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라지만 사실은 이미 결정한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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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황시내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가사가 있는 노래이다. 멜로디도 좋아야 하고 보이스도 좋아야 하지만 가사도 좋아야 한다. 그래야 내게 와서 닿는다. 그래서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 노래에 내 사연을 싣기도 하고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안정도 얻는다. 내게 음악은 그런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황시내가 슈만과 슈베르트를 바그너를 얘기할 때 드보르자크와 드비쉬를 얘기할 때 놀랐다. 어떻게 가사도 없는 음악만으로 이토록 긴 얘기들을 할 수 있지? 어떻게 가사도 없는 그 음악들 만으로 가장 좋은 소리를 구분하고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이것은 '나와 취향이 달라'와는 좀 더 다른 느낌이다.
어떤 곡이든 유명한 연주들을 빠짐없이 들어보고 나서 누구의 연주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는 많은 성실한 음악애호가들에 비해 나에게는 웬만해서는 처음 들은 연주를 모범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는, 어찌 보면 좀 게으른 버릇이 있다. 중2 땐가 학교 앞 레코드점에서 난생 처음 돈을 주고 구입한 타마스 봐사리의 쇼팽 연주가 그 한 예로, '쇼팽 하면 타마스 봐사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마우리치오 폴리니(실은 훨씬 더 유명한 연주가)의 해석이 봐사리와 비슷하다고 그를 멋진 쇼핑 해석자라 평가하는 정도이니 굉장히 주관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p.137)
중2때 쇼팽을 연주한 누군가를 모범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니, 꽤 놀라웠다. 나는 중2때 신해철과 공일오비를 들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을 우상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나는 대중가요편 너는 클래식편 하고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그때의 내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클래식은 멀고도 멀었다. 설사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한들 그 음악이 한번도 내 가슴을 파고든 적이 없었던거다.
내가 처음 접한 인상주의 음악은 드뷔시의 초기 피아노곡 ,두 개의 아라베스크>(1988)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데, 그 곡이 하도 인상적으로 아름다워 나는 이후 꼬랜 기간을 인상주의 음악만 들으며 보냈다. (p.145)
초등학교 6학년때 수학여행 다녀오던 버스안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 큰 소리로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불렀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 그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던 같은반 남자아이를 나는 좋아했더랬다. 기타를 가져와서 폼을 잡고 노래를 부르던, 그러나 사실은 기타를 칠 줄 몰라서 기타의 연주와 노래는 전혀 달랐던...
이 책 한권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는 총 3부로 구성되어져 있는데, 그 중 2부가 음악가와 음악에 관련된 에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시작할 때 시큰둥했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 그녀가 얘기하기 시작하는 2부부터 나는 이 책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여유가 찾아왔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하게 이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오늘 출근길에서 내가 바란건 정말이지 그게 전부였다. 게다가 마침 그녀가 커피 얘기를 하고 있잖은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커피 맛을 즐기기보다는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것을 실은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내가 자주 가던 찻집 '슈베르티아데'와 '슈만과 클라라'등은 모두 좋은 음악을 틀어주기로 장안에서 유명한 곳들이고,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우선 CD 플레이어의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물을 끓이기 시작하지 않는가 말이다. (p.170)
2부에 실린 그녀의 에세이들이 만족스러워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때 가장 잘 말할 수 있는거라고. 2부에 실린 모든 에세이들이 하나같이 다 흥미롭고 신선하다. 게다가 그 에세이들의 모든 끝문장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문장 자체가 아름다운게 아니라, 그 끝문장이 나오기 전까지의 그녀의 글들이 그녀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부터, 그리고 중학교때도, 결국 전공에 이르기까지 그녀에게 음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자연스럽고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 물론 그녀는 클래식만 듣는 사람은 아니다. 그 음악들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것 뿐이지 그녀라고 가사의 울림이 좋은 노래들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을 세상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나는 시카고 거리를 달리며 그것들을 듣지는 않는다. 19세기 교향곡은 너도밤나무가 무성한 독일의 숲길을 달릴 때 비로소 최상의 퀄리티로 들려온다. 도시의 빌딩숲을 달릴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재즈가 최고다. (p.284)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음악을 듣지만, 그 다름 음악들에 대해 누군가가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쓴 글을 읽는다면 그녀도 '아, 이 음악에 대해서는 나는 이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는데' 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 열정과 애정만큼은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게 이 책이 그랬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서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떠올려 보았다. 또한, 내가, 어쩌면, 앞으로 듣게 될지도 모를 베토벤이나 브람스때문에 이 책을 책장에 꽂아두기로 결심했다.
2부와 3부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글은 3부에 실린 [텅 빈 방]이다. 자신의 방에 쓸데없는 물건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서 그것들을 버리고 홀가분해하다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텔레비젼을, 식탁을, 시디를 구입하고는 결국 또다시 그 방을 물건들로 가득 채우는 자신을 깨닫게 되는 그녀가 드러나는 글.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또 필요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합리화 시켜버리는, 나와 전혀 다를바가 없는 그녀의 일상. 이 에피소드는 가장 사랑스럽다.
LP 판의 추억이라든가 공갈빵의 추억 같은것은 사실 좀 식상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여유가 찾아온다. 내가 탄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도 나는 내리고 싶지 않을만큼, 딱 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