고 후다다닥 바나나를 먹고 스크램블 에그를 해먹다가, 아아, 안되겠군, 하고는 밥통에서 밥을 퍼서 후다닥 먹고, [누구나의 연인]을 읽다가 잠들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에 두 차례였나 세 차례 깼다. 마지막으로 깼을 때는 네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으응, 하고는 하릴없이 북플 들여다봤다가, 메일 들여다봤다가, 인스타 들어가봤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그제야 내가 뭘 샀는지 알게 됐다.
아니, 잠깐만, 인스타에 아까 알라딘 중고샵에서 샀다고 올린 이 책, 뭐야?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이라고? 추억?
추......................
억.......................??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제목이 바뀐건가? 아니, 다리는 영어로 뭐지? 이게 그거 맞나? 이게 뭣이여 지금? 하고 후다닥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아아, 이 책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그 다음 이야기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 내가 사고 싶었던 건 다리야 다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추억이 아니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니 근데 왜 그때는 몰랐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이걸 새벽에 알았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 멘붕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직 다리도 못읽었고 못샀는데 추억이 있으면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 넌 언제부터 추억이었니, 난 분명 다리를 샀는데... 아아 Orz
다리로 다시 사야겠네. 새벽에는 다리가 영어로 뭔지 너무 생각이 안났는데, 아까 검색해서 원제를 보니 브릿지 였다. bridge......다리.....................
일전에 친구들하고 1박2일 대전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 알아가는 거 너무 재미있어서 책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네가 재미있어하는 게 눈에 보인다, 라고 내게 대답했더랬다. 그런데 얼마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그 분은 내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계속 계속 공부하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오오, 나 요즘 그러고 있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얼마전 들은 정희진 쌤 강연에서는 우리가 이틀 일하고 이틀 놀고 이틀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 공부를 멈추면 보수적이 된다, 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공부를 하고 싶고 공부가 재미있다 생각하고 있는 때에 맞춰 모두들 내게 공부 얘기를 한다. 공부 얘기가 더 잘 들린다. 내가 영어단어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고 얘기하며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강하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많이 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알라딘은 아주 적당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를 계속하면 나처럼 너그러워질 수도 있고...
좋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