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어제 출근길 강남역 1번 출구 앞에서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줄을 서서 길을 만들고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에너지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출근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간혹 그렇게 그 앞에서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일이 많다. 햄버거를 나눠주기도 했었고 두부를 나눠준 적도 있으며 캔커피는 수두룩하고 에너지바도 나눠줬었다. 그때마다 나는 받아들고는 하나 더 주세요, 라고 말해서 사무실로 돌아와 동료 직원과 먹었더랬다. 어제는 유독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제품의 홍보일텐데 열 명도 넘는 남자사람과 여자사람들이 단체로 유니폼을 맞춰 입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하나 더 받아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게는 주질 않았다. 그들 모두가 나를 보았는데도 주질 않았다. 분명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 받아가는거 봤는데. 좀 당황스러웠다. 결국 그 길을 다 통과할때까지 주질 않아서, 이거 사람 가리나, 주는 사람 안주는 사람 따로 있는건가 싶어서 몇 걸음 더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웬걸, 나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이 하나씩 받아들고 가고 있었다. 나는 어제 아침, 강남역 1번출구에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던거다. 무시당한걸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 왜 나는 안주냐고 따지기에도 면팔리고, 대체 이건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하면서 회사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등학교때가 생각났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해마다 고등학교에서는 축제가 열렸다. 축제 시즌이 되면 인근 남자학교에서는 초청장을 들고 우리 학교 앞 교문에서 하교하는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 초청장을 하교하는 모두에게 나눠주는게 아니라 몇 명에게만 가서 나눠주는거다. 쭈삣쭈삣 서있다가 누군가에게로 다다다닥 가서 나눠주고는 꼭 오세요, 했던것. 나는 1학년때도 2학년때도 3학년때도, 정말이지 3년 내내 단 한번도 그 초청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예쁜애들에게만 나눠주는건가, 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때마다 한 번도 받은적이 없어서 나는 거의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상처받은 내 자존심은 초청장을 받지도 않은 곳에 갈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내내 단 한번도 다른 남자고등학교의 축제에 가본일이 없다. 아,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 ㅠㅠ


에너지 음료를 못받았더니 과거의 아픈 추억이 떠올라 버렸어. 그 에너지 음료, 시중에서 보기만 해봐라. 내가 안티할테닷!



















어제 오늘 출근길에 읽었던 책은 무라카미의 에세이인데, 아, 나는 정말이지 하루키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루키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이렇게까지 많이 웃게 하지는 않는다. 사랑합니다, 하루키님. 님 덕에 제가 웃고 살아요.



하루키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에세이에서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의욕적인 우머나이저(색한)로 유명하다는 일화를 밝히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심농 씨 본인은 노벨문학상을 노렸던 모양인데 결국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라, 삼 년 전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심농이 섹스마니아였다는 것은 전설이 되어 문학사에 찬연히(는 아닌가) 빛나고 있다. (p.122)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나는 앞으로 심농이 섹스마니아였다는 사실을 잊지 못할것 같다. 심농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아서 그의 책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그가 위대한 작가인지 어떠한지도 모르지만, 그가 섹스마니아였단 사실만큼은 잊지 못할것 같다. 아, 하루키는 그런걸 궤뚫고 있는거다. 그러니까, 인간의 속성을! 


순무 이야기를 읽다가 진짜 빵터져버렸는데,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일본의 [곤샤쿠모노가타리]에 나오는 이야기란다.


옛날에 교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남자가 있었다. 밤중에 모처를 지나는데 느닷없이 격렬한 성욕이 밀려와 '안 되겠다, 더는 참을 수 없어' 하는 난감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때마침 그 옆에 순무밭이 있어서 그리로 들어가 커다란 순무를 쑥 뽑아서 구멍을 만들어 그 순무와 유희를 즐겼다(유치원 놀이극에는 맞지 않는다). 몇 분 뒤 "아, 좋다"하고 남자는 그 순무를 밭에 던지고는 여행을 계속했다. 순무는 가엾지만, 뭐 소녀를 강간하는 데 비하면 훨씬 죄가 가볍다.

다음 날 아침, 밭주인의 딸(열다섯 살)이 그곳에 왔다가 그 구멍 뚫린 커다란 순무를 발견했다. 그리고 "어, 뭐지? 구멍이 뚫려 있네" 하면서 그걸 먹어버렸다. 그랬더니 몇 개월 지나 배가 볼록하게 불러왔다. 명백한 임신이었다. 부모는 "너 대체 무슨 망측한 짓을 저지른 거냐"하고 다그쳤지만, 딸은 어떠한 기억도 없었다. (p.178)


아. 순무와 해버린 남자, 남자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순무, 그저 '먹었을' 뿐인데 임신해버린 소녀. 모두 가엾다. 가여워 미치겠어. 불쌍하지 않은 자 그 어디에 있는가. 물론, 위로 들어간 정액은 수정 되는게 아니라 소화가 된다. 그러니까 순무를 먹었다고 임신하는건 불가능한 얘기. 그렇다한들, 오오, 어쩐지 있을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버스안에서 아, 이들을 어쩌나 싶었다. 다들 가여워. 흑흑. 순무를 먹고 임신했다고 아무리 말해도 누가 믿어주겠어. 모두 가여워, 모두. 흑흑. 



스페인 사인회 얘기도 무척 재미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인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것으로, 두 시간 가까이 사인했는데도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이 책에 사인을 받은 뒤 "무라카미 씨, 키스해 주세요" 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수 없이(거짓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뺨에 키스를 했다. 계속 그렇게 하니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사 사람은 "시간 없으니 키스까지는 하지 마세요" 라고 했지만, 그런 기회는 흔치 않으므로 "아뇨, 작가로서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라고 주장하며 원하는 대로 키스해주었다.

사인하고 악수를 청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키스를 원한 것은 스페인 뿐이다. 게다가 멋진 아가씨들이 많아서 ‥‥‥아,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야지. 세상의 미움을 한몸에 살 것 같다. (pp.109-110)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사인회를 통 좋아하질 않아서 직접 가서 사인을 받는다거나 하는일이 없는데,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구나. 사인을 받고 키스까지 요청하다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그걸 '작가로서의 의무'라고 하는 하루키라니. 하하하하하하하하. 


무엇보다 나는 하루키가 맥주 이야기를 할 때 제일 좋았다.


그래도 세상의 모든 신 앞에 정정당당하게 맹세하는데, 맥주는 캔으로 마시는 것보다 병으로 마시는 편이 훨씬 맛있다. (p.142)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나는 캔에 마시는 맥주를 싫어한다. 집에서도 캔맥주를 마실 때면 대부분 유리컵에 따라 마신다. 캔에 들어있는 맥주는 어쩐지 짝퉁같은 기분이 들어서..물론 귀찮을 때는 그냥 마시기도 하지만 가장 맛있는 맥주는 유리컵에 따라 마시는 맥주다. 그 빛깔을 눈으로 고스란히 보면서 마시는 맥주. ㅋ ㅑ ~~~~~~~~~



맥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날씨가 이러니만큼 매일 맥주를 마시면서 지내고 있다. 어제도 마셨다. 그러다가 오늘 알라딘에 접속해서 어제부터 하루특가였던 믹스넛트를 주문하고 말았다. 매일 맥주를 마시는 날이 앞으로 적어도 한달간은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여동생 집으로도 하나 보냈다. 히히히히히. 요즘 여동생 부부도 저녁에 곧잘 맥주를 마시는 모양인데, 먹으라고. ㅋㅋㅋㅋㅋㅋㅋ 아, 빨리 와서 맥주 마셨으면 좋겠다. 희희희희희.



어제 집에가니 알라딘 박스가 도착해 있었다. 으응? 나는 뭐 주문한 게 없는데? 박스 안은 이 책들로 채워져 있었다.



꺅 >.< 완전 짱좋아! 안그래도 하나씩 사모아야지, 막 이런 생각하고 있었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생일이 좋긴 좋구나. 간절히 바라는 게 손에 들어오기도 하고.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동감동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떻게 알고 이걸 보낼 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이 다섯 권 모두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고등학교 시절, 남자고등학교 축제에 한번도 초대받지 못했지만, 하루키 에세이 다섯 권을 선물 받는 어른이 되었다. 훗. 이게 더 낫다. 아무리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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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2-08-1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인회와 순무 얘기에 ㅋㅋ 쓰러집니다. 이 귀여운 솔직함이라니! 그리구요 다락방님 생일이 9월달 언저리 아니였던거가요? 저랑 비슷하셨던 것 같아서. 에세이 다섯 권 선물 받는 여자가 저는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데요. 에너지 음류 한 박스보다요^^;;

다락방 2012-08-10 13:21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아니요, 8월달, 사자자리 입니다, 블랑카님. ㅎㅎㅎㅎㅎ

그쵸. 저는 에너지 음료도 못받았지만 에세이 다섯권을 무려 세트로 받았어요! 꺅 >.< 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훗.

저는 순무 얘기가 웃기다가 슬프고 슬프다가 웃기고 그랬어요. 하하하하핫

얼음장수 2012-08-1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글썽이며 글을 읽었습니다.
저도 하루키 에세이 (일단) 2권 주문했습니다.
페이퍼를 읽으니 마구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다락방 2012-08-10 15:36   좋아요 0 | URL
얼음장수님, 저를 동정하지 마세욧! 흑흑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뭐, 그래도 해피엔딩이 됐으니까(무슨말인지...) 괜찮아요. ㅎㅎ

오, 하루키 에세이 주문하셨군요! 주말에 읽으시게 될까요? 재미있게 읽으세요. 좀 키득키득 거리면서 말이죠. 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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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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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루키님 너무 좋아요. 하루키님 덕에 웃을 수 있습니다. 하루키님이 역시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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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찬연히 빛나는 인생
    from 마지막 키스 2012-08-09 09:20 
    어제 출근길 강남역 1번 출구 앞에서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란히 줄을 서서 길을 만들고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에너지 음료를 나눠주고 있었다. 출근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인지 간혹 그렇게 그 앞에서 무언가를 나누어주는 일이 많다. 햄버거를 나눠주기도 했었고 두부를 나눠준 적도 있으며 캔커피는 수두룩하고 에너지바도 나눠줬었다. 그때마다 나는 받아들고는 하나 더 주세요, 라고 말해서 사무실로 돌아와 동료 직원과 먹었더랬다. 어제
 
 
다락방 2012-08-0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지금 머그컵을 주냐구요!! 나는, 나는!!

레와 2012-08-0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머그컵 받을려고 또 주문했...............;;;;;;;;;;;;;;
사은품 컵에 정말 미쳐버린거 같아..ㅡ.ㅜ


다락방 2012-08-09 09:27   좋아요 0 | URL
하아- 레와님아. 집에 컵도 많을텐데 왜 또 그런................왜그랬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그랬어, 왜왜왜왜왜왜왜왜왜!!

레와 2012-08-09 10:04   좋아요 0 | URL
컵에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라고 써있잖아요. 집에 그런 컵은 없다구..ㅡ.ㅜ

다락방 2012-08-09 10: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치 집에 그런컵은 없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꼬 2012-08-09 11:21   좋아요 0 | URL
레와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 책 산다면 꼭 레와님한테 땡스투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2-08-09 11:25   좋아요 0 | URL
응 꼭 그렇게 해줘요, 네꼬님! ㅎㅎㅎㅎㅎ

레와 2012-08-09 13:17   좋아요 0 | URL
네꼬님 알라뷰! ㅎㅎ

다락방 2012-08-09 13:19   좋아요 0 | URL
왜 여기와서 사랑고백질이얏!!!!!!!!!!!!!!!!!!!!!!!!!!!!!!!!!!!!!!

moonnight 2012-08-0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머그컵 이벤트 하나요? 나는! ㅠ_ㅠ

다락방 2012-08-09 11:27   좋아요 0 | URL
컵 이쁘더라구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연 2012-08-09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책 보긴 했는데 저는.. 쫌 실망했어요, 풋. 그래도 바다표범의 키스, 는 굉장한 키스였답니다..

다락방 2012-08-10 09:20   좋아요 0 | URL
아, 너무 싫어요 바다포볌의 키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과 북 : BBC 드라마 (2disc)
브라이언 퍼시벌 감독, 다니엘라 덴비 애쉬 외 출연 / 이엔이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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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에 이런 작품이 쓰여지다니(원작), 대단하다. 그러나 DVD 자막은 왕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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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 1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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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는 사람만 없다면, 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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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2-08-08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미워요. 흥. 내 유머 무시하고. 메롱.

다락방 2012-08-08 14:4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나 밉다는거 뻥이죠? 다 알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SHIN 2012-08-0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쏘는 사람은 없었다. 총알이 1초에 900m나 날아간다는 사실도 알 수가 없었다. 총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라고 갑자기 저 문장을 보니까 떠오른 문구들이었습니다.
단 한 문장이지만, 가슴에 와 닿는 멋진 말입니다.

다락방 2012-08-08 14:4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저 한 줄이 참 좋더라구요. 그래, 쏘지만 않는다면 총 따위, 아무것도 아닌데, 하고 말이죠.

레와 2012-08-08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끄덕끄덕)

다락방 2012-08-08 14:47   좋아요 0 | URL
응. (끄덕끄덕)

Jeanne_Hebuterne 2012-08-08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소설 속에 총이 나온다면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 발사해야만 해.
(발사되어야만 해. 라고 번역문에선 말했었지요)
하루키, 일큐팔사의 문장.

다락방 2012-08-09 09:39   좋아요 0 | URL
소설 속에서는, 네, 총이 나온다면, 발사되기 위한 것이겠죠. 일큐팔사에 그런 문장이 나왔었군요!
 
남과 북 : BBC 드라마 (2disc)
브라이언 퍼시벌 감독, 다니엘라 덴비 애쉬 외 출연 / 이엔이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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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혁명 시대 영국의 도시 밀튼에는 면직물 공장이 곳곳에 세워져있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도 엄청나다. 각 공장의 공장장들은 지금의 공장장들과 별다를 바 없이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싶어하지만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런 가운데 말보로 공장의 손튼 만큼은 그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 더 비싼 기계를 들여놓고자 하고, 자신의 공장이 망하는 건 여러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임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꼿꼿하고 굳은 사람이다. 한 노동자에게는 어린 아들에게 반드시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고, 고기를 구할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 고기를 대량으로 사들여 싼값에 공급하고자 하기도 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한 공장의 사장과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는데, 남자의 주장이 결국은 노동자들에게 좋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자의 감정에 이끌려 그들에게 동정과 배려를 보이는 것 역시도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공장장이라면, 내가 하나의 큰 공장을 가진 사장이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니 내가 엄청나게 부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막연하게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언제고 불쑥 하게 되는 것이지만, 돈이 아주 많아서 큰 공장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해보게 됐달까.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그들에게 가급적 추가 근무는 시키고 싶지 않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혹은 취미생활과 여가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라면 직원 식당에서 아침과 점심과 저녁 모두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음식의 질은 최상으로 하고 싶다. 질 좋은 고기를 요리사가 쓰고 있는건지 나는 매일 그 식당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체크하고 싶다. 『그 숲에는 남자로 가득했네』에서 벌목꾼에게 먹음직스런 스테이크를 요리했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매일을, 윤기가 잘잘 흐르는 고기를 공급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산직에 근무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일이고, 그들에게 영양 공급은 필수니까. 또한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공단 내에 유치원과 유아원을 만들어 두고 좋은 선생님을 고용하고 싶다. 내 공장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아침에 부랴부랴 서둘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하고 싶다. 출근하면서 아이들을 공단 내의 유치원에 맡겨두고 퇴근하면서 그들의 손을 잡고 퇴근하게 하고 싶다. 유치원에서는 역시 훌륭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나는 까다롭게 감시할 것이다. 또 내가 한 공장의 사장이 된다면 직원들이 감기같은 작은 고통에 돈 쓰는 것 조차 벌벌 떨지 않게 하고 싶다. 사실 병원을 하나 옆에 지어두고 직원들 누구나 아프면 무상으로 진료받을 수 있게 할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너무 일이 커진다. 내과 소아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등을 모두 두려면 종합병원이 되야하고 그건 너무 광범위해서 오히려 휘청거리는 대기업이 되어버릴까 겁나니까. 그보다는 아파서 병원에 갔다면, 병원에서 진료받은 영수증을 청구하면 내 공장에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아픈건 죄가 아니고, 아프면 돈이 많이 드니까. 하다못해 틀니를 하더라도 공장에서 그 비용을 대주고 싶다. 아프지 마요, 그러나 당신들이 아프다면 돈 걱정은 하지 말아요, 하고. 더운 날에는 잠깐 짬을 내어 팥빙수를 먹을 시간을 주고 싶고, 추운 날에는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을 그들에게 주고 싶다. 나는 나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공장장이 되고 싶지 않다. 



이 모든게 너무나 이상적인걸까? 이게 그렇게 어려운걸까? 내가 돈이 없기 때문에 막연히 헛된 공상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우리 회사만 생각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이상에 부합하는 점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해졌다.




게다가 이 드라마속의(원작이 있다)여자를 보는데 온 몸으로 부조리함이 느껴졌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여자주인공이 대체 이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가 내게 문제로 닥쳤던 것. 그녀는 교양있는 아가씨지만 이제부터는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 같이 노동을 하거나 혹은 공장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하던가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던거다. 그녀가 할 줄 아는게 없어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지금 당장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지만 다 큰 성인 여자가 언제까지고 이모와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헐, 재수 좋으면 길 가다 줍는 종이가 만원짜리인건가,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는다. 그녀는 할 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엄청난 부자가 됐다. 아무리 시대 상황이 교양있는 여자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상황이라 한다해도, 부모님 돌아가신 혼자 남겨진 성인 여자에게 갑자기 떨어진 엄청난 아빠친구의 유산이라니....어처구니 없었달까.




노동자들을 대변해서 그들에게 배려심을 가져야 한다는 여자와, 공장장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생각하는 남자의 말다툼을 보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였다. 둘 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으니까. 게다가 이 꼿꼿한 남자가 여자가 떠나는 마차에 대고 '제발 뒤를 돌아봐' 하고 중얼거리는 것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DVD 는 마치 불법다운로드 한 듯 자막이 엉망이다. 자막의 맞춤법이 어떻게 이지경인지. 툭툭 거슬리는 단어들이 뻔질나게 나온다.



어쨌든 돈이 아주 많아져서 공장을 만들고 싶다. 제길, 이번 생에서는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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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2-08-08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려면 돈이 정말 아주아주 많아야지 적당히 많아서는 안되요.

적당히 많아서는 공장을 차리려면 외부의 자본금을 가져와야 하고, 그건 주식이 되었던 다른 누군가의 투자가 되었던 공장이 나만의 공장이 아니게 된다는걸 뜻하죠. 그런데 공장에 투자한 다른 자본들은 공장이 점점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내길 바랄테고, 더 많은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돈을 빼서 다른 곳으로 투자를 하려고 할거에요. 그러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다락방님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밤을 세우기 시작할 거에요. 그렇게 밤을 세워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서 한동안은 공장을 잘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시장 상황이 흔들리면 수입 자체가 줄어드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죠. 수입이 줄어드는 와중에서도 이윤을 내려면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남지 않는 경우가 생길거고, 그러면 여러가지 지출 내역 중 복지혜택이라던가 등이 최우선으로 희생되게 될거에요. 야박한 사람들은 복지혜택이 줄어든 것을 가지고 다락방님을 미워하기 시작할거고, 그러면 또 다락방님은 마음에 상처를 받아 술과 고기로 아픔을 달래다보면 밤을 세워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게 되겠죠. 그러면 다시 또 지출을 줄여 이윤을 남겨야만 하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다락방님은 점점 피폐해져 갈거에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공장 따위는 갖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처럼 멋진 페이퍼를 쓰는 것도 그 중 하나구요 :)

다락방 2012-08-08 09:17   좋아요 0 | URL
네, 턴님.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라고 왜 저같은 생각을 안했겠어요. 저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리고 쓰면서, 제가 사장이 아닌 이유가 있는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전 지금 이 자리에 있는게 가장 적절하기 때문에 이자리에 있는거다, 뭐 이런거? 막연히 돈이 없고, 상상만 하다보니 저런 생각들이 나왔지 만약 제가 정말 돈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거나 않았을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후..그래도 자꾸 아쉬워요. 제가 정말 돈이 엄청나게 많았다면 진짜 저런 공장을 차리고 싶은데 ㅠㅠ 여기에도 차리고 아프리카에도 차리고 ..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고 싶은데...

돈이 있어도 제가 그걸 못하면 스스로 자책할까봐 저는 돈이 없는건가봐요. 다 운명........( ")

안녕 2012-08-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ㅠㅠ 너무 예쁜 생각에 눈물이 핑

다락방 2012-08-08 14:48   좋아요 0 | URL
아니 눈물까지.. 하하. 안녕님, 누구나 하지를 못해서 그렇지 이런 생각들은 다 하고 살지 않을까요? 하핫 ;;

단발머리 2012-08-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에게 회사를 차려줍시다!!! 아자, 아자, 바자!!!

다락방 2012-08-08 14:48   좋아요 0 | URL
사회적 약자들이 먹고 살수 있게끔 기반을 마련해주는 공장들이 좀 많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건 그런데 사실 나라에서 신경 쓸 일이잖아요? 에잇.

치니 2012-08-0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다락방님이 공장장 되면 그 공장에 꼭 들어갈래요! 그러기 위해서 체력을 길러 놔야지. 으흐. (연령제한 같은 거 없는 공장이겠죠?)

다락방 2012-08-08 14:50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저는 아마도 역차별이란 원성을 듣겠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거나, 배운게 없어서 회사 취직이 도무지 어렵다거나 하는, 살아갈 힘이 너무나 약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어요.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든 사람들이요. 이 세상이 사람들 먹고 살게는 해줘야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요.

음...치니님 댓글은 무거운게 아닌데 전 왜이렇게 진지하게 대답해버렸죠? 수습이 안되고 있네요. 하핫 ;;

건조기후 2012-08-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비슷한 상상 많이 해요.ㅎ
저는 돈이 많으면 제일 하고 싶은 게 고아원과 함께 초중고 학교를 세우는 거예요. 좋은 선생님들 모셔서 제대로 가르치고 잘 먹이고 잘 키워서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든든하게 받쳐주고 싶어요. 나중엔 사람들이 고아원 출신을 오히려 부러워하게 만들고 싶..은 건 좀 오버인지도 모르지만 ; 암튼 종종 그런 꿈을 꿔요. ㅎㅎ

다락방 2012-08-08 17:35   좋아요 0 | URL
그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이런 생각들을 할 거에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걸 보면...실제로 돈을 가지면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되기 때문일까요? 건조기후님의 꿈도 근사하네요. 아이들을 제대로 잘 먹이고 잘 키우고 싶다는 꿈 말이에요. 좋다.
:)

moonnight 2012-08-0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의 공장에 취직하고 싶어요! 열심히 일할께요. ㅠ_ㅠ

다락방 2012-08-09 09:40   좋아요 0 | URL
문나잇님은 저희 공장에 취직하기보다는 저희 공장의 파트너가 되어주심이 더 좋을것 같아요! 아..뭔가 꿈의 직장이다. 문나잇님 직장과 파트너인 직장이라니. 움화화핫

웽스북스 2012-08-08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생에 제가 공중돌기를 할 확률보다는 높아보여요.

다락방 2012-08-09 09:40   좋아요 0 | URL
제가 볼 때는 웬디양님이 공중돌기를 할 확률이 더 높아보이는데요? 요가 다시 하고 있잖아요!!

LAYLA 2012-08-08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책으로 보고 싶어지네요. 주인공들의 말이 얼마나 살아있을지 궁금해요

LAYLA 2012-08-08 21:07   좋아요 0 | URL
아니 번역본이 없단 말인가요??진정??레알?? ㅠ,ㅠ

다락방 2012-08-09 09:41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책으로 보고 싶어요. 노동자와 공장장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들을 읽는게 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번역본은 없고 원서만 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되게 유명한 작품이라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댈러웨이 2012-08-0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든이 생각났어요. 다락방님은 여자사람 홀든??? ^^

다락방 2012-08-09 09:41   좋아요 0 | URL
우악, 댈러웨이님! 저는 홀든을 엄청 사랑해요. 그런데 제게 홀든이라뇨! 꺅 >.<