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 책을 들고 왔다.
어제 읽은 책이 엄청 어려운 책이었으니 한국어로 쓰여진 쉬운 글을 읽자 싶어서. 몇 장 안읽긴 했지만 이 책은 아직 내게 뭐 큰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 작은 울림도 아직.. 소설을 읽을걸 그랬나.
[알라딘 책소개]
소설가 황순원의 손녀이자 황동규 시인의 딸, 황시내 씨의 첫 산문집. 20대 중반,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쓴 편지 및 여행기와 미주 중앙일보와 네띠앙 칼럼란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발표해온 글들, 그리고 몇 편의 음악 감상문들을 추려,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담았다.
1부에는 작가의 독일 유학시절에 관해 쓴 글들이 담겼다. 2부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에 대한 감상이다. 3부는 미국 시카고 생활을 중심으로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이다. 할아버지 황순원 선생과 아버지인 황동규 시인의 인간적 모습을 볼 수 있는 산문도 함께 실려 있다.
유난히 '추억'을 소재로 한 글들이 많다. 옛날 가요의 추억, 어릴 때 가지고 돌던 인형의 추억, LP 판의 추억, 공갈빵의 추억, 음악 감상실의 추억. 지은이는 작고 소박한 물건들에서 찾은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알라딘 작가소개]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만하임 국립음대, 마르부르크 대학, 미국 테네시 대학에서 작곡과 음악학, 미술사를 공부했다. 2007년 현재 시카고에 거주하며,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몇 매체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 작곡과에 독일 유학이라니, 정말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었나 싶어 놀랐는데, 책을 읽다 보면 이 저자는 독일에서 동시에 두 학교에 다니기도 한거다. 진짜 대박.
독일에 있을 때 나는 한꺼번에 두 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만하임 음대와 다름슈타트 음악원에 원서를 집어넣은 것이 둘 다 합격되어 고민하다 두 도시가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에 착안, 일단 두 학교를 동시에 다녀보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두 학교 지도교수님들의 학습방법은 180도 달랐다. 만하임 음대의 교수님이 전통을 중요시하고 음 하나하나가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곡을 써야 한다는 주의셨다면, 다름슈타트 선생님은 보다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현대 정신을 중요시하는 편이셨다. 만하임에서 바흐와 베토벤을 분석하고 푸가를 연습한 다음날 다름슈타트에서 현대 음악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자아 분열 증세를 일으킬 만한 상황이었다. (pp.65-67)
우와-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어딘가에 '합격'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일텐데 두 군데 다 합격을 하고, 그리고 두 군데 다 다녀보기로 하다니. 맙소사.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일이다. 나는 한 군데 다니는것도 어찌나 어렵던지. 물론, 나는 내가 대학교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를 백프로 여대라는 핑계로 일갈하고 있지만, 어쨌든 남녀공학이라고 해도 나는 두 군데를 다닐 자신은 전혀 없는거다. 대체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물론 저자도 결국 한 쪽을 포기하긴 했지만, 대단하다!
나는 대학 얘기만 나오면 또 욱, 해가지고 이런 저런 공상을 해보곤 한다. 나는 가끔 멍청하지만 과에서 꼴찌를 할 정도로 멍청한건 아니다(라고 나는 혼자 생각한다). 그런데 대학에서 꼴찌를 했다. 그건 다 여대라서 그렇다(라고 역시 내가 혼자 생각한다). 사방팔방 천지에 다 여자들.. 내가 가진 로망중 하나가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여자아이로 소문나는 거다. 나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로 전교에 소문이 나서 시험기간 때는 내 노트를 빌리려는 남자애들이 줄을 서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노트를 빌려주고. 그러나 그 아이들이 아무리 아무리 코피 흘려가며 밤새 공부해도 장학금은 늘 내 차지고. 학교의 킹카가 스포츠카를 끌고 와서 내게 계속 작업을 걸어도 나는 너따위 흥! 하며 콧방귀 끼고. 그렇게 나는 너무나 공부를 잘해서 그 실력을 그냥 버릴 수 없어서 학업에 매진하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공부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나머지 샌드위치를 포장해서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보고 있다가, 마침 조깅을 나온 전직 특수부대 출신 재이슨 스태덤의 눈에 띄고, 우리는 ............
그러나 현실의 나는 학사경고 받는 여대생이었다. -_-
그러다가 이 부분을 읽었다.
Freundin 이라는 단어에는 특수한 울림이 있다. Froyn-din 이라고 가만히 말음해보면 먼 곳으로부터 그리운 노랫소리가 찾아와 귓가를 스치는 듯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특히 f와 r이 부드럽게 섞이며 시작되는 첫 음절이 마음에 드는데, 이 독일어의 r 발음, 불어보다 덜 두텁고 영어의 r보다 한결 우아한 발음을 나는 무척 좋아하여, 처음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거울을 보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연습했었다. (p.70)
아, 좋아하는 단어에 대해 그리고 그 발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 부분이 무척 좋았다. 그것이 영어였다면 내가 더 쉽게 이해했겠지만 독일어여도 괜찮다. 나는 저 단어를 발음하는 걸 들어보고 싶었다. 독일어의 저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는걸까. 어떻길래 좋아하는걸까. 나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 정말이지 독일어가 궁금해지는거다. 그래서 저 부분을 읽다가 마침 강남역에서 내렸고, 강남역 계단을 올라오면서 내가 사 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독일어판이 자연스레 생각났는데, 그러다가 마침, 오, 그 책은 오디오북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책 읽어주는 걸 들으면 나는 전혀 집중할 수 없지만, 이 오디오는 다르지 않을까?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외국어이니 그냥 틀어두면 마치 음악처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일전에 이게 엄청 비쌌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얼마지? 나는 출근하고 컴퓨터를 켜고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