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p.127)

 

나에겐 최근까지도 부모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잊을만하면 가끔씩 툭 튀어나오곤 했다. 남동생이 직장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닐때면 왜 우리 아빠는 당신의 아들을 아무 직장에나 툭 꽂아줄만큼 사회적 위치가 단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부모가 사회적으로 단단한 위치에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 부모님은 그만큼 배우지 못해서 문화적 차이가 있을테니 저 남자와는 금세 끝내버려야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대학교육까지 받았다는 것, 내가 알파벳을 알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들으면서 이러저러한 의견과 생각을 보탤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을 글로 써낼 수 있다는 것, 그 교육의 과정 모두는 영어단어를 읽을 줄 모르고 사회적으로도 소시민의 위치에 놓인 우리 부모가 한 일이라는 것. 그런 부모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것을 아주 늦게야 알게됐다.

 

한때는 그런 원망도 했다. 나의 부모가 조금 더 잘났다면 그러니까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부자였다면 어릴때 내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 줄 미리 발견하고 더 큰 사람으로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젠가 가족들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빠는 '김연아 부모는 좋겠다, 김연아가 잘나서' 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남동생은 아빠께 이렇게 대꾸했다. '김연아가 우리집에서 태어났으면 어차피 우리가 다닌 회사에 다녔을걸' 이라고.

 

그 말은 그때 우리 부모님의 가슴을 찢어 놓았을까? 우린 모두 그 때 웃었지만 그 말은 부모에게 상처였을까? 나는 종종 엄마에게 왜 우리는 잘난 친척조차 없어서 내가 고작 이정도의 사람밖에 되지 못하게 한거냐고, 왜 엄마는 엄마와 똑같은 처지의 남자와 결혼했느냐고 내뱉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러게 말이다, 내가 좀 더 잘난 사람과 결혼했다면 너가 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하셨더랬다.

 

 

작년에 사주를 보았을 때, 사주를 보아주셨던 분이 내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부모가 참 좋다고, 부모자리를 정말 잘 만났다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모한테 크게 위로 받은 기억도 없는 것 같고 그저 나는 부모를 원망했던 순간들만이 떠오르는데, 그런데 내가 부모를 잘만났다고?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잘난 엄마의 글을 읽게 됐다. 본인이 많이 배우고 본인이 이미 돈이 많았던 엄마. 그런 엄마의 일상이었는데 나는 갑자기 내가 그런 부모를 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거다. 내 성격에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부모를 만났다면 나는 자식이지만 늘 기가 죽었을 것 같은거다. 우리 부모는 이만큼인데 나는 왜이렇게 못난 딸로 태어났을까 하는 자책에 시달릴 것만 같은거다. 실제 그런 환경이 된다면 내가 어떤 성격을 형성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나에게는 우리 부모가 최상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나를 이만큼 키워내기 위해서는 우리 부모가 존재해야 했다. 더 거만해지지 않기 위해서, 더 비약하지 않기 위해서, 더 모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내 부모는 나에게 필요한 최상의 보호자였던 거구나. 내게는 정말이지 이런 부모여야 했구나, 하고. 그래서 친구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사주 보시는 분이 내게 부모를 잘 만났다고 했는데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최상의 부모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러자 내 말을 들었던 친구는 너는 정말 최상의 부모를 두었는데 너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나는 너를 보고 너와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좋은 부모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오히려 내가 모르고 있었던거다.

 

 

내가 부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겐 '내 아이의 아빠'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내 남편'에의 로망이 아니라 '내 아이의 아빠'에 대한 로망. 그는 양복을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출퇴근을 해야할 것, 단단한 어깨와 팔로 아이를 한 손에 안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교과서나 참고서 혹은 소설책을 내게 들고와서 '이건 왜 그런거에요?' 라고 물었을 때 "네 아빠에게 물어보렴" 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그게 내가 내 아이의 아빠에 대해 요구한 것이었다. 내가 그런 아빠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아빠를 내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그 로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 로망이 실현되지 않더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나는 바뀌어가고 깨달아가고 있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일전에 읽어본 적이 있다. 그 소설은 남자와의 연애를 풀어 쓴 것이었는데 너무나도 솔직해서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더이상 아니 에르노를 읽고 싶어지지 않아졌다. 그래서 이 책이 아니 에르노의 책이라는 걸 알았을 때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른분의 리뷰에서 위에 인용한 저 문장을 보았다. 아, 그녀도 그녀를 이만큼 키워내준 아버지가 가난했구나, 소시민이었구나, 배움에 대해 일종의 경외감마저 가진 사람이었구나, 하는걸 깨닫는 순간 그녀가 지독하게 솔직히 써냈을것이 분명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써낸 글은 내가 읽기에 적절했다.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솔직히 말해준것이 내게는 무척 유용했고 고마웠다. 그녀같은 여자가-내게는 꽤 큰 위치에 있다고 느껴지는-, 나와 같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자라는 동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 내게는 위안이되었고 또 문제의 해결로까지 느껴졌다.

 

별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식탁에서 입씨름이 벌어지곤 했다. 그는 토론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난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또 그가 먹고 말하는 방식에 대해 이것저것을 지적했다. (p.91)

 

나도 나의 부모와 의견충돌이 있을 때 얼마나 많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는지, 얼마나 많이 '그들은 몰라' 라고 생각했던지. 위 문장을 읽다가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교육을 받게끔한게, 누가 한 일이란 말인가.

 

그는 덮고 있던 이불을 잡아당겨 내가 매트리스를 볼 수 있게끔 해주었다. 쓰러지고 나서 처음으로 주위에 있는 무언가에 관심을 보인 거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난 아직 모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병세가 그렇게 깊지 않다는 걸 보여 주려고 그렇게 말한 거였지만, 이렇게 어떻게 해서든 세상에 달라붙으려는 노력 자체가 거기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p.121)

 

내가 나의 부모의 죽음의 시간을 늦출 수 있을까? 그 시간이 닥쳤을 때 내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그들이 편히 눈감을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나에겐 어떤 식으로든 많은 후회가 존재하겠지. 앞으로도 또 후회할 일을 만들겠지.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그것들이 항상 내 앞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p.114)

 

 

 

 

 

나도 마지막 페이지들을 늦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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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2-05-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저도 친구분처럼 늘 다락방 님은 부모 복 있구나 하고 느꼈던 걸 보면, 안 그랬다 하시지만 그 좋은 점 잘 아셔서 글에 나타난 것 같아요. :)

다락방 2012-05-21 13: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니, 제가 뭔가 잘한것 같아서 뿌듯해져요, 치니님. 힛.
:)

2012-05-21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1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5-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년쯤 전엔가 <아버지의 자리>라는 제목으로 읽었더랬는데, 제목이 바뀌었군요. 당시 박일문이라는 젊은 작가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자신의 소설에서 거론하는 바람에 찾아 읽었더랬죠. <남자의 자리>라. 영 다른 소설을 대하듯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다락방 2012-05-21 13:12   좋아요 0 | URL
책의 분량으로 보면 얇은데 내용까지 가볍진 않더라구요. 간혹 들춰보게 될 것 같아요, 후와님. 아니 에르노를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거부감이 좀 옅어졌어요. :)

당고 2012-05-2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니 에르노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해서 쓴 일기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도 좋았어요.

다락방님의 부모님이 좋은 분들이라는 거, 전 알고 있었는걸요 :) 치니님 말씀처럼 글에 나타남 :)

다락방 2012-05-21 13:0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이 책의 책날개에 어머니에 대해 쓴 책이 근간으로 나온다고 되어있더라구요. 말씀하신 책이 개정판으로 나오려는가봐요. 저는 당연히, 그 책도 읽기로 불끈 결심했어요!

그런데 우리 당고님은 오와- 그 책도 벌써 읽으셨군요!

프레이야 2012-05-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부모님 자리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자신을 봐요. 제가요.
오랜 애증의 세월을 지나 이젠 인간적으로 애잔하고 연민이 드니까요.
부모 덕(물질적인 게 모두가 아니라요) 있는 다락방님은 복덩이에요^^
저도 부모 덕 없지는 않다 생각해요. 히히~ 그냥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라 생각하면 더 바랄 게 없어요.

다락방 2012-05-21 13:08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요, 프레이야님.
나를 어떻게 이만큼 키워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키워오면서 얼마나 많이 마음을 졸였을까 속을 태웠을까 싶더라구요. 어린 조카를 볼때마다 저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까 상처입진 않을까 아프진 않을까, 이모인 제가 그렇게 걱정을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우리 삼남매를 이렇게 어른이 되도록 키워왔을까요. 그 속을 제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을것 같아요.

네, 이렇게 된건, 프레이야님도 저도, 부모덕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레와 2012-05-2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한테 하는 것 만큼 우리 부모님한테 하면, 엄마 아빠 얼굴에 웃음이 떠날날이 없을텐데.
왜 그렇게 모질게 대할까.. 반성하는 아침.


다락방 2012-05-21 13:07   좋아요 0 | URL
그러게말예요. 친구들한테는 간혹 하루에도 수차례 문자메세지를 보내면서 왜 아빠 엄마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요? 저 역시도 잘한게 하나도 없어요, 레와님.

blanca 2012-05-2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것을 극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 다락방님을 다시 한번 부러워하게 됩니다. 저도 요새 부모님의 죽음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불가능해, 하며 괴로워하는 중이랍니다. 그런 면에서 나이드는 게 참 무서워요. 어제 최근 어머니를 잃은 지인을 만났는데 그 어떤 적절한 위로도 할 수가 없었어요. 자꾸 어머니와 부둥켜 안고 행복해하던 그 분 모습이 떠올라서. 상실에 결핍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다락방 2012-05-21 13:06   좋아요 0 | URL
저는 뭐 아픔이라고 말할만큼 대단한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간혹 터져나오는 원망 같은것이었죠. 부모에 대한 원망은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돈이 많든 적든 학벌이 높든 낮든 그것들과는 별개로 가지지 못한 다른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블랑카님 덕에, 정확히는 블랑카님이 이 책의 인용을 아주 적절하게 해주신덕에 제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블랑카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숱한 리뷰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거에요. 고마워요, 블랑카님.

테레사 2012-05-21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이 책을 어제 읽었어요. 다락방님과 똑같이 아니 에르노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지라 큰 기대 없었는데, 읽고 나서 참, 마음이 떨렸어요. 무어라 말할 수 없는..정말이지 이 세상의 언어는 몸짓과 느낌에 한참 못미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어요.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너무 적어요. 그것들에 비해..

다락방 2012-05-21 13:0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테레사님의 [브로덱의 보고서] 리뷰를 보고 [남자의 자리]는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했어요. 주말에 읽은 두 권의 책 모두 테레사님께 특별했군요. 좋은 경험이었겠어요.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가끔 꺼내 읽고 싶어요. 그런 책이 되고 말았어요.

네꼬 2012-05-2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자체가, 다락님한테 좋은 부모님이 계시다는 증거예요.

다락방 2012-05-21 13:04   좋아요 0 | URL
네꼬님도 참...부끄럽게..... ( '')

마노아 2012-05-21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볼 때마다 가족들 부럽다고 얘기했잖아요. 그런 가족과 어우러진 다락님 자체가 부러워요. 아주 아주 따뜻하거든요.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요!!

다락방 2012-05-22 13:54   좋아요 0 | URL
언젠가 제가 사랑하는 친구가 제게 "부모에 대한 컴플렉스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너는 그걸 극복할 나이가 됐다"고 말한적이 있어요. 그게 벌써 몇년전인데, 저는 남들보다 좀 늦된가봐요.

2012-05-21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2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댈러웨이 2012-05-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는 제 부모님을 또는 현재의 제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고,
환경탓 부모탓 하는 이들을 비겁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제가 태어나고 자랐더라면 분명 지금보다는 다른 인성과 재주를 지니고 다르게 살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다를 수 있는 또 다른 나를 생각하는 거겠지만요.

밝고 건강한 웃음을 지닌 10대, 20대의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그 아이들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 남 얘기가 아니라 가슴 한 번 쓸어보고 가요. ^^

다락방 2012-05-22 13:58   좋아요 0 | URL
김연아에겐 김연아의 재주를 알아봐주는 부모가 있었다, 부모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자식의 재주를 알아봐주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부모지만 내가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질 않다면 나는 또 어디에 서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면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부모를 가지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은 환상이 가미된 생각이요. 그러나 이것도 그때뿐, 또 어떤일로 부모님한테 툴툴거릴지 알 수 없죠.

그런데 이런 생각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것 같아요. 누가 알려줘봤자 잘 받아들여지질 않으니까요.

moonnight 2012-05-22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전에 읽으신 작가의 책을 저도 읽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니 에르노는 이제 그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신문에 실린 신간서평을 읽고 읽어볼까 어쩔까 망설이던 차였어요. 다락방님 리뷰에 의심없이 보관함으로 넣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제 느낌은, 많은 분들이 그러하겠지만 '애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없이 안스럽고 미안하고 가슴아프게 생각되다가도 왜 나를 태어나게 한 건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_-;에 대한 원망 같은 게 있어요. 성인이 되고 제가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가장이 되고 난 이후에는 그 원망이 조금은 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술 한 잔 하고 나면-_-;;) 그 원망이 다시 고개를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내가 또 더 싫어져서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겁고. 좌우지간 풀 수 없는 매듭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쨌든, 이 책을 꼭 읽겠습니다. 고마워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2-05-22 14: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인가봐요. 어느날은 한없이 원망스럽고 어느날은 한없이 안타깝고 그래요. 나는 스마트폰을 쓰고 레스토랑을 가고 와인을 마시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데 이 모든걸 누리게 된게 누구덕인가, 그런데 그들은 정작 그것들을 왜 누리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저도 이제 원망을 덜하게 됐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 많은 것들을 내 부모도 누리고 살게 해주자 싶지만, 이게 늘 생각뿐이네요.

이 책은 못난 제가 쓴 것 같아요, 문나잇님.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퇴근 시간이 이제 한 시간 밖에 남질 않았네요. 오늘은 제가 무척 기다렸던 날입니다. 술 마시기 위해서...( '')


자, 그래서(뭐가?) 오랜만에 책 드립니다. 요즘은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중고샵에 책 파느라 책을 드리지 못했네요. 드릴책이 얼마 없어 살짝 민망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아닐까 싶네요.


모두 제가 가지고 있던 책들이구요, 그중에서 읽은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습니다. 밑줄이 그어진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습니다. 읽다가 포기한 책도 읽고 제법 낡은 책도 있습니다. 


각자 두 권씩 신청하실 수 있구요, [가스라기]의 경우는 전 3권셋트를 1권으로 처리합니다. 그러니 가스라기 신청하셔도 다른 책 신청하실 수 있어요. 해외에 계신분도 신청가능합니다. 그러나 DHL 이나 EMS 로 보내드리진 않을거에요. 그리고 신청은 모두 '공개댓글'로 달아주시길 바랍니다. 다른분에게 참고가 되게요. 

물론, 제 서재에 한 번도 댓글을 남기지 않으셨던 분도 신청가능하고 비로그인으로 댓글 다셔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페이퍼는 즐찾서재에만 공개됩니다.)


자, 시작!



시드니 셀던, 텔미 유어 드림 상,하








시드니 셀던, 여자는 두번 울지 않는다








문효, 조선의 글쟁이들

마립간님께 드립니다.







김인숙, 소현

마립간님께 드립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 소녀 수집하는 노인

소이진님께 드립니다.






쑤퉁, 이혼 지침서

DORIBARI님께 드립니다.






민해연(진산), 가스라기

가연님께 드립니다.






윌리엄 A. 로시, 에로틱한 발

DORIBARI 님께 드립니다.






존 번햄 슈워츠, 내 생애 가장 슬픈 오후







마르크 레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소이진님께 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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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5-1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글쟁이, 소현을 신청합니다.

다락방 2012-05-18 17:27   좋아요 0 | URL
네, 조선의 글쟁이와 소현 드리겠습니다. 비밀댓글로 주소3종셋트 속삭여 주세요~

2012-05-18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5-21 09:21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이번주 내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좀 기다려주세요! 흐흣

머큐리 2012-05-1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은 다른데서 당첨된게 있어서...패스합니다... (솔직히 고르기가 넘 어려워요...^^;;)
락방님 즐거운 술자리에 개운한 주말 보내세요..^^

다락방 2012-05-20 17:36   좋아요 0 | URL
머큐리님, 즐거운 술자리였으나 매우 피곤한 주말이네요. ㅎㅎ 이젠 술을 많이 마시고 또 이것저것 섞어 마시는것이 여간 괴로운게 아닙니다. 오늘은 일찍 자서 이 피곤을 다 풀어야겠어요.

주말 마무리 잘하세요!

이진 2012-05-1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 책이라니요. 저는 소녀 수집하는 노인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신청해요.
금요일은 야자 째는 날이에요. 한가로이 과자나 씹으며 컴퓨터하고 있어요.
책 읽으면서 다락방님 메모해 놓은거 발견하면 기분이 아주 좋겠어요... ㅎㅎㅎ

다락방 2012-05-20 17:3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소이진님께 책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학생이라니까 책을 살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을테니까요) 이렇게 신청을 해주시다니, 흐흣, 제가 다 기쁩니다. 비밀댓글로 주소삼종셋트 속삭여주세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은 좀 많이 낡았어요. 그렇지만 퍽 재미있는 책이에요.
:)

2012-05-22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5-23 08:53   좋아요 0 | URL
오케바리, 기다리삼. 곧 보낼게요~

가연 2012-05-1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신청할까 말까 하다가 끝까지 신비주의컨셉으로 가기로 했습니...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신청하면 주소 3종 세트를 끄적여야하니.. 이, 이것은 저의 신상을 캐내려는 다락방님의 계책..

일리가 없겠죠, 쳇. 저런 과대망상을 0.001초간 했습니다. 끄적거리고보니 괜한 실망감이...ㅋㅋㅋㅋㅋ

금요일밤.. 저는 내일 춘천에 잠깐 다녀오려구요. 오늘 피자먹고 푹 쉬어야겠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Arch 2012-05-18 21:43   좋아요 0 | URL
가연님, 댓글 보고 웃었어요^^ 다락방은 그리 주도면밀한 사람...
일까?
푸~ (막 유머친다)

다락방 2012-05-20 17:39   좋아요 0 | URL
아 가연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 금요일 밤에 술마시다가 스맛폰으로 이 댓글보고 완전 빵터져서 친구들한테 얘기했네요. 아, 어쩌면 좋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

가연님. 계책 맞습니다. 가연님의 신상을 캐기 위해 저는 엄하게 책 방출을 하는겁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니 신청해 주세요! 네?

춘천엔 다녀왔어요? 날씨 좋으니 거기 무척 좋았죠?
:)


(아치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렇게까지 주도면밀..할까요? ㅋㅋㅋㅋ 여기에 대한 답은 패쓰!)

Arch 2012-05-1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에로틱한 발은 내가 다락방님 에로틱하라고 준 책인데, 흥~
별로 재미없었어요?
나도 좀 그랬는데. 제목만큼 섹시하지 않았어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데 다 읽지 못해서리..

금요일이라 나는 또 자전거를 타고 이바돔 감자탕 집 앞에서 막 막 이러고 싶지만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어야겠어요. 술 잘 마셔요~

다락방 2012-05-20 17:40   좋아요 0 | URL
아치님, 그 책 몇장 읽었는데 못 읽겠어요. 하핫.

금요일은 잘 쉬었어요? 아치의 주말은 어땠어요? 좋은 사람들 만나러 가서 좋은 시간 보냈어요? 응?

댈러웨이 2012-05-1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실은 어제 좀 긴 댓글을 쓰고 싶었는데 스크린만 쳐다보다가 백만년 걸렸어요.
오늘도 그러기는 마찬가지.

찜한 책이 이미 어느 분(?)께로 갔네요.
그리고 가연님(안녕하세요 가연님!) 말씀처럼, 삼종세트,,, 다락방님의 계책이 아닐까,,, =3=3=3
그래서 저도 신비주의로,,, ( ")

술은 잘 드셨어요? 이 아침 숙취로 헤매고 계신건 아닌지. ^^

다락방 2012-05-20 17:42   좋아요 0 | URL
댈러웨이님이 찜하신 책은 어떤 책일까요?
그런데 댈러웨이님, 긴 댓글을 쓰고 싶었는데 왜 스크린만 쳐다봤어요? 네?

금요일에 새벽 네시 반 까지 술마시고 토요일 아침에 완전 머리 핑핑 돌아서 기절할 뻔 했어요. 걷는게 걷는게 아니더라구요. 휴... 그리고 토요일에 또 술을.......세상은 술술술 잘도 돌아가고 저도 술술술 잘도 먹네요. 아...그렇지만 이젠 늙어서 술 많이 마시면 너무 힘이 들어요. 하핫.

하루 2012-05-2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안타까워요. 너무 늦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주문을 하고 있어요! ㅜㅜ

다락방 2012-05-21 09:19   좋아요 0 | URL
하루님, 아직 네 권이나 남아있는데 하루님이 원한 상품이 이미 다른분께 찜되어 있는겁니까? ㅜㅜ

DORIBARI 2012-05-2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요 저요, 저 이혼지침서하고 발이요! 이혼지침서는.. 결혼을 고려하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라는 강렬한 느낌이 와요!! -_-

다락방 2012-05-21 09:20   좋아요 0 | URL
오케바리! 도리바리님, 접수! 이혼지침서 재미있어요! ㅎㅎ [발]은 아주 조금 건드리다 말아서 패쓰 ㅎㅎ
도리바리님은 알라딘 회원도 아니시니깐 주소삼종셋트는 이메일로 주세요.

fallen77@hanmail.net 입니다!
(지난번에 주소 보내주신 이메일을 제가 삭제했을것 같아서 말이지요.)

마립간 2012-05-26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책, 어제 잘 받았습니다.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다락방 2012-05-29 10:30   좋아요 0 | URL
[소현]은 좋았어요, 마립간님. [조선의 글쟁이들]은 제가 읽기를 포기한 작품입니다. 마립간님이 제 대신 잘 읽어주세요.

가연 2012-05-2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라기는 진산의 작품 중에 정말 수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죠, 풋. 신상을 감추려다가... 아놔..ㅋㅋ 가스라기가 너무 탐나긴 하네요.

다락방 2012-05-29 10:31   좋아요 0 | URL
푸하하하 뭔가 제가 이긴 기분이에요. 내가 이겼지롱~ 하는 그런 기분? ㅋㅋㅋㅋㅋ

근데..부끄럽게도..[가스라기].....좀 에로틱한 장면 많이 나오는데...히히히히히(좋아하고 있음)

2012-05-2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9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필요로 했던 가장 맞춤한 책



젠장, 사진을 올려도 어떻게 틀리게 적은걸 올렸을까. 제보가 들어왔다. height 는 [헤이트]가 아니라 [하이트]라고. 나는 영국발음은 헤이트니까 뭐 저것도 틀린건 아니겠지, 하고 멍- 했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영국이든 미국이든 저 단어는 [하이트]로 발음한다는 걸 알게됐다. 아 ... 쪽팔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었는데...... 다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height 가 헤이트라는것에 전혀,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건 강한 확신이었다. 확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너무 부끄러웠지만, 그래서 왜 하필이면 저길 사진 찍었을까 싶었지만, 바꿔 생각해보니 이거야말로 천만다행인거다. 만약 내가 다른 단어를 사진 찍었다면 나는 저 단어가 평생 헤이트인줄 알았을거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을테니까. 이제라도 누군가 나타나 그걸 지적해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제 집에 가서 부랴부랴 책을 꺼내 고쳐 쓰고 붙였다. 속이 다 시원하다.







나는 야구에 전혀 흥미가 없고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어서 이 책을 읽기전에 살짝 걱정스러웠다. 나처럼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러나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조금이나마 야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 그런데 나는 이것이 '본격 야구 미스터리' 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고 해서 야구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야구에 대한 승부조작을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질투' 이다. 질투가 한 사람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질투와 시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인 바,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냐. 처음부터 나 같은 놈의 공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공이었어. 그래서 난 지독히 참담해졌어. 아, 저놈 때문에 내가 오리올스에서 쫓겨나겠구나 했지. 그래도 난 오리올스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어. 오리올스에 쫓겨나면 나 같은 선수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테니까. 쓰레기나 마찬가지지. 사와무라, 넌 상관없어. 오리올스든 어디든 넌 상관없다고. 그런데 왜 하필 오리올스에 온 거야. 대체 왜." (pp.258-259)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에서 주인공은 학교의 가장 예쁜 아이에게 다이어트바를 건네준다. 그 여자아이는 그것을 먹지만 자꾸 살이찐다. 알고보니 그건 다이어트 바가 아니라 살을 찌우는 바였던 것. 그러나 이 여자주인공은 나중에 깨닫는다. 상대가 뚱뚱해진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표면적으로는 '그사람 때문에' 로 보일것이다.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저 아이만 없으면 내가 1등할 수 있었는데, 저 아이만 없으면 내가 제일 인기가 많을 수 있었는데, 저 아이만 없으면 내 잘못은 드러나지 않을텐데, 저 아이만 없으면 내가 가장 예쁜 아이일텐데.


그러나 백설공주를 죽인다고해서 마녀가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게 아닌것처럼, 그사람의 존재자체가 없어진다고한들 내가 가장 빛나게 되는건 아니다. '누가 없어서' 내가 빛나는 건, 진짜 빛나는게 아니지 않나. 그 사람이 있든 없든 나는 나 자체로 빛나야 하는게 아닌가. 야광토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나.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야광토끼, can't stop thinking about you 中 에서)


그녀가 있어서 나를 택하지 않은게 아니다. 나는 그냥 아닌거다. 나는 그에게 아닌거다. (아...갑자기 야구방망이로 가슴을 맞은것 같은 기분이다.)


나 역시 많은 것들을 질투한다. 누군가의 찬란한 젊음을 질투하고 누군가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질투한다. 어떤이의 잘 쓴글을 보면 내 페이퍼들을 몽땅 내리고 싶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질때도 있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질투하고 근사한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여자를 질투한다. 



첫사랑
                                          -정세훈


녀석이 나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도
학업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내 끝내 좋아한다는 그 말 한 마디
전하지 못했던 그녀와
한 쌍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왔을 적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섧게 울어도 그녀는 내 친구와 결혼하는 법. 살찌게 하는 바를 친구에게 건네도 내가 날씬해지는 건 아닌 법, 내가 그 앞에 분명 먼저 나타났지만 그가 나를 선택하지는 않는 법. 그럴때마다 '다 너 때문이야'라고 원망하며 세상을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섧게 울고 화도 나지만, 그 순간은 건강하게 이겨내야 한다. 















건강하게 이겨내려고 해도 사실 쉽지는 않다. 이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에서 여자는 자신이 먼저 그 남자를 봤고 사랑했지만 다른 여자에게 그 남자를 뺏기고 만다. 아니, 빼았었다는 사실을 상대는 모르니 이건 빼앗겼다고 말하기에도 난처한 상황. 그녀가 그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이라고 이천 번 생각한들 결과가 달라질까. 그녀가 설사 나타나지 않았다한들 여자를 택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긴 해도 부질없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어디 쉬운가. 포스터에서 나타난것 처럼 둘이 키스하는 걸 볼 때마다 다정한 걸 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질투의 마그마가 용암이 되어 흘러내릴텐데. 그러나 여자가 그녀를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든 남자에게 그녀는 애인이고 사랑이다. 여자의 자리를 빼앗은 사람이 아니다. 



"어찌 됐건 당신의 냉정함에는 놀랐어." 불여사가 말했다.

냉정이라. 타인의 내면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꼈다. 사실 내 마음은 망망대해에서 돛이 부러진 요트처럼 엄청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p.85)


고요해 보이고 편안해 보인다고 고요하고 편안한건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건 아니다. 이 책은 요란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듯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제 혼자 올림픽공원을 걸으면서 그리고 오늘 출근하면서는 내내 '포미닛'의 「볼륨 업」을 반복해 들었다.






막 좋아서 펌업더볼륨업~ 하고 따라 불렀는데 흐음, 무대는 별로네? 멤버들이 다 똑같이 생겨가지고..........내 옆자리에 앉아서 밥 먹어도 포미닛인줄 나는 전혀 몰라볼 것 같다는 생각이 이 동영상을 보면서 들었다. 아, 밥 먹어도 라고 하니까 며칠전의 점심 식사가 생각난다. 동료 한 명과 나는 둘이서 고등어구이와 대구탕을 시켜두고 먹고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뚱뚱한 고등어살을 밥과 함께 한 입 가득 넣고 씹는데 막 행복한거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입 가득 생선살을 발라 넣고 먹는걸 본다면 분명 누군가는 며느리 삼고 싶어하겠다, 는. 그러니까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은 젊은 남자들이 보면서 '사랑하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것과는 거리가 멀고 나이 든 아주머니들이 보면서 '며느리 삼고 싶다' 는 느낌을 줄 것 같다는.... 실제로 을지로의 허름한 호프집에서 나는 한 할아버지로부터 '연락처를 주겠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왜....왜 주겠다는거야.....나는 됐다고 했다. 아놔...orz




요즘 내 삶의 유일한 희망은 재이슨 스태덤이 싱글이라는 것, 유일한 절망은 그러나 재이슨 스태덤이 나의 존재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삶이 기쁨이었다가 절망이었다가 한다. 뭐, 다 그런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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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BARI 2012-05-18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surface 요. 악착같이 [서페이스]라고 발음하면서 살아왔는데, 제가 영어도 못한다고 무시했던 인간이 조심스럽게 혹시 그거 [서피스]아니야? 라고 물어본 것이지요. 쿠하하 너 장난치니? 라고 사전을 열어서 눈 앞에 들이대어주었는데 오마이갓. 전 유창한 척하면서 잘도 서페이스 서페이스 떠들면서 살아왔답니다. 다들 제 말을 대충 알아들어주었을까요, 아니면 속으로 아우 저 무식한 인간, 했을까요... 근데요, 그렇게 배우고 난 다음에도 급할 때는 그냥 또 서페이스라고 입에서 나와요.

(싱글인 재이슨 스태덤이 락방님을 아는데 계속 싱글인 게 진정한 절망이죠! 아직 락방님의 절망은 귀엽고 희망찹니다)

다락방 2012-05-18 12:31   좋아요 0 | URL
네, 도리바리님. 저도 쉽게 하이트라고 발음하지 못할 것 같아요. 보는순간 절로 헤이트로 튀어나와서..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ㅎㅎ

그런데 도리바리님의 댓글을 읽고나니 그러네요, 재이슨 스태덤이 저를 아는데 알면서도 안중에 없으면..아, 그게 더 절망이고 비극이네요. 어휴. 끔찍해서 생각하기도 싫어요. 그냥 모르는채로 지내는게 제가 행복한 길일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배부른 점심입니다, 도리바리님. 더불어 졸리기도 하구요.

레와 2012-05-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트는 맥주.
나에게는 영어는 이런것.-.- (ㅋㅋㅋㅋ)



다락방 2012-05-18 12:31   좋아요 0 | URL
나도 하이트는 hite 여야만 하는 이상한 강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고 2012-05-18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저는 아래 글을 이제야 봐서...... 솔직히 틀린 줄도 몰랐음 ㅎㅎ
저는 엄마가 저보다 훨씬 영어를 잘 하는지라 개비웃음 당한 기억밖에 없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님이 부러워요 ㅎㅎㅎㅎㅎㅎㅎ
엄마랑 저랑 유럽 여행 갔는데 엄마가 의사소통 다 하던 굴욕의 기억 ㅎㅎㅎㅎㅎㅎㅎ
난 입도 뻥끗 못해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아; 슬프다ㅠ

그나저나 다락방님이 <사우스포 킬러>를 읽으셨다니 놀랍! 저야 야구광이라 당장 읽었지만. 읽고 바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버렸어요 ㅎ 근데 신간이라 5000원도 넘게 받아서 매우 행복했던 기억이......ㅎㅎ

다락방 2012-05-18 16:14   좋아요 0 | URL
오와, 영어를 잘하시는 부모님이라니! 대박이네요. 게다가 부모님과 유럽여행이라뇨. 저희 엄마는 여권을 가지고만 계시고 한 번도 해외에 가보시질 못했는데..흐음......해외여행 한 번 시켜드려야 할텐데 ㅠㅠ

[사우스포 킬러]는 회사 동료 빌려줬어요. 저도 동료가 가져오는 즉시 중고샵에 팔 예정이에요. 남동생이 야구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남동생 보라고 산거거든요. 그김에 저도 좀 읽구요. 그런데 남동생도 다 읽고 나서는 '그저 그런데?' 라고 하더군요. ㅎㅎㅎㅎㅎ 저도 빨리 팔아서 5천원 넘게 받고 싶어요! 꺅 >.<

마노아 2012-05-1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틀리게 알고 있는 줄 알고 사전 찾아봤어요.ㅎㅎㅎ 심지어 발음도 들려주는 거 있죠. 인터넷 사전 완전 편리...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런 저런 얘기를 좀 만나서 하고 싶은데 저 요새 왜 이리 바쁠까요.ㅜ.ㅜ 지금 일주일치 알라딘 글을 훑고 있는데, 그래서 대부분 스윽 지나가고 있어요. 아흐 동동다리....

참, 그때 그 밥은 타지는 않았지만 물이 말라서 좀 되더라구요. 그 밥을 오늘까지 먹었는데 엄니가 코드도 뽑아놓고 가셔서 저는 딱딱하게 굳은 것 먹고 나왔어요. 생각해 보니 좀 승질나네요.^^ㅋㅋㅋ

다락방 2012-05-20 17:43   좋아요 0 | URL
앗 딱딱하게 굳은 밥은 혹시 전자렌지에 돌리면 되지 않을까요, 마노아님? (이건 잘 모르지만 어쩐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추측..)

저는 좀전에 남동생한테 height 발음 해보라고 했더니 하이트라고 발음하네요. 오, 너는 그거 하이트인줄 알고 있었냐? 나는 헤이트라고 했어, 라고 하자 남동생이 감히 누나와 자기를 비교하지 말라며....orz

벌써 일요일 저녁이에요. ㅜㅜ

가연 2012-05-1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처음에 저 글을 읽었을때는.. 비록 덧글은 안남겼지만.. 저는 필체만 관심가지고 봤는데ㅋㅋ 필체가.. 제 글씨랑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ㅋㅋㅋ 다만 제 글씨는 좀 더 사납고 날려쓰는 편이긴 하죠, 풋.
밑의 내용에 관련되어서 조금 끄적거리다가..ㅋㅋ 부끄러워서 안쓸래요, 풋. 아닌 건 아닌거겠죠, 그게 좀 맘이 아프긴 하네요.

이젠 좀 나쁘게 살아볼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쁜 남자가 대세라던데ㅠㅠㅠㅠㅠㅠ 근데 이러다가 그냥 나쁜놈이 되버릴까봐ㅋㅋㅋㅋㅋ 선뜻 실행에 못옮기고 있..

다락방 2012-05-20 17:4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가연님, 가연님이 책 방출을 신청하시면 그 책들 사이로 제가 제 필체로 적은 메모를 한 줄 정도 끼워 넣을수도 있는건데(응?) 말입니다. 제 글씨는 사납지 않아요. ㅎㅎㅎㅎㅎㅎ
밑의 내용에 관련되어서 가연님이 하고 싶었던 말이 궁금해요. 왜 부끄러울까요? 사실 부끄러운걸로 치자면 저도 엄청나게 많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마음이 아프네요.

하하하하 나쁜 남자라뇨! 가연님은 별로 나쁜 남자가 될 것 같진 않은데요? 푸하하하 실행에 못옮긴다는 댓글 읽다가 뿜어서 모니터에 침 튀었어요. 하하하하.

댈러웨이 2012-05-1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height이라는 단어를 '헤이트'라고 먼저 발음했다가 '아, 하이트?'라고 정정했어요.
이제는 다락방님 덕분에 그럴 일이 없겠네요.
(이거 보신 분들도 모르셨을거에요. 다락방님이 그렇다면 그런거니까!,,,???)

아 참, <내가 필요로 했던 가장 맞춤한 책>이라는 페이퍼 참 좋았어요. ^^

다락방 2012-05-20 17:46   좋아요 0 | URL
오, 제가 이렇게 썼기 때문에 먼 곳에 계신 댈러웨이님의 잘못된 발음을 교정해줄 수 있었군요! 꺅 >.< 이 페이퍼는 아주 유용한 페이퍼가 되었네요. 그쵸? 저건 그냥 봐도 아무리 봐도 헤이트 같잖아요? 이젠 하이트라고 발음해야 해요. ㅎㅎ
 
생각하는 ABC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사전 그림책은 내 친구 15
이지원 기획,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논장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일요일 엄마와 뒷동산을 산책하는데 엄마가 내게 sunny day 의 뜻이 뭐냐고 물으셨다. 나는 햇볕이 좋은 날을 써니데이라고 한다고 대답해드렸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다섯 살짜리 꼬마도 아는 단어를 엄마는 몰랐다며 꽤 울적해 하셨다. 그리고 곧 기본적인 영어 단어 몇개를 외우고 싶다고 하셨다. 


사연은 이랬다. 며칠전 엄마는 이웃집 아주머니 댁에 놀러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 아주머니의 다섯 살짜리 손자를 만나게 됐다. 이 손자는 우리 엄마께 인사를 드리고는 오늘은 써니 데이라고 했다는거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몰라 당황했고 이내 꼬마는 우리 엄마한테 아줌마는 써니 데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냐고 했다는 거다. 그동안 영어를 몰랐던 것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셨던 엄마지만 그 아이와의 대화 후 영어를 못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에겐 지금 22개월 된 손녀가 있다. 이 아이도 곧 어린이집과 유아원 유치원을 가게 될 것이고, 거기서 기본적인 영어 단어 몇 개를 배워올 것이다. 그때 손녀랑 놀다가 손녀가 내뱉는 단어 정도는 할머니도 뜻을 알고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손녀가 말하는 애플 같은 단어를 무슨 뜻인지 모른다면 엄마는 몹시도 챙피할것 같다, 는 것이었다.



간단한 영어조차 모르는 엄마지만 그동안 잘 지내오셨다. 그러나 잘 지내오셨다고 해서 영어를 모르는 삶 자체가 완벽하고 행복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계에 급급하다 보니 자식들을 교사로, 무역회사 직원으로 키워낼 수는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배움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셨던거다. 젠장. 나는 뒷동산에서 그 얘기를 듣고 초록은 그린이라고 태양은 썬이라고 하늘은 스카이라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계속 따라하셨다. 옐로우, 브라운, 바이올렛, 마운틴. 엄마는 단어를 외우고 싶어 하셨고, 나는 산에서 돌아오자마자 몸을 씻기도 전에 컴퓨터를 켜고 단어 몇 개를 적어드렸다. 일단 색깔을 외우고 싶다고 하셔서 색깔을 몇 개 적어드리고 이내 동물 그림과 단어를 출력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막막해지는거다. 동물 그림은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데, 그걸 오려내서 그 옆에 영어 단어를 쓰고 어떻게 읽는지를 써서 출력해내는 일이 결코 만만하질 않은거다. 그때 나는 영어그림책 같은게 분명 존재할테니 그걸 사드리자 싶었다. 책이 닳도록 보시면 되지 않을까. 마침 이럴 때 적절한 추천을 해줄 수 있는 마노아님이 생각났고 나는 마노아님께 이 책을 추천받았다.



마노아님의 추천은 틀림이 없었다. 이 책은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게 담겨있었다. 나는 눈물 날 정도로 이 책에 감동을 먹었다. 게다가 이 책은 풍성하다. 알파벳 별로 열 개씩의 단어가 나오는거다! 그림과 영어 단어 그리고 뜻이 나와 있어서 비명을 지를만큼 행복했지만, 엄마는 이 단어를 읽으실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외우기 좋게끔 소리나는대로 써서 포스트잇을 붙이기로 했다.




geometry (기하학)같은 단어는 사실 이 책에 좀 어울리지 않는듯 한데-나부터도 이 단어를 몰랐다 ㅎㅎ- 그래도 이 책이 아니면 또 이 단어를 접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좀 갸우뚱 하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지오메트리, 하고 적어 넣었다. 


단순히 그림에 영어 단어만 있어도 내게는 퍽 흡족한 책이었을텐데, 아, 세상은 정말로 아름답기도 하지, 그림들이 무척 예쁘고 신선하고 개성있다. 어떤 단어들에 대해서는 센스가 넘친다.






우산을 쓰는 그림이 아니라 뒤집어서 비를 받고 있는 그림이라니! 쭉 늘어난 코가 꽃의 향기를 맡고 있다니! 사다리만 턱, 그려놓은게 아니라 사다리에서 쓰러진 사람을 그려놓다니. 그렇다면 이 그림을 보면서 사다리에서 쓰러졌네 아프겠다, 라는 기억이 앞으로 사다리라는 단어를 외울 때 떠오르지 않을까.



내가 엄마에게 가장 알려드리고 싶었던 단어는 elephant 코끼리 였다. 현재 22개월된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 코끼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팔짝팔짝 뛰는 조카가 분명 얼마 되지 않아 엘리펀트를 말할 수 있게 될텐데 그때 엄마가 엘리펀트를 들으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런데 이 책안에 있다. elephant 가. flower 가 있고 lion 이 있다. rain 이, umbrella 가, tree 가, mountain이, walk 와 red 가, sleep 과 pig 가 이 책 안에 다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심지어 단어 index 까지 있다.




고마운 일이다. 맞춤한 책이다. 손녀에게 쪽팔리지 않는 할머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 더 많은 것들을 알기 위해서, 그레이프를 달라고 말하면 포도를 건네주는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기 위해서, 엄마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에게 이 책이 유용하기를, 이 책을 넘기며 하나하나 외우고 알아가는일이 기쁘기를, 스트레스가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단어들을 외우다가 엄마가 이 단어를 왜 이렇게 읽느냐고 물어보는 날이 올까, 그러면 나는 엄마를 마주 앉혀두고 이 알파벳은 이런 발음기호를 가지고 있고, 이 발음기호는 이렇게 소리난다고, 그렇게 설명해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래서 엄마가 영어에 재미를 붙여서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싶어지는 날이 올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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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 그냥 아닌거지.
    from 마지막 키스 2012-05-18 09:15 
    젠장, 사진을 올려도 어떻게 틀리게 적은걸 올렸을까. 제보가 들어왔다. height 는 [헤이트]가 아니라 [하이트]라고. 나는 영국발음은 헤이트니까 뭐 저것도 틀린건 아니겠지, 하고 멍- 했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영국이든 미국이든 저 단어는 [하이트]로 발음한다는 걸 알게됐다. 아 ... 쪽팔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그 글을 읽었는데...... 다들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height 가 헤이트라는것에 전혀,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이건 강
 
 
... 2012-05-1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 리뷰 정말 좋네요. 다락방님, 어머니께서 이 책을 마스터 하신 후엔 옥스포드 픽처 딕셔너리를 추천합니다.
http://foreign.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194740161 한글과 영어로 쓰여져 있구요. 일상생활에 필요한 단어가 그림과 함께 들어가 있어요. 오디오북도 따로 살 수 있다는 게 장점이구요, 낮은 레벨용 workbook 도 따로 팔아서 반복학습에 좋을 거예요.

우리 부모님들 나이가 기억력이 감퇴하는 시점이라 외국어 단어를 자꾸 (손으로 직접) 쓰고 외우고, 새로 배우는 게 정말 좋다던데, 그런 의미에서 다락방님 어머님 화이팅!!

다락방 2012-05-17 14:43   좋아요 0 | URL
링크해주신 책은 평들도 아주 좋네요! 그래서 저도 냉큼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꼭 사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히.

글쎄요, 엄마가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만 잠깐 반짝 하고 충동적인 결심인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설사 그렇다해도 잔소리하진 않을거에요.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스트레스 대박이니깐요. 엄마 화이팅!

개인주의 2012-05-1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노아님께 여쭤본적 있는데 멋지게 추천해주셨어요.
마노아님은 여러가지 재능을 가진 분 같아요.

다락방 2012-05-17 14:43   좋아요 0 | URL
네, 스누피님. 제겐 정말이지 꼭 맞춤한 추천이었어요!

웽스북스 2012-05-1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다락방 2012-05-17 14:44   좋아요 0 | URL
정말...뭐요? 다락방 예쁘다는 거에요?

아....정말 예뻐! 뭐 이런거? ㅎㅎㅎㅎㅎ

비로그인 2012-05-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덕분에 어머님이 당분간은 즐겁게 영어를 배우시겠네요ㅎㅎ 그래도 나중에 그 꼬마친구가 또 "써니 데이" 운운하면 그 말도 맞지만 "햇볕 좋은 날" 혹은 "맑고 화창한 날"이라는 더 좋은 표현이 있다고 당당히 알려주시라고 말씀드려보세요. 아니면 어른들이 쓰는 재미있는 표현들을 알려줘도 좋구요. 아마도 그게 아이들한텐 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안 그래도 고생하신 분들인데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다니...

다락방 2012-05-17 14:47   좋아요 0 | URL
그게 그러니까요, 후와님, 그게 무슨 뜻인줄을 알아야 엄마가 그건 이렇게 표현하렴, 하고 일러주실 수 있을거 아니겠습니까. ㅠㅠ
저도 후와님과 생각이 같아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외국어 습득이 훨씬 빠르다는건 알고 있는데요, 전 외국어를 좀 더 커서 배우는게 낫다고 생각해요. 일전에 굿모닝팝스 진행자인 오성식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갔는데요, 이 아이들이 엄마는 익히지 못한 외국어를 척척 배우더래요. 그런데 엄마랑 싸울일이 있었을 때 영어로 싸우더랍니다. 엄마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서 한국어로 얘기하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이 아이들이 한국어로는 감정 표현을 못하겠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그때 오성식이 아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싶어서 부랴부랴 한국으로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왔대요.

빨리 익히는게 있다면 빨리 잊히는것도 있겠죠. 아이들일때 외국어를 흡수한다면 모국어의 쓰임을 어느정도 잊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안 그래도 고생하신 분들인데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다니...아! 정말 울컥하는 댓글이네요. ㅠㅠ 속상해요 ㅠㅠ

moonnight 2012-05-1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여뻐라 다락방님. ^^ 왠지 눈물이 핑 도는 글입니다. 참 많이 반성도 되고요. 저도 다락방님처럼 예쁜 딸이 되고파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좀 아까 황금물고기 주문했는데(땡투도 했어욥!!! ^^) 오늘 또 주문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마노아님께도 감사드려요. ^^*

다락방 2012-05-18 09:32   좋아요 0 | URL
황금물고기는 문나잇님도 좋게 읽으실 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오늘 만날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몇 권 샀습니다. 후훗.

저는 별로 예쁜 딸은 아니에요, 문나잇님. 제가 예쁜 딸이었다면 좀 더 일찍 엄마가 영어를 몰라서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깨우치지 않았을까요. 엄마는 그냥 영어를 모르는 사람, 으로 단정짓고 말아버렸으니...답답하네요.

금요일이에요, 문나잇님! 오늘도 술독에 빠져봅시다!

heima 2012-05-1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리뷰 찡하고 또 너무 따뜻하네요. :)

다락방 2012-05-18 09:32   좋아요 0 | URL
헤헷 :)

기억의집 2012-05-1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은데 왜 이리 눈물이 나죠. 옆에서 울 딸이 왜 우네요

다락방 2012-05-18 09:33   좋아요 0 | URL
아니, 기억의집님 왜 우십니까. 오늘 날씨가 좋아요, 기억의집님.
:)

마노아 2012-05-1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아름다운 리뷰예요. 오늘 너무 바빠서 알라딘 접속도 못했는데 문자 받고 들어와서 지금 읽었어요.
다락방님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리뷰예요. 덩달아 제 기분도 마구 업되네요. 아이 좋아라. (^^♡)

덧)이거 읽다가 렌지 위의 밥솥이 딸랑거리는 걸 못 알아차렸어요. 지금 막 불껐는데 밥 탔을까 봐 막 긴장되네요. 그래도 여전히 기분은 좋아요. (^____________^)

다락방 2012-05-18 09:34   좋아요 0 | URL
밥은 탔어요, 마노아님? 밥이 맛있게 된건지, 밥은 잘 먹은건지...

요즘 정말 많이 바쁜가봐요, 마노아님. 좀처럼 알라딘에서 뵙기 힘드네요. 흑흑.
마노아님 이 책을 추천해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찾던 책이었어요. 마노아님 진짜 짱이에요!

레와 2012-05-1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다락방.

^^

다락방 2012-05-18 09:34   좋아요 0 | URL
천만에요!

icaru 2012-05-17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적인 페이퍼네요. 음~ 어머님이 열정적이세요. 대다수 어머님들은 그런 게 각성의 계기로 연결된다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살아왔던 대로 사는 것도 방법이니...
이이의 책은 생각하는 ㄱ,ㄴ,ㄷ 으로 갖고 있는데, 같은형식으로 기발하죠! ㅎ

다락방 2012-05-18 09:35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말씀하신 책도 보관함에 넣어두었어요. 그건 조카를 위해서요. 히히.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공부하게 하고 싶은데, 공부가 즐거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엄마에게도 조카에게도 잘 될지 모르겠어요.

DORIBARI 2012-05-1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영어 학원 한달을 넘긴 엄마가 공부가 재미있드라, 한 마디 하길래 약간 뜨끔했어요. 우리 어마마마도 초등학교 들어간 조카놈이 영어단어 숙제를 잔뜩 받아와서 할머니에게 물어보는 바람에 어머 뜨거라 학원에 등록하셨거든요. 모쪼록 조카놈보다 울 엄마의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해서, 존경받는 할머니의 자리를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

다락방 2012-05-18 09:36   좋아요 0 | URL
할머니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거군요. 그냥 손자를 예뻐하고 용돈주고 맛있는 것만 해주는걸로 끝나는게 아니었어요. 세상에, 도리바리님의 어머님도 그렇고 제 어머님도 그렇고 다 늦게 공부를 해야 한다뇨! 뭔가 알아간다는 건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또 거기서 재미도 찾게 된다면 좋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해요. 약간 우울해지기도 하구요. 사는게 너무 피곤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말이죠.
아무쪼록 도리바리님의 어머님도 저희 엄마도 화이팅입니다!

당고 2012-05-1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흑흑ㅠ
나도 다락방님께 영어 단어 배우고 싶다ㅠ

물론 아이들은 악의 없이 그러곤 하지만, 아이들의 그 입을 때려주고 싶을 때가 있어요 ㅎㅎㅎ
그리고 요즘 애들은 영어를 너무 잘해서 애들보다 영어를 모르는 건 절대 흠이 아니라고 이 연사, 강력히 외쳐 봅니다-_-;;;

다락방 2012-05-18 16:17   좋아요 0 | URL
영어는요 당고님, 장담하는데, 당고님이 저보다 훨씬 더 잘하실거에요. 저는 알파벳만 겨우 안다고 보시면 될 듯. ㅎㅎㅎㅎㅎㅎ 그러니까 저희 엄마처럼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께 단어를 알려드릴 수는 있지만 영어를 이미 할 줄 아는 사람들 앞에서 저는 입도 뻥긋 못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ㅋㅋㅋㅋㅋ 갑자기 미국 여행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한 상점에 들어가서 쵸콜렛을 보고 있는데 남자 점원이 따라다니면서 뭐라고 자꾸 하는거에요. 그런데 뭔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너무 당황스런 거에요. 아 씨..왜 자꾸 따라다니면서 뭐라고 하는거야, 대체 뭐라는거야. 그래서 친구를 찾아서 저 남자가 대체 나한테 뭐라고 하는거냐, 라고 하니까 고른 물건을 바구니에 넣으라며 바구니를 준 거라고;; 아 놔 orz


저는 말이죠, 당고님, 꼬맹이들이 영어를 잘하는게 결코 예뻐보이질 않아요. 흥이에요, 흥!

2012-06-25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5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5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쩌지...라지만 사실은 이미 결정한거 아니야?
황금 물고기
황시내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가사가 있는 노래이다. 멜로디도 좋아야 하고 보이스도 좋아야 하지만 가사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내게 와서 닿는다. 그래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에 내 사연을 싣기도 하고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안정도 얻는다. 내게 음악은 그런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황시내가 슈만과 슈베르트를 바그너를 얘기할 때 드보르자크와 드비쉬를 얘기할 때 놀랐다. 어떻게 가사도 없는 음악만으로 이토록 긴 얘기들을 할 수 있지? 어떻게 가사도 없는 그 음악들 만으로 가장 좋은 소리를 구분하고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이것은 '나와 취향이 달라'와는 좀 더 다른 느낌이다.

 

어떤 곡이든 유명한 연주들을 빠짐없이 들어보고 나서 누구의 연주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는 많은 성실한 음악애호가들에 비해 나에게는 웬만해서는 처음 들은 연주를 모범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어찌 보면 좀 게으른 버릇이 있다. 중2 땐가 학교 앞 레코드점에서 난생 처음 돈을 주고 구입한 타마스 봐사리의 쇼팽 연주가 그 한 예로, '쇼팽 하면 타마스 봐사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마우리치오 폴리니(실은 훨씬 더 유명한 연주가)의 해석이 봐사리와 비슷하다고 그를 멋진 쇼핑 해석자라 평가하는 정도이니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p.137)

 

중2때 쇼팽을 연주한 누군가를 모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니, 꽤 놀라웠다. 나는 중2때 신해철과 공일오비를 들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우상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나는 대중가요편 너는 클래식편 하고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그때의 내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클래식은 멀고도 멀었다. 설사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한들 그 음악이 한번도 내 가슴을 파고든 적이 없었던거다.

 

내가 처음 접한 인상주의 음악은 드뷔시의 초기 피아노곡 ,두 개의 아라베스크>(1988)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그 곡이 하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워 나는 이후 꼬랜 기간을 인상주의 음악만 들으며 보냈다. (p.145)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 다녀오던 버스안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큰 소리로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그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던 같은반 남자아이를 나는 좋아했더랬다. 기타를 가져와서 폼을 잡고 노래를 부르던, 그러나 사실은 기타를 칠 줄 몰라서 기타의 연주와 노래는 전혀 달랐던...

 

 

이 책 한권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는 총 3부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그 중 2부가 음악가와 음악에 관련된 에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시작할 때 시큰둥했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 그녀가 얘기하기 시작하는 2부부터 나는 이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여유가 찾아왔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하게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늘 출근길에서 내가 바란건 정말이지 그게 전부였다. 게다가 마침 그녀가 커피 얘기를 하고 있잖은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커피 맛을 즐기기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것을 실은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자주 가던 찻집 '슈베르티아데'와 '슈만과 클라라'등은 모두 좋은 음악을 틀어주기로 장안에서 유명한 곳들이고,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우선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물을 끓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말이다. (p.170)

 

 

2부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들이 만족스러워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때 가장 잘 말할 수 있는거라고. 2부에 실린 모든 에세이들이 하나같이 다 흥미롭고 신선하다. 게다가 그 에세이들의 모든 끝문장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그 끝문장이 나오기 전까지의 그녀의 글들이 그녀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부터, 그리고 중학교때도, 결국 전공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자연스럽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 물론 그녀는 클래식만 듣는 사람은 아니다. 그 음악들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것 뿐이지 그녀라고 가사의 울림이 좋은 노래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나는 시카고 거리를 달리며 그것들을 듣지는 않는다. 19세기 교향곡은 너도밤나무가 무성한 독일의 숲길을 달릴 때 비로소 최상의 퀄리티로 들려온다. 도시의 빌딩숲을 달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재즈가 최고다. (p.284)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음악을 듣지만, 그 다름 음악들에 대해 누군가가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쓴 글을 읽는다면 그녀도 '아, 이 음악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는데' 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 열정과 애정만큼은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게 이 책이 그랬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서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떠올려 보았다. 또한, 내가, 어쩌면, 앞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베토벤이나 브람스때문에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기로 결심했다.

 

 

2부와 3부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글은 3부에 실린 [텅 빈 방]이다. 자신의 방에 쓸데없는 물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그것들을 버리고 홀가분해하다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텔레비젼을, 식탁을, 시디를 구입하고는 결국 또다시 그 방을 물건들로 가득 채우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그녀가 드러나는 글.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또 필요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리화 시켜버리는, 나와 전혀 다를바가 없는 그녀의 일상. 이 에피소드는 가장 사랑스럽다.

 

 

LP 판의 추억이라든가 공갈빵의 추억 같은것은 사실 좀 식상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여유가 찾아온다. 내가 탄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도 나는 내리고 싶지 않을만큼, 딱 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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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7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18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2-05-1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책을 읽으면 책속에 등장하는 음악들을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사실은 갖고 싶어서!ㅋ) 지름신 대박이던데, 다락방은 그런 욕심 없었어요? ㅎ

다락방 2012-05-17 14: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때뿐이에요. 책 읽을 때만. ㅋㅋㅋㅋㅋ

Jeanne_Hebuterne 2012-05-1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소리는 내게 쇼팽을 데려다 줘요.

2012-05-1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05-17 14:40   좋아요 0 | URL
빗소리와 쇼핑이라. 그 둘의 조합은 어떤건지, 어떤 느낌을 주는건지 전 상상할 수도 없네요.

moonnight 2012-05-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가사가 없으면 음악이 아니다. -_-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갖고 있었을 때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슬슬 클래식이 좋아지더니 요즘은 클래식 에프엠을 하루종일 켜놓는 지경까지 이르렀답니다. 물론 요즘도 (다락방님이 추천해주시는^^) 가사가 아름다운 곡들을 음미해보고 신선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제는 옛날만큼 가사가 귀에 쏙쏙 와 박히지는 않더라구요. 나이들어 감성이 무뎌졌기 때문일까요. ㅠ_ㅠ;

하여간에, 책은 바삐 보관함에 넣습니다. 저도 꼭 읽어볼래요. ^^

다락방 2012-05-16 18: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가사가 없으면 음악이 아니다, 라뇨, 문나잇님. 저 이 댓글 읽고 웃었어요. ㅎㅎ

나이들어 감성이 무뎌졌다기 보다는 생각하고 느끼는게 변하잖아요. 입맛이 변하는것 처럼요. 전 어릴적에 녹차를 왜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풀 우린걸 대체 왜마시나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제는 녹차도 마셔요. 음악도 그런게 아닐까요. 일전에 듣지 않았을 것 같은 음악을 듣게 되는거, 어릴적에 들었던 음악을 더이상 듣지 않게 되는거, 그것도 우리가 변하기 때문인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모든 것들이 서서히 변하긴 하지만 그것이 감성이 '무뎌져서'는 아닐거에요. 덜 좋아지는 것들이 생기는 그 빈 자리에 새롭게 좋아지는 것들이 생겨서 새로 채워지잖아요.
:)

icaru 2012-05-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르 불문 하고, 음악을 듣는 열정과 애정 만큼은 저자와 그리고 다락방 님과 공감해요!!!
저였대도, 수학여행 때 붉은 노을을 부르자고 했다는 그 남학생이 좋았을 거 같은 이 공감능력은 뭘까요? (,,) ('')

다락방 2012-05-16 18:00   좋아요 0 | URL
그런데요, icaru 는 영어사전 찾아봐도 안나오는데, 아이카루님인가요 이카루님인가요? 갸웃.

그 남자아이는요, 붉은 노을을 부르자고 하기도 했지만, 히히히히, 꽤 잘생겼었어요! 제 뒷자리에 앉았던 녀석이었는데, 저한테 별명도 붙여줬었어요. 88서울올림픽공식지정이마빡 이라구요. 이마가 넓다고 운동해도 되겠다면서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