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의 연인
플로리앙 젤러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제나 독립적으로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던 그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여자들을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그가 특정한 한 여자와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멜리만이 예외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지금까지 그가 가졌던 확신에 혼란을 야기했다. 그녀에게 점차적으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허용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했던 것이다. (p.16)



사랑의 속성은 그 '예외'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랑은 수많은 '예외'를 허용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의 나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지만, 당신을 만나고난 후의 나는 이렇게 되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러지 않았지만 당신에게만은 이렇게 돼. 수많은 예외를 만들고 스스로의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트리스탕은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남자 경험 한 번 없던 아멜리가 그의 삶에 찾아와 그와 동거를 하게 된다. 이 모든 설정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렇지만 '플로리앙 젤러'의 [누구나의 연인]은 밀란 쿤데라의 책처럼 재미있거나 공감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을 작가는 23세에 썼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그보다 두 배 정도의 나이를 더 살았기 때문인지, 여자 경험 많은 남자가 남자 경험 없던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구속력을 느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진부하고 뻔하다. 게다가 이즈음의 나는 '남자 경험 없는 여자'가 사랑에 절절 매며 이 남자가 언제 나를 떠날지 몰라,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건 알지만 추궁하면 나를 떠나겠지, 하고 참고 사는 것도 너무나 바보 같아서 짜증이 난다. 이 책속의 남자는 한마디로 머저리 같고 여자는 멍청이 같다.



사랑이 구속력을 갖는 건 사실이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 바로 그 구속 안으로 들어간다. 그 구속은 단지 네가 몇 시에 어디에 가있느냐, 를 묻는다거나, 네가 오늘 누구를 만나느냐, 를 묻는다는 등의 실질적인 구속이라기 보다는, 나 스스로 그 안에 걸어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테면,

언제 그가 불러낼지 몰라 긴장한 채로 전화기만 쳐다본다든가,

그가 전화했을 때 혹여라도 받지 못할 상황이 되는 게 싫어 만나던 남자들을 다 정리한다던가 등등.

시키지도 않은 구속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들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한 때의 나는, 언제 우연히 어딘가에서 그를 만날지 몰라 허구헌날 예쁘게 하고 다니려고 노력해서, 매일매일이 힘겨웠다. 매일 예쁜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발 아픈 일인지라, 아아, 이 남자를 갖다버리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거다. 그가 나를 구속하기 이전에, 내가 그 구속안으로 풍덩 빠져버려서.




트리스탕은 아멜리를 사랑하는 것 같다가 아닌 것 같다가, 자신이 늘상 여자를 바꿔가며 만났던 과거를 그리워하다가, 지금이라고 안될게 뭐야, 하고는 아멜리와 동거를 시작한 후에도 여자들을 '후리고' 다닌다. 책 속에서 트리스탕의 나이는 29세인데, 갑자기 오래전에 봤던 프랑스 영화 [미스트리스] 생각이 난다. 거기에서 여자주인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속삭였더랬다. '서른 여섯, 남자를 후리기엔 늙은 나이지' 라고. 스물 아홉은 괜찮냐..그렇다면 서른 여섯을 넘긴 나는 남자를 후리고 다닐 수 없냐... 어쨌든 트리스탕은 그렇게 여자들을 만나서 자고 다니는데, 그렇다고 예전의 그 기쁨과 쾌락이 고스란히 찾아들질 않는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왜 이렇게 기쁘지 않지... 트리스탕이 다른 여자랑 아무리 자고 다녀도,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아멜리가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다. 그가 다시 예전처럼 기뻐지려면, 아멜리로부터 떠나야 한다. 아, 그러나 이 부서질듯 연약한 여자(라는 설정도 너무 똥같다..)에게 상처를 주는 건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네가 나를 떠나줘, 라며 끊임없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는데...



아아, 이 머저리와 멍청이의 사랑(인지 아닌지)을 보는 건 딱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자꾸 어린아이에 비유하는 것도 짜증나고..



옮긴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플로리앙 젤러. 다음에도 그를 작품 속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 (p.175)



스물 셋의 나이에 이런 책을 쓰다니, 재능도 있다고 생각하고 또 대단하다고도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좋은 건 아니다. 젊은 나이에 데뷔한 이 잘생긴 작가가 하도 유명해서 '젤러주의자'도 생겼다는데, 나는 아니올시다, 플로리앙 젤러, 당신은 이제 그만 만나도 되겠다.


안녕.





그녀를 떠날 것인가? 어쩌면 그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통받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두 번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다른 이를 실망시키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p.56)

아멜리는 그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 초기 몇 달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몹시 행복했던 그녀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종종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못하곤 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두 개의 세계, 막 떠나온 꿈속의 세계와 이제 다시 절실하게 마주해야 할 현실의 세계 사이에서 머무르곤 했던 것이다. 그 감미로운 불확실성 속에서 수많은 불안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현실은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옆에는 트리스탕이 있었고, 안심이 되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이처럼 행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지금까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그녀에게 그를 제외한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세상이 다 죽어 버린다 해도 상관없었다. (p.104)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처음으로 자신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아니, 그와 반대로 누군가 자신을, 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게 되었다. 함께 산책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사람들이 분명히 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다. 누군가 그녀에게 행복을 믿느냐고 물어 왔다면, 그녀는 단 일 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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